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친왕 이현


대한국 황실
[ 펼치기 · 접기 ]
대한 초대 완친왕
완친왕 | 完親王
본명
이현 (李泫)
출생
1997년 3월 21일
대한국 한성부 창덕궁 동궁
국적
대한국
[ 펼치기 · 접기 ]
본관
전주 이씨
부모
헌종 의황제 이헌 (부친)
헌의명황후 김선경 (모친)
형제
광영황제 이곤 (형)
선양공주 이설 (여동생)[1]
배우자
완친왕비 김예은 (정비)
자녀
한성군 이민 (장남)
학력
수학원 초등부
수학원 중등부
서울중앙고등학교
작호
완친왕(垸親王)

개요

대한 완친왕 이현대한국의 친왕급 황족으로, 헌종 의황제의 차남이자 대한 제6대 대황제 광영제의 아우이다.

형인 광영제와는 달리 망나니스러운 행동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2015년 한성군 탄생 이후 잠잠한 상태이다.

생애

유년기

황태자 이헌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쌍둥이 여동생으로 선양공주 이설이 있다. 최초로 한국 황실에서 태어난 적통 쌍둥이었다. 큰형 이곤 황손이 황위계승순위 제2위였기에 자동적으로 3위가 되었다.

허나 출생 1년 후인 1998년에 부모가 사고로 사망했다. 형이 황태자에 책봉되고 즉위하자 황자라는 칭호로 불리게 되었고, 2004년 여동생과 함께 봉작을 받았다.

입학

봉작 받은 그 해에 수학원 초등부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에는 반장 등의 모범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다만 지나치게 활달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고, 학업에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왔다.

2010년에는 수학원 중학부에 입학하였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완친왕에 대한 뒷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무리들을 만들어서 학업에 불참하고 등교를 의도적으로 빠진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의혹들은 2013년 완친왕이 수학원 고등부가 아닌 서울중앙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점차 부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서울중앙고교는 수학원과는 달리 일반적인 공립 고등학교이고, 학생들의 수준 또한 평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만 황실에서는 완친왕이 수학원과 같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민간과 더욱 친숙하게 고교생활을 즐기고 싶었기에 그 뜻을 존중해주었다고 발표하였다.

완친왕가 창설

2014년 12월 26일 궁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완친왕에게 친왕부를 세워주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는데, 경친왕부나 정친왕부, 의친왕부는 전부 각 친왕들이 혼인을 한 후에서야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이 당시 16세였던 완친왕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여러 설을 내었고, 혼전임신설까지 제시되었다. 다만 처음에는 친왕에게 연인이 있다는 소리가 없었으니 그저 광영제가 동생을 위한 배려라는 설이 주가 되었다.

허나 1월 5일 경향신문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완친왕이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또 그 중 하나와 혼전임신을 하였기에 이듬해 1월 1일에 즉각 혼인신고를 하라 명령하였고[2], 친왕부 설립은 이에 부가적인 사항이었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투고하였다. 충격적인 고발로 인해 전 대한국이 떠들썩하게 되었고, 황실은 1주일건 침묵을 지키다 1월 12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하였다.

궁내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발표합니다. 최근 완친왕 전하와 관련되어 세간에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데, 이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우선 금상께서 친왕부를 수립한 것은 친왕이 고교 생활동안 거동에 대한 편의와 수행원들의 용이한 행정적 업무 처리를 위한 것입니다. ...(중략)...다만 친왕은 동급생인 연인과 매우 깊은 인연을 나누고 있으며, 이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후략).
광영 16년(2015) 1월 12일 궁내부 대변인 공식 발표 中

사실상의 인정과도 같은 선언에 전국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모범을 보여야 할 황족의 속도위반은 건원 이후 전례가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이들에게서 일어난 일이니 더욱 그러하였다.

황실에서는 필사적으로 황제까지 개입하면서 이런 완친왕가 창설의 여파를 줄이려고 하였으나 뜨거운 감자는식지 않고 6월까지 이어졌고, 완친왕이 2017년까지 매체에 얼굴을 보이지 않자 겨우 잠잠하졌다.

스캔들

학창 시절

소학교 중학부, 그리고 서울중앙고등학교 시절에 여자관계가 매우 복잡하였다고 한다. 친왕비, 그리고 친왕비의 친구들은 A, B, C씨들이 그 대상이었다. 처음 친왕은 A씨와 반 년정도 사귀었으나 어떠한 사유로 인해 그녀를 차버리고, A씨와 친구인 B씨와의 사이에서 썸을 타다가 C씨가 먼저 고백하였기에 C씨와 사귀었다.

그러다 C씨와의 다툼 후 헤어졌다가 B씨와 사귀었고, 또 다시 C씨가 재결합을 요청해오자 B씨와 결별하고 C씨와 사귀었다. C씨가 이후에 현 친왕비를 소개시켜주자 완친왕은 연인을 두고 친왕비와 이중으로 관계를 맺었고, 결국 그는 C씨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현 친왕비와 사귀게 되었다.

완친왕비

자세한 사항은 완친왕가 창설사건 참조.

인간관계

가계

가족 관계

형인 광영제와의 사이는 원만하였으나, 완친왕가 창설사건 이후로는 덤덤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황실회의에서 완친왕을 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황제가 직접 이를 묵살시켰다는 보도로 미루어보아 이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인다.

친왕비와의 관계는 크게 알려진 것은 없다. 2015년 이후 친왕과 한성군과 관련된 사항이 특히 보도가 되지 않고 있다. 다만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완친왕의 난잡한 여성 관계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방계 황족과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 특히 의친왕 일가. 완친왕을 폐서인하자고 최초로 주장한 이가 바로 제2대 의친왕. 또한 부친대 부터 황위계승권 가지고 말이 많았기 때문에 평소에도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3] 최근에는 황실의 중재로 이들과 사이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가인 함박부원군 일가와는 사이가 굉장히 좋다고 한다. 못해도 세 달에 한번씩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교우 관계

형과는 수학원 중등부까지 같이 다니고 고등학교는 서울중앙고등학교를 다녔다. 공립고등학교인 서울중앙고등학교에 다닐 때 언론 등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친왕인 것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별 상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

  • 완친왕의 사저는 최초로 한성이 아닌 평양에 세워졌다.
  • 일본의 황사 후미히토와 여러모로 비교되는데, 자유롭고 개방적인 황실의 선두가 되는 후미히토와는 달리 똑같이 황실의 친왕인데도 망나니 짓을 일삼는 점에서 비교된다.
  • 친왕가 창설사건 이후에도 사생아가 여럿 있다, 친왕비를 냅두고 클럽 등지를 나돈다는 둥의 말이 떠돈다.


  1. 쌍둥이 여동생이다.
  2. 대한국의 혼인요건은 남자는 17세가 되는 해부터, 여자는 16세가 되는 해부터 혼인이 가능하다.
  3. 태자가 광종이 만 42세때 출생하여 그 이전까지 황제의 조카를 입적하여 황태자로 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많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의친왕의 장남인 정연군을 황태자로 삼자는 소리가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