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클레치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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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클레치아 왕국'''(Kingdom of Saculechia), 줄여서 '''사클레치아'''(Saculechia)는 [[유로아스피아]] 중앙에 위치해있는 내륙국이다. 현재 [[어나더어스]], [[유로아 연합]]의 가입국으로, 수도와 최대도시는 [[일리오스]]이며,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 국명은 [[사클레치아 공국]]의 국부인 [[사크리치오 마우리시아]]에서 따왔다.
'''사클레치아 왕국'''(Kingdom of Saculechia), 줄여서 '''사클레치아'''(Saculechia)는 [[유로아스피아]] 중앙에 위치해있는 내륙국이다. 현재 [[어나더어스]], [[유로아 연합]]의 가입국으로, 수도와 최대도시는 [[일리오스]]이며,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 국명은 [[사클레치아 공국]]의 국부인 [[사크리치오 마우리시아]]에서 따왔다. 북쪽은 [[게르마스 왕국]], 서쪽에는 [[뉴마느 공화국]]과 [[프랑키아 왕국]], 남쪽은 [[밀라니아]], 동쪽은 [[외스티-운가룬 섭정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 역사 ==
== 역사 ==
{{본문|사클레치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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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년|IY]] 3년경 [[이세계인|초기 이세계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인 [[샤크리차족]]들이 [[사이메리야]]와 [[힌디우스티나강]]에서 [[유로아]] 중심부인 [[이리두스]]에 정착하였고 5년경 족장인 사크리치오 마우리시아가 공동체 국가를 형성하였다. 후에 샤크리차족들에 의해 국명이 '''사크레치아'''가 되었다가 10년경 명칭을 현재의 형태로 바꾸게 된다. 당시에는 공국에 불과했고 샤크리차족이 나중에 분열되면서 각자의 국가를 형성하여 26년 통일 왕국으로 흡수되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23년 [[이반 다 스트라우스키아]]가 이끄는 사클레치아군에 의해 이리두스 전역을 차지했고, 26년 나머지 소국들을 흡수하여 '''사클레치아 왕국'''을 건국한다. 그 후 [[헨리 1세]]가 사클레치아의 국왕이 되었으며, [[발전 시대 (사클레치아 왕국)|발전 시대]]에서 국가를 발전시키다가 독살당하는 과정에서 [[루카스 1세]]가 이끄는 비옥파와 [[데이비드 1세]]가 이끄는 적색파로 분열된다. 결국 [[사클레치아 왕위 계승전쟁|왕위 계승전쟁]]에서 적색파가 몰락하고 비옥파가 왕권을 잡았지만 56년에 일어난 [[게르마스-사클레치아 전쟁|게르마스와의 전쟁]]에서 대패하면서 점차 힘을 잃다가 결국 [[헨리 2세]]가 다시 집권하여 헨리 시대가 사실상 부활했다. 헨리는 [[헨리 계획]]이라는 경제 정책을 발표하여 경제 침체를 어느 정도 해소하긴 했지만 이메타리우스 형제가 이끄는 [[자유시민단]]에 의해 헨리 2세가 몰락하면서 [[자유군주당]]과 [[율리우스가]]에 의해 왕권을 차지한다. [[율리우스 4세]] 당시에는 자경단들을 모아 [[자유십자단]]을 조직하였고 군비 증강까지 강행하면서 사실상 제국화되었고 노동자 착취는 물론 [[사클레치아 대파업|대규모 파업]]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노동자와의 갈등이 커지게 된다. 결국 [[유로아스피아 전쟁]]까지 터지면서 사클레치아 전국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율리우스 4세는 전쟁이 끝난 직후 국제법에 의거하여 사형당한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포스]]가 집권하면서 황폐화된 전 국토를 되살리고 사회 갈등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두 번의 반카이포스파 연합이 형성되였고 정치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고, 결국 집권당인 자유군주당이 [[자유군주당 분당|분당]]되면서 사퇴하게 되었다. 이후 국왕직은 공석이 되었으며 자유당의 압승으로 루이스 폰 아르스토이아가 국왕이 되었으나 3개월만에 사퇴하였고 [[율리우스 5세]]가 집권한다. 그 후 [[앵본]]에서 시작된 [[공명학회]]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사클레치아 역시 공명학회의 영향을 받아 일리오스에 지부를 설립한다. 