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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1940년대)
Time Person of the Year 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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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아델라인 히틀러
1941
인류
1942
프랭클린 루스벨트
1943
하워드 스타크
1944
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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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캡틴 아메리카
1946
앤드루 라이언
1947
블라디미르 레닌
1948
호토케사마 센고쿠
몽키 D. 가프
1949
아돌프 시클그루버

1920년대 · 1930년대 · 1940년대 · 1950년대 · 1960년대 · 1970년대 · 1980년대 ·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아델라인 히틀러
Adaline Hitler
본명
아델라인 알로이스 히틀러
Adaline Alois Hitler
종족
인류 사피엔스 계열
국적
제 4제국
성별
여성
가족관계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
어머니 클라라 푈츨
생년월일
1894년 4월 20일
출생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브라우나우암인
직위
대독일국 총통
소속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상태
생존


개요

아델라인 히틀러는 월면 제 4제국의 총통이자 뉘른베르크 군사 재판에서 공인된 2차 세계대전의 S급 전범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수이자 수권법을 통과시키고 독일을 장악한 독재자로, 저지대 국가 침공으로 월면전쟁을 확전시키고 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가장 큰 원흉으로 지목받는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1950년에 미국의 우주 궤도병기가 유럽 전역을 폭격하기 직전, 나치의 비밀 우주병기 하우니브와 그라프 체펠린 궤도함대를 위시한 독일 우주군을 이끌고 달으로 '일시적인 망명'을 시도했다.

1952년의 시점에서 월면 나치의 총통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생애

아델라인 히틀러는 189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라우나우 암인이라는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는 공교롭게도 그의 오래된 원수이자 정치적 숙적인 아돌프 시클그루버와 같은 출생지였다. 그녀는 권위주의적이던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가정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으며, 클라라 푈츨의 외가에서 주로 유년기를 지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법과 정치 등에 관심이 있었지만, 보수적인 아버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예술 공부를 해야만 했다. 히틀러는 18살 무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인 빈으로 상경했고,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약 2년 간 빈에서 공부하며 대학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예술을 멀리하고 자신의 관심사였던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급진적인 성향의 정치학부 학생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며 반유대주의에 입각한 음모론[1]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또한 평소에 독일과 유럽 정세에 대한 토론을 즐겨했으며 본인 나름대로의 자체적인 국가관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빈에 가서는 그림이나 그리며 지내던 아델라인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군에 자원 입대했다. 아델라인 히틀러는 간호장교로 복무하면서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큰 공을 세워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그녀에게 전쟁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그녀에게 군대는 바로 집이었다. 그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살린 것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면, 핵전쟁의 참사와 독일의 혼란, 그리고 격변을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저 그런 그림쟁이인 불우한 여성 아델라인은 정치에 뛰어들어 선전가로서, 또 맥주홀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선동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찾아내 그것을 업으로 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심판의 날이 없었더라면, 이런 상처로 말미암아 독일 사회가 정치적으로 급진화되지 않았더라면, 선동가는 악에 받치고 증오에 찬 말을 들어줄 청중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패전의 후유증으로 히틀러의 길과 독일 민족의 길이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었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발데리히 폰 아들러가 앉았던 총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하인리히 뵐


그녀가 20세가 되던 해에 벌어진 사라예보 테러 사건으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아델라인은 학교를 그만 두고 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부모의 극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델라인은 고집을 꺾지 않고 독일 제국의 간호장교로 전시임관하였으며 독일 제국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헬리본 강습 여단의 의무대 소속으로 참전한다.

