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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of America
전세계에 자국 주도적인 질서를 확립한 영광스러운 시대를 지나 그들의 업적은 대침체로 인해 무너져내렸다.
강력했던 거인은 무너졌고 그의 등그늘에 가려져있던 세상은 거인의 시체를 쪼아먹고 있다.
미국은 다시금 혼란에 빠졌고 서부 알레스카에서 네온 빛 뉴욕에 이르기 까지 미국 전역은 각종 인종과 종교, 사상과 가치관의 총돌 속에서 숨 쉬고 있으며
최하층의 부랑자들부터 펜트하우스의 상류층들까지 모두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진보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 중도파, 신보수주의자들로 분열되고 포퓰리즘 프로파간다로 인해 망가지고
세계의 각종 분쟁과 중국과 러시아의 존재는 남아있는 미국의 패권을 잡아 먹어가고 있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구 시대의 잔재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파하고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주요도시
New York City
현재의 뉴욕은 대침체 이후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부유한 맨해튼과 빈곤하고 불안정한 브롱스, 뉴저지, 브루클린으로 나뉘었다.
City of Chicago
종언기 당시, 시카고 폭동과 같은 대규모 사회 분열을 겪은 도시이며 대규모 난민 지구가 위치한 불안정한 도시이기도 하다.
역사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는 미국의 질서 아래 놓이게 된다. 90년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으며 이 시기를 팍스 아메리카나로 부르기도 한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기 동안에는 미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 사이의 외교적 분쟁이 적었으며 유럽의 마지막 전쟁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전쟁 또한 나토 연합국의 항구적 자유 작전에 의해 무력으로 종식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9.11 테러가 발생하며 흔들리기 시작되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이 지원하던 무자헤딘 세력이 일으킨 이 테러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고 150년만에 미국 본토가 외세에 의해 침략 받았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어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 두 전쟁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미국은 복수를 위한 과정으로 무고한 외국의 민간인들을 폭격했으며 특히 이라크 전쟁은 명분부터가 잘못된 전쟁으로 향후 미래의 대혼란을 불러일으킬 전쟁이 되었다. 미국이 새롭게 재편한 이라크 신 정부는 이라크의 정치적, 종교적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체 만들어 졌고 이를 계기로 봉기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세력을 넓히며 테러리즘의 시대를 알렸기 때문이다. 미군은 전쟁에서 게릴라군에 의해 고전하고 있었고 전쟁 비용은 셀 수 없을 만큼 쌓여 갔다. 또한 테러리스트들을 처벌하는 관티나모 수용소의 인권침해 실태가 폭로되고 전쟁의 타당성이 비판 받기 시작한다.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 빠진 사이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주도하던 IBM과 같은 기업의 정경유착이 들어나며 시작된 경제 위기가 전세계로 퍼지며 대침체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거대 보험 회사였던 AIG가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견제로 구제 금융이 하원 통과에 실패해 수천억 달러 상당의 기업이 파산하자 미국의 주식 시장은 붕괴되게 된다.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가 속한 공화당은 정치적 실패에 대한 영향으로 지지율은 폭락한다. 당시 미국의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기존 정치권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떨어진 지지율로 인해 다음 후보를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분열되었고 강경파가 공화당을 탈당해 신 공화당을 창당하게 된다. 양당 체제가 약해지며 미국의 제3정당들이 원내 정당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고 새롭게 원내 정당이 된 녹색당, 자유당은 좌익 계열의 선거 연합인 진보 연합을 구축했다.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구 공화당은 변화하는 정치 지형 속에서 선거 연합인 연방당을 구축해 온건한 개혁을 추진했고 이에 신 공화당을 필두로한 국민 연맹과 버니 샌더스의 진보 연합이 연합한 연합당을 신설, 양대 정당들과 맞서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주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 당시 미국 사회는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도드-프랭크 금융 개혁법을 추진해 금융 시스템을 복구 시키는데 성공하나 이미 미국의 실업률은 치솟은 상태였고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의 붕괴를 알리듯, 전국에서 고소득자와 정경유착을 통해 이익을 보던 기업들을 향한 비난이 쏫아졌다. 만성적인 제정 악화로 인해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점차 사라져갔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실업으로 인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상경하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며 이들은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급상승한다. 사람들이 몰린 서부주 일대에선 민병대의 영향력이 상승하며 군벌 처럼 군림하기도 했으며 지방 정부과 결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고 매일 같이 폭동과 약탈에 대한 뉴스가 헤드라인을 가득 채웠다.
