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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国
그러나 모든 질서가 바뀐 현재, 일본 열도는 홀로 남겨진 둥지 속의 아기 새와 같은 운명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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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이후 수 십년 동안 일본과 동아시아를 이끌었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동양의 거대한 위협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그리고 또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그들의 코 앞까지 놓이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또 다시 이 열도를 고립시켜 놓았습니다.
현재의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 동아시아의 질서를 수호라는 과분한 목표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외지인들에게 의존하게 된 일본은 그들의 적절한 외교적 파트너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오늘도 동경의 밤거리는 외국의 정보 기관들의 고요한 전쟁으로 북적입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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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침체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자, 국제 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일본 또한 그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국내 산업 구조상 수입산 원자재 및 소비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와 신뢰 위기는 일본 경제에 결정적인 충격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 WTO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자국 경제를 방어하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례 없는 관세 전쟁에 돌입하면서, 일본은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했고, 수출입 의존 경제 구조는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에즈워드 정부 당시 채택한 '고립적 재편' 외교 전략에 따라, 아시아에 주둔한 미군 병력의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은 통합 지휘 체계 하에 재편되었고, 그 규모 또한 대폭 감축되면서 일본 내부에서는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3월 11일, 일본은 현대사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될 동일본 대지진을 겪게 된다. 이 지진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와 사회기반시설 파괴를 초래했으며, 특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 사고는 일본 전역을 공포와 분노에 몰아넣었다. 당시 간 나오토 내각은 사고 초기 대응에서 심각한 미숙함을 드러냈고, 원전 정보 은폐 및 혼선으로 인해 정부의 신뢰는 결정적으로 무너졌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반핵 여론을 촉발시켰으며, 에너지 정책과 국가 위기 대응 체계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간 나오토 총리는 내·외부의 압박 속에 2012년 초 사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입헌민주당의 정치적 입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후 총리직을 승계한 노다 요시히코는 국가적 재난을 수습하고자 전례 없는 규모의 재정 투입을 단행했으나, 이로 인해 일본의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재정 위기론이 본격화되었다. 정권의 회복력을 시험할 시간도 없이, 2015년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서 '제1차 중동대전'이 발발하였고, 이 여파는 곧바로 글로벌 석유 공급망에 타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제3차 오일 쇼크는 일본 경제를 강타했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급등은 국민 생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였다.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자 정권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노다 총리는 2015년 말 결국 사임에 이르게 된다. 연이은 재난과 외교 실패, 경제 실정으로 인해 입헌민주당은 급속히 대중의 신뢰를 상실하였고, 이에 따라 자민당은 다시금 권력을 탈환하게 된다.
새로운 자민당 체제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고노 다로로,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지도자인 그는 자민당 내 개혁파로 주목받았으며, 보수 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인물로 부상했다. 고노 총리는 집권 초기부터 외교·안보 정책의 대전환을 천명했다. 그는 중국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해가던 북한 내란 개입, 일대일로 전략,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팽창 등을 언급하며, 국제 정치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현실을 정면으로 인정한 일본 최초의 총리로 기록되었다. 이에 따라 고노 다로 정권은 자위대의 역할과 위상을 자국 방위에서 실질적 억제력으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재무장 정책을 추진했다. 무기 수출 규제 완화, 국방 예산 증액, 전수방위 원칙의 재해석 등 과거 일본 정부가 금기시하던 정책들이 점차 현실화되었으며, 이는 일본이 전후 체제 이후 처음으로 명백히 전략적 군사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고노 정권 하의 일본은 외부 충격과 내부 쇠퇴라는 이중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근본적인 국가 구조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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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노 다로 내각 하의 일본은 국제 정세 변화에 일정 부분 적응하며 외교·안보 전략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근본적인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는 데는 실패하였다. 자위대의 재무장 정책과 더불어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 준비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국가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구조적인 저성장 기조와 고령화 문제 역시 해결되지 못한 채 누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특수폐렴성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사상 초유의 글로벌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여 전 세계 경제 활동이 사실상 동결되었고,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고노 총리는 도쿄, 오사카 등 주요 대도시에 대한 봉쇄 조치와 외출 자제령을 강경하게 시행하며 감염 확산을 억제하려 했으나, 부실한 의료 인프라, 초기 대응의 혼선, 그리고 감염자 수 은폐 의혹 등으로 인해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폭발하게 된다.
특히 도쿄 봉쇄로 인해 2020년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일본이 기대했던 경기 부양 효과는 수포로 돌아갔고, 국제적 위상 또한 흔들리게 되었다. 고노 내각은 초기에는 실용적 보수의 기수로 평가받았으나, 팬데믹 대응 실패와 경제 회복 지연, 그리고 반복된 실책으로 인해 임기 말까지 끊임없는 비판과 질타를 받았으며, 이에 따른 고노 다로의 정치적 몰락은 곧 자민당 전체의 리더십 위기로 이어졌고, 내부 균열이 표면화되며 자민당은 다시금 분열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틈을 타, 지난 수년간 정계 주류에서 밀려나 있었던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야권 연합이 결성된다. 국민의 실망감과 변화 요구를 등에 업은 이 연합은 자민당을 강하게 압박하며 정치 지형을 재편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고노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오른 하기우다 고이치는 당내 강경 보수파의 지지를 받았으나, 2025년 발생한 슈퍼 태풍과 이상 기후에 따른 재난 대응 실패, 그리고 정치적 구심력 부재로 인해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퇴하게 된다. 자민당은 연이은 지도력 실패와 대중적 신뢰 상실 속에서 위기에 봉착하였고, 이에 당내 중도파 세력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젊은 개혁파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그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치 유산과는 다른, 현대적이고 실용주의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당내 재결집을 이끌며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외교
- 문서 전쟁
文書戦争 / Document War
문서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가 치루는 외교 문서, 협약, 조약 개정, 언론 플레이, 경제 협상, 요인 암살 등을 통해 진행되는 첩보 전쟁으로 전통적인 무력 충돌 없이 외교적 서한, 비밀 협약, 경제 협력 제안, 군사 조약 수정 및 정보전이 핵심적인 무기로 사용된다. 미국은 대침체 이후, '고립적 재편' 전략을 택하면서 세계 정세에 대한 개입을 꺼려하였고 이에 따라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은 통합되어 '서태평양 사령부'로 교체되고 그 규모마저 현저히 줄어 들었다. 이에 일본의 97대 내각총리대신이었던 고노 다로는 미국 중심 체제의 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자위대의 전면적인 재무장을 천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자국 방위를 위해 독자적인 전술 및 군사 동맹 체계를 고려하기 시작하였고 마침 시작된 중-러 관계 악화와 신냉전 시대의 개막으로 러시아는 쿠릴 열도 공동 통치를 내세우며 일본에 접촉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거점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며 일본을 압박하였고 결국 두 나라는 일본 내에서 보이지 않는 대규모 첩보전을 벌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