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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일본 공동통치령
大韓-日本 共同統治領
국기 국장
홍익인간 보국안민
(弘益人間 輔國安民)
이중제국 성립 이전 대아대전 이후
대한제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일본제국 일본국
위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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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1월 27일 ~ 1954년 2월 18일
상징
국가
조국찬가
국화
벛꽃
황실 상징
이화문 (황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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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연합제국 결성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 참전
1948년 융희황제 이척 피격

지리
수도
한성 (대한제국)
교토 (일본)
동래부 (사실상 행정수도)
최대도시
도쿄 광역권
면적
608,847km²
위치
지구
한반도와 일본 열도, 서태평양 등
접경국
트란스아무르 정부, 만주 자치령, 환상향
인문환경
총 인구
약 1억 3천만 명
공용어
한국어, 일본어
공용 문자
한글, 가나, 한자
민족
한국인 40%
일본인 52%
중국인 5%
그 외 3%
국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종교 분포
유교 23%, 불교 21%, 기독교 18%
신토 10%, 그 외 28%
군대
대한제국 육군 53만 명
해군 연합함대 10만 명
대일본제국 해군 육전대 32만 명
정치
정치 체제
사회자유주의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연방제, 양원제
국가 원수
융희황제 이척
행정 수반
김두한 총리
여당
신민당
경제
경제 체제
국가주도 자본주의 계획경제
통화
제국 원(円)


개요

만세일계 상제 폐하의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의 제국의회를 대표하는 연합 공동통치령 (大韓帝國-大日本帝國 聯合 共同統治領)

1902년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의 황실이 통합됨에 따라 결성된 동아시아의 유일한 강대국. 보통 한일 제국이라 부른다.

1차 세계대전이 핵전쟁으로 인해 무승부로 끝나고, 유럽의 전통적인 강대국들이 와칸다 제국과의 식민 전쟁으로 몰락하게 되었음에 따라 미합중국과 함께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후 월면전쟁과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소속으로 참전해 치열한 전투를 펼쳤으며 아시아 지역에서의 확고한 패권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의 위협이 줄어듬에 따라 체제의 모순이 가시화되었으며 현재는 2차 대전과 그 이전과 같은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기는 켜녕 내부 분란과 분열의 징조가 보이는 불안정한 정국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군 조직인 육군과 해군의 대립이 심한 편인데,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육군 파벌 하나회와 일본국을 대표하는 해군 파벌 황도파의 대립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이다.

1952년 기준 한반도와 일본 열도, 대만과 필리핀 등 동아시아 권역의 영토를 다수 보유중이다. 하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동등한 관계에만 집착한 나머지 해외의 식민지인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제국의 해외 식민지에서 인권향상과 동등권 주장 등으로 인한 소요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역사


대한제국

1392년 8월 5일에 태조 '무신' 이성계가 건국한 나라인 조선의 후신이다. 1850년 고조 이환이 백두산에서 환구단을 쌓아 환 제국과 명 제국의 뒤를 이은 적법한 동아시아의 유일한 천자국을 자처하며 건원칭제를 감행하였다. 1952년 기준 융희황제 이척이 대한제국의 3대 황제로서 통치하고 있다.