니치렌당은 군주당을 포함한 보수정당들과 손을 잡고 여당이 되면서 공명학회를 제2국교로 삼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들은 율리우스가의 집권에 반발하였고 이와 동시에 [[카네이션 연합]]이 주도한 민주정당 통합을 거쳐 [[민주당 (사클레치아 왕국)|민주당]]이 탄생하였다. 이후 몇 번의 선거법 개정과 헌법 개정을 통해 전제군주제 체제는 사실상 사라졌고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또, 동시에 영세중립국이 되었고 [[어나더어스]]의 회원국이자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제20대 사클레치아 의회선거|20대 총선]]부터 민주당-자유당 연합이 압승하면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율리우스 6세]]가 사퇴한 후 [[카를 폰 사클레치아]]가 국왕이 되면서 83년만에 율리우스가는 왕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후 201년 유로아 국가들과 함께 [[유로아 연합]]을 결성하여 부상임국이 되었으며 207년에는 [[율리우스 아페렌스]] 총리의 [[과거사 청산 캠페인]]을 실시하여 유로아스피아 전쟁 관련 부역자들을 청산해내는 성과를 안겼다. 217년에는 [[실비엔 폰 사클레치아]] 국왕이 집권하였다. 현재 어나더어스에서 경제 규모는 세계 6위, 군사력은 세계 9위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이세계년|IY]] 3년경 [[이세계인|초기 이세계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인 [[샤크리차족]]들이 [[사이메리야]]와 [[힌디우스티나강]]에서 [[유로아]] 중심부인 [[이리두스]]에 정착하였고 5년경 족장인 사크리치오 마우리시아가 공동체 국가를 형성하였다. 후에 샤크리차족들에 의해 국명이 '''사크레치아'''가 되었다가 10년경 명칭을 현재의 형태로 바꾸게 된다. 당시에는 공국에 불과했고 샤크리차족이 나중에 분열되면서 각자의 국가를 형성하여 26년 통일 왕국으로 흡수되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23년 [[이반 다 스트라우스키아]]가 이끄는 사클레치아군에 의해 이리두스 전역을 차지했고, 26년 나머지 소국들을 흡수하여 '''사클레치아 왕국'''을 건국한다. 그 후 [[헨리 1세]]가 사클레치아의 국왕이 되었으며, [[발전 시대 (사클레치아 왕국)|발전 시대]]에서 국가를 발전시키다가 독살당하는 과정에서 [[루카스 1세]]가 이끄는 비옥파와 [[데이비드 1세]]가 이끄는 적색파로 분열된다. 결국 [[사클레치아 왕위 계승전쟁|왕위 계승전쟁]]에서 적색파가 몰락하고 비옥파가 왕권을 잡았지만 56년에 일어난 [[게르마스-사클레치아 전쟁|게르마스와의 전쟁]]에서 대패하면서 점차 힘을 잃다가 결국 [[헨리 2세]]가 다시 집권하여 헨리 시대가 사실상 부활했다. 헨리는 [[헨리 계획]]이라는 경제 정책을 발표하여 경제 침체를 어느 정도 해소하긴 했지만 이메타리우스 형제가 이끄는 [[자유시민단]]에 의해 헨리 2세가 몰락하면서 [[자유군주당]]과 [[율리우스가]]에 의해 왕권을 차지한다. [[율리우스 4세]] 당시에는 자경단들을 모아 [[자유십자단]]을 조직하였고 군비 증강까지 강행하면서 사실상 제국화되었고 노동자 착취는 물론 [[사클레치아 대파업|대규모 파업]]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노동자와의 갈등이 커지게 된다. 결국 [[유로아스피아 전쟁]]까지 터지면서 사클레치아 전국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율리우스 4세는 전쟁이 끝난 직후 국제법에 의거하여 사형당한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포스]]가 집권하면서 황폐화된 전 국토를 되살리고 사회 갈등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두 번의 반카이포스파 연합이 형성되였고 정치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고, 결국 집권당인 자유군주당이 [[자유군주당 분당|분당]]되면서 사퇴하게 되었다. 이후 국왕직은 공석이 되었으며 자유당의 압승으로 루이스 폰 아르스토이아가 국왕이 되었으나 3개월만에 사퇴하였고 [[율리우스 5세]]가 집권한다. 그 후 [[앵본]]에서 시작된 [[공명학회]]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사클레치아 역시 공명학회의 영향을 받아 일리오스에 지부를 설립한다. 니치렌당은 군주당을 포함한 보수정당들과 손을 잡고 여당이 되면서 공명학회를 제2국교로 삼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들은 율리우스가의 집권에 반발하였고 이와 동시에 [[카네이션 연합]]이 주도한 민주정당 통합을 거쳐 [[민주당 (사클레치아 왕국)|민주당]]이 탄생하였다. 