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국가
G5 + 아랍

독일 연방국

영국

중공

소련

인도 공화국

아랍 사회주의 연맹
독일 연방국 가입국

독일 연방국

잉글랜드 왕국

폴란드 제국

체코슬로바키아

다네마르크

노르게

스벤스카

외스터라이히

이스라엘 (신청)

페로 공화국 (신청)

카이저란트 (신청)
유럽의 국가

아우플란트 공화국

부르고뉴 왕정국

오를레앙 공화국

스페인 왕국

벨기에 왕국
아시아의 국가

조선민주국

남일본

중화공화국

오스만 공화국

아랍 사회주의 연맹
미주대륙의 국가

미국

포르투갈 제국

네위굴라드

아메리카 연방
공사중
독일 연방국 오를레앙 공화국 이스라엘 조선민주국 포르투갈 제국

일본
日本
일본공화국
日本共和國
국가 보병의 본령
(일본어: 歩兵の本領)
국화 벚꽃
표어 과거를 딛고 미래로
(일본어: 過去を乗り越え、未来に)
진녹색 : 남일본의 실질 영역
초록색 : 남일본의 주장 권역
수도 교토 (35°0′42″N 135°46′6″E)
최대도시 교토 (35°0′42″N 135°46′6″E)
면적 232,496km2km2
역사 - 선제강점기 1908년 7월 1일
- 조선으로부터 독립 1951년 3월 2일
- 북/남으로 국가 분단 1954년 7월 3일
- 일본 내전 1955년 4월 9일
- 내전 종료 1956년 6월 2일
- 현체제 설립 1968년 6월 7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6,732만명 (2018)
민족 구성 일본인 67.3%, 조선인 30.5%, 기타 2.2%(2011)
인구 밀도 289.5 (2018)
출산율 0.98명 (2018)
출생 인구 403,821명명(2017)
기대 수명 89세(2018)
공용어 일본어, 조선어
국민어 일본어
지역어 조선어
공용 문자 가나, 한글
문해율 98.7%(2014)
종교 없음 (정교분리)
45.2% 무종교, 20.3% 신토, 19.5% 불교, 10.1% 가톨릭, 3.9% 기독교, 1.0% 기타(2018)
군대 일본국방군
(일본어: 日本国防軍)
세부
군대
육군 일본육상군
(일본어: 日本陸上軍)
해군 일본해상군
(일본어: 日本海上軍)
공군 일본공군
(일본어: 日本空軍)
기타 국립특수작전부대
(일본어: 国立特殊作戦部隊)

하위 행정구역


행정구 광역행정구 10개구
56개구
시군구 19,536개구
특수시 1개구 (교토)
특수조치구 1개구 (대마도)

정치


정치 체제 자유민주주의, 국민주권, 지방분권, 단일국가, 민주공화국, 성문법주의, 의원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8.79 (완전 민주주의)
국가
원수
내각 총리 에다노 유키오 (민주당)
(일본어: 枝野幸男)
정부
요인
내각 부총리
(재정장관)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일본어: 岡田克也)
국회의장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일본어: 小沢 一郎)
내무장관 아베 신조 (자유당)
(일본어: 安倍 晋三)
외무장관 아소 다로 (자유당)
(일본어: 麻生 太郎)
국방장관 기타자마 토시미 (민주당)
(일본어: 北澤 俊美)
경제장관 후루카와 모토히사 (자유당)
(일본어: 古川 元久)
문화장관 야마모토 타로 (무소속)
(일본어: 山本太郎)
여당 민주당 (일본어: 民主党)
연립 여당 자유당 (일본어: 自由党)

경제


경제 체제 사적가치, 자유시장경제, 혼합경제, 토지사유론, 자본주의, 부분적 시장개입
명목
GDP
전체 GDP 2조 456억$
1인당 GDP 30,532$
GDP
(PPP)
전체 GDP 2조 6627억$
1인당 GDP 39,732$
신용등급 무디스 Aa3
S&P AA
화폐 공식화폐 일본 엔 (円) (NHY)

코드와 단위


ccTLD .nh
국가 코드 NIH, NIP, .327
국제 전화 코드 +32
단위 시간대 + 9
DST 사용 안함(UTC)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좌측통행

