東方合衆國
United States of Oriental
восточный Соединённые Штаты
동방합중국
국기 국장
표어 萬民的祝福, 協和的實現
만민의 축복, 협화의 실현
국가 동방합중국의 국가
수도 동방 직할시東方 直轄市
최대 도시 서울 자치시漢城 自治市
정치
공용어 한국어, 러시아어, 표준 중국어
국민어 일본어, 이디시어
지역어 만주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몽골어
국왕[1] 이청李淸
합중국 의장 팔덴 갸초Palden Gyatso
역사
동방합중국의 성립  
 • 아이훈 조약 체결 1858년 6월 29일[2]
 • 스타노보이 세습국 수립 1861년 4월 17일
 • 신해독립 1912년 2월 11일
 • 합중국 결성 1919년 12월 3일
 • 동일전쟁 발발 1938년 6월 29일
지리
면적 730,161㎢ (41 위)
내수면 비율 4.3%
시간대 OST (UTC+9)
인구
2018년 어림 40,895,731명 (34위)
인구 밀도 56명/㎢ (115위)
경제
GDP(PPP) 2018년 어림값
 • 전체 $1조 2,589억 (19위)
 • 일인당 $30,783 (40위)
통화 합중국 달러 (O$)
기타
ISO 3166-1 158, USO, UO
도메인 .uo
국제 전화 +89
  1. 동방합중국의 국왕은 합중국을 구성하는 자치정부의 세습 대표가 임명되며, 실권은 없다.
  2. 정확한 체결 일자가 아니며,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는 시기이다.

동방합중국(한국어: 동방합중국, 중국어: 東方合衆國, 러시아어: восточный Соединённые Штаты)은 동아시아아무르 강 일대와 사할린을 비롯하여 쿠릴 열도을 영토로 하고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맞닿고 있으며, 일본과는 라페루즈 해협을 두고 접해 있다.

1860년, 아이훈 조약베이징 조약을 거치면서 아무르 강 일대가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괴뢰국으로 독립하였으며,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실질적인 괴뢰국 지위를 탈피하였다. 이후 1912년에 청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신해혁명의 영향을 받아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을 견제하려던 일본제국과 서양 열강들의 지지 및 도움을 받아 다민족 공생의 합중국 형태로 건립되었다.[1]

현재는 민족간의 자치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연맹체 국가의 성격이 강해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채택 및 비준된 동방합중국 헌법에 따라 강력한 중앙정부를 둔 단일 국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체제와 유사해졌다. 이에따라 "극동의 미국"이라 불리는 경우가 잦으며, 주변국에서 잦은 이민과 다민족 사회를 바탕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다문화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 한반도를 잇는 교통적 요충지에 있다는 점을 활용하여 국제 무역과 관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북부에 위치한 대경 유전제제합이 유전을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과 천연자원과 함께 사할린에서도 천연가스 등을 비롯한 중공업이 활황을 이루는 등 가속화된 산업화를 바탕으로 경제적인 잠재력이 상당한 나라로 각광받고 있으며, 주요 21개국(G21),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파리 클럽 같은 기구에서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개요

동방합중국의 공인된 수도는 신경(新京)이며, 최대도시는 연해시(沿海市, Владивосто́к)이다. 수도가 서부 지역에 치우쳐져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행정복합도시인 헤이허 행정시(黑河 行政市)를 두고 있다.[2] 헤이허는 대한민국세종특별자치시(世宗特別自治市)처럼 정부 청사가 소재한 곳이며 신경연해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직할시이자 어느 자치 정부에도 속하지 않는 합중국 내 합중국 의회에 통치를 받는 특별구(District)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3]

국호

과거에는 스타노보이(Станово́й)라고 불렸으며, 현재도 동방합중국을 지칭하는 별칭으로서 유럽권에서는 해당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4] 신해독립(辛亥獨立) 이후로 제정 러시아의 괴뢰국 지위에서 벗어남에 따라 조선인, 한인, 만주족을 비롯하여 다수의 민족들을 아우르는 연방의 형태로 나아가게 되었고, 이에 각 민족에 따른 합중국 내 자치정부들을 중심으로 '주' 연합체를 중심으로 한 합중국이 수립되면서 1919년, 하이선와 회의(海參崴會議, 해삼위 회의)에서 주요 건국 인사들이 국호를 '동방합중국'으로 결정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영미권에서는 스타노보이(Stanovoy) 외에도 영문 명칭인 "United States of Oriental"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며, USA와는 대조되는 "USO"를 약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자 명칭으로는 "東方合衆國"(동방합중국) 혹은 "極東聯合國"(극동연합국)이라고 칭한다. 한반도에서는 "간도합중국"(間島合衆國) 혹은 "부여연합"(扶餘聯合)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동방합중국 내에서도 다양한 조직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5]