2008년 대통령 선거는 대침체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공화당의 추락으로 연합당 진보파 성향의 에드워드 마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에드워드 마키가 집권했던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시기는 대침체의 연쇄 반응으로 유럽에서 유로존 위기가 발생하며 서방권이 붕괴되고 있었고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일방적인 미국 중심의 외교정책이 비판 받던 상황이었다. 내부에서도 칸다하르 학살, 팔루자 학살 같은 미군의 전쟁 범죄와 경제 침체로 반전 여론에 이어 아예 고립주의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 상황에 마키 행정부는 제대로 된 외교적 스탠스를 취할 수 없었고 결국 2011년, 국방 예산 감축이 확정되며 주독미군과 주영미군이 철수하게 된다. 이후 미군이 파병되어있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가 이어졌고 주일미군, 주한미군 또한 그 규모가 축소되게 된다. 미국의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 정치 세력들은 군부에게 떠넘기고 있었고 마키 행정부가 '연방전쟁준비법'을 추진, 미국 군대의 군사적 행동이 제한되면서 한 시대를 호령했던 팍스 아메리카나 종식에 쇄기를 박았다.
그러나 마키 행정부 또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추진으로도 당시 미국의 경제 침체 여파를 극복하는데 실패했고 이 탓에 2012년 대선에서 정권 연장에 실패하며 연방당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연방당 소속 밋 롬니는 공화당의 온건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던 대통령이었다.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대침체의 여파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미국을 구해낸 인물로, 금융개혁법을 과감하게 폐지 시키고 일자리 양성을 위한 롬니케어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밋 롬니 정권은 현재까지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2013년, 미국 정부가 전세계인들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 한다는 프리즘 폭로 사건 때문이다. 이 결과로 미국 정부는 각 국의 항의와 각종 질타에 직면했으며 세계에서 미국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유로마이단, 크림 위기 사태를 방치하고 외교적 실패까지 겹쳤다. 덕분에 다 망해가던 공화당을 구해냈으나 이보다 당시 일어난 미국의 위상 추신, 비도덕적 외교 정책이 공화당의 온건주의를 몰락 시키게 만들었다.
2016년. 연합당 소속의 딕 체니가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다. 이는 당시 미국인들의 패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로 인해 무기력 해진 상태에서 강한 미국을 외치던 딕 체니의 국민당은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고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딕 체니는 당선 이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잃어버린 10년 기간 동안 추락한 미국의 위신을 다시 높이자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인도-태평양 외교 전략을 통해 군축으로 인해 축소 된 7함대를 다시 동아시아로 파견하며 당시 안정적 경제 상황을 기반으로 '화평시대'를 맞이며 급성장하던 중국에 대해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바로 신냉전 시대의 신호탄인 패권 부활 선언이다. 패권 부활 선언 직후 NATO를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확장한 상호방위조약기구를 창설하고 중국에 대대적인 무역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이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뿐 겉으로는 미국을 자유의 수호자로 포장하고 뒤에서는 중국을 견제할 파트너로 러시아와 협력하며 러시아의 확장을 막지 못하였다.
2020년, 중국에서 시작 된 특수폐렴성감염병이 미국에 도달하며 대봉쇄 시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 전염병은 난민들로 인해 행정력 마비가 만연하던 유럽에서 큰 피해를 준 만큼 딕 체니 행정부에선 국경을 봉쇄하고 최초로 범국가적 차원에서의 격리조치가 이루어졌다. 이 영향으로 미국의 대부분의 경제가 대침체 시절처럼 악화 되었고 강경한 검역절차에 대한 반발이 이루어졌다. 각 주에선 연방 정부의 방역 정책을 따를 수 없다며 연방 정부를 배척하였고 딕 체니 행정부는 방역 정책을 완화한다. 대침체와 달리 1~2년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이어진 대봉쇄는 세계 경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특히 미국에선 사회 분열이 심화되어 대침체와 함께 미국의 쇠락에 큰 기여를 했다.