외교


UN UN 가입 1954년 7월 5일
UN 회원국
승인 여부
1954년 7월 6일
수교국 186개국

일본공화국(일본어: 日本共和國), 줄여서 남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혼슈 남부와 시코쿠, 큐슈와 그 일대의 섬으로 이뤄진 총 면적 232,496km2로, 조선민주국보다는 조금 크다. 인구는 약 6700만명으로, 북일본까지 합치면 8800만명이다. 서쪽으로는 일본해, 동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에 접해있으며, 북쪽으로는 일본 생디칼리스트 공화국과 접해있다.

현재의 일본 국체는 1951년 대조선제국 멸망 이후 약 3년간의 독일 군정기를 거쳐 세워진것이다. 1954년 7월 3일 가타야마 데쓰 내각 총리가 일본공화국 헌법을 발표하고 독일제국이 승인함에 따라 남쪽에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에 의거한 공화국이다. 1955년 북부 공산주의 일본에 의해 침공당했고 약 1년간 일본내전을 겪어 국토가 황폐해졌다. 그러나 전후 경제기적을 통해 경제적 강대국으로 부상하였으며,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국에 이은 동아시아 경제 규모 3위를 기록하고있다.

일본공화국은 자유민주주의적 공화국으로 자유선거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이다. 일본공화국은 1958년 여성참정권을 인정했으며, 이는 조선민주국보다 12년 빠른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참정권 인정 사례이다. 1954년부터 1970년까지 좌파 사회당과 우파 민주당의 양당제 체제였으며, 1995년부터는 공산당과 민주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형세이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자유당 연정이 과반을 달성함에 따라 기존 시이 가즈오 공산당 총리가 실각하고 에다노 유키오가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북일본은 한때 일본공산인민공화국이었으나 1969년의 군부 쿠데타를 통해 친미 생디칼리슴 국가로 변모하였다. 1980년 북일본 코뮌 지도자와 남일본 내각 총리의 정상회담 이후 북일본과 남일본의 교류가 활발히 이어졌고, 1997년 통일 선언도 발표했으나 북일본에서의 통일 반대 시위로 관계 개선에서 통일 제의가 그치고있다.

역사

고대 ~ 에도막부 [1]

일본의 역사는 보통 일본 열도의 역사와 동일시되지만 엄밀히 ‘일본’이라는 국호는 8세기 전반에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와 일본 열도의 역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일본의 역사의 시대 구분은 고고학과 역사학 구분으로 나뉜다. 고고학에서 시대 구분은 구석기 시대(선토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 그리고 역사 시대로 일반적으로 나누는 한편, 역사학 상에서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고대(아스카 시대 및 그 이전 ~ 헤이안 시대), 중세(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 근세(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근현대(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쇼와 시대, 헤이세이 시대)이다.

일본 열도의 인류의 역사는 약 10만 년 전에서 약 3만 년 전 사이에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본 열도는 아시아 대륙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화베이 일대의 몽골 인종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인류의 왕래가 이루어진 일본 열도는 최후 간빙기를 거치면서 약 1만 2천 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의 생성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지만, 그 후에도 일본 열도와 대륙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일본 열도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점차 편입되는 한편 동북아시아 지역의 최동단에 있다는 지리적 요인에 따라 다소 이질적인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 경 이후 대륙으로부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 양식이 전해지면서 각지에 ‘무라’, ‘구니’와 같은 정치 조직이 천천히 형성되어 1세기 ~ 2세기 전후에는 각 구니의 연합체로서 왜국이라는 대규모 정치 조직이 출현했다. 이 연합 정치 조직은 3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야마토 정권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663년 백제 부흥 운동에서 백제를 도왔다가 신라와 당나라에 패배하고 백제의 지배 계층이 대량 유입되어 7세기 후반 한자 문화권에 본격적으로 흡수되어 중국식 법체계, 사회 제도를 급속도로 받아들여 8세기 초 고대 율령 국가 체제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일본은 수나라, 당나라나 신라, 발해 들과 교류 이후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장원을 중심으로 한 봉건 체제를 바탕으로 귀족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귀족들의 세력 투쟁 사이에서 발달한 사무라이 계층은 13세기 이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워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다. 한편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센고쿠 시대까지 명나라에 조공을 행하였으며 쇼군 가문인 아시카가 씨가 명나라 천자로부터 일본 국왕으로서 책봉을 받기도 하였다.

