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키야마 아키히로 (신질서의 황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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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제47회 중원선]]에서 자민당이 방류파의 지휘 아래 참패하자, 쓰키야마는 총선 직후 2008년 5월 총재 선거에서 총재에 오르며 자민당의 수습을 맡았다. 간 나오토 사회당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쓰키야마는 총리 자리에 다가갔으며, 2009년 9월 [[사회당 내란 사태]]로 쐐기가 박혔다.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제47회 중원선]]에서 자민당이 방류파의 지휘 아래 참패하자, 쓰키야마는 총선 직후 2008년 5월 총재 선거에서 총재에 오르며 자민당의 수습을 맡았다. 간 나오토 사회당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쓰키야마는 총리 자리에 다가갔으며, 2009년 9월 [[사회당 내란 사태]]로 쐐기가 박혔다.


내각의 붕괴와 천황 친정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치러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제48회 중원선]]에서 쓰키야마의 지휘아래 자민당은 공명당과 합해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하여 2009년 12월 9일, 천황 친정 종료와 함께 아키히토 덴노에게 임명장을 받아 제80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다. 3번째 조센계 총리기도 했다.
내각의 붕괴와 천황 친정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치러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제48회 중원선]]에서 쓰키야마의 지휘아래 자민당은 공명당과 합해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하여 2009년 12월 9일, 천황 친정 종료와 함께 아키히토 덴노에게 임명장을 받아 제80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다. 2번째 조센계 총리기도 했다.
=== 내각총리대신 ===
=== 내각총리대신 ===
=== 퇴임 이후 ===
=== 퇴임 이후 ===

2024년 4월 17일 (수) 22:18 판

Destiny634, 2024 - | CC-0



대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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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80대 내각총리대신
쓰키야마 아키히로
月山明博 | Akihiro Tsukiyama
출생 1941년 12월 19일 (82세)
일본 오사카부 나카카와치군 가미무라 후쿠이도쵸우3초메 52[1]
(현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미나미정3초메 4-15)
국적 일본
현직 대일본제국 중의원
자유민주당 일지회 고문
재임 기간 제80대 내각총리대신
2009년 12월 9일 ~ 2012년 11월 12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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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쓰키야마 마고고로, 어머니 쓰키야마 히모토
배우자 쓰키야마 쥰교쿠
자녀 장남 쓰키야마 토키카타
장녀 쓰키야마 슈겐
신체 175cm, 70kg, B형
종교 개신교
학력 셋츠 소학교 (졸업)

토요노 중학교 (졸업)

미시마 고등학교 (졸업)

도쿄제국대학 경영학부 (경영학 / 학사)

병역 면제 기관지 확장증
의원 선수 12 (중)
의원 대수 41, 42, 43,44, 45, 46, 47 48, 48, 49, 50, 51, 52
소속 정당
파벌 일지회
약력

개요

일본의 정치인이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이후에도 중의원 직은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상세

쓰키야마 아키히로는 자민당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원로 정치인 중 하나다. 일지회 내에서도 쓰키야마파라는 단독 파벌을 이끌고 있으며, 여기에는 현 자민당 간사장이자 차기 총리 주자 야스다 데쓰슈도 속해 있다. 즉 야스다가 쓰키야마의 측근이다.

일생

1941년 12월 19일, 그는 조센계인 아버지 쓰키야마 마고고로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애초부터 일본 열도에서 태어났기에 조센 이름은 없고 쓰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가 태어날 때부터의 이름이었다.

1948년 셋츠 소학교에 입학하고, 1954년 토요노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유년기는 대체로 모두 오사카에서 보냈다. 쓰키야마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했고 사교성과 수완이 좋아 조센인으로서 받는 편견에 굴하지 않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1957년부터 미시마 고등학교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1959년, 쓰키야마는 도쿄제국대학 경영학부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1학년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스스로 사업가가 될 꿈을 꿨다.

1961년엔 병역판정검사를 받았으나 당시 널널하던 심사 기준 때문에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명으로 면제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학업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1963년에 반정부 시위인 쇼와 38년 무산투쟁이 벌어지자 이에 호응, 도쿄에서 후배 대학생들을 인솔하고 가두행진을 하다가 체포됐으나,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 마고고로가 경찰을 설득한데다 4학년임을 감안되어 제적을 면하고 정학으로 끝났다.

1964년 복학하고 1965년에 도쿄제대를 졸업했다. 이때부터 쓰키야마는 운동권 세력과 선을 긋고 우파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여전히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하여 "합리적인 우파" 사상을 정립했다는 것이 본인의 회고이다.

1966년, 25세에 도쿄대 경영학부 학력에 힘입어서 미쓰비시에 입사하였다. 당시 사상범에 대한 규제가 있었으나 쓰키야마는 아버지 덕에 처벌을 면하여 전과가 없었기에 입사할수 있었다.

미쓰비시에선 빠르게 승진하였고, 이때 그는 본인 부모의 고향인 반도를 자주 오갔다. 특히 아버지의 본가가 위치한 게이슈현에는 한번씩 살기도 했고, 업무상 이유로 게이조도 자주 갔다 한다.

1984년엔 미쓰비시건설 게이조 지부 사장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성공한 사업가의 길을 걸은 그는 1991년 41회 중원선을 앞두고 일본자유당가네무라 슌에이에게 조센계로서 영입 제안을 받았으며, 그해 도쿄도 제11구에 출마하였다. 당시 조센계로서 열도 지역에 출마하는 몇 안되는 후보 중 하나였다. 특히 보수계열 정당에서는 더욱 이례적이었다.

그는 내리 당선되며 중진으로서 입지를 쌓았고, 보수본류 중에서도 조센계 의원들의 파벌인 일지회에 속했다. 1997년 보수합동으로 자민당에 속하게 되었다.

제47회 중원선에서 자민당이 방류파의 지휘 아래 참패하자, 쓰키야마는 총선 직후 2008년 5월 총재 선거에서 총재에 오르며 자민당의 수습을 맡았다. 간 나오토 사회당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쓰키야마는 총리 자리에 다가갔으며, 2009년 9월 사회당 내란 사태로 쐐기가 박혔다.

내각의 붕괴와 천황 친정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치러진 제48회 중원선에서 쓰키야마의 지휘아래 자민당은 공명당과 합해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하여 2009년 12월 9일, 천황 친정 종료와 함께 아키히토 덴노에게 임명장을 받아 제80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다. 2번째 조센계 총리기도 했다.

내각총리대신

퇴임 이후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일본자유당 1991 - 1997 정계 입문
1997 - 현재 합당
  1. 가미촌은 1955년에 오사카시에 통합되었고, 동시에 후쿠이도(福井戶)정은 가미후쿠이도(加美福井戶)정으로 바뀌었다. 이후 1974년에 현재의 가미미나미(加美南)정으로 통폐합되었다. 지금 이름인 가미미나미(加美南)정과 혼동되어 존재했던 적이 없는 가미미나미 후쿠이도(加美南福井戸)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