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데리아 대공국 Ideria C'aicrathia[1] | |||||||||||||||||||||||||||||
---|---|---|---|---|---|---|---|---|---|---|---|---|---|---|---|---|---|---|---|---|---|---|---|---|---|---|---|---|---|
파일:이데리아 기산기.png | 파일:스트론티아 기산장.png | ||||||||||||||||||||||||||||
국기 | 국장 | ||||||||||||||||||||||||||||
하이얀 둥글메 속 검구렁의 동잇땅 jāvin haisìn-eth ini hen̄īthìn-ò virìtia[2][3] | |||||||||||||||||||||||||||||
상징 | |||||||||||||||||||||||||||||
국가 | 흰산의 노래 | ||||||||||||||||||||||||||||
북극담자리꽃나무 | |||||||||||||||||||||||||||||
흰머리오목눈이 | |||||||||||||||||||||||||||||
역사 | |||||||||||||||||||||||||||||
4143년, 은둔 종료 및 교역 대폭 증가 4793년, 클레도리아 제1제국에 합류하여 이데리아주로 개편 | |||||||||||||||||||||||||||||
지리 | |||||||||||||||||||||||||||||
[ 펼치기 · 접기 ]
| |||||||||||||||||||||||||||||
하위 행정구역 | |||||||||||||||||||||||||||||
[ 펼치기 · 접기 ]
| |||||||||||||||||||||||||||||
인문 환경 | |||||||||||||||||||||||||||||
[ 펼치기 · 접기 ]
| |||||||||||||||||||||||||||||
정치 | |||||||||||||||||||||||||||||
[ 펼치기 · 접기 ]
| |||||||||||||||||||||||||||||
경제 | |||||||||||||||||||||||||||||
[ 펼치기 · 접기 ]
| |||||||||||||||||||||||||||||
단위 | |||||||||||||||||||||||||||||
[ 펼치기 · 접기 ]
| |||||||||||||||||||||||||||||
ccTLD | |||||||||||||||||||||||||||||
' | |||||||||||||||||||||||||||||
국가 코드 | |||||||||||||||||||||||||||||
IDR | |||||||||||||||||||||||||||||
전화 코드 | |||||||||||||||||||||||||||||
' | |||||||||||||||||||||||||||||
개요
이데리아 대공국은 현재 이데리아주의 영역과 일치하는 영토를 지녔던, 아리에티아의 제후국이다.
통일 이전이라 여러 소국이나 클라르킬리아에 따른 제후국이 난립하던 당시. 종교나 전통적인 관습 자체는 남아있었기에, 각 지방 세력은 차마 아리에티아의 전통과 명맥까지 버리진 않았고, 서로 싸우고, 합병하고, 동맹했다가 경제 제재도 걸고, 하면서 재밌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시대상을 연출해냈다.
통일 이전까지, 이데리아는 서북쪽 끝에 위치했던 "은둔의 나라"로 가장 강력한 자원력과 석공 기술력을 갖춘 광업 강국이였으며 그 특이한 행보로 인해 지금도 주목을 받고 있다.
상징
역사
상세
지리
이데리아는 눈 덮인 산맥으로 둘러싸인 곳으로서, 과거 엣드람리아의 화산활동 결과로 형성된 거대한 화산성 고원이다. 따라서 특이한 생활상을 지닌다.
클레도리아가 늘 그렇듯 편서풍대에 위치하며 북쪽 저기압대에서 넘어온 바람 때문에 눈이나 비가 오기도 한다. 어차피 화성암 지대이기 때문에 지하수가 풍부해서 수자원 고갈 걱정은 덜한 편에 속한다.
이데르강 상류가 여기에서 발원하기에 곳곳에 자그마한 연못, 호수, 하천, 강이 많은 편이고 이 근처에서 농업을 진행한다. 추운 냉대이기 때문에 남동부를 기점으로 농업이 융성했으며, 북쪽으로 갈수록 임업이나 열매 채집, 사냥 등이 흔하다. 허나 생산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멀리 오르가이아주의 작은 제후국들에게서 농산물을 수입했다.
여담으로 호주에서 "이데리아 문"[10] 지점으로 가는 오르도리아의 노른자 땅은, 산지임에도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으며 배경전쟁으로 인해 누구나 탐내던 땅이었다.
사실 이런 농산물 생산력 부족은 스트론티아나 스테보니아나 카스비아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비옥해서 곡식이 넘쳐나는 중부 지역이 경제적으로 풍족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능주도 무역 수수료 등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
지진이 많은 동네다. 그래서 눈사태나 산사태가 대지진이 나면 일어나는데, 이래서 산맥과 너무 가까운 곳에서는 사람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 수백~수천 명 단위의 촌락이 띄엄띄엄 하천 근처에 분포하며, 다 합쳐봐di 57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총동원령이 떨어지면 병사 수는 10만을 거뜬히 넘는다.
지방
카스비아에서 가장 활기찼던 도시권은 2곳이다.
카스비아
먼저, 사실상의 수도이자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카스비아다.
