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계림의 행정은 큰 구분인 주(洲)와 호족들이 다스리는 도호부(都護府)로 나뉘어짐. 이후 1856년 개항 이후 근대화를 추진하며 폐주구도 운동을 통해 새로운 행정구역을 정립하였으며, 그 예시로 웅천주 부여군 구룡향(熊川洲 扶餘郡 九龍鄕)은 하남도 부여시 구룡향(河南道 扶餘郡 九龍鄕)으로 바뀜.
== 시대정리 ==
신라의 역사적 지역들:<br>
신라반도(삼한 · 동북 · 송화)<br>
대마도(대마국)<br>
제주도(탐라국, 우산국)<br>
<br>
왕권-통일시대<br>
혼란-삼국의 난<br>
막부-진훤의 진문정권(甄門政權,무진세정. 조정:금성, 세정:무진.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체제 시작. 세정수군, 세정육군 창립.)<br>
귀족-삼가신정(三家神政. 조정:금성, 세정:무진)<br>
막부-왕희의 왕문부가(王門斧柯,개경세정. 조정:금성, 세정:개성)<br>
-외세-원간섭기(元干涉期, 원치시대)<br>
-막부&왕권-신종 광무성황의 광무경장(光武更張, 정명론 주장한 금씨 감금, 4군 6진 및 이도의 한글 창제, 정치력 소모로 왕씨 실각.)<br>
현재 계림의 성황은 연호를 정개(正開)로 하여 즉위한 제 120대 성황인 [[정개제 금표 (위망지매영재)|정개제]]이며, 부황(父皇) [[태상황 금석 (위망지매영재)|금석]]은 태상황(太上皇)으로 천극하여 물러났다.
[[밀양 박문 (위망지매영재)|밀양 박문]],[[경주 석문 (위망지매영재)|경주 석문]], [[금성 금문 (위망지매영재)|금성 금문]] 등 세 차례의 국성교체를 거치며 왕위를 이어왔으며, 계림의 민족종교인 [[신교 (위망지매영재)|신교(神道)]]의 최고신인 [[천지제신 (위망지매영재)|천지제신(天池帝神)]]의 제사를 지내는 역할 또한 맡았다. 19세기 [[정묘개화 (위망지매영재)|정묘개화]] 당시 유신정책의 일환으로서 [[계림 제국 (위망지매영재)|대계림국]]의 국가원수(元首)이자 구 계림군을 통수하는 대원수(大元帥)로 추대되었으나, 종전 이후 국헌이 개정된 현재에 이르러서의 성황은 국헌을 총람하고, 계림 정기와 국민의 통합을 담당하는 것 그 이상의 대권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되었다.
== 경칭 ==
한자 성황(聖皇)은 언론과 대중, 각국 정부들의 공식 호칭으로서 불리우는 공인된 명칭으로, 중세시기 진문세정의 정책의 일환으로서 격상되며 만들어진 호칭이다. 해외에서는 주로 계림어의 고유명사로 보아 성황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나, 몇몇 국가들의 경우 비하하려는 의도에서 '계림왕'으로 호칭하는 일도 더러 존재한다. 영미권의 경우 'Emperor of Gyelim'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구 외에 다른 국가에서도 황제 칭호로 부르는데, 일례로 태국에서는 자국 군주는 라자(국왕)라고 하지만 계림 성황은 마하라자(황제)라고 칭하는 한편, 비슷하게 천황제를 체택중인 류큐에서는 한자 성황(聖皇)을 음독하여 세이오(せいおう)라고 호칭한다. 동녕의 경우엔 동녕식 한자어의 발음인 셍황(shèng huáng,ㄕㄥˋ ㄏㄨㄤˊ)으로 칭하는 편.
[[삼한민족 (위망지매영재)|계림인]]들이 성황을 칭할때는 주로 성황(聖皇) 혹은 성황폐하(聖皇陛下)라고 호칭하며, 언론에서는 대부분 '성황폐하' 혹은 '임금님'이라고 한다. 임금은 군주국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신라어로, 주로 재위중인 성황을 호칭할 때 사용되는 언어로서 현재는 존속중이다. 사용이 확연히 드문 편이지만, 성황을 칭하는 또 다른 어구로는 '신성한 제왕'이라는 뜻의 신성제왕(神聖帝王)도 존재한다. 황후와 같이 호칭할 경우, '성황황후양폐하(聖皇皇后両陛下か'라고 부른다. 해외에서 흔히 하는 것처럼 그냥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경우는 급진적인 일부 계림인이 아니면 드물다.
'성황'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성스러운 황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천자와 더불어 황제를 상징하는 삼한천명과 연결된 표현이기도 하다. 종종 성황은 문자 그대로 신격을 띈 군주여서 성스러운 황제로 불린다는 오해가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계림 신화 (위망지매영재)|계림의 건국 신화]]에서도 황실을 하늘의 후예인 천손(天孫)이라고 해석하여도, 신 그 자체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성황을 신 그 자체로 여기던 사상은 신교의 교파 중 하나인 [[국체대도 (위망지매영재)|국체대도]]에서 나온 것이다. 다만, [[신종 광무성황 (위망지매영재)|신종 광무성황]]의 치세인 1388년 경 계림 신종이 명 태조에게 보냈던 서신에선 '신성한 곳의 천자(聖所處天子)가 땅 위에 선 천자(地在沒處天子)에게 다음과 같이 고하노라'라는 내용의 간접적 하대를 한 적이 있었다.
