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변화)/배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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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8일 (수) 14: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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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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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위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中 박근혜

새로운 국정지표인 '희망의 새 시대'를 기치로 '국민 행복' 실천을 약속한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지만, 취임 첫 해부터 국가정보원·국방부의 여론조작 사건, NLL 녹취록,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문 파문, 철도 민영화 사태를 겪었으며,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무능함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또 정윤회의 청와대 국정개입 의혹, 성완종 리스트로 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수면 위로 올라와 빈축을 샀고, 2015년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국내에 유입되어 초동 대응에 실패하는 실책을 남겼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했던 공무원 연금과 노동 제도가 하향평준화되고, 한국사 국정교과서 전환 사태와 민중총궐기, 위안부 협상 문제까지 터지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고 만다.

2016년 초에는 파리 테러를 계기로 추진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하 '테러방지법')으로 인해 정치권이 시끄러웠으며, 이후 국회에 직권상정되자 야권을 중심으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를 실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필리버스터를 실시한 국회를 크게 비난했지만 정부의 부정 여론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국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본 지방선거로 여야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지만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된다.

2014년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최초로 도입된 사전투표제와 세종특별자치시 지역 전면 실시로 변화가 있었던 선거였는데, 무엇보다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선거판에서는 '안전'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새누리당에서는 다중이용교통시설 안전 대책과 성폭력·가정폭력·아동학대의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범국가적 위원회의 구성과 안전관리 시스템을 비롯한 대응 체계 전면 재개편을 공약으로 걸었다.

교육감에서도 직선제를 유지하되 교육경력이나 교육행정경력을 적용하지 않고 투표용지를 개정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나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자들은 대부분 단일화된 반면 보수 성향 교육감은 단일화는 커녕 후보자들이 대거 난입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자로 출마하려던 고승덕의 딸이 "아버지 역할도 하지 않은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으니 낙선하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고승덕은 유세장에서 사과를 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아야 했다.

선거 결과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라는 큰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 차원에서 사수하려 했던 경기도지사와 부산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아쉬운 점이 많았고, 정권 심판에 기댔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인천시장에서의 패배를 겪고도 광역단체장 8명을 당선시키는 등 사실상 무승부로 끝이 났다. 다만 교육감에서는 진보 성향 교육감이 13곳에서 당선되어 대승을 거두었다.

또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법 제41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소식이 있었기에 변화당과 통합진보당, 정의당 외에도 녹색당, 노동당, 한나라당, 새정치국민의당 등이 참여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음에도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변화당 또한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상당히 많은 광역·기초의원을 제외하면 역시 별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야권발 정계개편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4자 진보통합, 국민의당 창당, 더불어민주당 출범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최초의 정당 해산 심판과 더불어 그 후폭풍으로 진보 진영의 위기 또한 감지되었다. 통합진보당은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NL),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PD), 국민참여당(친노)의 합당으로 출범한 정당으로 지난 총선에서 제3당의 자리에 올랐으나 부정 경선, 내란 음모 사건 등으로 위기를 겪었다. 이로 인해 비당권파 내지 혁신파는 2013년 집단 탈당을 선언, 진보정의당으로 분당되었다.

진보정의당에서 명칭을 바꾼 정의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후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이 되었지만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연달아 선거에 참패하고 당비 모금과 펀딩 실패로 인한 재정난으로 위기를 겪었으나 2015년 노동정치연대, 평등사회네트워크(진보결집+, 노동당 탈당파), 정동영이 참여한 바 있는 국민모임과의 통합으로 세를 불리는데 성공해 진보 진영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또 지지율도 두 배 이상 올라 이번 총선에서 약진하거나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일명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한 안철수를 비롯해 호남계 내지 동교동계를 비롯한 비문 세력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분열이 시작되었다. 새정연은 분열 사태 이후 이름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었고, 탈당파들은 이합집산을 통해 국민의당으로 뭉치면서 세를 불리게 되었다. 김민석 등은 이미 2014년에 민주당의 이름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원외 민주당을 창당한 바 있었는데 분당 사태 이후인 2016년 1월 박준영 주축의 신민당과 연합했다.

