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span="1"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width: 100px;" | 신체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188cm<ref>고등학교까지는 187cm였다고 하는데, 프로 입단 2년차인 2000년에 측정해보니 188cm가 됐다고 한다.</ref>, 89kg, A형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포지션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1루수'''<ref>2000년대 한준영의 첫 번째 전성기 시절에 주로 맡았던 포지션이자, 가장 많은 경기에서 맡은 포지션이다. 타격 생산력과 장타력을 모두 겸비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고 여전히 [[이승엽]]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1루수로 여겨진다. [[박병호 (1986)|86박병호]], [[박병호 (1988)|88박병호]], [[이대호]], [[양준혁]], [[김태균]], [[박유혁]] 등 워낙에 레전드 선수들이 많은 포지션인 1루수임에도 불구 이승엽과 한준영은 1루수 중에선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위상'''에 올라있다. 이 2명, 이승엽과 한준영의 라이벌 구도에 대해서는 [[이승엽 vs 한준영]] 문서 참조.</ref><br>'''지명타자'''<ref>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준영의 두 번째 전성기 시절에 주로 맡았던 포지션. 기존의 타격 생산력은 조금 줄어들었으나 말년에 장타력이 가히 폭발하면서 리그 최고의 거포가 되었고 8년 동안 주장직을 역임하며 KIA의 전성기를 이끌었다.</ref><br>코너 외야수<ref>데뷔 당시 포지션이 코너 외야수였지만, 항상 따라오던 한준영의 문제점이 바로 외야수 수비력이었다. 데뷔 초에는 정상호라는 존재로 외야수로도 자주 출전했지만 이후 기량이 폭발하며 정상호가 좌익수로, 한준영이 1루수로 나서게 되었고 이는 '''엄청난 행운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왔다.'''</ref>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투타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우투우타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프로입단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1999년 1차 지명 ([[해태 타이거즈|해태]])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소속팀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width: 100px;" | 본관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청주 한씨 (淸州 韓氏)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가족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아버지 '''한옥수'''{{^^|(1954년생)}}<br>어머니 '''김연희'''{{^^|(1957년생)}}<br>배우자 '''이주현'''{{^^|(1981년생, 2007년 결혼 ~ 현재)}}<ref>같은 광주 출신에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로 어릴 적부터 열렬한 기아의 팬이다. 2002년 5월 17일 경기가 끝난 후 선수단이 퇴근하는 과정에서 유독 사인을 요청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 가보니 있었다고. 하도 직관을 많이 가서 귀가 자리에서 계속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고, 팬과 선수의 관계로 시작하여 2005년부터 교제를 시작하여 2007년 결혼했다. 아직까지도 기아 팬이며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같은 교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한준영#여담|여담]] 문서 참조.</ref><br>아들 '''한민영'''{{^^|(2013년 9월 7일생)}}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종교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가톨릭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등장곡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자자 - 버스 안에서
|-
! colspan="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 #fff;" | 응원가
| colspan="2" style="text-align: left" | Dynamic Duo - 고백 (Go Back)<ref>다이나믹 듀오가 데뷔 후 센세이셔널을 일으켰을 때부터 팬이었으며 그대로 대표곡 고백이 응원가로 차용되었다.</ref>
{{펼접끝}}
|-
|}
{{목차}}
==개요==
{{인용문1|'''"준영이에 비하면 나는 새 발의 피다. 준영이는 {{c|#ea0029|타이거즈 그 자체}}다."'''|'''[[이종범]]'''<ref>한준영의 10년 선배이자 현역 시절 한준영에 버금가는 무지막지한 타격력을 보여줬던 선수. 결정적으로 '''같은 KIA 타이거즈의 영구 결번이다.''' 그런 선배가 이런 말을 했으니..</ref>}}
대한민국의 야구인. 현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1루수, 지명타자였다.
