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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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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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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몽골[1] 몽강 투바[1] 동투르키스탄[1]
티베트 중국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2] 마카오 홍콩
  1. 1.0 1.1 1.2 중앙아시아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함.
  2. 미승인국
틀:중앙아시아의 국가

극동집단안보기구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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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책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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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골국
大蒙古國 | 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ᠤᠶᠯᠤᠰ
부여의 책봉국 (1924년 ~ )
국기 국장
ᠮᠥᠨᠬᠢᠶᠨ ᠡᠡᠨᠲ ᠭᠦᠷᠡᠨ
영원의 제국
상징물
국가 임금님의 치세 (황실 찬가)
평원의 나라, 민족의 영토 (비공식 국가)
국수 조랑말
역사
청나라로부터 독립 1911년 12월 29일
대몽골국 성립 1924년 11월 26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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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후레 (ᠬᠥ᠊᠊ᠷ᠊ᠢ᠊᠊ᠢ᠎ᠠ)
북위 47° 55′ 00″ 동경 106° 55′ 00″
최대 도시
면적 1,564,116km2
접경국 부여
투바
몽강국
중소공
러시아
동투르키스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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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463만 6,200명
인구 밀도 2.96명/km2
민족 구성 몽골족 90.1%
만주족 3.3%
오이라트족 2.1%
한족 1.1%
위구르족 1.0%
기타 2.4%
출산율 1.70명 (2021년)
기대수명 76세 (2021년)
공용어 몽골어
지역어 부랴트어, 오이라트어, 조선어, 만주어, 중국어, 러시아어, 위구르어
공용문자 몽골 문자, 키릴 문자
종교 국교 티베트 불교
분포 불교 82.2%
이슬람교 6.4%
기타 2.6%
무종교 8.8%
군대 몽골방위군
주둔군 부여황제군, 러시아 연방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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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일당우위 정당제, 제한적 민주주의, 양원제, 봉건제
민주주의 지수 5.56점 | 혼합된 체제
(163개국중 89위, 2021년)
국성 부여 황실
카간 (국가 원수) 테세그치 칸
총독 임환성
국무총리
(정부 수반)
바얀도르지 소남바트
정부
수반
상원의장 잠발자르갈 보르지긴
하원의장 담딘남스랭 에르바타르
대법원장 라드나숨 엘벡도르지
입법부 몽골 국가의회 (상원, 하원)
집권 여당 나르 울루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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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 경제
GDP
(PPP)
$1,520억 6,736만 | 세계 54위
1인당 $32,800 | 세계 43위
GDP
(명목)
$862억 3,332만 | 세계 63위
1인당 $18,600 | 세계 47위
수출
입액
수출 $336억 6,400만
수입 $411억 3,300만
외환보유액 $89억 6,033만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A-
Fitch AA-
통화 화폐 투그릭
ISO 4217 MNT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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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 SI단위
통행 방향 우측통행
연호 융정(隆貞), 서력기원
시간대 GMT+07:00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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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1960년 7월 1일
수교국 192개국
대사관 천경도 천경특별시 종로구 운종로 953
대여수교현황 1924년 11월 26일
무비자입국 양측 모두 270일
ccTLD
.mn
국가 코드
496, MNG, MN
위치

개요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

명목상 입헌군주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영연방 왕국과 마찬가지로 부여 황제가 몽골 카간을 같이 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공화제 국가이다. 실질적인 권한은 보르지긴 왕조가 세습하는 상원 의장과, 하원에서 임명되는 내각 국무총리대신이 쥐고 있다.

역사

지리

세계 최대의 평원 국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초원밖에 없는 국가이다. 면적은 조선반도의 7배가 넘는데도, 바다와 멀리 떨어져있는 내륙국의 특성상 극도로 건조하고 연교차가 큰 기후 특성 때문에 인구 수가 높지 않다. 이는 몽골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국가중 하나인 이유이다.

대중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항가이 산맥, 헨티 산맥, 알타이 산맥 등의 산맥들도 다수 존재한다. 알타이 산맥은 몽골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험준하여 관광지로 애용되고 있다.

정치

1924년 성립 이후 거의 전제군주제에 가까운 체재가 2~30여년 가량 유지되었다. 이후 양원제를 바탕으로 한 의원내각제가 도입되었지만 이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일단 소련과의 최전방이라는 특성 때문에 몽골인민당 등의 좌익 정당들이 거의 활동하지 못하였고, 냉전이 해빙 무드에 들어선 1990년대에도 국민적으로 진보주의나 좌파적인 의제가 그다지 각광받지 못해왔다.

현재는 우익 정당인 나르 울루스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는 일당우위정당제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몽골사회당, 몽골자유당 등의 야당이 활동하기는 하지만 세력은 미미하다.