19대 국회가 끝나려던 상황에서 이뤄진 야권 개편은 민주당계와 보수정당 간 양당에서 제3지대 세력의 난입으로 3당 구도를 만들어냈으며 더불어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유일 정당이 된 정의당과 원내 재진출을 꿈꾸려는 변화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의 약진도 예상되는 상황이라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반대로 총선 야권연대가 쉽지 않은 만큼 자칫 잘못하다간 여당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변화당, 재기하다?

변화당은 지난 16대 총선 이후의 비타협 행보로 여야의 질타를 받아 입장을 철회, 제3세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양당에 무리하게 협조한 흑역사를 겪으면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물론 연달은 선거 부진과 참패 끝에 19대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 추락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그게 아니었다면 제3당이란 명맥은 물론이고, 1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후폭풍으로 인한 타격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변화당은 지난 2006년 2월 혁신위원회 주도의 당 쇄신을 추진했고, 2007년 10월 사회운동가 출신 ○○○가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쇄신이 거의 이뤄졌으나 18대 총선에서 부진하는 결과를 맞는다. 또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는 변화당에서 나온 일부 무소속 당선자들(김현수, ○○○, ○○○)의 주목을 받으며 점점 더 위축되어 갔고, 19대 총선의 패배를 겪으며 지속적인 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4년 1월 김현수의 수원시장 출마 선언과 세월호 참사, 그리고 당 이미지 변화로 변화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들은 무당층 확보와 지방선거 약진, 제3세력 도약을 새로운 당론으로 정해 선거판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김현수가 수원시장에 당선되면서 제3지대 정당 최초로 기초단체장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덕분에 2015년 이후 무당층과 양당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3지대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기에, 당연히 4년 만에 다시 원내에 재입성 할 것이란 예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변화당은 군소정당에 불과하며, 당 지지율이 10%임에도 20석 이상을 얻기 보다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최소 7석을 얻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10% 이상이든 내외든 무조건 7석 이상, 범야권 과반이 가능하다며 당 차원에서 낙관론을 제기했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며 경계하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총선에서 변화당이 의석을 얼마나 가지느냐에 따라 구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제3지대의 주도권 역시 변화당이 가져갈 지 주목되고 있다.

'옥새런' 사태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는 공천 합의로 마무리되었지만
끝내 새누리당의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

새누리당에서는 당시 주류 계파로 자리잡은 친박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김무성 대표가 일부 공천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의 추천장에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친박을 버리고 비박을 이끌었던 김무성은 2016년 3월 단수 공천보다는 상향식 공천이나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를 내세우며 민주적인 경선을 뿌리내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우선 추천식 공천'을 내세운 친박과 충돌했고 결국 뜻을 접어야 했다.

이렇게 굴욕을 당하던 김무성이었지만, 비박의 중심이던 유승민, 이재오 같은 인물들이 줄줄이 탈락하면서 곧 자신의 계파도 위협당할 처지에 놓였는데 이 경우에는 대부분이 무사히 살아남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김무성이 친박과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친박은 두 사람을 탈락시키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니 지역구를 공백화하여 이에 규정 상 본인 스스로 탈당하지 않으면 출마도 못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냈고, 결국 탈당으로 마무리된다.

이대로라면 친박은 새누리당에서 일어난 '공천 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였는데, 3월 24일 오후 김무성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승민, 이재오를 비롯한 "몇몇 선거구에 대한 공관위 추천장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되는 3월 25일 저녁까지는 최고위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부산 영도구로 내려가버렸다. 또 공직선거법 상 후보자 추천장에는 당인과 당 대표의 직인 두 개의 날인이 있어야 했기에 당선된 후보자들도 무효 처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이에 서청원, 이인제 등 친박계에서는 반발했고, 원유철은 최고위 개최를 요구할 것이란 브리핑을 내놓게 되지만 이후 원유철이 김무성을 만나 당무 복귀 회동 끝에 최고위 개최 수락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새누리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친박 성향 최고위원들과 협상을 가지면서 최종적으로는 대구 동구 을, 은평구 을, 송파구 을에는 공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만, 당시 여당이 이길 것이란 여론조사를 믿고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선거에 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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