1999년 [[KIA 타이거즈|KIA]]에서 데뷔해 KIA의 구단 인수 후로는 유일한 우승인 2009년의 우승을 이끌었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소속으로는 도루, 3루타를 제외한 타자가 할 수 있는 모든 누적 기록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ref>구단 역대 경기 출장,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루타, 볼넷, 사구, 삼진 역대 1위. 도루나 3루타는 주루 능력이 중요하므로 제외하며, 병살타나 실책 등도 제외한다면 모든 누적 기록에서 1위가 맞다.</ref> [[KBO 리그]] 통산 경기 출장 수 1위, 최다 안타 3위, 최다 홈런 1위, 최다 타점 1위, 최다 득점 2위, 역대 야수 WAR 1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전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2000-2010-2020년대에 모두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다.
==[[한준영/선수 경력|선수 경력]]==
{{한준영/선수 경력}}
==플레이 스타일==
==은퇴 이후==
===지도자 경력===
==평가==
===한준영에 대한 언사===
==여담==
==관련 문서==
=한준영 선수 경력=
{{상위 문서2|한준영}}
==아마추어 시절==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나고 자라 친구들을 따라서 야구부에 가입한 것이 야구 선수로서의 시작이었다. 어릴 때의 한준영은 지금과는 달리 굉장히 마른 편이었는데, 한준영의 부모님은 거의 운동부족이었던 한준영을 운동시키려고 가입을 승인시켜줬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던 그의 재능이 야구에 있었는지, 초등학생이라곤 믿기지 않는 운동 능력을 보였고 선배들을 밀어내고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광주동성중학교로 진학해서도 야구부로 활동했고, 부모님도 이제는 마음을 돌리면서 그의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전국구 선수로 성장했고, 결국 광주 최대 명문고 광주동성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동성고 시절에도 야수로서 매우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199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말 그대로 미친 캐리를 하면서 동성고의 우승을 이끌었고 최우수 선수상, 야수상, 최다 안타상을 휩쓸었으며, 다음 해 1998년 황금사자기에서도 타격상, 최다 안타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고교 최우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떠올랐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졸업 후 199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계약금 2억 5천만원, 연봉 2천만원을 받고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전체 4번, 포지션은 내야수.
! colspan="1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fff;" | 2000 시즌 기록
|-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경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수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안타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홈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출루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장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득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OPS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WAR
|-
|103
|0.279
|361
|101
|8
|0.352
|0.474
|58
|53
|0.826
|2.28
|}
샌더스가 팀을 떠나고 2000년 출루율왕을 수상한 장성호가 1루수 자리를 지켰지만, 작년에 보여줬던 인상적인 모습으로 지명타자나 외야수로 자주 기용되면서 103경기에 출전했다. 기회가 많아지면서 타율은 줄었으나 101안타 8홈런 58타점 53득점 OPS 0.826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계속 성장하였다. 팀이 거의 멸망하는 과정에서도 많지 않은 기회 속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슬슬 구단 내에서도 좋은 입지를 갖게 되었다.
! colspan="1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fff;" | 2001 시즌 기록
|-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경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수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안타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홈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출루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장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득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OPS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WAR
|-
|124
|0.303
|438
|133
|17
|0.379
|0.526
|83
|78
|0.905
|3.77
|}
사실상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면서 3할과 17홈런 83타점을 기록했으며, 장타율이 크게 증가하고 OPS 9를 찍었다. 비록 정상호의 존재로 인해 아쉬운 외야수 수비가 계속 발목을 잡으면서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괜히 1차 지명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며 자신이 암흑기에 빠진 팀의 미래이자 현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 colspan="1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fff;" | 2002 시즌 기록
|-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경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수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안타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홈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출루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장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득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OPS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WAR
|-
|132
|0.310
|467
|145
|28
|0.385
|0.543
|91
|89
|0.928
|4.37
|}
기존의 아쉬운 외야수 수비력을 보완하기 위해 정상호와 포지션을 교체하여 줄곧 1루수로 뛰었으며, 억제기가 풀린 것인지 포지션을 교체하자마자 '''말 그대로 날아다니며''' 기아의 타선을 이끌었고 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당시에는 한 시즌에 3할 타자가 10명 남짓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고평가받는 중. [[이승엽]]에게 크게 밀리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진 못했으나 4년차에 중심 타선을 이끌며 또 한번 자신의 잠재력을 증명한 시즌이 되었다.