이후 몇 번의 선거법 개정과 헌법 개정을 통해 전제군주제 체제는 사실상 사라졌고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또, 동시에 영세중립국이 되었고 [[어나더어스]]의 회원국이자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제20대 사클레치아 의회선거|20대 총선]]부터 민주당-자유당 연합이 압승하면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율리우스 6세]]가 사퇴한 후 [[카를 폰 사클레치아]]가 국왕이 되면서 83년만에 율리우스가는 왕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후 201년 유로아 국가들과 함께 [[유로아 연합]]을 결성하여 부상임국이 되었으며 207년에는 [[율리우스 아페렌스]] 총리의 [[과거사 청산 캠페인]]을 실시하여 유로아스피아 전쟁 관련 부역자들을 청산해내는 성과를 안겼다. 217년에는 [[실비엔 폰 사클레치아]] 국왕이 집권하였다. 현재 어나더어스에서 경제 규모는 세계 6위, 군사력은 세계 9위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2020년 5월 22일 (금) 19: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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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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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클레치아 왕국
Kingdom of Saculechia
Regnvm Saculechum
Königreich Saculechia
국기 국장
For The King And The People
왕과 백성을 위하여
상징
국가 사클레치아를 위하여
국조
까마귀
국화
네이비
위치
width: calc(100% + 5px)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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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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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일리오스
최대 도시
일리오스
면적
267,109㎢
접경국
프랑키아, 게르마스, 뉴마느, 밀라니아, 외스티-운가른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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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36,117,167명
밀도
36.50명/km2 | 세계 34위
인종
백인 84%, 아시아인 3%, 엘프인 2%, 마물 5%, 기타 5%
출산율
1.16명
기대 수명
80세
공용어
영어
지역어
앵본어, 라틴어, 독일어, 니우마뉴어
공용 문자
로마 문자
종교
국교
가톨릭교회
분포
가톨릭교회 63.7%, 공명학회 11.2%, 정교회 4.4%, 신성교 0.1%, 무종교 및 기타 20.6%
군대
사클레치아군
자유십자단(폐지)
하위 행정구역
[ 펼치기 · 접기 ]
9개
72개
군·면
135개
정치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단원제, 문민통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57개국 중 49위 (권위주의 체제)
국가 원수 (국왕)
실비엔
정부
요인
총리
율리우스 레이소라
국민의회 의장
에두아르 알레송
헌법재판부장
에르빈 앙게르스트
대법원장
율리우스 노바라스
국가재무부장
프리드리히 조르노스타
여당
(연립정권)
연립 여당
경제
[ 펼치기 · 접기 ]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길드 경제, 사회적 시장 경제
GDP
(PPP)
전체 GDP
$7억 4,974만
1인당 GDP
$102,969
GDP
(명목)
전체 GDP
$6억 2,204만
1인당 GDP
$100,492
무역
수입
$8,192억
수출
$2,394억
예산
세입
$4,101억
세출
$2,696억
외환 보유고
$948억
신용 등급
Eco A+2
화폐
공식 화폐
사클레치아 보루
ISO 4217
SCB
단위
[ 펼치기 · 접기 ]
법정 연호
이세계년
시간대
협정 세계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 펼치기 · 접기 ]
무비자 입국