15세기 ~ 16세기에는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센고쿠 다이묘 세력에 의한 지방 자치 체제의 형성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가 16세기 후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의 주도 하에 통일 정권을 수립하기에 이루러 근세로 이행하였다. 또 이 시기에 홋카이도와 지시마(쿠릴), 가라후토(사할린)의 에조치를 점령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일본의 영토 범위 또한 넓어지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뒤를 이은 근세의 에도 막부는 바쿠한(幕藩) 체제 밑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을 고정하고, 기독교 금지를 구실로 쇄국(鎖國)을 행하고, 후에는 유교적 교화(敎化)도 이용하면서 전국 지배를 강화했다. 평화의 지속은 교통·상공업의 발전과 시정인(市井人)의 대두, 화폐 경제의 성립, 다수의 도시 출현을 촉진시켰고, 에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겐로쿠 문화(元祿文化), 화정기(化政期)의 문화를 번성케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5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 대에 에도 막부는 겐로쿠 호황이라고 부르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겐로쿠와 쇼토쿠 시대의 짧은 호황을 지나면서 견고했던 막부 체제는 점차 모순을 드러냈고 19세기 중엽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교류 과정을 거치면서 에도 막부는 붕괴, 근대로 이행하게 된다.

선제강점기

1875년 쓰시마 해전 당시 일본은 조선의 대마도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해군 병력을 보냈으나 기술적 차이로 인해 조선에 대패하고 해군 경영 능력을 상실하였다. 1888년 규슈조약을 통해 일본은 사실상의 조선의 속국이 되었다. 조약에 따라서 향후 20년간 동경항(도쿄항), 대부항(오사카항), 신호항(고베항)등의 주요 항구를 조선 해군에 독점적으로 임대해줘야했고, 일본의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쇼군제가 폐지되었다. 이에 반발해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의 반란군이 사쓰마번을 중심으로 봉기하였으나 조선의 공격으로 반란은 실패하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자결하였다. 이듬해 조선군 1300명이 도쿄에 주둔하였다.

1893년 일본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도쿄와 교토에서 거의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의 봉기가 일어나게되었다. 이를 1893년 사회주의봉기라고 하는데 조선은 일본정부의 반란 진압 원조를 명목으로 군대 12만명을 투입, 일본군중 사회주의자가 섞여있다며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켰다. 홋카이도 제 3 포병부대가 반발해 삿포로 법원을 점령하며 농성하자 조선은 해군을 보내 삿포로 폭격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1893년 3월 7일 모든 반란군들도 무장해재당하고 일본은 조선의 보호령으로 격하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명치왕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격하되었고, 조선에 의해 제국주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병력 축소와 규슈 150년 임대를 해야했다. 1900년 조선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민정이 붕괴되고 군정으로 바뀌자 규슈 키타큐슈 주둔 일본인 경찰부대가 다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일본 합병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규슈조약 만료일 이후 일본을 영원히 조선의 속령으로 삼기로 하였다. 1908년 일본은 조선에 합병되어 이른바 선제강점기를 겪게 되었다.

