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2020 - 2022 | CC-0
대일본제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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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기 내각 (2021.10.21 - )
여당

자유민주당
 169석 307석 

공명당
 21석 23석 

남방의당
 3석 4석 
야당

일본사회당
 142석 244석 

시민 리그
 13석 30석 

일본공산당
 11석 13석 

신사회당
 3석 6석 

레이와 신센구미
 5석 3석 

차세대당
 3석 4석 

그린스 재팬
 0석 3석 
무소속  14석 11석 
공석  0석 2석 
재적 384+38석 · 650+20석
좌측은 참의원 의석 수, 우측은 중의원 의석 수
일본의 보수주의 정당
입헌민정당 자유민주당 자유민주당
입헌정우회 신생당
대정익찬회 차세대당
파일:플로라 자유민주당(일본) 로고.svg
자유민주당
自由民主党
등록 약칭 자민(自民)
영문 명칭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슬로건 政治は国民のもの。
정치는 국민의 것.
창당 1955년 11월
전신 입헌민정당, 입헌정우회 (1955년 신설 창당)
대정익찬회 (1959년 흡수 합당)
총재 겸 총리 모테기 도시미쓰 / 10선 (, 39~48대)
부총재 아소 다로 / 15선 (, 34~48대)
간사장 세코 히로시게 / 초선 (, 48대)[1]
이념 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분파: 자유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보수좌파)[2]
우익대중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 극우

주류: 중도우파 ~ 우익[3]
참의원 169석[4] / 384석 (44.0%)
중의원 307석[5] / 650석 (47.2%)
당색 빨간색 (#E50038)
초록색 (#3CA324)
당원 수 7,955,115명 (2022년 1월 기준)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당가 우리들
홈페이지 파일:플로라 자유민주당(일본)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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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의 정당. 현 집권 여당이자 최대의 보수 정당이다. 총재는 현 총리이기도 한 모테기 도시미쓰.

역사

195~80년대

1954년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사회당에게 정권을 다시 내어주게 된 입헌민정당입헌정우회의 주요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자에 맞서는 반공주의자들의 구심점을 세우고자 1955년 10월 창당하였다. 초기 당대표는 보수 방류파에 속하는 하토야마 이치로가 맡았으며 이후 1957년 당대회에서 기시 노부스케가 하토야마 이치로의 뒤를 잇는 제2대 총재로 선출된다.

그리고 1958년,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결집된 우익의 표심을 바탕으로 사회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되찾게 되면서 기시 노부스케 역시 총리로 지명되었다. 1960년에는 미국과의 미일 안보조약에서 일본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태평양간 미일 동맹을 체결하면서 지지율이 고공행진했고 기시는 1970년까지 총리로 재임한다. 그러나 12년에 달하는 집권 기간동안 자유민주당 내 온건파들 사이에서는 반기시를 목표로 한 공동 전선이 형성되었고 결국 당내 파워 게임에서 밀린 기시는 1970년 총리직을 사임한 후 온건파인 사토 에이사쿠에게 정권을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사토 내각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고, 기시 내각 시절 추구한 핵무장을 평화주의 추구를 이유로 일부 파기하면서 국민적인 지지율이 하락했다. 결국 사토가 총리에 취임한지 3년만인 1973년, 총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보장국가를 내세운 에다 사부로 위원장의 사회당이 무려 15년만에 정권을 되찾으면서 자유민주당은 야당으로 되돌아간다.

사토 에이사쿠 총재가 퇴진한 이후, 다시 기시의 제자였던 후쿠다 다케오가 총재직을 차지하나, 나리타 도모미사사키파의 집단 탈당으로 인해 사회당의 과반이 붕괴되어 치러진 1974년의 조기 총선에서 후쿠다의 자민당이 참패하며 위기에 몰렸다. 이후 1975년 당대회에서 후쿠다와 대항하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재로 선출되었고 이에 후쿠다가 반발하며 온건파와 강경파의 싸움인 각복전쟁이 거의 20년간 이어졌다. 후쿠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류파는 결국 당권 장악에 실패했으며 미키 다케오와 연립한 다나카는 1978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198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에게 총리직을 물려줄때까지 쭉 집권하였다.

1986년에는 마돈나 붐으로 불리는 도이 다카코의 사회당 열풍으로 1년간 정권을 내어주나 중국 공산당 정권과 연계가 있던 도이 내각이 결국 내란 논란으로 붕괴하면서, 1987년 당은 다시 정권을 되찾는다.

198~90년대

1987년, 조기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도적인 대승리를 거두며 다케시타 노보루가 총리직에 오르나 리쿠르트 사건 등 각종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망을 잃었다. 이에 반발한 오자와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 호소카와 모리히로 등 소장파 의원 상당수가 당에서 이탈하며 제1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가 일어났다. 이들은 신생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고 1991년 치뤄진 38회 중원선에서 589 의석중 신생당이 218석, 자민당이 213석, 사회당이 95석을 얻으며 신생당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신생당 대표가 자민당과 신생당의 연립여당으로 총리직에 올랐으며[6] 호소카와 총리는 급진적인 개혁안들을 통과시키면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39회 중원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호소카와는 신생당의 의석수 하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민당에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고, 각외 협력으로 참여하던 자유민주당 역시 하시모토 류타로가 부총리직에 임명되는 등 내각에 참여하게 된다. 결국 신생당에 기대를 걸었던 일부 리버럴 진보 지지층 당 지지를 철회하고 의원들도 사회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과반이 붕괴되었다.

신생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은 하시모토 류타로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재선에 노리나, 40회 중원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였다. 그 결과 보수 세력은 무라야마 도미이치일본사회당에게 정권을 다시 내줘야했다.

