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도리오 (영광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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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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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 국가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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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프랑스 사회 공화국 혁명 위원장
제3대 프랑스 돌격대 국가 지도자
자크 도리오
Jacques Doriot
출생 1898년 9월 26일
프랑스 제3왕국 우아즈 브렐
사망 1940년 11월 2일
프랑스 사회 공화국 파리
국적 프랑스 제3왕국 → 프랑스 사회 공화국
재임 기간 프랑스 혁명 위원장
1930년 ~ 1933년
프랑스 돌격대 국가 지도자
1930년 3월 30일 ~ 1939년 1월 19일
소속 정당 프랑스 인민당

개요

Si je suis ici en tant que révolutionnaire aujourd'hui, c'est en tant que révolutionnaire contre la révolution.
만약 내가 오늘 혁명가로서 여기 서게 된다면, 그것은 혁명에 맞선 혁명가로서다.
- 자크 도리오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정치인으로 국가 돌격대의 최고 지도자 였다.

1918년, 젊은 나이에 돌격대의 지휘관이 되어 조르주 발루아의 신임을 얻었으며 직접 돌격대와 수천명의 시민들을 이끌고 베르사유 궁전을 점거하기도 하였다. 그후 쿠데타로 조르주 발루아를 살해하고 직접 혁명 위원장 자리에 올라 돌격대의 영향력을 높임과 동시에 혁명을 더 과격하고 급진적이게 만들었다. 결국 돌격대의 영향력이 커져 직접 네덜란드를 침공했으며 개전선포까지 감행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 다양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결국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프랑수아 드 라 로크가 돌격대를 무력으로 해산 시키며 숙청 당하였다.

생애

사회주의자에서 단결주의자로

도리오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4년 1차세계대전 당시 징집되어 프랑스 왕국군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마른 전투에서 도리오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오스트리아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 포로 생활중 도리오는 마르크스 철학을 접한 이후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게 된다.

알자스 대공세중 오스트리아군이 후퇴하며 구출된 도리오는 프랑스로 돌아가 왕정 폐지를 주장하던 정당인 프랑스 사회당에 들어간다. 사회당 내에서 권력을 잡은 도리오는 파리의 노동 총파업을 지휘 할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당은 극단적인 도리오를 경계하였으며 결국 당에서 퇴출 된다. 이후 도리오는 테러를 일삼고 혁명을 주장하는 돌격대에 들어가 혁명 위원회를 창설한다.

혁명가가 되다

최후

평가

주로 독재자이자 학살자라는 평가가 많다. 같은 혁명위원장이던 프랑수아 드 라 로크는 보수주의~자유주의자들과 연정하며 다른 세력과 화합을 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자크 도리오는 돌격대 간부 인 것을 이용하여 무력으로 다른 세력을 짓눌렀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귀족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으며 귀족 출신인 프랑수아 드 라 로크를 쿠데타로 살해하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어록

선전은 본질상 일종의 예술이다. 그리고 선전원은 엄밀한 단어상 의미에 있어 민중 심리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선전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 시간 민중의 맥박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맥박이 뛰는지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박의 박자에 맞추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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