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제17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
2008년 4월 9일
18대 총선
투표율 70.34% 증가 0.73%p
선거 결과

국민회의·열린우리 145석 (48.5%)
(49.2%) 147석 신한국·자민련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새정치국민회의 110석 28석 138석 46.2%
신한국당 103석 27석 130석 43.5%
자유민주연합 12석 5석 17석 5.7%
민주노동당 3석 4석 7석 2.3%
열린우리당 3석 4석 7석 2.3%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또는 17대 총선대한민국 제17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2004년 4월 15일에 실시하였고, 각 지역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231명을, 비례대표인 전국구에서 68명을 총 299명을 선출하였다.

새정치국민회의와 김대중 정부의 2000년의 역전승 이후 세계적인 경제 호황에 편승효과를 누린 경제 상황은 여당의 지지를 높여줬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2001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어 노동계에서 정치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03년에는 노무현문재인 등의 PK 리버럴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노무현은 지난 1989년 13대 국회에서 민주연합 소속으로 부산에서 당선되었지만, 92년 민주자유당 파동 때에 민주연합에 남는 것을 선택해 국민회의로 소속되어 이후 한번도 당선되지 못하고 2000년까지 계속 부산에 도전했었다. 2003년 초 김대중 대통령이나 당 내 중진들이 영남포기론을 띄우며 국민회의 내에서 PK에의 지원은 사실상 없도록 하는 움직임을 공식화하자 PK의 동료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다.

국민회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포기할 지역에 당을 세우겠다고 간 것이었으니 자생을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국민회의 부산지부를 열린우리당에 넘겨줬다.[1] 열린우리당은 아직까지 지역주의가 남아있던 지방에서 국민회의가 호남자민련이라는 인식보다는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04년 2월 국민회의와 열린우리당은 선거연합을 결성했으며, TK와 PK에서 국민회의의 무공천, 이외 전지역에 열린우리당의 무공천이라는 지역구도 연합이 탄생했다. 이들은 2004년 7월, 총선 직후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또한 마치 하나의 당처럼 같이 치르기로 합의했고 이는 언론의 포장과 보도로 인해 엄청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질세라 신한국당자유민주연합 역시 3월 선거연합을 결성하고, 대선 경선을 합동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즉 국민회의-열린우리와 신한국-자민련의 양강 구도로 굳혀진 것이다.[2] 국민회의는 선거를 앞두고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당장 해소해야할 문제였는데, 열린우리당의 창설은 이런 염증을 해소하기에 딱 알맞은 역할이었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여권의 과반확보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진보성향의 민주노동당이 여권의 정책에 대부분 동조하는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신한국당은 확보 의석 수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중요한 점은 비례대표 득표율이 거의 40%에 근접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물론 오른 5%p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생각해본다면 야권 전체적으로는 큰 반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신한국당 자체로만 본다면 큰 성과를 올린 것이 맞다.

선거 정보

선거 결과

정당별 당선자 수

지역구 국회의원 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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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국민회의가 약한 부산지부라고 해봐야 뭐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국민회의는 전에 민주연합이었고 민주연합은 최초로 성립될 당시 김영삼도 소속되어있던 전국 정당이었다. 그 자산을 받은 셈이니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출발 조건이 좋았다.
  2. 물론 결과적으로 자민련에서 대선 경선 시즌이 다가오자 독자적으로 경선을 치르면서 신한국-자민련 연대는 3개월만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