같은해 미국 대선에선 미국의 극단주의 열풍과 사회 분열의 영향으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헌법당이 연합당 우파의 테드 크루즈와 연합하고 극좌 정당인 사회주의해방당이 버니 샌더스의 연합당 진보파와 연합하게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양당제와 그로인한 악습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제3정당에 표를 던지며 제47대 대통령으로 버니 샌더스가 당선되게 되었다.
버니 샌더스는 급진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이른바 '헌법혁명'으로 불리는 사회 개혁을 감행했다. 당시 미국은 사회 분열로 인해 크고 작은 소요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하였고 이에 따른 불안이 만연해 이었다. 그렇기에 첫번째 헌법혁명으로 총기 규제를 강화하며 ATF[1]의 권한이 막강해졌고 수정 헌법 2조에 어긋나는 개인, 민병대[2]의 화기가 압수 되었다. 이 시기의 미국에선 화기를 압수하려는 FBI, ATF와 민병대 사이에서의 교전은 일상처럼 끊이지 않았다. 두번째 헌법혁명은 군사 통제였다. 이라크, 아프리가니스탄에서 전쟁에서의 과도한 국가 지출을 군부의 탓으로 돌림과 동시에, '딕 체니 독트린'를 부정하고 해외 개입을 최소화하는 '연방전쟁준비법'을 강화하게 된다. 연전법이 강화되자 마이클 플린을 비롯한 강경 군부 세력들은 반발했고 연방 정부과 군부 사이의 분쟁이 심화되었다.
2024년, 선거를 앞두고 버니 샌더스는 고령의 나이로 인한 건강 악화로 사임하며 몇달전부터 피드를 가득 채운 그의 건강이상설이 진실로 밝혀지며 미국의 첫 번째 사회주의 대통령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대통령직을 승계 받은 그렉 카사르는 국민들로 부터 샌더스 만큼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상원의원 선거 경선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확보하며 보수 공화당 지지자들과 좌익 진보사회당 지지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에 민주당이 부당 선거를 저지르고 있다는 음모론이 퍼지고 헌법혁명으로 인해 갈등이 극에 달하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폭동이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다. 국민당-공화당 지지자들이 주를 이룬 이 폭동은 정치적인 이유뿐만 아닌 미국 사회의 불만들이 전부 터져 나온 것이었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고 하와이와 알레스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에 주방위군을 투입해 치안을 유지하였으며 위싱턴 D.C의 시위대들이 무장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백악관 근처로 미해병대가 배치되기 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렉 카사르도 수십전의 극우 세력들의 암살 시도를 겪었으며 정치인들은 수십명의 개인 경호원을 중무장 시킨 것도 모자라 공개석상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공사 중)
2026년,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후티군의 군사도발에 대응하며 사우디아라비아-예멘 전쟁이 발발하며 일명 중동대전으로 불리는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진보사회당 내부에서는 중동 사태로 인해 유가가 수직 상승하자 군사적 대응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엘리자베스 워런은 기존에 유지하던 고립주의를 밀었다. 미국 사회에서도 반전주의파와 군사 개입파로 나뉘어 분열되고 있었으며 진보사회당과 엘리자베스 워런은 논의 끝에 경제적 제재와 5함대 파견으로 미국이 조율자 역할 맡는 준개입 상황으로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소코트라 섬과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 된 러시아 해군과 교전하게 되고 소코트라 섬에 육상 병력을 상륙시켜 무력 점령하게 되자 미국 내에서는 반-이스라엘 시위가 대학교를 중심으로 퍼지게 된다.