! colspan="1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fff;" | 2004 시즌 기록
|-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경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수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안타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홈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출루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장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득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OPS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WAR
|-
|133
|0.283
|484
|137
|'''{{c|red|37}}<br>(1위)'''
|0.346
|'''0.589<br>(3위)'''
|'''111<br>(2위)'''
|'''97<br>(2위)'''
|0.935
|5.17
|}
개인 첫 타이틀인 홈런왕과 개인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 통산 100홈런을 달성하였다. 장타율, 타점, 득점에서 각각 3,2,2위를 기록하며 더욱 더 스텝업하였다. 타율이 작년에 비해선 많이 줄었지만 그만큼 장타율이 증가하였으며 이후 거포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사고가 유독 많았던 구단에서 사실상 타선을 홀로 캐리하며 팀을 포스트시즌까지 올려놓았다.
! colspan="1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fff;" | 2005 시즌 기록
|-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경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수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안타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홈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출루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장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득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OPS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WAR
|-
|126
|'''0.317<br>(3위)'''
|441
|'''140<br>(3위)'''
|'''{{c|red|40}}<br>(1위)'''
|0.375
|'''{{c|red|0.601}}<br>(1위)'''
|'''91<br>(3위)'''
|'''83<br>(2위)'''
|'''0.976<br>(2위)'''
|'''{{c|red|7.12}}<br>(1위)'''
|}
줄어든 경기 수에 타율이 크게 늘었고 개인 첫 40홈런과 2년 연속 홈런왕, 첫 장타율왕을 수상했다. MVP 자리는 손민한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으나 압도적인 야수 WAR 1위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2005년 리그 최고의 타자'''가 되었다. 비록 팀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으며 역대 최소 승률과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홀로 타선을 미친 듯이 캐리하며 그나마 더 낮아지는 수모는 면했다. 리그 평균의 주자 지원만 좀 있었다면 타점왕과 득점왕도 수상했을 거라는 평가가 정론.
! colspan="11" style="background: #ea0029; color:#fff;" | 2006 시즌 기록
|-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경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수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안타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홈런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출루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장타율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타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득점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OPS
!style="background:#ea0029; color:#fff;" | WAR
|-
|111
|0.290
|403
|117
|'''{{c|red|29}}<br>(1위)'''
|0.356
|'''0.564<br>(2위)'''
|'''84<br>(2위)'''
|'''73<br>(5위)'''
|'''0.920<br>(3위)'''
|'''6.43<br>(3위)'''
|}
이번에도 작년과 비슷한 페이스를 이어나가는 줄만 알았으나 15경기를 남겨두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며 1위를 기록하고 있던 스탯들을 전부 넘겨주게 되었고 1루수 골든글러브도 이대호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15경기를 남겨두고도 홈런 1위를 달성하며 3년 연속 홈런왕을 수상하였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현대 유니콘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2010년대 후반~2020년대 현대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선수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박유혁은 은퇴와 즉시 현대 최초의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승엽, 라이관린, 최정, 김광과 함께 단 5명뿐인 400홈런 달성자이자 최정과 함께 유일한 현역 400홈런 달성자이다. 또한, 역대 홈런 5위이자 3000타석 이상 타자들 중 장타율 3위이며, 외야수로 기준을 좁히면 홈런 1위, 장타율 1위이다. 홈런왕 2회와 MVP 1회를 석권하였으며, 총 9개의 골든글러브(외야수 7개 / 지명타자 2개)를 수상하였다.