개화

1592년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열도를 통일하기 직전, 노부나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다이묘들이 폭주하며 조선을 공격하며 벌어진 '임진왜변'으로 인하여 잠시 조선과 일본사이의 교류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조선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전혀 없었고, 1603년 오다 막부가 수립되면서 조선에 통신사를 파견하며 교류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나 이미 임진왜변으로 조선은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일본 측 통신사는 문전박대를 받으며 도로 추방된다. 이로 인해 조-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1694년 청나라에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중화 패권주의 시대가 열린다. 청나라는 주변 조공국들의 국력이 체제를 위협할 만큼 신장되는 것을 매우 우려하여 주요 산업 기술들에 대해 모조리 금수조치를 취해버렸고, 청나라 함대가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오는 길목을 장악하면서 유럽산 문물이 주변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그로 인해 조선과 일본 내부에서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고, 양국은 점차 청나라 패권을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나라의 남아시아 장악과 인도양 진출로 이룩한 체제는 신흥 강국 미국의 통상 요구로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1798년 일본으로 미 군함이 개항을 요구하자 거절한 사건을 시작으로 수 백년간 끊겼던 조-일 양국의 관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1823년 조일 양국이 서로 협력하여 청나라의 산업 기계 대신 미국의 선진 문물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으며 수 백년간 정체되었던 기술이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 조선이 태평양을 통해 양이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청 도광제는 1830년 "상국의 윤허도 없이 외국과 함부로 통상을 하였다"라는 명목으로 조선에게 사신단을 지속적으로 보내 압박을 하였으며 결국 1833년 겨울에 최종적으로 서양과의 모든 교역을 끊으라는 청의 최후통첩이 조선에게 전달되었다. 당시 조선국의 23대 국왕인 순조는 더 이상 오랑캐들의 미개한 행위를 참을 수 없었으며 약해진 청나라와 점점 강력해진 조선국의 힘을 바탕으로 그들의 최후통첩을 거절하였다. 이에 분노한 도광제는 25만의 군대를 동원해 1834년 조선을 공격하였으나 견고하게 건설된 압록-두만 참호선과 선진화된 교리, 그리고 기존의 무기 체계가 아닌 서양에서 들어온 신식 무기를 통해 청군을 격퇴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대한제국 선포

이 전쟁을 통하여 조선국은 자주독립과 청나라와의 동등권을 얻었으며 조선국 국왕은 대조선국 대군주라는 칭호로 변하였다. 그러나 전후에 조선 또한 막대한 희생이 있었는데 기존에 축적했던 무기와 국력이 1차 조청전쟁에서 4할가량 소진되었으며 이것을 복구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때 오다 막부가 당시까지만 해도 비슷한 국력이었던 조선을 앞서고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1836년 순조가 사망하였으며 세자였던 이영이 즉위를 하였다. 그의 치세동안에는 전후에 혼란스러웠던 국내를 진정시키는데 총력을 다하였다. 이때 '김좌근' 같은 충신의 도움으로 부정부패와 구악을 일소하는데 성공하였다.

1849년 7월 조선의 24대 국왕이 사망하였다. 세자였던 이환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으며 묘호는 '문조'로 결정되었다. 조부가 이룩하고 부친이 닦아놓은 조선국을 이은 25대 국왕인 이환은 1850년 1월 신하들과 유생, 그리고 민중들의 요구에 따라 백두산에서 연호를 광무로 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도광제는 길길이 날뛰며 전쟁을 선포하였으나 선포 후 한달만에 급사, 지휘부가 마비된 청군을 압도적으로 섬멸을 하여 간도와 대련 등 남만주의 주요 영토를 한국에게 넘겨주는 '심양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광무황제는 수십년간 대한제국을 통치하며 '새마을 운동'같은 개혁운동으로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한일제국 혼혈 황자인 이척이 1902년 대한제국의 2대 황제 순효황제 이철과 일본 메이지 덴노에게서 제관을 물려받아 이중제국이 수립되었다.

일본국

기원전 660년 2월 11일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창조한 일본열도에 신의 후손인 진무가 건국한 국가. 이후에 수천년간 분열과 통합의 역사를 겪다 1590년 오다 막부를 중심으로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국가원수는 덴노이며 현 덴노는 제123대 류키덴노(隆熙天皇) 타쿠히토(拓仁)이지만, 남태평양에 1902년 제국통합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을 중심으로 제 124대 덴노라 자칭하는 히로히토의 '대일본제국'이 존재한다.


개화

오다 막부 또한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는 그 격변의 시기동안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으니 오다 막부는 조선과는 달리 해군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848년 대부분의 도시지역 근대화를 이루어냈으며 1850년 조선에서의 전쟁이 끝나자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상호간의 무역을 시작하였다. 이후에 무난무난하게 흘러가나 싶었으나 청나라의 국력이 약화된 것이 분명시된 이후에 영국, 프랑스 등 구주열강들이 지속적으로 동양을 노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눈여겨보던 한-일 양국은 결정적으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 합병을 기점으로 양국간의 공조가 시작되었다.