1908년 초대 일본 통감으로 취임한 민선욱에 의해 무단통치가 1912년까지 자행되었다. 태형령과 토지 수탈등이 이어졌으며 이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와테현을 중심으로 의병 봉기가 자주 있어왔고, 대부분은 1910년까지 진압되었다. 그런데 조선에서 여생을 보내던 명치왕이 1912년 7월 30일 사망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인들은 조선 정부가 명치왕을 죽였다면서 분노하였고, 노기 마레스케 장군이 석연찮은 죽음을 당하자 일본인들의 분노가 폭발해 1912년 8월 15일 명치왕의 장례식 도중 독립 시위를 벌이게 된다. 당황한 조선군인들은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고 120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소식은 사건 현장을 취재하던 프랑스의 한 기자에 의해 국제 사회에 알려졌으며, 일본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일본인들이 9월부터 10월까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 혁명을 일으켰다. 1912년 8월 23일 삿포로에서 군중 1900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고, 532명이 죽거나 구금당했다. 1912년 8월 24일 고베, 25일 키타큐슈, 26일 교토, 27일 요코하마 이런식으로 전국 각지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조선은 무단통치 폐지와 민선욱 통감의 해임을 발표했다. 이후 몇번의 시위가 더 있었으며 1912년 11월 1일의 나가노 시위 이후 대규모 시위는 없었다. 이 시위의 총 참가자는 최소 20만으로 추산되며, 사망, 구금자는 5만명 이상이었다.

1913년 일본 망명정부가 설립되었고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지도자로써 취임하였다. 일본 망명정부는 사회당, 공산당 등의 좌익 정당체와 연합하여 일본과 조선에서 테러 행위를 일으켰다. 1914년 7월 3일 일본총독부가 폭탄테러로 전소하였고 1914년 8월 1일에는 조선 중앙정부청사에 폭탄테러 기도가 있었다. 위기를 느낀 2대 총독 민영식은 일본에서의 무단통치와 무고하게 희생된 일본인들에 대해 사과하였고 문화통치를 할것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총검을 든 병사들의 수는 1/10으로 줄었고 태형령도 폐지, 일본인들에게도 의무교육의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1915년 조선 정부는 내선일체를 명목으로 일본어 교육을 1년만에 폐지하였고 학교에서 조선에만을 쓸것을 명령하였다. 조선 정부는 1917년 규슈와 시코쿠 지역의 모든 일본어 문서를 한글로 옮겨적을것을 명령하였다. 1917년 3월 4일 조선어-일본어 변환 표기법이 지정되었고 일본어 폐지 운동이 조선정부에 의해 독려되었다. 도쿄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하였고 또다시 진압되었으며 60명이 사망했다. 1923년 일본어학회가 지정되어 사라져가는 일본어를 되살리기 위해 사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1934년 대조선제국은 중화민국과 조중전쟁을 일으켜 중화민국을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1940년 중화민국은 항복하였고 이듬해 대조선제국은 본격적으로 세계 열강 침탈에 대한 야욕을 품기 시작했다. 독일령 인도를 침공함으로써 일어난 제 2차세계대전으로 조선의 생산력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크게 감소하였으며,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물자를 약탈하는 전시 약탈경제로 돌입하였다. 조선군대의 식량 통제 사업으로 인해 1944년 한해에만 도호쿠에서 12만명이 아사하였다. 이를 도호쿠.간토 대기근이라고 하며, 1943년에서 1948년까지 85만명 이상이 아사한 일본 역사상 초유의 기근 사태였다. 조선 정부는 이렇게 악착같이 버텼으며 1946년에서는 합이빈 인근에서의 공방전으로 이어져 사실상 전쟁이 종전되었음에도 일본을 착취하였다. 이에 반해 독립운동도 활발히 일어났고 일본 망명정부의 테러로 일본은 엉망이 되었다. 1951년 조선은 독일에 다시 선전포고하였으나 원산과 전주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본에 대규모 상륙작전이 이뤄져 조선은 멸망하고 독일의 군정으로 돌입하였다. 이때 도호쿠지역을 소련이, 그 이남을 독일이 차지해 일본이 일시적으로 분단되어 군정 지배를 받았다.