- 루트A
연방전쟁준비법과 고립주의적인 대외정책, 그렉 카사르의 무능한 국정운영으로 인해 연합당 내에서 진보파는 지지층을 크게 잃고 국민당 소속에 강경파 정치인인 마이크 폼페이오가 제4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서부 해안도시에서 부정투표를 주장하는 시위대들과 경찰의 충돌이 발생했고 국민당의 안티체제였던 진보사회당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의석 대다수를 상실하며 전진당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폼페이오의 초기 국가 정책은 내부 개혁으로, 진보사회당이 남긴 헌법혁명의 영향을 뿌리뽑고 미군의 족쇄인 연방전쟁준비법 폐지를 목표로 했다. 국민당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정당이었기에 개혁을 위해서는 외부 정당과 손을 잡아야 했고, 헌법혁명에 반대하던 공화당과 손을 잡게 되었다.연방전쟁준비법은 딕 체니 정부와는 다르게 폼페이오가 폐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며 완전한 폐지 수순에 들어갔고 미군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자유롭게 해외에서 군사작전을 시행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막대한 지원을 받은 미해군은 4함대를 남아메리카의 기이아나로 파견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시위를 다시 제개하게되었다.
내부적으로는 헌법혁명의 가장 큰 문제였던 총기 규제를 완화하게 된다. 이로인해 민주당과 진보사회당과 같은 진보 정당들을 중심으로 총기 규제 완화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문제시 삼으며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정치 집단인 '미국인들의 고향'이 만들어진다. 또한 헌법혁명으로 과도하게 강화된 연방 정부의 권한을 낮추고 미국 가족법을 통해 사회 애국주의를 강조해 나갔다.
2026년,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후티군의 군사도발에 대응하며 사우디아라비아-예멘 전쟁이 발발하며 일명 중동대전으로 불리는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란 이슬람 혁명 수비대가 아랍에미리트가 관리하던 소코트라 섬을 점령하고 러시아 해군이 인도해로 진출하고 있다는 첩보를 접한 폼페이오 정부는 즉시 5함대를 출격, 이스라엘군과 함께 페가수스 작전을 진행해 러시아 해군과 이란의 군사적 행위를 막으며 중동대전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후티군을 궤멸 시키고 예멘 망명 정부가 돌아오며 끋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중 러시아 해군과 미해군과 직접적인 교전으로 인해 러시아와 미국은 초긴장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미국 본토의 해안에서는 미해군이 수시로 헬기를 띄워 러시아의 핵잠수함의 동태를 감시했다.
- 루트A
전국적으로 번진 폭동이 150일간 이어지며 혼란한 상황 속, 민주당의 이상주의자였던 피트 부티지지가 미국의 4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다시금 민주당 시대를 알렸다.
사회
두 차례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사회 인프라망이 붕괴하며 매우 열악한 상태가 되었다. 미국의 3대 대도시권이라 불리던 뉴욕, 시카고, LA 역시 대침체 당시의 피해로 인해 도시 산업이 망가졌으며 양극화의 심화로 슬럼가에 사람들이 모이며 더욱 불안한 치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대침체의 원인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 은행 무분별한 부동산 대출 때문이었던 만큼 대침체 이후 미국 주요도시의 집값이 수직으로 상승하였고 여러 회사가 부도가 나며 실업자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마키 행정부 당시의 '부시 지우기' 정책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한 군인들은 전역후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체 저임금 노동자, 대침체의 여파로 파산한 사람들과 같이 길거리로 나갔으며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도시 구석에 컨테이터와 자동자로 만든 슬럼가가 형성되었다. 슬럼이 형성된 이후 생존을 위해 마약 유통 사업을 시작했고 여러 갱단과 마피아들이 끼어들며 대규모 사업으로 확장되어 갔다.
미국은 대침체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시한 기업 우대 정책과 로비스트의 활동, 미국 정치계의 부패가 맞물리며 마가(MAGA)[3]로 대표되는 대기업들은 각종 제재에서 자유로워 졌다. 또한 딕 체니의 아이언 월 정책으로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쫓겨나며 자국 기업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정부가 기업에 의존하는 형태가 되어갔다. 현재 미국에서 이 기업들이 차지하는 사회,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높으며 특히 미국의 로비 문화는 기업들의 정계 장악에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친 기업 정치인으로는 마이크 펜스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있다.