몽골 카간


몽골 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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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골국 대칸
초대
칭기즈 칸
섭정
툴루이 칸
제2대
오고타이 칸
제3대
귀위크 칸
제4대
몽케 칸
제5대
세첸 칸
대립 아리크부카
대원대몽골국 대칸
제5대
세첸 칸
제6대
올제이투 칸
제7대
쿨루크 칸
제8대
부얀투 칸
제9대
게겐 칸
제10대
이센테무르 칸
제11대
아슈케베 칸
제12대
자야아투 칸
제13대
후투그투 칸
복위
자야아투 칸
제14대
린칠반 칸
제15대
우카가투 칸
북원 대칸
제15대
우카가투 칸
제16대
빌레그투 칸
제17대
우스칼 칸
제18대
조리그투 칸
제19대
엥케 칸
제20대
니굴세그치 칸
제21대
토코간 칸
제22대
오루크테무르 칸
제23대
올제이테무르 칸
제24대
델베그 칸
제25대
에세쿠 칸
제26대
아다이 칸
제27대
테세이 칸
제28대
아크바르진 칸
제29대
에센 타이시
제30대
우케그트 칸
제31대
몰론 칸
제32대
만둘 칸
제33대
다얀 칸
제34대
바르스볼루드 칸
제35대
알라그 칸
제36대
구덴 칸
제37대
자사크트 칸
제38대
부얀 세첸 칸
제39대
링단 칸
선위
에제이 칸
대청국 대칸
제40대
아구다 오루시옝치 나이람다구 복다 칸
제41대
아이비어 자사크 칸
제42대
엥케 아무굴랑 칸
제43대
나이랄투 톱 칸
제44대
텡그린 테트국센 칸
제45대
사이시얄투 이루겔투 칸
제46대
토로 게렐투 칸
제47대
투게멜 엘베그투 칸
제48대
부린 자사그치 칸
제49대
바다르굴투 토로 칸
제50대
허브투 요수 칸
부여황제국 대칸
제51대
복드 칸
제54대
에헤테제르 칸
제55대
에르거건 칸
제56대
다루어유전 칸
제57대
테세그치 칸
원 황제 · 북원 황제 · 부여 황제 · 청왕

ᠬᠠᠭᠠᠨ, хаан (항, 몽골어)
خاقان , Khāqān (카간, 페르시아어)

헌법상 규정된 몽골의 국가 원수. 칭기스 칸을 초대 카간으로 두고 있으며, 현재의 칸은 테세그치 칸이다.

1935년 이후 부여 황제가 몽골의 카간 작위를 겸하여 재위하고 있다. 따라서 몽골의 국가 원수는 부여 황제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은 카간이지만 몽골 내에서는 항(хаан)이라고 불린다. 카간이라는 명칭은 페르시아어에서 따온 것이며, 공식적인 작위 명이다. 부여 내에서는 칸이라는 표기가 더욱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상원의장

직책 명은 상원의장이지만, 상원 자체가 귀족들의 회의 기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상원 의장은 일반 군주국에서의 군주 역할을 맡는다. 상원 의장직은 보르지긴 오복이 세습하는 직위인만큼 몽골의 실질적인 국가 원수, 즉 몽골의 왕은 이쪽이라고 할 수 있다.

상원의장직은 종신직으로, 생전에 은퇴하지 않는한 말 그대로 영원히 직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다.

국무총리

정부 수반. 보통 상원 의장에 비해서는 급이 한단계 낮은 것으로 인식되며 실제로 총리는 상원 의장에 의해 임명된다. 그러나 총리 자체는 하원에서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직책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권한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와 마찬가지로, 제1당의 당수가 총리로 선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임기는 정해져있지 않아서 총리가 총선에서만 이긴다면 몇번이고 연임이 가능한 구조이다.

의회

상원은 100석으로 이뤄져있으며, 전원 무소속이다. 상원은 귀족들의 의사 결정 기구이며 평민들은 참여할 수 없게 되어있다. 또한 직선제가 아닌, 부여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임명직 의원들로만 이뤄진다.

한편 하원은 160석이며 140석은 소선거구제로, 20석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한다.

1980년대 이래, 우익 정당인 나르 울루스가 160석 하원 의석중 130석 이상을 언제나 확보해왔기 때문에 말만 하원이지 실제로는 집권 여당의 거수기에 가깝다는 비판이 자자하다. 현재의 의회 구성은 나르 울루스(보수주의, 우익) 136석, 몽골사회당(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17석, 몽골자유당(보수자유주의, 중도우파) 3석, 몽골인민당(공산주의, 극좌) 1석, 무소속 3석이다.