1881년 동방에서의 평화를 위하여 양국 황족이 국혼을 치루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결국 1893년 대한제국 광무황제 이환의 손자인 개성공 이왕과 일본 시게코 황녀의 국혼이 이루어졌다. 1894년 둘 사이에서의 황자가 태어났으며 휘를 척으로 하였으니 그가 훗날의 순종이다.


통합

한편 연해주 합병 이후에 계속해서 대립각을 세우던 한일과 러시아는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하여 양국간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만주에서의 이권다툼에서 끝을 다하였으니 결국 의화단의 난이 끝난지 1년도 안된 1897년 한일 연합군과 러시아 제국군이 만주에서 격돌하였다. 이 전쟁은 당연히 서양열강인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극동군의 부실한 군대와 영국-러시아 간의 그레이트 게임, 또한 철저하게 준비했던 한일과는 달리 러시아 제국이 방심했던 점 등 다양한 이유가 스노우볼처럼 굴러가 결국 1898년 미합중국의 중재 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여 만주에서의 한일의 이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약속받았다.

이후 대한제국과 일본 양국은 전쟁에서의 동맹, 서양 열강들의 위기와 공산주의자들의 위협 등 여러가지 이유와 결정적으로 황손 이척의 탄생으로 불안정한 정세에 버티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이에 양국 정부는 협의 끝에 1902년 대한제국 외무대신 김인택이 정식으로 대일본제국 메이지 덴노에게 양국의 동군연합을 통한 연방결성을 제의하였으며 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대한-일본 제국이 수립되었다. 당시 대한제국의 2대 황제였던 순효황제 이철은 흔쾌히 퇴위를 하였으며 메이지 덴노 또한 악화된 건강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일본국 제위 계승 선진화법을 선포한 이후 즉시 퇴위를 하여 이척이 황위를 이었다. 연호는 융희였다.

통합 이후

대한제국의 외무대진 김인택이 1902년에 제안한 동군연합이 받아들여진 당장에는 매우 큰 혼란이 닥쳤었다. 황실 내부에서는 여계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파벌들이 메이지 덴노의 아들인 요시히토의 일가를 따라서 남태평양으로 이주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큰 양국은 아니메-사피엔스 계열 인류의 시민권 문제와 환상향을 대하는 태도 등으로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 제국은 언제 무너지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타파해주는 외국의 위기가 나왔으니..


제 1차 세계대전

1914년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핵배낭 테러사건'은 대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당시 독일제국의 황제인 빌헬름 '아포칼립스' 2세와 오-헝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이로 인해 연쇄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일제국은 초반에는 중립을 자처하며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후 중화제국의 위안스카이의 동맹국 가입 선포, 영-한일 동맹으로 압박을 가해오는 영국과 제국 내부에서의 식민지 확대 야욕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최종적으로 융희황제의 승인 하에 협상국의 편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한들 유럽 전선에는 많은 도움은 주지 않았고 그러할 필요도 없었다. 겨우 동방 식민지를 자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정도의 성과만으로도 저들은 만족하였다. 가장 중요한 전선은 대 중국 전선이었다. 중화제국은 한일제국의 참전 이래로 크게 혼란스러워 했지만 곧 전투태서를 정비하고 전선을 구축하였다. 한일제국은 전선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무리로 판단하여 톈진, 칭다오 등의 도시로 상륙해 제2의 전선과 함께 공략하는 것을 택하였다. 결국 1917년 중화제국은 중화민국의 쑨원이 난징에 입성하면서 종말을 맞이하였다. 이제 한일제국은 협상국이 독일을 끝내는 것만 남았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1차대전의 그 끝은 핵으로 인한 공멸이었다. 누가 누른지 모른 핵버튼은 유럽의 모든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 주었다. 핵겨울과 전후 사회의 혼란은 극으로 달했으며 유럽은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동방의 한일제국은 핵으로 인한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았기에 이 틈을 노려 유럽시장을 장악하였다.

