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구국)

제12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공식 포스터
1986년 12월 17일
11대 대선
1992년 12월 16일
12대 대선
1998년 12월 16일
13대 대선
투표율 87.49% ▽-%
선거 결과
후보 민주자유당
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득표율
42.9% 46.3%
득표수 16,465,532 17,760,240
당선인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의 제12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1992년 11월 20일에 관보에 공고 후 1992년 12월 18일 실시되었다.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현직 대통령을 득표율 3.4%p, 표차 1,294,708표 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1980년 개헌 이후 세 번째로 시행된 직선제 대통령 선거이다. 1992년 대선 막판 합당을 거쳐 1당으로 올라선 김영삼과 그 김영삼이 얼마 전까지 몸 담았던 구 집권여당을 이끄는 김대중이 경쟁하였다. 특이한 점은 1960년대부터 줄곧 보여왔던 여당의 군인 출신 후보가 사라지고 순수 민간인 출신 후보끼리 벌인 대결이라는 것이다. 즉, 전체적으로 이번 대선은 통합여당과 구 여당의 싸움이었다. 한편, 정주영은 현대그룹의 재력을 바탕으로 국민당을 결성, 대선에 앞서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연합해 통일국민당을 조직하고 14대 총선에서 60석을 획득하며 제3당으로 부상했다.

사실 김영삼의 갑작스러운 민주자유당 창당은 민주정의당 내에서 노태우 대표의 영향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노태우가 당을 장악하고 있었다면 YS, DJ, 노태우, 정주영의 4파전이었겠지만, 노태우를 당 중진들이 압박해 김영삼과 당을 합치자고 부추겼기 때문에 통합여당 민주자유당에서 재선 출마를 확실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지난 10대 대선이 각 후보의 지역을 기반으로 4개로 나눠진 보양인데 반해, 이번 대선은 대체로 영남 대 호남의 대결구도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기반은 민주자유당 창당으로 인해 전통적 지지기반이던 PK뿐만아니라 TK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김대중 후보의 지지기반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정주영은 연고지인 강원도와 김종필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충청도에서 지지를 보탰다.[1]

하지만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으로 여론조사에서 김영삼은 줄곧 앞서나갔다. 또 민주자유당 측에서는 끊임없이 김대중 후보에게 용공론을 펼쳤고, 새정치국민회의 측에서도 김영삼 후보의 "배신"을 비난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 양상이 짙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타개한 것은 의외로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 캠프에서 터트린 초원복집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선거운동기간 내내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후보를 10%p가량 앞서고, 정주영이 김대중의 바로 밑에서 3위를 견고히하던 구도였지만, 부동층이 워낙 많아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초원복집 사건이 터지며 영남권에서의 대대적인 결집이 일어나 정주영의 지지율이 반토막나고 그대로 김영삼 대통령으로 흘러들어갔다. 한편 영남 이외의 지방에서는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 선거를 이기려한 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이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영남 이외의 지역에서 김대중 후보로 결집하는 순풍이 불어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을 3.4%p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여론조사

날짜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노태우 비고
1월 3일
 47.1%
 16.4%
 22.3%
4월 7일
 45.9%
 17.1%
 18.5%
6월 14일
 49.1%
 19.6%
 20.1%
7월 22일
 19.8%
 20.6%
 22.7%
 18.1%
김영삼 대통령 재선 출마 선언
8월 31일
 19.1%
 27.8%
 20.4%
 16.4%
김대중이 민주연합 대선후보로 선출
10월 27일
 21.9%
 29.3%
 15.5%
 12.1%
YS-민정당이 함께 민주자유당 창당
민주연합이 새정치국민회의로 당명 변경
11월 10일
 40.6%
 27.1%
 13.8%
YS가 민자당 대선후보로 선출
11월 25일
 44.3%
 33.8%
 13.1%

결과

각주

  1. 다만 김종필이 대선 후보가 아니었기도 하지만, 이 시기 충청을 대표하는 정당은 아직 없었다. 자민련의 탄생은 이 대선 직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