위망지매영매는 만약 신라가 봉건 체제로서 2천년 간 이어졌다면?이라는 질문에서 개화한, 신라의 정세를 봉건화시킨 특유의 세정 체제와 그로 인한 역사적 개변을 주요 소재로 삼은 제이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이다.
통일 시대 말기, 실제보다 큰 규모로 일어난 적고적의 난으로부터 금씨 왕을 구해낸 진훤(견훤)은 일찍이 자신이 주장한 관직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진훤이 신라의 권신으로 거듭나며 후백제는 탄생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왕건과의 밀담으로 태봉을 평정한 진훤은 당나라로부터 신라의 새로운 국호인 계림을 하사받고, 호족과 백제왕작, 그리고 자신의 씨족인 진씨가 군림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인 세정의 병마도원수로서 등극하며 역사의 축은 뒤바뀌었고, 이후 신라는 실권 없이 구름 위로 떠받들어진 금씨의 종묘신궁을 뒤로 한 채, 귀족과 무가들이 난립하는 또 다른 역사의 장으로 쓸려내려갔다.
작성예정 리스트
동녕국 > 작성준비✔ > 문서화
계림국 > 작성준비✔ > 문서화
류큐 > 작성준비 > 문서화
일본 > 작성준비✔ > 문서화
중국 > 작성준비 > 문서화
진씨세정 > 작성준비✔ > 문서화
왕씨세정 > 작성준비 > 문서화
덕씨세정 > 작성준비✔ > 문서화
대계림국 > 작성준비✔ > 문서화
계림국 내각총리대신 > 작성준비 > 문서화
구 금성부 현 동경부 > 작성준비 > 문서화
계림
콩코드
계림국 鷄林国 |Keilin
국기
국장
網羅四方 망라사방
상징
국가
月金歌 (법률상)
국화
진달래 (관습상)
국조
닭
역사
[ 펼치기 · 접기 ]
정묘개화 1867년 5월 18일 내외칭제의 대호령 및 대계림제국 출범 1868년 1월 15일 폐주구도(藩州具道)령 반포 1870년 6월 4일 대계림제국 국헌 시행 1890년 7월 17일 연합군의 점령 1945년 9월 3일 계림국 국헌 공표 1946년 10월 3일 계림국 국헌 시행 및 계림국 출범 1947년 8월 15일 국권회복 1952년 4월 18일
한성 시대에 계림을 통치했던 세정으로, 계림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세정인 한편, 최후의 무신정권이다. 이 시대를 호칭할 때에는 주로 당대 중심지였던 한성의 이름을 따서 한성세정으로 부르지만, 당시 덕풍왕이자 병마도원수였던 인물들의 성씨인 덕씨를 따 덕문세정이라고도 부른다.
실질적으로 세정이 개막된 시기는 여러 관직들을 겸직하고 있던 진훤이 신라 조정에 입조하여 병마도원수에 임명된 시기인 937년이지만, 그 이전부터 896년에 일어난 적고적의 난을 진압한 견훤의 권세는 여전히 커지고 있었기에, 실질적으론 그가 신라 서면도통에 임명된 뒤 태봉을 평정한 918년부터를 실질적인 진씨세정의 시작으로 본다.
계림사 역사상 최초의 세정인 동시에 국호의 개칭, 금성 금씨 종묘신궁의 종주의 명칭을 성황으로 하는 한편 병마도원수의 종씨들이 대대로 왕작을 하사받도록 하는 등, 훗날 이어질 계림의 문화적 제도들을 정비하였으나 말대에 이르러 고려왕을 겸직한 병마도원수들 섭관청정사들의 종횡이 이어지던 중, 결국 또 다른 유력가인 개성 왕씨 출신의 섭관청정사이자 무인인 왕희가 정변을 통해 임금에게 왕작을 하사받아 고려왕으로서 등극한 뒤, 새로운 세정을 개막하면서 1097년에 멸망했다.
민주자유당(民主自由党)은 계림의 빅텐트 보수정당으로, 현재 총리대신을 배출한 국회의 집권여당이다. 연립정당인 조청당과 함께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현 총임(당수)은 민자당 공치계 출신의 유승민이다.
약칭은 민자당(民自党)[4], 영문 약칭은 Democratic Liberal Party (DLP)다. 1955년 안산창호, 송진우, 금병로 등(통칭 안송금)을 중심으로 한 삼당합당의 결실로서 창당되었으며, 창당한 이래로 대부분 기간 동안[5] 계림의 집권 정당으로 역할했다.
오랜 기간 계림의 내각에서 연달아 정권을 차지한 정당이다보니[6], 계림의 정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접하고 있으며, 민자당 산하의 파벌들과 그 파벌의 인사들을 파악하면 계림 정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징
기원
성립
현황
민자당 강세의 이유
정강·정책
파벌
당가
지지기반
타 정당들과의 관계
역대 중앙지도부 임원 목록
역대 선거 결과
출신 총리
여담
관련 문서
둘러보기
K-소론
아원
입헌민정당 立憲民政党 | The Constitutional Civil Rights Party
↑대외적으로는 병마도원수 집안이 대대로 임금에게 하사받은 왕작을 근거삼아 계림의 국왕(國王)을 자처했다. 다만 세정 말기에 이르러 본가의 종통 단절과 병약한 도원수의 취임 등이 이어졌으며, 이 탓에 도원수를 보좌하여 정무를 담당하는 체찰사들의 권력이 커지는 현상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