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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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42回衆議院総選挙
1999년 11월 27일
41회 중원선
(세기 종식 총선)
2003년 11월 22일
42회 중원선
(시대 개막 총선)
2007년 11월 17일
43회 중원선
(정권 선택 총선)
투표율 75.5% ▼ 4.8%p
선거 결과

사회 403석 (62.0%)
(29.7%) 193석 자민·공명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일본사회당 349석 54석 403석 62.0%
자유민주당
공명당
145석 29석 193석 29.7%
12석 7석
신사회당 12석 4석 16석 2.5%
일본 공산당 8석 6석 14석 2.2%
남방의당 11석 0석 11석 1.7%
자유당 2석 0석 2석 0.3%
무소속 11석 - 11석 1.7%

개요

2003년 11월 22일 치뤄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21세기에 최초로 시행된 선거였기에 "시대 개막 총선"이라고 불렸다.

배경

에다 사쓰키 총리의 높은 지지율

에다 총리는 유연한 사회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통해 일본의 보수적인 경제, 사회 체제들을 차례 차례 개혁해나갔고 일본의 국민들은 이에 열렬한 지지를 보탰다. 또한 외교적으로는 온건한 반미 정책을 표방하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에 맞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구상을 내놓았고, 여전히 흑백 논리에 휩쌓여 무작정 미국을 숭상하기에 바빴던 모리 요시로 총리와는 비교되며 지지율을 올렸다.

모리 요시로 자유민주당 총재의 논란들

오부치 게이조 총재의 급서로 인해 선출된 모리 요시로 총재는 강경한 친미, 반공을 내세우며 사회당을 위협했다. 특히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모리 총재는 미국을 도와 아프간을 타격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사회당과 노선을 차별화하였다.

그러나 점차 아프간 전쟁이 장기화되며 미국의 실책이 눈에 띄게 부각된데다가, 모리 총재의 행보, 언행 역시 논란에 휩쌓이며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고점을 찍은 이후 폭락했다.

모리 총재는 선거를 앞두고 일본은 신이 지배하는 천황 중심의 나라이다라는 망언을 하여 논란에 휩쌓였다. 당 내에서조차 민주주의를 무시하는거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에다 사쓰키 총리는 국민 정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2002년 에히메 수산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견학 도중 미군의 잠수정에 부딪혀 배가 침몰해 9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골프 라운딩을 계속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선거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이 5.7%를 기록했고 결국 모리 총재에 반대하던 하토야마 유키오 정조회장에게 당 지지율이 거의 소비세급입니다!라는 비아냥까지 듣게된다.

화룡정점으로 선거 3일 전에는 젊은 무당층 유권자들은 괜히 분위기에 휩쓸려 사회당, 공산당을 찍지 말고 모처럼의 선거날인데 그냥 집에서 자면 좋겠다라는 망언까지 터지면서 자유민주당 측에서는 200석 확보조차 어렵다는 회의적인 예상이 나왔다.

선거 결과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사회당의 압승이었다. 사회당은 400석을 넘기며 창당 이후 최대의 의석을 확보하였으며 자유민주당은 초기 예상했던 250석대는 커녕 200석조차 지키지 못하며 170석대로 떨어졌다. 당의 중진 대다수가 낙선하면서 모든 계파들은 해산되었고 당의 존속마저 위태롭던 상황이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재직에 취임하나 그 역시 당 내 분란을 가중시키기는 마찬가지였고 2007년 중원선에서도 자민당이 패배하며 자민당이 영원한 야당으로 남는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자민당이 간신히 내분을 수습한 것은 2008년 중원선을 앞두고 하토야마 유키오 총재를 중심으로 절치부심을 한 이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