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제1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1981년 3월 25일
11대 총선
1985년 2월 12일
12대 총선
1989년 3월 26일
13대 총선
투표율 87.64% 감소 5.57%p
선거 결과

민주정의 82석 (27.4%)
(59.9%) 179석 민주연합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민주연합 111석 68석 179석 59.9%
민주정의당 62석 20석 82석 27.4%
신민주공화당 22석 12석 34석 11.4%
무소속 4석 - 5석 1.3%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또는 12대 총선대한민국 제12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85년 2월 12일에 실시하였고, 각 지역구에서 1구2인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199명을, 비례대표인 전국구에서 100명을 총 299명을 선출하였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직전 선거를 통해 민주화 세력을 규합할 필요성을 느꼈다. 양김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1982년 만나 조건 없이 무조건 합당하기로 결정해 1982년 5월 6일 민주연합을 형성했다. 민주연합의 형성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 대통령은 여당인 민정당에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정의당을 장악하려고 시도하던 노태우는 전두환의 손길을 거절하였다.

당시 1984년 말 안기부는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대로 가면 민주정의당이 참패할 것이라며 더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도와줘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전두환은 이를 바탕으로 대구와 경북을 방문하려 했으나, 그의 계획은 노태우에 의해 좌절되었다. 노태우는 총선에서 조금이라도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전국구의 33%를 지역구 1위 정당에 준다는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공약했다.[1]

노태우도 나름 이런 행동에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대한민국은 단순히 경제가 호황일 뿐만 아니라 물가도 안정되는 황금기를 겪고 있었고 삶의 질은 나날히 높아졌다. 이를 토대로 지난 1981년 유세 당시에는 방문할 엄두도 못냈던 전남이나 부산에도 찾아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 살아있는 33% 조항만 있다면 지역구 1위는 당연히 확보할 테니 최소 140석은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과반 확보 실패로 인한 책임은 정부에 돌려 민정당 내에서의 권력 승계도 동시에 치를 심산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준마가 끄는 쌍두마차 민주연합의 대압승으로 끝났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민주연합의 압승은 완전한 민주화를 이룬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이 총선으로 민주정의당은 일시적으로 TK 국경 정당으로 위상이 축소되었다.[2] 하지만 김종필 신민주공화당이 전국적인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에 실패하자, 결국 전국적 보수정당 포지션으로 금세 회귀한다.

선거 정보

  • 총유권자수 : 39,359,404명
  • 대통령 : 전두환 (민주정의당)
  • 의석정수 : 299의석 (지역구 199석 + 전국구 100석)
  • 선거제도 : 중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 투표일 : 1985년 2월 12일

선거 결과

정당별 당선자 수

지역구 국회의원 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구 투표소
기호 정당 득표수 득표율 추가
당선인
원 당선인 총 당선인 비고
1 민주정의당 17,202,089 34.949% 1 123 + 22 146
2 통일민주당 16,703,942 33.937% 1 21 22
3 평화민주당 9,979,389 20.275% 12 12
4 신민주공화당 5,333,998 10.837% 6 6
총계 49,219,418 99.998% 2 184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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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사실 이전의 66% 조항은 지난 1983년, 민주연합이 탄생하자 위기감을 느낀 민정당이 33%로 낮춰놓은 상태였다.
  2. TK(대구경북)과 중국과 접경한 평안북도, 함경도를 중심으로 민정당을 지지해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