전간기

전쟁이 폐허 속에서 승자 없이 끝났으나 직접적인 핵테러를 받은 유럽과는 달리 한일제국은 저 멀리 동방에 위치하였으므로 상대적인 피해가 덜하였다. 이로 인해서 구 열강들의 힘이 사라진 공백상태에서 미합중국과 함께 경제/군사/외교적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전후 복구에 충실하면서 여러 거대 기업들이 성장을 하였으며 이 와중에 '롯데'가 한일 이중제국에서 재계순위 2위까지 올라가는 등 큰 성장을 했었다. 미합중국과 함께 '광란의 20년대'를 보내면서 단군 이래 최 호황기를 누리기 시작하였다. 모든 경제지표는 희망적이었고 제국의 미래는 언제까지나 밝아보였다. 1929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1929년 주식 대폭락이 이루어지면서 '검은 월요일'의 시작을 알렸다. 미국 주식시장과 한일제국 주식시장의 동시 붕괴는 전 세계적인 대공황을 불러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겨우 복구하고 있었던 세계는 또 다시 암흑기로 빠져들게 되었으며 이는 독일의 나치와 프랑스의 촉진주의 등 여러 불손한 사상이 돌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또한 이를 시작으로 융희황제 이래 통합되었던 제국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되었다.

1934년 대한-일본 제국의 총리가 새로 선출되었다. 무능한 내각을 거부하고 새로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하는 사업가 출신 정치인 "이회영"은 당시 희망을 버리기 시작하던 이중제국 시민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를 총리로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그의 정책은 효과를 보았다. 대공황에서 자유시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안 그는 국가 주도 하에 각종 토목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때 이중제국 내 낙후지역들이 되살아나고 경기가 어느정도 회복되기 시작하였으며 총리는 큰 인기를 몰고 있었으며 "다시 한번 제국을 위대하게" 라는 구호 하에 국가를 재건하였다. 그리고 1941년, 월인이 지구를 침공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월면전쟁

월인의 침공은 SCP재단으로부터 엄중히 경고되어 왔다. 그들은 인류의 적성세력이며 최근 '불온한' 동태를 보이고 있다 하였다. 이 사실은 이전에도 이중제국을 비롯한 각국의 수뇌부들에게 전달되었으나, 이러한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나머지 지구 국가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방심의 대가는 참혹하였다. 1941년 6월 16일 런던에 가해진 폭격이 월면전쟁의 신호탄을 쏘았다. 인커전 현상, 월인들의 공습이 이뤄졌다. 많은 이들이 피를 보았고, 예상치 못한 공격에 아이, 어른,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월면전쟁 발발 1달 후인 7월, 지구 연합군은 월인들에 대한 반격 작전인 '월영 작전'을 입안하였고 8월 11일, 연합군은 작전을 개시하였다.

첫날에 3만명씩 죽어나갔던 월영 작전은 그 피해가 막심하자 '이만 물러서자' 라는 의견이 나왔으나 끝까지 우직하게 밀어붙인 끝에 8월 23일 달 교두보 확보를 시작으로 월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9월 5일 레이센 U. 이나바가 연합국의 도움으로 해방된 달토끼들의 국가인 달토끼 연맹을 수립하며 달의 백성 내부에서 파르티잔 활동이 거세졌으며, 결정적으로 달의 사자 지휘관 와타츠키노 토요히메가 전사함으로써 월인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게 되었다.

결국 해가 지나고 1942년 2월 16일, 피해를 감당할 수 없는 달의 백성이 지구 연합군의 휴전 제의에 응하면서 월면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종전되었다.

유럽 전선

1942년 피비린내 났던 월면전쟁이 일단락되자 유럽은 다시금 소강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많은 피를 본 프랑스와 영국 정부는 재건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틈을 노리고 아델라인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쾰른 방송국 사건"을 조작하여 저지대를 공격하였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0여년이 지난 해에 두번째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이 유럽에서 불씨를 지피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지구 전역에서 연쇄적으로 그 불씨를 받으면서 터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봉천정부가 국민당을 공격하면서 화북전선이 펼쳐졌고,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6일만에 점령, 영국 또한 손에 넣으면서 독일은 파죽지세로 유럽 각지를 손에 넣어갔다. 소비에트 연방은 겨울전쟁을 시작하면서 핀란드를 잡아먹어갔다.