사실상 커리어가 프로 6년차인 2012년에 시작되어 제대로 뛴 시즌이 12년 뿐이어서 안타, 타점, 득점 등 누적 기록에서는 확실히 밀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런 전체 5위에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박유혁의 장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이 모두 만 35세 시점에서 달성한 것도 감안해야 한다. 에이징 커브를 감안하더라도 여기서 최소 3~4년은 더 뛸 수 있기에 2,000안타는 물론이며 최형우의 통산 최다 타점(1539+)을 갱신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밀어치는 공은 거의 없으며 몸쪽이던, 바깥쪽이던 거의 9할 이상을 당겨서 퍼 올리는 타자이다. 보통 이런 유형의 타자들은 바깥쪽 공에 매우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박유혁의 경우는 바깥쪽 공까지 잡아당겨 끝끝내 컨택해낸다. 이는 박유혁의 팔 길이가 평균보다 길다는 점, 그리고 힘이 정말 어마무시하다는 것이 한몫한다.
고교 시절부터 힘 하나는 으뜸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삼성 시절 기록했던 단 하나의 홈런도 대구시민야구장 센터쪽 끝을 맞췄을 정도로 이미 프로에서도 최상급인 장타력의 자질을 보유하고 있었다. 박유혁이 삼성에서 실패한 이유는 변화구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유일하게 기록했던 홈런도 상대 투수의 실투로 나온 한복판 공을 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즉, 힘만 세고 가운데만 던지지 않으면 알아서 아웃되주는 심각한 공갈포 유형의 타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큰 문제는 2012년 현대 이적 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김재박의 코치 덕분이었을까, 박유혁은 순식간에 직구던, 변화구던, 몸쪽이던, 바깥쪽이던 모두 넘겨버리는 리그 최고의 배드볼 히터로 군림하게 되었다. 모든 공을 대처하는 컨택력과 이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강한 장타력이 모여 엄청난 시너지를 내게 된 것.
가끔 박유혁이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2023 시즌 종료 후 박유혁의 통산 출루율은 0.370으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박유혁은 전성기에 3할 5푼을 밥 먹듯이 기록했던 타자이며 통산 타율도 0.325로 거포 치고는 매우 높은 편이다. 선구안이 좋은 게 아니라 원래 같았아면 골라내야 될 공을 모조리 안타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수비
수비를 못 한다는 인식이 있으나 평균 이상은 해 주는 편이다. 2019년까진 팀 사정상 풀타임 외야수로 뛰었으나, 2020년, 2021년에 부진하며 1루수로 잠시 뛰기도 했고 2022년부터는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고 있다.
통산 홈런 1위 가능성
박유혁 선수 경력
아마추어 경력
야구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으며, 이후 야구부가 있는 우일중으로 진학했다. 왼손잡이에 어릴 적부터 있었던 엄청난 파워가 합쳐져 단숨에 대형 유망주로 거듭났으며,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배재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명실상부한 배재고의 중심 타자로 꾸준히 활약하였다.
프로 경력
삼성 라이온즈 시절
배재고의 좌타 거포 유망주였던 박유혁은 2007년 삼성의 1차 지명을 받으며 데뷔했고 2007년에는 2군에서만 뛰었다.
2008년 1군에서 40타석의 기회를 얻었으나 최종 성적 28경기 40타수 9안타 1홈런 0.225. 2008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전역 후, 당시 엄청난 전력을 보유하고 있던 우승 후보 삼성 라이온즈에 박유혁이 있을 자리는 없었고 1군에서 단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하며 2011 시즌 종료 후 현대로 트레이드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최종 성적 40타수 9안타 1홈런 0.225.
현대 유니콘스 1기
방출 후 김시진 감독의 엄청난 신임을 얻으며 현대 유니콘스와 2년 총액 8억(계약금 5억원, 연봉 3억원)에 계약했다. 당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현대 유니콘스의 엄청난 초강수였으나 정말 당연하게도 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사실 5년 동안 타율 0.225를 친 타자를 8억을 주고 데려온 것이 팬들 눈에는 미친 짓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팀 상황도 좋지 않았으니.
하지만 현대는 이 계약을 강행했고, 이 계약은 현대 유니콘스로서는 정말 신의 한 수가 되었다.