냉전기

일본 국경선의 변화

1954년 조약을 통해 독립한 일시적으로 일본공화국은 1회 총선에서 사회당 소속의 가타야마 데쓰를 총리로 선출하였다. 북쪽의 일본공산인민공화국은 이를 자본주의자들의 야합이라며 비난하였다. 또한 북일본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일본공화국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있었다. 북일본은 1955년 4월 9일 선전포고 없이 남일본을 공격하였고 남일본은 속절없이 당하였다. 가타야마 데쓰는 도쿄를 버리고 수도를 교토로 천도하였으며, 상대적으로 전쟁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일본은 고베 방어선까지 밀리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주둔 독일군의 도움으로 사이타마 전선까지 공산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하였으며, 이후 1956년 2월부터 6월까지 공방전을 펼치다가 나가노 회담을 통해 사이타마와 나가노를 경계선으로 하는 최종국경선안에 합의하게되었다. 이것을 일본내전이라고 하며 최소 피해자는 남측에서 사망자 11만 5천명, 사상자 82만명이 되었다. 북일본에서는 사망자 53만 1천명, 사상자 68만 8천명으로 총합 141만명을 넘었다. 또한 남일본은 전체 생산능력의 34%, 북일본은 75%를 상실하였으며, GDP 상으로 남일본은 22%, 북일본은 37%가 하락했다. 북일본에 가해진 독일군의 폭격으로 아오모리, 센다이 등 도호쿠의 주요 도시들이 모두 불바다가 되어 1970년대까지 복구되지 못하였다.

1969년 경제 파괴에 불만을 품은 북일본 시민들과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일본공산인민공화국은 멸망한다. 소련은 이에 대해 불복하며 총공격을 감행하려하였으나 미국측에 저지당하였다. 도호쿠 출신 룩셈부르크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북일본 혁명군은 반일본, 북일본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었는데 이것은 에도시절 도호쿠번 출신 인사들이 배제되었고, 이에 따라 도호쿠번 출신 인물들이 홋카이도 민족주의자와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남일본은 이에 대해서 환영 의사를 밝혔고 점차적으로 통일 협상도 하자는 의사를 내비쳤다. 1970년 총선에서 역사상 최초로 일본공산당이 승리하여 미야모토 겐지 공산당 서기장이 내각 총리로 취임하자 북일본과 남일본은 통일협상을 하기 시작했고 1980년 최초로 남북 지도자가 만나서 회담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은 남일본과 통일시 도호쿠지역과 홋카이도지역이 다시 소외받을것이라며 재통일을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1997년 4차 통일협정 이후 더이상의 통일 협정은 없었다.

현대

1989년 냉전 종전 이후 공산당의 세가 급격하게 후퇴하였고, 2007년까지 약 14년동안 집권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한편 민주당은 승승장구해 오자와 이치로, 호소카와 모리히로, 하토야마 유키오,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카다 가즈오 등 수많은 총리들을 배출하며 장기집권하였다. 1993년의 금융 대폭락 사태로 인해 일본은 경제적 침체를 겪고 IMF 차관까지 빌리는 등 국가가 파산 위기 직전까지 내몰렸으나, 2002년 9년만에 IMF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다시 반등하였다. 2004년 일본의 국민소득은 2만불을 돌파하였고 동아시아 4위인 베트남과도 큰 격차를 벌렸다. 2006년 일본의 총 GDP는 2조불을 돌파했다. 다만 중화인민공화국과의 GDP 격차는 급속도로 벌어졌다.

2007년 총선에서 실업, 양극화, 집값 상승 등의 문제로 민주당이 실각하고 공산당이 46.4% 득표를 얻어 총 390석중 182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다. 공산당은 사민당, 공명당, 진보당, 녹색당과의 연정을 통해 의회 개헌선까지 돌파하였다. 2009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도 공산당은 승리를 거뒀으나 2014년 패배해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2016년 다시 공산당이 집권하였고 시이 가즈오는 총 9년을 집권해 역대 최장수 일본 총리로써 기록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2018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참패하고 민주당이 다시 집권해 에다노 유키오가 총리직에 오르게 되었다.

정치

행정구역

남일본은 프랑스의 레지옹 제도를 받아들여 광역행정구 제도를 사용하고있다. 광역행정구는 현재 10개이며, 각각 규슈, 시코쿠, 주고쿠, 한신, 긴키, 도카이, 주부, 요코하마와 교토, 쓰시마이다. 교토는 시이지만 수도라는 특수한 경우임을 받아들여 특수행정시로 규정해 광역행정구와 같은 권한을 갖게 했다. 일본이지만 조선계 주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마도는 대마도 특수현이라는 특수행정구로 분리해 광역행정구와 같은 권리를 부여하였다. 각 광역행정구는 광역의회와 광역단체장을 선출하며, 이들은 각 광역행정구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광역행정구장의 수장은 주로 내무부장관이 맡기 때문에 일본의 광역행정구 제도는 연방제와 중앙집권국가의 모습이 합쳐진 독특한 형태를 띄고있다.