정치
- 입법부
미국 의회(United States Congress) 주별 2석식 있는 상원과 인구에 따른 하원으로 나뉜다. 본래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양당체제 였으나 부시 행정부의 실패이후 실시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다수의 선거인단을 제3의 정당들이 차지하며 양당체제는 끝이 났다. 정치계의 변화와 공화당의 분열로 인해 민주당과 온건 공화당이 연합해 연방당을 형성하고, 이에 대응하며 미의회에 진출한 정당들의 연합당이 창당되었다.
- 행정부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제 46대 대통령인 버니 샌더스로, 미국의 대통령은 4년의 임기를 가지고 최대 2연임이 가능하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중으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써의 권한을 가지고 미국 상원의 동의 하에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외교권, 마찬가지로 상원의 동의로 내각의 장관, 부장관, 차관의 임명할 권한, 상원의 동의를 받아 연방의 주요직, 대사, 연방 대법원·고등 법원·지방 법원 판사를 임명할 인사권, 미국 상원, 미국 하원을 통과한 법률을 승인하거나 거부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행정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 정치 지형 변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남미에서 21세기 사회주의 개혁이 성공하며 미국에서는 밀레니얼 사회주의가 등장했다. 본래 반공주의 성향이 강하던 미국에서 전 정권들의 실패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좌경화되기 시작했으며 오바마 행정부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급진적인 진보 정책을 추구했다. 동시에 안티파로 불리는 좌익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하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안티파는 폭력을 통한 정의를 추구하며 공공기물 훼손을 물론 미술관 테러, 반대파 시위대 공격, 집단구타을 행한다. 일부는 진보사회당을 비롯한 미국의 사회주의 계열 정당은 좌익 포퓰리스트들이라 비판하며 사회주의해방당과 같은 극좌, 공산주의 계열 정당을 지지하고 밀레니엄 사회주의를 벗어나 혁명적 사화주의를 달성해야 한다 주장한다
- 주요 정당
- 연방당
- 민주당
- 구 공화당
- 연합당 진보파
- 버몬트 진보당
- 녹색당
- 미국 사회당
- 사회주의해방당
- 연합당 우파
- 신 공화당
- 미국 연대당
- 텍사스 개혁당
- 뉴욕 보수당
- 헌법당
- 연방당
군대
United States Armed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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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X 6.5mm Promet 6.5mm NCW 모듈 IHRS 모듈 |
미합중국 육군, 해군, 공군으로 구성된 군사조직으로 한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했으나 현재는 '연방전쟁준비법'으로 인해 그 위상이 많이 줄어 들게 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대봉쇄로 인한 20년간의 경제침체로 정부는 여러 부문의 예산을 축소해왔다. 그중 가장 많은 예산이 삭감 된 곳이 바로 군대였다. 이는 경제 위기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의 패배, 해외 주둔 군의 미미한 활동으로 군사력 증강이 큰 비판을 받아온 탓이 컸었다. 그 결과로 미군의 대규모 병력은 소수 정예, 기동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고 많은 기갑 전력이 해체 당했다.
미군이 대규모 군대를 포기한 덕에 각종 신형 장비를 쉽게 도입 할 수 있었다. IVAS로 불리는 통합 시각 증강 시스템를 보급하며 보병 개인의 전투력이 상승하게 되었고 차세대 분대 화기 사업의 일환이자 6.8mm 탄환[4]을 사용하는 XM시리즈를 제식 소총으로 택하였다. 전차와 포병을 대부분 무인기로 대체하였으며 수송과 기동에 집중한 미래형 전장 체계를 세계 최초로 구축한 국가가 되었다.
상호 방위 조약 기구
Mutual Defense Treaty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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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국 및 참관국 • 미국 • 캐나다 • 영국 • 포르투갈 • 스페인 • 이탈리아 • 독일 • 베네룩스 • 덴마크 • 노르웨이 • 호주 • 뉴질랜드 • 필리핀* • 인도네시아*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이스라엘* • 일본* • 대한민국* |
대침체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패권이 붕괴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탈퇴를 선언하며 NATO는 붕괴 직전에 몰려 해체되고 영미권 국가들과 함께 동맹 체제를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