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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 1월 24일, 런던 카나리 워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중충한 하늘이 천장처럼 지나는 테라스가 눈에 보였다. 바닥에는 겨울에는 눈이 온다는 지키려는 듯 눈 꽃들이 모이고 모여 소복한 산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하는 런던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 같이 출입제한이 걸린 어두컴컴한 곳에서 말없이 서있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아래를 내려보자 원 캐나다 스퀘어를 중심으로 가게 앞을 청소하는 카페의 직원, 진눈깨비를 뚫고 지하철로 향하는 직장인들, 우산을 쓴 채 분주하게 걸어다니는 관광객들, 레저용 요트와 유람선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고 다리 위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인들의 옷차림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고층건물들과 고급 오피스들이 자리잡은 카나리 워프에선 더욱 그럴 것이었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종이 봉투와 함께 난간에 손을 기댔고 이리러지 시선을 돌리며 런던의 아침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의 시선 자신이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향해있었고 그곳엔 그레이색 롱코트와 넥타이가 보이는 셔츠, 깊게 눌러쓴 중절모가 눈에 띄는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여자 옆에 비슷한 자세로 자리를 잡았고 자신의 모자를 한번 누른체 템스강의 풍경을 바라봤다.
"만나기 참 좋은 장소를 고르셨습니다. 경치가 정말 절경입니다." 그는 모스크바 억양이 묻어나오는 중년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저에게 순수함이 남아있다는 거죠."
남자는 묵묵히 자신의 코트에서 케이스 하나를 꺼내 궐련을 골라 들었다. 또 다른 주머니에서는 빅토리아풍 장식이 붙어있는 황금색 라이터가 나왔다. 그는 궐련을 입에 문체 불을 집혔고 조용한 하늘 위로 담배 연기가 입김과 함께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런던에는 자리 잡을만한 곳이 있었습니까?"
"아뇨,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통에 사람들과 같이 톱밥을 널어 불을 붙이고 밤을 샜어요. 마치 프랑스의 다리 밑에서 사는 난민 꼬마의 이야기 같았어요."
"그럼 길바닥에서 주무신거네요? 근데, 상당히 깔끔해 보이십니다."
"글쎄요.."
여자의 시선은 무언가를 숨기는 듯 여전히 테라스 밖의 풍경을 향해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무슨일을 하셨습니까? 혹시 기억이 있으십니까"
"기억나지 않아요. 방금까지 하던 일도, 당신의 이름 마저도.."
"허, 그럼 지금 여기서 무슨일을 하는 지는 아십니까?" 남자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실 어느정도 인지 하셨을꺼라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벌써 적응을 하신거 같군요. 아직도 우릴 쫓는 눈이 많아서 조심해서 나쁠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또 일이 생기시면 저를 불러도 상관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핵심 자산을 손에 넣었으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남자는 자세를 바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죽 코트와 통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옷에 잔뜩 묻은 무언가를 지운 듯이 축축하게 물에 젖어있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있었고 남자의 모습이 낯이 익은 듯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간 만큼은 이 공간에 단둘만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보복이 두려우신 겁니까?"
"전혀요. 단지 내 앞 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아서요."
"연방보안국 알력다툼을 말하시는 거군요."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무리하게 일을 벌리고 있어요. 벌써 3명째, 이제 영국 정부가 우릴 쫓기 시작할거에요."
"걱정하지마십시오 애들러양. 적어도 우리는 정부보다 우위에 서 있습니다."
말이 끝나는 순간 강한 바람이 그들을 덮쳤다. 그 둘의 코트가 바람에 휘날리고 땅에 떨어져있던 구시대의 유산인 종이 포스터들이 날라가 바닥과 난간에 붙었지만 남자는 자신의 중절모를 잠시 누룰 뿐 미동도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테라스 밖 넓게 펼쳐진 런던에서는 여러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고요하던 하늘에는 언제 있었는지 모를 헬리콥터들이 막 떠오르고 있는 태양의 앞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다시 뵙지요. Снова видеть вас"
남자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여자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봉투를 받아 그가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