MVP 레이스까지 가능해보였던 올 시즌이었으나 결국엔 7월에 찾아온 부상으로 인해 시즌아웃되어 아쉽게 막을 내렸다. 60경기 가량을 더 출장하지 못했음에도 불구 31홈런을 달성하며 6년 연속 30홈런을 달성했다. 야만없이지만 이 페이스대로 부상이 없었다면 좌타자 최초 60홈런도 가능했을 정도. 84경기밖에 뛰지 못했음에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2019년 김광 다음 최고의 타자.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17년의 커리어하이를 단 2년 만에 완벽히 역전하였다. 우타자들의 시대에서 이제 박유혁은 리그 최고의 좌타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7년 연속 30홈런은 덤.
FA
현대에서의 8년(2012~2019) 동안 3,625타수 1,198안타 278홈런 876타점 776득점 타출장 0.331/0.390/0.579를 기록했다. 평균치는 453타수 149안타 34홈런 109타점 97득점.
단돈 8억으로 데려온 선수가 이렇게까지 포텐이 터질 줄은 그를 데려온 김시진 감독도, 현대 프런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유혁은 단 8년 만에 현역 최고의 좌타자 반열에 들어섰으며, 2013년부터 7년 연속 3할-30홈런, 2016년부터 4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했으며 7년 연속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부상이 조금 많았던 게 흠이지만 만약 현대에게 박유혁이 없었다면 암흑기를 끊고 다시 강팀으로 올라선 2010년대도, 7년 만의 포스트시즌 복귀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대 입장에서는 가히 무조건 잔류해야 하는 선수일 것이다.
2019년 12월 24일, 협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고 4+2년 최대 144억원(계약금 60억원 / 연봉 60억원 / 옵션 24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사실상 종신 현대를 선언하였다. 박유혁은 인터뷰에서 "나를 구원해준 구단에 대한 예우"라는 말을 남겼다.
논란이 없던 대형 계약 체결이었음에도 2020년의 박유혁은 정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장점이었던 장타력마저 완전히 떨어졌고 시즌 후반엔 멘탈이 완전히 나간 듯 선구력도 크게 떨어진 모습이었으며 이로써 7년 연속 3할-30홈런-골든글러브 수상, 4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 등의 기록들은 모두 깨지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의 먹튀를 완전히 잊게 하는, 박유혁의 완벽한 부활. 홈런왕, 타점왕을 수상하며 개인 첫 타이틀을 수상하였고, MVP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한국시리즈 6경기에서 29타수 14안타 3홈런 9타점 6득점 0.482로 대활약하며 한국시리즈 MVP와 함께 현대의 18년 만의 통합우승을 이끌어냈다.
3관왕과 MVP를 수상하며 2년 연속 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으며 서건창 이후 9년 만의 좌타자 MVP 수상, 박경완 이후 23년 만의 현대 소속 MVP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내었다.
2022년의 커리어하이를 압도적인 격차로 갱신하였으며, 특히 올해의 박유혁의 활약이 더욱 대단한 점은 2013년부터 시작된 타신투병의 여파가 잠잠해진 시기에 저런 스탯을 냈다는 것이다. 99, 02, 03이승엽과 비견될 만한 역대 최고의 좌타자 시즌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스탯을 낱낱이 더 살펴보자면 먼저 장타율 0.707은 2019년의 김광보다도 높은 수치로, 2위인 오재일의 0.609와 약 1할이 차이가 난다. 이러한 탓에 OPS도 무려 1.138을 찍었다. 2위인 백승자는 앞자리 1을 겨우 찍은 1.005. 또한, WAR 10과 WRC+ 200을 찍었으며, 타율을 3할 5푼을 찍고 안타 2위를 찍는 등, 사사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리그 최상급의 활약을 했다.