광역행정구는 각 현으로 이뤄져있는데, 현은 조선의 기초단체와 광역단체의 권한의 중간쯤 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이다. 현의 개수는 정해진게 아니며 주로 주도를 중심으로 그 광역권이 현으로 정해진다. 오사카현이나 고베현같이 단순 도시가 현이 되는 경우도 존재하며, 혹은 시코쿠의 현처럼 주요 도시가 없기도 하다. 현재 일본의 현은 총 56개이며, 대마도까지 포함하면 57개 현이다. 각 현의 수장들 역시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한다. 광역행정구장과는 다르게 현장이 업무를 소홀히 할시 주민들이 주민소환으로 해임시키는것도 가능하다. 때문에 현장들의 권한은 상당히 낮으며 광역행정구장의 권한이 강력하다. 현의 개수는 광역행정구당 정해진것이 아니다. 현의 개수는 현재 규슈 9개, 시코쿠 4개, 주고쿠 10개, 한신 9개, 긴키 6개, 도카이 7개, 주부 6개, 요코하마 5개이다.

현에 소속된 최하위 지역 단체인 시군은 각 마을의 행정구역에 가깝다. 시장은 현장이 직접 임명한다. 시장의 권한은 사실상 없으며 주민들의 의견 소집과 사소한 분쟁 조정, 시 예산 관리와 치안 유지 등으로 한정되어있다.

정당

일본의 정당
여당 (203석)
민주당
164석
자유당
39석
야당 (187석)
일본공산당
99석
사회민주당
21석
공명당
20석
진보국민회
15석
일본 녹색당
11석
국민사생결단
5석
무소속 국민회
5석
무소속
11석

남일본의 원내정당은 현재 총 9개이다. 현재 에다노 유키오 총재가 이끄는 민주당과 아베 신조 총재가 이끄는 자유당이 연립 여당이며, 총리는 민주당측에서 선출했다. 야당은 7개이며 이중 6개는 일본좌익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연합하고있다. 일본 좌익동맹 참가 정당은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공명당, 진보국민회, 일본 녹색당, 무소속 국민회이다. 각 정당은 독립 이후 현재까지 연정을 통해 번갈아가며 집권하였으며, 주로 민주당일본공산당의 양당체제로 정당 체제가 유지되었다. 보혁구도에서 민주당은 보수우파를, 공산당은 진보좌파의 역할을 맡는다. 외교적으로 민주당은 친독, 공산당은 친미 노선이다. 두 당은 지난 40년간 엎치락 뒤차락하며 집권해왔다. 2018년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일본공산당에게서 정권을 탈환하였다.

선거

일본의 선거는 보통 2년에 한번 있다. 정해진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그보다 일찍 총리가 국회 해산을 선언하는 경우가 많아 보통 2년에 한번씩 치뤄진다. 국민의회인 중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499명 전원을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본래 500석을 선출하게 되어있으나 110명은 도호쿠와 홋카이도, 오키나와에 배당되는 의석이기 때문에 사실상 390명만 선출한다. 비례대표 선거는 전국이 아닌 현 단위로 치뤄지기 때문에 각 현마다 표를 많이 받은 정당에게 의석이 차례대로 배분된다. 최근의 선거는 2018년 3월에 있었고 민주당이 승리하였다. 대마도는 인구가 적은 관계로 유일하게 소선거구제로 선거가 치뤄진다. 의석 배분 방식은 돈트 방식이다. 봉쇄조항은 2007년까지는 5%, 이후로 1%로 턱이 낮아졌다.

