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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전쟁 정보  
[[분류:아름다운 나라]]
| 너비 =  
{{와르샤와 전쟁 정보
| 전쟁 이름 =1차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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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파일:1차개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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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일 = 1957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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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1차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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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전일 = 1957년 2월 8일
| 종전일 = 1951년 2월 15일<ref>통일절이다</ref>
| 장소 = 대한민국 국회
| 장소 = 대한민국 국회
| 원인 = 여당인 [[민국당]]의 날치기 3선 개헌 시도
| 배경 = [[이승만 (아름다운 나라)|이승만]]의 장기 집권 야욕<br>[[제3회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총선]]에서의 [[민주국민당|여당]] 압승
| 결과 = 개헌 통과
| 목표 = '''[[민주국민당|여권]]'''<br>개헌 통과
| 영향 = 이승만 장기집권
---- '''야권'''<br>개헌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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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 내용'''<br>ㆍ'''총통 중임 제한 폐지'''<br>ㆍ통제계획경제 폐지 및 자유시장경제 채택<br>ㆍ국가의 주권, 영토 변경시 국민투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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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 이승만의 장기집권<br>[[자유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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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1 = 민주국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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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세력내용1 = [[민주국민당]]<br>친정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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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말머리 = 주요 인물
| 지휘관내용1 = [[이승만 (아름다운 나라)|이승만]]<br>신익희<br>장택상<br>[[김영삼 (아름다운 나라)|김영삼]]<br>장면<br>이기붕
| 지휘관내용2 = [[여운형 (아름다운 나라)|여운형]]<br>[[조만식]]<br>조소앙<br>김성수<br>전진한<br>[[김대중 (아름다운 나라)|김대중]]
| 병력말머리 = 세력 규모
| 병력내용1 = 여당 의원<br>친정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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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내용1 = 시위대 23명 부상
| 피해내용2 = 시위대 28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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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개요=
대한민국의 1차 개헌
대한민국의 1차 개헌
=상세=
=상세=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을 시도하였다.  야당 연합이 개헌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의석 수가 모자라 아무 효과도 없었다.  결국 1957년 2월 9일, 여당인 [[민국당]] 단독으로 총통의 임기제한규정을 폐지한 개헌안을 통과시킨다.
1956년 기준으로 이승만은 [[제1회 대한민국 총통 선거|1948년 대선]]과 [[제2회 대한민국 총통 선거|1953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재선 총통인 상태었다.  제헌헌법에 따라 총통의 3선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제3회 대한민국 총통 선거|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뻑(?)이 매우 심했던 이승만은 측근들에게 다른 이에게 [[대한민국 (아름다운 나라)|그의 조국]]을 맡기기에는 아직 사회불안이 심해 걱정된다고 말하는 등 불안해했다고 한다.  다음은 [[김영삼 (아름다운 나라)|김영삼]]의 증언.
 
{{인용문3|안 되겠어.  '''나 말고는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이 아무도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계속 이 나라를 영도해야겠어.|이승만, 1956년 봄, 김영삼과 술을 마시며}}<S>자뻑 말기입니다.</S>
 
물론 이승만이 권력욕이 많기도 했다.
 
그리하여 1956년 중순부터 여당인 [[민주국민당]]은 개헌의 필요성을 선전하기 시작한다.  민국당이 제출한 헌법 개정안에는 자유시장경제 채택이나 국민투표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었으나 메인은 총통 중임 제한 폐지였다.  야당 연합이 개헌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의석 수가 모자라 아무 효과도 없었다.  결국 1957년 2월 8일 개헌안이 민국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공성전까지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1957년 2월 8일 오후 3시, 여당인 [[민주국민당]]은 표결을 통해 총통의 중임제한규정을 폐지한 개헌안을 통과시킨다.
 
1957년 2월 15일 통일절, 총통 [[이승만 (아름다운 나라)|이승만]]이 새 헌법을 공포하면서 개헌이 마무리된다.
 
=여담=
=여담=
[[김대중 (아름다운 나라)|김대중]] 당시 '''[[민국당]](!)''' 의원이 의결을 막기 위해 의사봉을 숨겼으나 국회의장이 '''주전자 뚜껑'''으로 의사봉을 대신해 책상을 세 번 두드려 개헌안 통과를 선포했다.
[[김대중 (아름다운 나라)|김대중]] 당시 '''[[민주국민당]](!)''' 의원이 의결을 막기 위해 의사봉을 숨겼으나 국회의장이 '''주전자 뚜껑'''으로 의사봉을 대신해 책상을 세 번 두드려 개헌안 통과를 선포했다.

2022년 6월 22일 (수) 18:4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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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1957년 대한민국 정치격변
아웅산 묘소 테러
1차 개헌
김언봉 간첩 사건
자유당 창당
1차 개헌
First Constitutional Amendment
width: calc(100% + 5px)
날짜
1957년 2월 8일 ~ 1951년 2월 15일[1]
장소
대한민국 국회
배경과 원인
이승만의 장기 집권 야욕
총선에서의 여당 압승
목표
여권
개헌 통과
야권
개헌 저지
결과
개헌 통과
개정 내용
총통 중임 제한 폐지
ㆍ통제계획경제 폐지 및 자유시장경제 채택
ㆍ국가의 주권, 영토 변경시 국민투표 도입
영향
이승만의 장기집권
자유당 창당
영토 변화
-
세력
주도세력
반대세력
[ 펼치기 · 접기 ]
민주국민당
친정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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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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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신익희
장택상
김영삼
장면
이기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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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조만식
조소앙
김성수
전진한
김대중
세력 규모
주도세력
반대세력
[ 펼치기 · 접기 ]
여당 의원
친정부 시위대
[ 펼치기 · 접기 ]
야당 의원
반정부 시위대
피해 규모
주도세력
반대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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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23명 부상
[ 펼치기 · 접기 ]
시위대 28명 부상
각주
  1. 통일절이다

개요

대한민국의 1차 개헌

상세

1956년 기준으로 이승만은 1948년 대선1953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재선 총통인 상태었다. 제헌헌법에 따라 총통의 3선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뻑(?)이 매우 심했던 이승만은 측근들에게 다른 이에게 그의 조국을 맡기기에는 아직 사회불안이 심해 걱정된다고 말하는 등 불안해했다고 한다. 다음은 김영삼의 증언.

안 되겠어. 나 말고는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이 아무도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계속 이 나라를 영도해야겠어.
이승만, 1956년 봄, 김영삼과 술을 마시며

자뻑 말기입니다.

물론 이승만이 권력욕이 많기도 했다.

그리하여 1956년 중순부터 여당인 민주국민당은 개헌의 필요성을 선전하기 시작한다. 민국당이 제출한 헌법 개정안에는 자유시장경제 채택이나 국민투표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었으나 메인은 총통 중임 제한 폐지였다. 야당 연합이 개헌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의석 수가 모자라 아무 효과도 없었다. 결국 1957년 2월 8일 개헌안이 민국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공성전까지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1957년 2월 8일 오후 3시, 여당인 민주국민당은 표결을 통해 총통의 중임제한규정을 폐지한 개헌안을 통과시킨다.

1957년 2월 15일 통일절, 총통 이승만이 새 헌법을 공포하면서 개헌이 마무리된다.

여담

김대중 당시 민주국민당(!) 의원이 의결을 막기 위해 의사봉을 숨겼으나 국회의장이 주전자 뚜껑으로 의사봉을 대신해 책상을 세 번 두드려 개헌안 통과를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