박유혁의 활약을 통해 2023년의 현대 유니콘스는 순식간에 단일시즌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부상하였으며, 한국시리즈에서도 두산을 상대로 4승 1패로 2년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하였다.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 반열에 들어서다, 현대의 1번 타자 이승호의 활약 ■이적생 박건우의 좋은 활약 ■클린업 트리오 137홈런 합작, 맥스-박유혁-백승자 중심 타선의 역대급 활약 ■ 이적생 박건우의 좋은 활약 물 샐 틈 없는 하위 타선의 활약 (최윤성 24홈런 0.317, 백승우 17홈런 0.298) ■현대의 근심걱정 포수와 유격수를 채워준 신흥 선수들의 활약 (포수 서진영, 유격수 김현준) ■아직은 부족한 선수 뎁스와 대타/대수비/대주자 자원
■두 리그 최고의 테이블세터, 이민과 정혁의 미친 활약 ■현대와 함께 올해 역대급 클린업 트리오, 김재환-펠릭스-오재일의 116홈런 합작 (김재환 26홈런, 펠릭스 43홈런, 오재일 47홈런) ■ 하위 타선의 활약 (강우성의 3할 20홈런 달성, 장보고의 회춘 (타율 0.285)) ■ 빈 자리를 메꾸는 두산의 미래 (송승환 0.276 14홈런, 김민혁 0.304 5홈런, 박준영 0.291 3홈런) ■흑치상지의 부상으로 인한 시즌아웃
■새로운 두산의 에이스, 루이스 마르티네즈의 대활약 (20승 5패 2.37) ■강현수의 회춘 (14승 8패 3.56) ■맥컨드 에이죠스의 부상 복귀 후 5경기 4승 1패, 7년 연속 10승 달성 ■최정민의 데뷔 첫 시즌 10승 달성 ■필승조 정철원-김명신의 40홀드 합작 (18홀드-22홀드) ■새로운 불펜 투수진들의 활약 (김민규, 김동주, 최승용 등) ■언더파워의 부활 (박치국 14홀드, 박치혁 16홀드) ■마무리 전환 후 김훈의 완벽한 클로저화 (김훈 데뷔 첫 30세이브) ■후반기 내내 지속된 투수진들의 잔부상 (맥컨드 에이죠스, 이성원, 박치국, 홍건희, 곽선빈) ■이성원의 부상으로 인한 부진 (7월 부상으로 인한 1군 말소, 시즌 성적 5승 9패 4.56) ■곽선빈의 반등 실패 (시즌 17경기 1승 5패 3홀드 5.24)
이번 시즌 두산 베어스는 재작년부터 미친 활약을 하며 늦은 나이에 포텐을 터트린 오재일과 이대로 더 활약하면 타이론 우즈 이후 두산 역사상 최고의 용병이 될 가능성이 있는 호세 펠릭스, kt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4년 71억원으로 두산으로 컴백한 테이블 세터 이민, 세 명을 중심으로 올해 11팀 중 최고의 타선을 구축했다. 투수진에서도 새로운 외국인 투수인 루이스 마르티네즈와 작년 이후 회춘한 강현수를 중심으로 5선발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불펜진에선 정철원과 김명신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박치국과 박치혁이 작년의 부진을 씻으며 활약하였으며, 김훈이 마무리 전환 이후 완벽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런 두산은 전반기 잠시 1위까지 탈환했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보였다.