이곳은 특이하게 생긴 곳이다. 카스비아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엣드라비아 근처 산, 그 단단한 화성암[11] 지반에서 기원한다. 물론, 강도가 매우 강해서 지진에서 잘 버텼던 것은 사실이나, 대신 단단해서 파기 힘들었던 점도 있었다.
두 가지 이유로, 카스비아시가 지하도시의 형태를 띄게 된다.
먼저, 매우 거대한 동굴이 이미 존재하였다. 본래는 지상에 자그마한 마을을 짓고, 산에서 발원하는 이데르 강가에서 농사를 짓고 소소하게 살고 있었으나, 산 밑에 있는 거대한 동굴을 발견하고, 여기에 있는 엄청난 양의 광물을 인지하게 된다.
엣데린스트렌("빛나는 돌의 산")이라는, 카스비아시를 덮고 있는 엣드라비아("흰산") 별종 봉우리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 각종 금속류의 매장량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엣드라비아로 가까워지면 단단한 화산암으로 점점 변해갔으나,
이쪽은 부드러운 화산암 혹은 변성암이 많이 분포하여 있어서 파내기에도 매우 적절했고, 또 화강암이나 현무암 지층도 여럿 지나가고 있었기에 동굴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줄 수 있었다.[12]
그래서, 신기하게도 점차 주요 시설들은 카스비아 동굴도시 속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동굴 입구 쪽을... 동쪽 클레도리아에서 쭉 전파된 철기 도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전된 석조 기술로 아름답게 마감함으로서 상징적인 카스비아 동굴도시의 앞모습이 완성되었다.
허나 이후에는 외지인들을 받고, 교역 등등의 일을 하기 위해, 그리고 시가지가 조금씩 늘어났기에 밖에도 건물이 조금씩 세워지기는 하였다.
그리고, 광물의 매장량이 엄청났다. 클레도리아 광업 및 금속을 다루는 산업의, 당대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원량을 자랑했으며[13], 이 사람들이 카스비아 환경에 익숙해져감에 따라 석공 기술력과 광산 기술력을 점차 발전시켜나가게 되었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강물이 맑고 '마치 사금/사은이 지나가듯 보이는' 강이라 하여 이곳에서 발원한 그 강의 이름이 "이데르"였던 것이다. 그리고 빛나는[14] 땅이라고 하여 "이데리아"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외지인이 보기에는 엄청난 건설기술을 가진 최고의 공업자들로 카스비아가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이 점차 양질의, 그리고 엄청난 양의 카스비아산 금속 및 공예품을 사가고자 하였다.
농업 생산량이 아주 적었음에도 인구가 정체하지 않고 계속 늘어나면서 부족한 식량사정을 충족시킬 수 있던 것은 그 풍부한 광업 자원력에서 기인하였다. 카스비아가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도 여기서 온다.
하여튼, 이렇게 되어 실제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더라도 돌들을 "자기 몸처럼 다룰" 줄은 알았다. 이 대상을 나무로만 바꾼다면 사람들이 스트론티아에게 했던 평과 다를 바가 없다.
스토레니시시아
둘째로 거대했던 도시권은 남동쪽 문 근처인 "스토레니시시아(Storenithisia)"였다.
이데리아의 문 바로 근처에 위치했던 도시였고, 상대적으로 외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카스비아시에서 만들어진 물자들을 이데르강 따라 놓인 길을 통해 운반한 걸 가져다가 파는 상업/교역도시였다.
육로교역이 가장 활성화된 곳 중 하나였고, 인구 자체는 보통 카스비아시보다 근소하게 적었지만 인구 통계는 거주자만 세었고, 며칠만 살다 간다거나 방문한다거나 상인조합의 인원으로서 일정 기간만 왔다 가는 경우도 꽤 많았으므로 그걸 다 합한다면 이쪽이 훨씬 거대했던 도시였다.
그나마 따뜻했던 곳이었고, 이곳의 규모는 카스비아가 "열려" 있는 정도에 비례했다. 두 번의 쇄국 당시에는 교역량이 줄었기에 이곳도 좀 쇠퇴하여 다른 지방으로 몰려가는 경우가 있던 특이한 도시.
상업이 융성했으므로 관련 업무가 많았고, 사람이 모이니 치안을 신경써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카스비아 치안유지대는 오히려 여기서 출발했다.
작은 촌락 단위의 타 지역과는 다르게 카스비아 중심지와 비견될 정도로 큰 공간이었다 보니, 이데리아 대공 입장에선 여기가 독립한다거나 타국에 뺏겨버릴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이곳 통제를 매우 열심히 했고, 카스비아의 문 장벽을 탄탄하게 마련해두고 출입구를 몇 안 뚫어 놓은 것도 여기서 기원했다.
인문 환경
인종
험지에 사는 걸 좋아했던 그레스족과 네라크족이 많았고, 그 다음으로 유입된 것이 대다수인 네이르족이 많았다. 에세르는 거의 없었다. 아무튼 그레스와 네라크[15]가 많았던 특성상 스트론티아와 친했으며, 숨겨진 북부 지역조차도 이들에게 우호적으로 [16] 교류하기도 하였다.