역사

동방합중국은 근대에 이르러서 그 지위와 형태의 독립을 인정받은 국가로서, 그 이전까지는 주변국들의 영토로서 오랫동안 지배를 받아왔다. 특히 독립 이후에도 주변국들의 강한 압박을 받아왔으며, 수차례 국가의 위기를 겪어온 만큼 다민족, 다문화 국가를 표방함에도 외부 세력에 대한 퇴폐적인 인식과 부정적 반응은 이러한 역사에 기인된 점이다. 냉전 시기에는 제3세계를 표방했음에도 중화인민공화국, 소련,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영향권에 놓여있었기에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와 코뮌 사회에 익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현재는 자본주의 체제를 뒤늦게 받아들이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본 문서에서는 아이훈 조약베이징 조약 체결 이후의 역사를 간단히 다루며, 그 이전의 역사 및 자세한 내용은 동방합중국의 역사를 참조하도록 한다.

스타노보이 세습국의 성립

과거 네르친스크 조약을 뒤엎으려던 제정 러시아청나라제2차 아편전쟁(第二次 阿片戰爭) 중인 것을 기회로 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청나라의 전권대사 이산을 협박해서 불평등 조약을 체결할 것을 강요했으며, 열강들의 군대를 몰아내는 것을 중점으로 하던 청나라는 결국 아이훈 조약(愛琿條約)을 체결하는 것으로 일시적인 국가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에 아이훈 조약으로 제정 러시아외싱안링 산맥(外興安嶺)과 헤이룽 강(黑龍江) 사이에 넓은 영토를 획득하였으나, 기존 획득한 영토 내 한인들과 소수민족들의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자, (다우르의 난, 어룬춘의 난) 러시아는 직접 통치를 회피하는 대신, 이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괴뢰국을 수립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 당시 동시베리아의 총독이자 아이훈 조약의 체결을 주도했던 니콜라이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백작을 세습 군주로 한 스타노보이 세습국을 수립했다. (1861)

뒤이어 제정 러시아는 1860년 10월, 제2차 아편전쟁을 치른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자금성 입성하면서 전쟁에 패배를 인정한 청나라공친왕을 내세워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려 하자 교전 당사국이 아니었던 러시아도 추가적인 이권 획책을 시도하면서 베이징 조약(北京條約)을 체결하여 우수리스키 지방(현재의 연해시와 그 일대 및 에벤크 지방)을 스타노보이 세습국의 영토로 할양시킴에 따라 동북아시아 일대에 러시아와 함께 청나라를 위협하는 세력권이 형성되었다. 한편으로 스타노보이 세습국은 청나라오소조약(乌苏條約)을 체결하여 명목상으로 조공국에 편입하는 형식을 취하여 청나라의 반발을 무산시키려 했고, 동시에 청나라와 조선에서 넘어오는 이민자들을 적극 포용하는 형식으로 타국의 개입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주

  1. 공화정을 채택한 미국과는 달리, 각 자치정부의 세습 수장이 일정 임기를 기준으로 왕위를 세습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말레이시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또한 열강의 의도에 따라 다민족 연방제 국가로 독립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공통점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2. 본래 수도를 옮기기 위한 여러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체르노젬(Chernozem, 黑土)이 토양으로 자리잡아 동방합중국 내 최대 곡물 생산의 요충지이자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도의 지위를 다른 도시에게 위임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성이 컸다.
  3. 헤이허 행정시가 처음 개발될 당시에는 헤이허 행정시 주민들에게는 연방 의장(합중국 의장)을 선출할 투표권이 없었으나, 1964년부터 줄기차게 해당 사안을 합중국 정부에 제출하면서 뒤늦게 투표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미국의 워싱턴 D.C.도 헤이허와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4. 아이훈 조약베이징 조약으로 현재의 동방합중국 국토 일대가 제정 러시아니콜라이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Николай Николаевич Муравьёв-Амурский) 백작가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괴뢰국, 속국 형태로 존속하게 되었으며, 제정 러시아가 이곳을 스타노보이 세습국이라 칭함에 따라 해당 별칭이 유럽권에서 굳혀지게 된 부분도 있다.
  5. 대표적으로는 부여대학교(扶餘大學校), 간도출판(間島出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