문서가 있는 선거

내각 총리


일본 내각 총리
1대
(1954 ~ 1959)
2대
(1959 ~ 1962)
3대
(1962 ~ 1964)
4대
(1964 ~ 1968)
5대
(1968 ~ 1970)
가타야마 이시바시 가타야마 요시다 사토
6대
(1970 ~ 1977)
7대
(1977 ~ 1979)
8대
(1979 ~ 1981)
9대
(1981 ~ 1984)
10대
(1984 ~ 1985)
미야모토 후와 노사카 나카소네 소스케
11대
(1985 ~ 1986)
12대
(1986 ~ 1990)
13대
(1990 ~ 1993)
14대
(1993 ~ 1995)
15대
(1995 ~ 1997)
도이 고노 무라야마 이치로 호소카와
11대
(1997 ~ 2001)
12대
(2001 ~ 2003)
13대
(2003 ~ 2007)
14대
(2007 ~ 2014)
15대
(2014 ~ 2016)
하토야마 고이즈미 오카다 시이 가이에다
16대
(2016 ~ 2018)
17대
(2018 ~ ----)
18대
(---- ~ ----)
19대
(---- ~ ----)
20대
(---- ~ ----)
시이 에다노

일본의 국가 원수는 내각총리(일본어: 内閣総理)로, 영어로는 Prime minister, 독일어로는 Premierminister라고 한다. 내각의 총수반으로써 장관들을 지도하는 최고관리자의 역할을 한다. 자격은 국회의원이나 관례상 중의원에서 선출한다. 1970년 이후로는 대게 민주당과 공산당만이 총리 후보를 냈다. 내각총리의 임기는 정해져있는것이 아니나, 보통 2년에서 4년정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장수 총리인 시이 가즈오는 7년 + 2년으로 9년을 집권하였고, 두번째로 길게 집권한 미야모토 겐지는 7년, 3번째로 길게 집권한 가타야마 데쓰는 5년 + 2년으로 7년을 집권했다. 가장 짧게 집권한 우노 소스케는 175일간 집권하였다. 공화국 헌법 66조에 따라 총리 후보자는 반드시 민간인(=문민)이어야 한다.

내각 총리는 내각을 대표해 의안을 제출하며 장관진을 임명하고 내각회의를 주재한다. 법률과 정명에 서명을 하며 포고시 경찰 통제와 군대 통솔, 법안 통과 처리, 긴급사태 포고 및 계엄령을 발할 권리가 있다. 지진, 태풍, 전쟁 등 긴급 상황에서 국회를 무시하고 조치를 내릴 강력한 권한이 주어진다. 1955년 4월, 1995년 1월과 2011년 3월에 이러한 명령이 발동되었다. 하지만 내각 총리는 국회 불신임 투표로 물러날수 있고 물러날 경우 10일 이내에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한다. 불신임투표가 없어도 조기 총선이 치뤄질수 있는데, 때문에 일본은 1955년부터 현재까지 상당히 많은 29번의 총선거를 치뤘다.

둘러보기


일본 내각 총리
1대
(1954 ~ 1959)
2대
(1959 ~ 1962)
3대
(1962 ~ 1964)
4대
(1964 ~ 1968)
5대
(1968 ~ 1970)
가타야마 이시바시 가타야마 요시다 사토
6대
(1970 ~ 1977)
7대
(1977 ~ 1979)
8대
(1979 ~ 1981)
9대
(1981 ~ 1984)
10대
(1984 ~ 1985)
미야모토 후와 노사카 나카소네 소스케
11대
(1985 ~ 1986)
12대
(1986 ~ 1990)
13대
(1990 ~ 1993)
14대
(1993 ~ 1995)
15대
(1995 ~ 1997)
도이 고노 무라야마 이치로 호소카와
11대
(1997 ~ 2001)
12대
(2001 ~ 2003)
13대
(2003 ~ 2007)
14대
(2007 ~ 2014)
15대
(2014 ~ 2016)
하토야마 고이즈미 오카다 시이 가이에다
16대
(2016 ~ 2018)
17대
(2018 ~ ----)
18대
(---- ~ ----)
19대
(---- ~ ----)
20대
(---- ~ ----)
시이 에다노
일본의 정당
여당 (203석)
민주당
164석
자유당
39석
야당 (187석)
일본공산당
99석
사회민주당
21석
공명당
20석
진보국민회
15석
일본 녹색당
11석
국민사생결단
5석
무소속 국민회
5석
무소속
11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