종교
언어
분립의 역사 때문에 방언이 생각보다 다르다. 스트론티아 북부만큼 진하다고 느껴질 정도.
또한, 에르센드자를 자기들 맘대로 개량했기 때문에, 그리고 남동부에서 제지술이 들어온 것도 꽤 늦었기 때문에 돌에 쓰기 위해 마치 옛 그레시아 문자처럼 직선 획이 늘어난 글자를 사용했다.
모음 표기를 자주 생략했던 것[17] 특징이다. 돌에 새겨야 했으니 귀찮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글자체를 확립한 건 비카르트 크하르누트라고 알려져 있다.
정치 및 경제
특산품
카스비아의 초기 역사를 기록한 위대한 역사가는 미크로엘 크루트베히르라고 알려져 있다.
주로 파서 수출하는 금속에는 금, 은, 철, 구리, 베릴륨(리디세신), 진은[18]이 있으며, 예전에도 그 추출물 순도는 정말 높은 편이었다.
후술하겠지만, 험지인 이데리아 분지에 최초로 도달한 것은 그레스족 탐험가 "이르스카르 카스비르"[19]와 그 일족이었기 때문에 계속[20] 정치 세력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던 상태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자원의 저주에 걸려 무한 내전 상황에 빠지지 않았다. 여담으로 도시 이름은 그 이름에서 기원한다.
군주
초기 지배층, 이델리르트 가문이 대공을 잇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국에 멸망 시기가 다가오자, 일단 정치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 마지막 이델리르트 대공은 마르카르 가문과 결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정치적 볼모 신세로 전락한 뒤 치열한 농성 끝에 클레도리아 제1제국에 이데리아 대공국이 멸망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들은 성씨를 바꾸어 분가하였는데, 제1제국 특유의 제한적 자치 봉건제 때문에 권한은 일부만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제1제국이 썩어가자, 이곳에 있는 헤르산네 철학학교에 다니고 있던 대공 자제가 스트론티아 삼림연방 대공의 영애와 모의하여 대공국의 지원을 받고 반란을 일으켜[21] 결국 서부 지역의 지지를 얻음으로서 제1제국의 마르카르 가문을 몰아낸다.
그리고 그 분가한 가문은 카스비르트 가문이요, 자제는 시르메닐에 영애는 엘라네얀이며 새로 만들어진 체제 속 국가는 클레도리아 제2제국인 것이었다.
군사
그리고 그 석공 기술력을 동원하여, 40km정도 뻗어 있는 "이데리아의 문" 지역을 전부 거대한 성으로 덮어서 방어하기에 이른다. (세계문화유산)
지진이야 많지만, 핵전쟁이 난다면 여기에 숨어도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8기 들어 퍼질 정도로 당대 "문의 성"은 위대했다. 외지인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여기에 스트론티아 수입 화포까지 달아서 공성전에서 엄청난 우위를 차지했다.
기타
- 스트론티아의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목조 기술은 이데리아가 제공한 공예 기술을 채용한 것이 많았다.
- 성씨는 바뀌었다 한들, 그 개척자의 혈통을 방계로 계속 유지한 상태로 공작직이 내려오고 있다고 하며, 8기에 들어선 귀족이라는 신분이 사라지기는 하였으나[22] 혈통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 외지에 카스비아를 처음 내세워서 제대로 교역하기 시작한 것은 교역공 비스투르이다.
- ↑ 이데리아 카이크라시아
- ↑ 현대 이데리아주에서도 쓰는 표어라서 현대 사투리대로 그냥 가져왔다.
- ↑ 하이스넷 이니 헨니-스너 비르샤
- ↑ 4200년경, 인구는 추정 105,000명 정도.
- ↑ 4200년경, 인구는 추정 141,000명 정도.
- ↑ 4200년경
- ↑ 사실상 전부 네라크족.
- ↑ Clijasnies, fild. (클리자스니에스 등) [5435]
- ↑ 자르마이네트(Dharmanyinet) 백 겸
- ↑ 이데리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스트론티아 산맥과 스테보니아 산맥 중간에 있는 협곡 지점이다
- ↑ 심성암과 화산암 둘 다
- ↑ 동굴은 이스타르 카스비르가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 ↑ 엣드라비아 근처에 극도로 거대한 광맥이 모여 있다
- ↑ 만년설로 뒤덮인 산, 그리고 반짝이는 광택의 금속
- ↑ 둘을 통틀어 녹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 ↑ 특히 화약 관련 기술을
- ↑ 아브자드...는 아니다. 엄연히 모음은 있다
- ↑ 니켈과 크로뮴 등
- ↑ 본명이 아니라 호칭으로 판독된다
- ↑ 지역 독립적인 특성은 강했다 한들
- ↑ 아버지는 정치인으로서, 언론플레이 등을 하는 후방 지원군이었다.
- ↑ 특권이 사라졌지, 자기들끼리 전통 유지하는 것은 중앙 정부가 내버려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