지속해서 2위와 3위를 유지하다가 7월, 흑치상지의 무릎 부상 재발로 인한 시즌아웃을 시작으로 투수진의 계속되는 잔부상들이 시작되었다. 7월 11일에는 이성원이 정규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으며 그 뒤로는 맥컨드 에이죠스가 약 50일 결장 판정을, 불펜진에서는 박치국, 홍건희, 곽선빈이 잔부상을 겪었고, 결국 8월에 23경기 7승 16패 승률 0.304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순식간에 2위에서 6위까지 내려앉았다. 8월 15일~20일에는 충격의 6연패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투수진의 붕괴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스탯은 두산의 팀 타자 성적과 팀 투수 성적이다. 8월 31일 기준 두산은 팀 타율 1위, 팀 OPS 1위, 불펜 ERA 6위, 불펜 WHIP 7위라는, 불펜진만 보면 도저히 이게 강팀 두산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스탯을 기록했다. 하지만 9월 맥컨드 에이죠스의 복귀를 시작으로 반등에 성공하여, 9~10월 성적 35경기 23승 1무 11패, 승률 0.657로 급반등에 성공하며 강팀 두산 베어스로 복귀하였다. 시즌 끝자락에는 아쉬운 성적을 보이면서, 두산은 정규시즌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시즌 두산은 2022년 이후, 미래를 충분히 가져갈 수 있는 시즌이 되었다. 비록 시즌 내내 외야 한 자리가 부족했고, 흑치상지의 이탈로 내야 한 자리마저 부족했으나 그 자리를 백업이었던 송승환과 김민혁, 박준영이 채우면서 타격에서는 거의 허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문제였던 포수 자리인 장보고마저 올해 타율 0.285로 회춘에 성공하면서 두산은 9명의 야수 골든글러브 중에서 4자리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민, 정혁, 오재일, 호세 펠릭스) 투수진의 경우 물론 후반기 불펜진의 대대적인 부상들을 거치며 위기를 겪었지만, 새로운 용병인 루이스 마르티네즈의 좋은 활약과 타격의 장보고와 함께 올해 작년에 이어 또 다시 회춘에 성공한 강현수가 선발진을 구축했고, 부상으로 1달 이상 결장했지만 결국에는 7년 연속 10승을 달성한 맥컨드 에이죠스와 개인 첫 10승을 달성한 최정민 등 이성원이 빠진 선발진만 봐도 리그 최상위권이었다.
올해 두산의 성적은 역시 '야수진'이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두산의 야수진을 이끈 선수는 이민, 호세 펠릭스, 오재일로 총 3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중 이민은 올해 4년 71억원으로 두산에 컴백하였으나 오버페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런 비판들을 올해 성적을 통해 완벽하게 잠재웠다. 이민은 올해 503타수 185안타 0.367/0.473/0.428 65타점 104득점 113사사구 31도루를 기록하며 이번 시즌 부활한 홍창기와 함께 리그 최고의 테이블세터이자 유격수로 활약했다. 이는 kt에서의 2020, 2021년 이후 커리어하이 시즌이다. 2020, 2021년 이민이 어떤 성적을 냈는지 생각해본다면 두산 2기 1년차부터 정말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유격수 골든글러브는 그의 몫. 또 올해 두산이 새로 데려온 호세 펠릭스도 1년차에 미친 성적을 기록했는데, 0.285/0.369/0.587 475타수 136안타 43홈런 111타점 93득점 OPS 0.956으로, 그냥 시즌 최상급 홈런 타자가 아니라 두산 역사상 최고의 외인 타자로 남을만한 시즌이었다. 실제로 두산 역대 최고의 용병이라 불리는 타이론 우즈의 커리어하이인 1998년 성적과 올해 펠릭스의 성적이 별 차이가 없다. 또한 시즌 내내 4번 타자로 활약한 오재일은 펠릭스보다 더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0.312/0.389/0.609 489타수 153안타 47홈런 131타점 105득점 OPS 0.998이라는 미친 성적을 기록했다. 이건 17최충완, 18최충완, 18박병호, 19김광 등 논외급을 제외하면 2021년의 자신을 포함해 두산 역사에 남을 단일 시즌이다. 올해 오재일의 WRC+는 무려 178.3. 특히 올해는 타신투병의 여파가 잠잠해지기 시작한 2021년부터의 기간이기에 오재일의 올해는 더욱 더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비록 올해 오재일보다 더 미친 타자가 한 명 있었을 뿐. 다른 선수들은 어땠냐 하면 이민과 함께 테이블세터를 이끈 정혁은 올해도 역시 3할-150안타-100득점을 기록하며 2019년 이후, 5년 연속 3할-150안타를 달성했다. 김재환은 여전한 장타력을 보여주며 8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하였으며, 꾸준히 6번 자리에서 활약한 강우성은 개인 첫 20홈런을 달성했다. 하위 타선에서는 올해 두산의 가장 큰 문제였던 포수 자리의 장보고가 타율 0.285로 회춘에 성공하며 두산의 고민을 달랬고, 외야 한 자리와 흑치상지의 시즌아웃으로 인한 내야 한 자리를 송승환, 김민혁, 박준영 등이 완벽히 채워주었다.