많은 이들에게 어두운 시간이 다가왔다. 독일이 그렇게 유럽에서의 패권을 공고히 하면서 두번째 세계대전은 신질서의 수립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유럽 정복의 꿈을 꾸던 히틀러는 소련을 공격하였다.

이렇게 수년간의 전쟁을 치루면서 히틀러와 독일은 몰락의 길로 향해갔고, 결국 미국의 궤도폭격으로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현대

1948년 8월 15일, 융희황제의 부친인 대친왕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행사를 진행하던 와중 정체불명의 암살자가 융희황제를 저격하였다. 황제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생명은 온전하였다. 그러나 큰 피해를 입은 황제는 치료를 위해 동면관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제국 통합의 상징이였던 이가 저격당한 것은 한일 양국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양 제국의 국민들은 서로 범인이라고 지목하며 갈등의 골만 깊게 하였으며 통합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제국은 황태자를 중심으로 하는 섭정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황태자는 의도적으로 대한제국을 우대하는 정책을 피면서 일본국 국민에게 불만을 심어주고 있고 제국 내부에서는 혐오범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제국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미래가 그다지 밝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치

대한제국 같은 경우에는 500여년간 왕이라는 절대군주 체제가 이어졌던 상황이라서 총리가 있다 한들 황제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반대로 일본같은 경우에는 천황의 권력이 약한 상태라 황제-천황의 권력이 강하지는 않다.

정부는 총리를 중심으로 한국 통감과 일본 통감이 내각의 중심이 된다. 이중제국의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제국 선거'에서 최다표를 얻는 이가 총리가 되며 한국 통감과 일본 통감은 각각 한국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선거에서 과반을 얻는 이가 통감이 된다. 만약 아무도 과반을 얻지 못하였으면 투표 3위까지의 후보가 2차 결선에 진출, 최다 득표자가 통감이 된다.

지역마다 다른 정치적 성향을 띄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라-경상-충청 등 하삼도는 주로 신자유주의 성향을 띄며 경기-강원권은 접전, 그 외 지역은 보수주의적 성향을 띈다. 일본같은 경우에는 일부 도심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점진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자유 보수주의적 성향을 띈다.

1952년 현재는 융희황제 이척이 1948년 피격사건으로 황태자와 총리들을 중심으로 정치체제가 굴러가는 섭정체제가 운영되고 있다.