이후 1999년, 신생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자민당의 오부치 게이조 총재가 8년만의 양당 재통합에 합의하여 현재와 같은 자민당이 탄생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오부치 게이조 총재의 급서 이후 모리 요시로가 총재직에 취임하나, 2003년 총선거의 참패를 책임지고 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재직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보수 방류파에 가까웠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는 우정민영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면서 본류파와 갈등했고, 이는 2007년 참의원/중의원 동시 선거를 앞두고 폭발하게 되며 제2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를 초래한다. 결국 분당된 자민당은 선거에서 참패했고 고이즈미 총재가 물러난 뒤 하토야마 유키오가 총재직에 올랐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일본 경제가 주춤하자 에다 사쓰키 총리가 사임했고, 하토야마 총리는 그 틈을 노려 2008년의 조기 총선에서 대승리를 거둬 총리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2011년 미국과의 군사 갈등이 발발하자 이에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 아베 신조가 방류파 출신으로서는 오랜만에 총리직에 올랐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에는 아베 노믹스로 대표되는 강력한 경제 정책과, 군비 증강 정책으로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았으나 아베 신조 개인의 정치 자금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2017년 총선에서 다시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어줬다.

2021년 총선에서는 코로나19 대처 미비로 지지를 잃은 에다노 유키오 총리의 사회당을 상대로 승리로 거둬 4년만에 모테기 도시미쓰 내각이 출범한다.

최근

제21회 참원선을 앞두고 사회당과 경합을 펼치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왔으나, 선거 직전 아베 신조 총리의 피살 사건으로 보수 세력이 총 결집해 오히려 제20회 참원선에 비해 더 큰 차이로 사회당을 밀어내고 개선 1당의 자리를 탈환하였다.

성향

외교

자유민주당 내 양대 계파인 본류파와 방류파는 각각 중도~중도우파, 우익~극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외교 정책에 있어 본류파는 상대적으로 친미, 친중 정책을 표방하는 반면 방류파는 반미, 혐중적인 외교를 표방한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군비 증강 역시 방류파가 적극적인 반면 본류파는 평화에 의한 권력과 비핵화를 지지하는 입장에 있다. 한편 미키 다케오의 뜻을 따르는 일부는 현재 아소파로 계승되어 제3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회당에 비해서는 반소, 친미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있으나 이는 상대적인 기준이다. 소련-핀란드 전쟁에서 핀란드를 지지하였다는 점을 든다면 확실한 반소파로 분류될 수 있으나 미일 경제 전쟁 이후로는 미국에 대해 유화적인 인사들이 많이 반미파로 변했다.

경제

경제적으로는 사회 보장 정책의 수립에 적극적인 사회당에 비해 신자유주의적이고 방임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작은 정부를 표방하고 산업 구조의 전환, 노동 유연화, 공급자 사이의 세금 투입보다 소비자 사이 직접 세금 투입을 중시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큰 틀에서의 성향일 뿐이고 아베 신조 시절에는 최저임금 인상 등 다소 진보적인 정책이 취해졌으며 미키 다케오를 계승하는 일부 파벌은 아예 수정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를 추종하는 등 파벌 간 경제적인 성향은 크게 차이난다.

사회

사회 문화적으로는 친황파이며 "국가를 이루는 국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사회당에 비해 "천황의 신하인 국민"이라는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조센, 다이완, 오키나와 등 내지 밖의 주민들에 대해서는 사회당에 비해 권리 확대에 소극적인데 이는 이 지역들이 천황의 신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이기 때문이다.

지지 기반

전통적으로 주코쿠, 시코쿠, 호쿠리쿠, 신에쓰, 고난, 헤이안 지방 등 농민들의 비율이 높고 부유한 지역에서 표를 받고 있다. 세대별로는 40대 이상이 강력한 지지 기반이다.

반면 다이완, 료난, 간호쿠, 도카이, 홋카이도, 도호쿠 지역에서는 사회당에 열세를 보이며 규슈, 간사이, 간토, 게이키 지역에서는 두 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일본 열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지율이 잘 나오는 경향이 있다. 조센 반도나 다이완 섬, 오키나와 제도 등의 지역은 아무래도 지역주의적인 정서가 있는데다가 사회당의 조직력도 탄탄하여 메이지 유신 때 이후로 우익 세력이 계속 뿌리를 내려온 일본 열도의 상황과는 아무래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기반이 조슈번이었으므로 전통적으로 일본 육군이 자유민주당을, 해군이 이에 대항해 사회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아 육군 출신 사회당원과 해군 출신 자유민주당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대 총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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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카야마현 참의원 의원을 지내다가 니카이 도시히로의 은퇴로 빈 중의원 의원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5선 참의원 의원 출신.
  2. 미키 다케오 전 간사장 등 일부가 여기에 속했다. 현재는 소수파이며 가메이 시즈카 등 일부 원로만이 이끌고 있는 수준이다.
  3. 대체로 보수 본류파는 중도~중도우파 성향, 방류파는 우익~극우 성향이지만, 아베 신조기시 노부스케를 제외한 모든 자민당 출신 총리가 본류파였던만큼 중도적인 성향이 강햔 편이다. 당 자체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서, 아예 미키 다케오의 뜻을 잇는 좌파 성향 파벌도 존재한다.
  4. 지역구 129석, 비례대표 40석
  5. 지역구 269석, 비례대표 38석
  6. 자유민주당은 하시모토 류타로 총재가 국민의 준엄한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쇄신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각외협력을 하는데에 그쳤다. 그러나 이는 내각에서는 배제되더라도 호소카와 내각이 의회 내에서는 신생당과 거의 동일한 의석을 확보한 자유민주당과 협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 하시모토 총재의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