이제 두산의 과제는 올해 큰 부상을 당한 세 명, 흑치상지, 이성원, 곽선빈이다. 그래도 흑치상지는 시즌아웃 전까지 3할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했지만 작년 부상이 또 재발했다는 것은 재고해봐야 할 부분이다. 반면 이성원과 곽선빈은 부상을 제외하고도 올해 부진했다. 이성원은 부상 이전까지의 성적이 5승 9패 4.56으로 2021, 2022년에 비해서는 최악의 성적을 보였으며, 내년 FA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두산의 과제일 것이다. 또, 곽선빈은 올해 1승 5패 3홀드 5.24라는 이게 정녕 두산의 불펜을 이끌었던 언더파워의 일원이 맞나 싶은 성적을 보였다. 물론 언더파워 자체가 이전의 명성을 잃어버린 상태지만, 올해 박치국, 박치혁, 김훈의 모습을 보면 곽선빈의 성적은 이 셋과는 매우 대비된다. 2021년부터 부상과 부진을 겪으면서 커리어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두산 팬들은 나머지 둘은 몰라도 곽선빈에게는 이미 등을 돌린 상태이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의 기적적인 우승을 시작으로, 두산 베어스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시리즈 7연패를 달성한 시기를 이른다. 심지어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6년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이는 당연하게도 KBO 역대 최다 한국시리즈 연패 기록이며 그 뒤로는 1986~1989년 해태 타이거즈의 4연패, 2011~2014년 삼성 라이온즈의 4연패가 있다. 7연패는 물론이고 5연패조차도 40년 KBO 역사에 두산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
2015년
작년 감독 송일수의 삽질로 인해 충분히 PS를 갈 수 있던 전력으로 정규시즌 6위라는 충격의 성적을 내면서 2015년 시즌을 최악의 상황으로 시작했다. 우선은 FA로 인한 이탈 없이 작년 엄청난 활약을 해줬던 원투펀치 더스틴 니퍼트, 에이전드 카론과 재계약에 성공했으며 외국인 타자로는 뉴욕 메츠 출신 3루수인 잭 루츠와 계약하였으나 이내 방출되었다. 이후 로메로를 영입했으나 로메로도 결국 실패. 사실상 외국인 타자 없이 시즌을 진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스틴 니퍼트-에이전드 카론-강현수-유희관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이 구축되었으며, 김현수-김광-박병호의 클린업 트리오가 예상되었으나 신인 최충완이 34홈런을 치는 뜬금포 활약을 해버리며 엄청난 중심타선이 완성되었다. 또한 김재호가 커리어하이를 찍고 정수빈이 여전한 활약을 해주었으며, 잭 루즈의 퇴출과 최주환의 부진을 틈타 주전 자리를 꿰찬 허경민까지 활약하며 위의 베스트 라인업 중 장타에 치중된 박병호와 작년에 이어 부진하며 지명타자 자리만 낭비한 홍성흔을 제외하고 모두 3할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KBO 리그의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이며 홈구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LG 트윈스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을 연고지로 삼는 3개의 프로 야구단 중 하나이다.[5] 실업계를 합한 창단 자체는 1975년에 아마추어 팀으로 창단한 롯데 자이언츠가 먼저이지만 원년 6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프로야구단으로서 창단식을 가진 원년 최초 구단이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등과 마찬가지로 KBO 리그 원년에 창단한 프로 야구단 중 하나로 '두산프로야구단 OB 베어스'가 1982년 창단 당시의 구단명이었다.
창단 당시 연고지는 대전시를 포함한 충청도였으나 3년 뒤 서울로 연고지를 변경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3년 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으며 이전 직후인 1985년엔 서울 동대문야구장을 주로 홈으로 사용하다가 1986년부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스코트는 구단 이름에서 보듯 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