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데트 클레도리아 왕국

Kelim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21일 (토) 23:59 판 (새 문서: 분류:아르세도스 분류:클레도리아 {{아르세도스 행성}} {{아리에티아 국가 목록}} {{나무위키 국가 정보2 | 너비 = 450px | 테두리 색 = #d9c78f | 배경 = image | 국명 배경 색 = linear-gradient(135deg, #092144 70%, #092144 80%, #a7945d 80%, #a7945d 90%, #092144 90%, #092144) | 배경 색 = #092144 | 글씨 색 = #d9c78f | 국명 = 클레도리아 대왕국 | 원어명 = կmpպωwiɥ ʮɥıʮmɥ𐒋ı௰iɥ{{ref|Cledoría Caiclani...)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아르세도스
Arsedoth
[ 펼치기 · 접기 ]
아리에티아의 국가 목록
Arietía o Merfedethí
[ 펼치기 · 접기 ]
클레도리아 대왕국
կmpպωwiɥ ʮɥıʮmɥ𐒋ı௰iɥ[1]
국기 국장
가호의 빛이여 초원을 밝히소서
fenin deris ah cleth al idràræidn[2]
상징
국가 에운메의 노래
국화
스테보니아푸른동백
국조
헬리나르불사조
역사
4221년 8월 26일 사르티노아의 치욕으로 인해 방계로서 승계, 건국
4389년 6월 21일 메르세클란의 설욕, 수도 탈환
4417년 10월 9일 카르미나스 대왕 즉위
4468년 3월 27일 계곡의 반란, 배경전쟁 발발
4475년 6월 30일 상륙전쟁 발발
4602년 9월 1일 강변전쟁 발발
4609년 4월 21일 메리에데트 대왕 즉위
4811년 3월 19일 직계 단절, 방계 마르카르 가문으로 승계
4816년 2월 9일 아리에티아 통일전쟁 발발
4828년 3월 19일 아리에티아 통일, 클레도리아 제1제국으로 승계
지리
[ 펼치기 · 접기 ]
수도 | 최대 도시
케핀토르시[3][4](4389~4828)
에셀리아시(4221~4288, 4293~4378)
신틀로렌시(4288~4293, 4378~4389)
면적
717,000㎢ (4300년경)
1,352,000㎢ (4450년경)
820,000㎢ (4550년경)
1,165,000㎢ (4650년경)
내수면
29,000㎢
접경국
수르크사 카니겐국, 마즈나스 왕국, 멜란국, 이데르 백국, 오르가르 대공국
하위 행정구역
[ 펼치기 · 접기 ]
30개 전후
인문 환경
[ 펼치기 · 접기 ]
인구
총 인구
46,000,000명 전후 (4450년경)
밀도
34.02명/km²
민족 구성
아리에티아인 95+%, 카니겐인 5% 미만[5]
출산율
4명?~
평균 수명
50세[6]
기대 수명
55세?
공용어
중세 클레도리아어
공용어
에르센드 신식문자 (Ereni Erthendín)
에르센드 고전문자 (Elina Erthendín)
인구
국교
클라르킬리아
분포
클라르킬리아 99+%
군대
클레도리아 왕국군/베르데트 왕조
정치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요인
초공대왕
제?대 ?
재상대신
제?대 ?
경제
[ 펼치기 · 접기 ]
경제 체제
전근대 중상주의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
1인당
?
PPP
GDP
전체
?
1인당
?
수출입액
수출
?
수입
?
신용등급
?
화폐
공식 화폐
클리르/베르데트 왕조 (¢, Cl)
ISO 4217
CS
단위
[ 펼치기 · 접기 ]
법정 연호
드람리아 연속기원
건국기원
시간대
지방시
도량형
아리에티아 토착 단위계
ccTLD
인터넷 발명 이전
국가 코드
도입 이전
전화 코드
전화 발명 이전
영토 지도

개요

클레도리아 초공대왕국(Cledoría Caiclanithía), 약칭 클레도리아(Cledoría)[7], 별칭 클레도리아 제5왕국, 베르데트 왕조, 베르데트 클레도리아 왕국헬리나르 남동부 아리에티아 지역 동북부에 위치했던 전제 군주국이다. 베르데트 가문 혈통으로 이어진 초공대왕이 다스린 국가였으며, 607년의 다사다난한 중세 역사를 함께한 당시의 강국이었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아리에티아 동부를 석권했고, 수르크사 카니겐국의 남방 팽창을 저지한 동시에 고대로부터의 전통 문화를 수호하였다.

상징

역사

베르데트 왕조의 초기 역사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4221년 사르티노아의 치욕으로 인해 수도 케핀토르가 함락되고 코나베르 가문숭고한 카니겐의 국가에 압송되어 멸망한 이후, 방계 자격으로서 승계받아 건국된 것이 제5왕국의 시초였다. 급한 불은 껐지만,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카니겐국을 밀어내는 데 허덕였으며 신틀로렌 회의를 통해 아리에티아 남부의 국가들까지 가세하자 비로소 안정화되었다.

수십 년이 지나 카니겐국도 시름시름 쇠퇴하는 4300년대 중반이 되자, 조용히 힘을 기르고 있던 베르데트 왕조는 반격을 시작하였다. 4378년에는 마르소레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에레수리아현 방면으로 향하는 카니겐국의 보급로를 끊어내었고, 마침내 4389년에는 메르세클란의 설욕으로 하여금 케핀토르를 탈환하였다.

4400년대는 카니겐국을 꺾었다는 자부심 하에, 카르미나스 대왕과 같은 명군의 치세가 어우러진 전성기로 꼽힌다. 이 시기의 베르데트 왕조는 아리에티아 최강의 국가로서 군림했으며, 풍부하고 융성환 문화와 함께 코나베르 왕조 때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아리에티아 연안항로를 통해 루메르스 신성 제국 등등과도 교역하였다.

그러나 4468년,

4828년 아리에티아 통일로 인해 마르카르 가문이 통치하는 클레도리아 제1제국으로 승계되었다.


자연 환경

영토

전성기 기준으로, 영토는 서쪽으로 현대의 스테보니아주 일부와 이데르현까지, 북쪽으로는 에르센디아주 전역과 에드렐로 산맥까지, 남쪽으로는 오르세이아주까지 뻗어나갔다. 그러나 계곡의 반란으로 인한 서방 영토 대거 상실, 상륙전쟁으로 인한 남쪽 변경 지역 상실, 배경전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갈등 등 수많은 영토 변경이 있어왔기에 시대마다 다르다.


지형

기후

인문 환경

인구

인종

연어

종교

교통

행정구역

장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1. Cledoría Caiclanithía
  2. 페닌 데리사 클레살 이드러애이든
  3. Cepintxor
  4. 현재의 수도시와 같다.
  5. 사실 이 이상으로 세세하게 비교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
  6. 영아사망을 제외하면 이렇게 된다. 포함 시 35세 전후.
  7. 그냥 클레도리아 왕국이라 불러도 무방하며, 클레도리아 내에서는 스스로 초공대왕국(Caiclanithía)이라 자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