출신인물

정계

  • 융희황제 이척 - 1902년 대한제국 태황과 일본제국 천황자리에 즉위하여 대한-일본 이중제국을 결성하였다. 1948년 테러범에게 중성자탄을 피격받아 동면관에서 치유중이다.
  • 황태자 이강/츠요히토 (剛仁)
  • 황태손 이융/다카히토 (隆仁)
  • 황손 이예/요이히토 (睿仁)
  • 영친왕 이은
  • 광무황제 이환 - 조선의 25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로 현 조선인들에게 '국부'로 칭송받는 군주이다.
  • 순효황제 이철
  • 효영태자 이진
  • 개성공 이왕 - 대한제국의 추존 대원왕이자 대한-일본 이중제국의 국부. 융희황제 이척의 친부이다. 한일 이중제국의 전쟁영웅으로 심판의 날 때 전사한 유일한 동양 황족이다.
  • 경은공 이재성 - 은언군의 아들 풍계군의 손자.
  • 의안공 이우용 - 경은공의 차남이자 은언궁가의 계승자.
  • 메이지 덴노 - 일본국 122대 천황.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덴노로 대한제국과의 동군연합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시게코 내친왕 일본제국의 황녀이자 대한제국의 공작 부인. 융희황제 이척의 친모.
  • 요시히토 - 메이지 덴노의 3남.
  • 히로히토 - 일본국 122대 천황 메이지 덴노의 손자.
  • 야스히토 - 히로히토의 동생.
  • 김두한 - 이중제국의 現 총리. 유력 후보 가타야마 데쓰와 말도 안되는 접전을 벌인 끝에 수 천표도 안되는 표를 앞세워 당선되어 큰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 가타야마 데쓰 - 이중제국 前 총리이자 일본 입헌민주당의 총수로 1950년 연임을 시도하나 혜성같이 떠오른 신인 정치인 김두한에게 어이없이 패배한다.
  • 이회영 - 이중제국의 전 총리. 검은 월요일 이후 폭락한 제국 경제를 끌어올렸으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가타야마 데쓰에게 총리직을 유임한다.
  • 화이트 타이거 - 이중제국의 정보기관 제국익문정보사를 이끌고 있는 의문의 인물. '킬 구'라는 이명으로도 불리우며 국제 히어로 협회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 이정재 - 대한제국 前 검찰총장으로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좌천되었다.
  • 박헌영 - 평양 지역의 반정부 원외정당 조선노동당을 이끌고 있는 요주의 인물.
  • 박재상 - 동부 해안지대 강남을 지배하고 있는 유명 연예인.
  • 고노에 후미마로 - 前 일본국 법무대신, 現 대한-일본 이중제국 일본 통감부 통감.
  • C-8 경 - 그림자 속에서 네오 서울을 지배하고 있는 의문의 인물. 재벌과의 연줄이 많다.
  • 이범석 - 대한 파시스트 협회를 이끌고 있는 대한제국의 정치인.
  • 이준 - 광무황제의 고손. 현재 낙성고 재학중.
  • 미와 와사부로 - 일본국의 검찰으로 의문의 대마도 해저터널 총격 사건을 두고 한국 검찰과 내사에 착수한다.
  • 지옥의 후부키 - 국제 히어로 협회 멤버. 히어로 협회에서 인원수가 가장 많은 파벌인 "후부키 그룹"을 이끌고 있다.
  • 김성주 - 대한공산주의자. 이태원에서 공산주의풍의 게이 클럽 '주체 플렉스'를 운영하고 있다.


군부

  • 송호성 국방부 장관 - 現 이중제국 국방부 장관으로 임기 중이다.
  • 무다구치 렌야 원수 - 하나회 소속 군인이며 이례적으로 일본계 출신으로 육군 원수에 오른 몇 안되는 군인이다. 1951년 퇴역.
  • 장도영 육군 수도군단장
  • 김석원 육군 9군단장
  • 신현준 소장 - 前 해병대사령관으로 무리한 해병대 창설 추진으로 해군 육전대와의 분쟁이 격화되어 직위해제 조치됨.
  • 최용건 준장
  • 김종원 대령
  • 김종필 대령
  • 송하나 중령 - 이중제국의 최연소 육군 기갑장교로 임관, 기동기갑작전사의 참모장으로 부임하였다.
  • 전두환 중령 - 제1공수특전단 제1특전대대장으로 근무중. 하나회의 주요 파벌로 급부상중인 박정희 계열 소속이다.
  • 이응준
  • 사가라 소스케
  • 윤의철

연합함대


  • 김대중 해군 제7기동전단장 - 해안경비대의 모체인 국군 해상방위대 지휘관으로 2차 세계대전 중반에 제3기동전단장으로 부임하였음.
  • 도조 히데키 - 前 해군 육전대 사령관으로 1952년 대만 분리주의 폭탄 테러에 의해 사망.
  • 히나타 나츠미 - 한국 이름은 '강한별'. 이중제국 왕립 공군 항공우주사령부에 근무 중.
  • 도미나가 교지 - 前 제국 합동공군 참모장으로 월면전쟁에 참전했으며 월인의 폭격으로 지휘부가 통째로 휘말려 전사하였다. 영웅적인 행보와 수 많은 공로로 사후 일등무궁국화대훈장을 추서받고 치요다구 소재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 옅은 초록색은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