그녀가 복무했던 헬리본 강습 여단의 주위 전우들이나 휘하 병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가진 애국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사고관과는 조금 다르게 평소에 독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남는 시간에 가끔씩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고 한다. 아주 가끔씩 가장 친했던 동료나 부하에게 독일의 국가적인 운명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의외로 내성적인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 점차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1918년 갑작스럽게 촉발된 핵전쟁을 맞이한 아델라인은 전선에서 목숨을 잃을 뻔 했으나, 당시 전선에서 '아포칼립스'라는 칭호로 불리며 최전선에서 연합군과 맞서 싸웠던 빌헬름 2세의 극적인 도움으로 그녀를 포함한 140명에 가까운 독일군들이 핵전쟁의 참화에서 생환하면서 그녀 또한 가까스로 전장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세계대전이 끝났을 무렵 그녀의 최종 계급은 대위였고,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녀는 제국 철십자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빌헬름 2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생존한 히틀러는 방사능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후방에서 느껴지는 전쟁에 대한 회의적인 정서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1차 세계대전의 지옥과도 같았던 참상과 전선에서의 비인간성,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핵전쟁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그녀의 자아와 세계관을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이후 독일 제국이 핵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붕괴하면서 일어난 대규모 소요사태는 그녀의 국수주의적인 가치관을 더욱 부추겼다.


전간기

전쟁이 끝난 이후, 그녀가 빈의 예술 대학을 가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 부모님이 폭격으로 사망하면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전후 '우리의 투쟁'이라는 책을 출판한 그녀는 당시에는 별 볼일 없었던 뮌헨의 작은 모임에 불과했던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하였다.

독일 노동자당은 당시만 해도 정치활동은 고사하고 실업자들끼리 모여 불평을 늘어놓는 게 전부였던 어중이 떠중이 집단에 불과했으나, 히틀러가 입당하고 그녀가 가진 특유의 탁월한 연설과 선전능력으로 세를 늘려가면서 점차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존까지 공산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던 연설과 선동을 매우 중시했으며, 그녀가 가진 '철의 여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전속 사진가인 하인리히 호프만의 스튜디오에서 여러 제스처를 찍고 포토샵으로 이를 분석하면서 선전선동에 활용했다.

1920년대 말,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원인 불명의 사이버 테러로 인해 모든 은행 계좌의 기록이 삭제되며 초대규모의 뱅크런이 발생한다. 검은 월요일 사건이 발생하자 핵전쟁 전후 복구에 주력하던 독일 사회는 그야말로 한 순간에 무너져내렸고, 전국에서 폭동과 소요사태가 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이 때 즈음 독일 노동자당의 권력을 모두 휘어잡았고, 당명을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개칭한다.

히틀러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역이용하면서 철저하게 약자의 위치라는 이미지를 어필했고, 동시에 군 경력을 선전하며 각종 선거에서 이득을 보았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였던 발데리히 폰 아들러 또한 히틀러를 과소평가했는데, 그 유명한 너희 집안 살림이나 걱정하라는 어록이 이때 나왔다.

1933년 아델라인 히틀러가 독일의 대통령이 되고 그녀의 앞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오랜 정적이자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최대 적수였던 독일 사회민주당의 당수 아돌프 시클그루버에 대한 정치적인 승리를 달성한 그녀는 수권법을 통과시키며 국내의 반대 정치세력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고, 불과 2년 만에 독일은 국가가 그대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2차 세계대전

현황

타국의 달 식민지를 모두 장악한 히틀러는 지구와 달리 척박한 달의 도전적인 환경을 무릅쓰고 개척에 성공했고, 2차 월면전쟁을 거치면서 새로 건설한 달의 중심지 니우스 베를린 에서 제 4제국을 선포한다.

달에서의 인구 증강과 병력 자원의 확보를 위해 소수의 여군을 제외한 친위대 장병들에게 추첨을 통해 영구적인 성전환 약물을 보급하면서 의 주요 자원인 헬륨-3과 달의 풍부한 광물을 통해 궤도 함대의 증축을 시도하고 있는 히틀러는 그녀의 최종 계획인 성간 레벤스라움 구축을 실현시키려는 야망을 품고 있다.


  1. 알트루이즘, UFO 등 일반적인 음모론이 아닌 로스 차일드 가문과 렙틸리언, 일루미나티와 SCP 재단이 서로 협력하며 신세계 질서를 세우려고 한다는 당시에는 상당히 마이너했던 음모론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렙틸리언과 일루미나티는 사실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