사회

언어

몽골어가 주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부랴트어오이라트어와 같은 몽골어족에 속하는 언어도 많이 사용되며, 이 언어들과 몽골어는 일상 생활에서 소통에 지장은 없다. 일부는 만주어나 중국어, 또는 조선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몽골 문자가 존재하긴 하나 비슷한 만주 문자를 보존한 부여와는 달리 195~60년대 산업화 시기 키릴 문자를 받아들이면서 현재 시점에서 몽골 문자는 부여에서 한자의 지위의 마찬가지로 점차 옛문자, 보조 표기 수단 정도로 밀려나있다. 1940년대에는 로마 문자 표기를 사용했지만, 아무래도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소련의 영향으로 키릴 문자 표기를 사용하다보니 몽골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키릴 문자 도입 당시에는 사용의 편리함은 둘째치고 적국인 러시아의 문자라는 점에서 말이 많았으며 결국 몽골어의 키릴 문자 표기는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에서야 완전히 정착될 수 있었다.

종교

역사적으로 몽골 제국청나라티베트 불교를 권장해온 것도 있고, 1920년대 대몽골국의 수립 이후 정부에서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삼아 의욕적인 보급 정책에 나섰기 때문에 국민의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티베트와 더불어 동아시아 국가중에서는 독보적인 불교 국가의 지위에 있다. 같은 종교를 믿는 티베트와 친밀하며 종교적인 교류가 상당하다.

티베트 불교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슬람교이다. 약 5~7%에 달하는 위구르족, 카자흐인이나 국경 근방에 거주하는 일부 몽골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외교

여몽 관계

몽골과 부여는 역사적으로 여러 관계를 맺어왔다. 12세기에는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고려가 몽골의 조공국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공민왕의 개혁으로 몽골 탈피 정책이 시행되고, 몽골이 몰락하여 현재의 몽골 고원으로 밀려나자 양국간의 교류는 다시금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황실이 만주로 도망친 틈을 타, 왕축 왕조에 속하는 복드 칸이 몽골의 독립을 이뤄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복드 칸은 몽골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내부적으로 소비에트군의 지원을 받은 허를러깅 처이발상담딘 수흐바타르가 계속 권좌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복드 칸은 1924년 부여에게 SOS를 쳐, 적군으로부터 몽골 지역을 보호하게 하였고 자신은 스스로 부여의 신하가 되었다.

1931년 복드 칸이 사망한 이후 왕축 왕조가 단절되자, 몽골은 보르지긴 오복을 복원하여[1] 보르지긴 왕조라는 이름으로 카간직을 맡게 하였다. 1935년에는 세종 황제가 보르지긴 왕조로부터 카간직을 넘겨받고, 보르지긴 오복들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하면서 완전한 몽골의 통치자가 되었다.

1940년대 이후,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자 소련과 바로 국경을 맡댄 몽골은 더더욱 안보상으로 중요해졌다. 부여황제군이 몽골에 원래 주둔하고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2만명 주둔이 이뤄진 것은 1940년대 이후의 일이다. 몽골 역시 부여로부터 많은 물자와 무기를 공급받아, 소련이 부여를 침공하였을때 대비할 수 있는 1차 방어 기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만 1992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부여와 동맹국으로 발전한만큼 현재에는 몽골이 예전과 같은 안보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에도 부여 황실은 몽골 카간직을 세습하고 있으며, 보르지긴 오복들은 상원 의장들을 세습하면서 실질적인 몽골의 국가 원수로서 몽골을 통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몽골 내에서 의견이 8:2 정도로 엇갈린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그래도 부여가 몽골의 경제 발전을 도와줬기 때문에 좋아한다. 상류층에서도 부여가 보르지긴 왕족을 비롯하여 청나라 시대에 거의 무너진 몽골의 귀족들을 보호하고, 국방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반면 몽골사회당과 같은 야당의 경우 부여가 몽골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있다면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자는 의견을 표방한다.

여러 관계

여러모로 복잡한 관계이다. 우선 몽골의 최대 동맹국인 부여러시아를 핵심적인 동맹국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친구의 친구라는 식으로 겉으로는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몽골의 공용 문자가 키릴 문자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의 문화가 몽골에 여럿 수입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두 나라는 비교적 친근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194~90년대 냉전기 동안 거의 50년동안 몽골과 러시아는 수차례 국경 분쟁을 겪었으며, 투바부랴트와 같은 일부 몽골 지역이 소련령으로 존속하였기 때문에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를 영토 강탈자라고 느끼기도 했다. 1993년 투바가 독립한 이후 현재는 그런 시각은 적어졌지만 여전히 반공주의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노년층들은 러시아를 상당히 경계한다.

최근에는 러시아 연방군이 1,500명 가량의 병력을 몽골에 주둔시키고, 몽골과 러시아간 경제 협약이 여럿 체결되는 등 점차적으로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

각주

  1. 이때 무슨 근거로 복원하느냐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단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