한국인→사클레치아: 60일
사클레치아인→한국: 120일
주한대사관
한경특별시 중앙구 연대로 7
ccTLD
.sc
국가 코드
SCC, SC
전화 코드
+36

사클레치아 왕국(Kingdom of Saculechia), 줄여서 사클레치아(Saculechia)는 유로아스피아 중앙에 위치해있는 내륙국이다. 현재 어나더어스, 유로아 연합의 가입국으로, 수도와 최대도시는 일리오스이며,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 국명은 사클레치아 공국의 국부인 사크리치오 마우리시아에서 따왔다. 북쪽은 게르마스 왕국, 서쪽에는 뉴마느 공화국프랑키아 왕국, 남쪽은 밀라니아, 동쪽은 외스티-운가룬 섭정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역사

IY 3년경 초기 이세계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인 샤크리차족들이 사이메리야힌디우스티나강에서 유로아 중심부인 이리두스에 정착하였고 5년경 족장인 사크리치오 마우리시아가 공동체 국가를 형성하였다. 후에 샤크리차족들에 의해 국명이 사크레치아가 되었다가 10년경 명칭을 현재의 형태로 바꾸게 된다. 당시에는 공국에 불과했고 샤크리차족이 나중에 분열되면서 각자의 국가를 형성하여 26년 통일 왕국으로 흡수되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23년 이반 다 스트라우스키아가 이끄는 사클레치아군에 의해 이리두스 전역을 차지했고, 26년 나머지 소국들을 흡수하여 사클레치아 왕국을 건국한다. 그 후 헨리 1세가 사클레치아의 국왕이 되었으며, 발전 시대에서 국가를 발전시키다가 독살당하는 과정에서 루카스 1세가 이끄는 비옥파와 데이비드 1세가 이끄는 적색파로 분열된다. 결국 왕위 계승전쟁에서 적색파가 몰락하고 비옥파가 왕권을 잡았지만 56년에 일어난 게르마스와의 전쟁에서 대패하면서 점차 힘을 잃다가 결국 헨리 2세가 다시 집권하여 헨리 시대가 사실상 부활했다. 헨리는 헨리 계획이라는 경제 정책을 발표하여 경제 침체를 어느 정도 해소하긴 했지만 이메타리우스 형제가 이끄는 자유시민단에 의해 헨리 2세가 몰락하면서 자유군주당율리우스가에 의해 왕권을 차지한다. 율리우스 4세 당시에는 자경단들을 모아 자유십자단을 조직하였고 군비 증강까지 강행하면서 사실상 제국화되었고 노동자 착취는 물론 대규모 파업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노동자와의 갈등이 커지게 된다. 결국 유로아스피아 전쟁까지 터지면서 사클레치아 전국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율리우스 4세는 전쟁이 끝난 직후 국제법에 의거하여 사형당한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포스가 집권하면서 황폐화된 전 국토를 되살리고 사회 갈등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두 번의 반카이포스파 연합이 형성되였고 정치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고, 결국 집권당인 자유군주당이 분당되면서 사퇴하게 되었다. 이후 국왕직은 공석이 되었으며 자유당의 압승으로 루이스 폰 아르스토이아가 국왕이 되었으나 3개월만에 사퇴하였고 율리우스 5세가 집권한다. 그 후 앵본에서 시작된 공명학회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사클레치아 역시 공명학회의 영향을 받아 일리오스에 지부를 설립한다. 니치렌당은 군주당을 포함한 보수정당들과 손을 잡고 여당이 되면서 공명학회를 제2국교로 삼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들은 율리우스가의 집권에 반발하였고 이와 동시에 카네이션 연합이 주도한 민주정당 통합을 거쳐 민주당이 탄생하였다. 이후 몇 번의 선거법 개정과 헌법 개정을 통해 전제군주제 체제는 사실상 사라졌고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또, 동시에 영세중립국이 되었고 어나더어스의 회원국이자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20대 총선부터 민주당-자유당 연합이 압승하면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율리우스 6세가 사퇴한 후 카를 폰 사클레치아가 국왕이 되면서 83년만에 율리우스가는 왕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후 201년 유로아 국가들과 함께 유로아 연합을 결성하여 부상임국이 되었으며 207년에는 율리우스 아페렌스 총리의 과거사 청산 캠페인을 실시하여 유로아스피아 전쟁 관련 부역자들을 청산해내는 성과를 안겼다. 217년에는 실비엔 폰 사클레치아 국왕이 집권하였다. 현재 어나더어스에서 경제 규모는 세계 6위, 군사력은 세계 9위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