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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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_정보
{| class="wikitable" style="float: right; text-align: center; border:2px solid #580009;"
| 선거명            = 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국가              = 국민세계관 대한민국
| 국기_연도          =
| 유형              = 의회
| 선거일            = 1992년 3월 24일
| 이전선거          = 제13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이전선거_연도    = 1989년
| 차기선거          = 제1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차기선거_연도    = 1996년
| 선출_의석        = 528
| 과반_의석        = 265
| 투표율            = 71.13%
| 정당색            = yes
<!-- 민주정의당 -->
| 이미지1          = [[파일:Noh_tae_woo_1989.jpg|180x180px]]
| 리더1            = [[노태우 (국민세계관)|노태우]]<br /><small>총재</small>
| 정당1            = 민주자유당
| 색1              = 민주자유당
| 리더_취임1        =
| 리더_선거구1      = 대통령
| 이전선거결과1    =
| 선거전_의석1      =
| 의석1            = '''257석'''
| 의석증감1        =
| 득표수1          = '''19,975,498'''
| 득표율1          = '''42.5%'''
| 득표증감1        =
<!-- 한국국민당 -->
| 이미지2          = [[파일:Toyota_daiju.png|180x180px]]
| 리더2            = [[김대중 (국민세계관)|김대중]]<br /><small>총재</small>
| 정당2            = 민주당
| 색2              = 민주당
| 리더_취임2        =
| 리더_선거구2      = 전국구 1번
| 이전선거결과2    =
| 선거전_의석2      =
| 의석2            = 166석
| 의석증감2        =
| 득표수2          = 15,394,284
| 득표율2          = 32.7%
| 득표증감2        =
<!-- 한국국민당 -->
| 이미지4          = [[파일:jeong_ju_yeong.png|180x180px]]
| 리더4            = [[정주영]]<br /><small>총재</small>
| 정당4            = 통일국민당
| 색4              = 통일국민당
| 리더_취임4        =
| 리더_선거구4      = 전국구 3번
| 이전선거결과4    =
| 선거전_의석4      =
| 의석4            = 99석
| 의석증감4        =
| 득표수4          = 11,585,389
| 득표율4          = 24.6%
| 득표증감4        =
<!-- map -->
| 지도_이미지      =
| 지도_크기        =
| 지도_설명        =
<!-- bottom -->
| 직책              = 의장
| 선거전            = 박준규
| 선거전_정당      = 민주자유당
| 선거후            = [[박준규]]
| 선거후_정당      = 민주자유당
}}
'''대한민국 제14대 총선'''(大韓民國第14代總選)은 [[대한민국 제14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2년]] [[3월 24일]]에 실시하였고, 각 지역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334명을, 비례대표(比例代表)인 전국구(全國區)에서 192명을 총 528명을 선출하였다.
 
== 선거 정보 ==
* 총유권자수 : 66,013,175명
* 대통령 : [[노태우 (국민세계관)|노태우]] ([[민주자유당]])
* 의석정수 : 528의석 (지역구 334석 + 전국구 194석)
*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 투표일 : [[1992년]] [[3월 24일]]
 
== 선거 결과 ==
=== 정당별 당선자 수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80%;"  
|+정당별 당선자 수 (명)
|-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합계
|-
!민주자유당
| 175
| 82
| {{막대|청|10|0}}{{막대|청|10|0}}{{막대|청|5|7}} 257
|-
|-
!민주당
| colspan="5" style="background: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color:#580009; color: #ffffff" | <center>'''{{big|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center>
| 102
| 64
| {{막대|녹|10|0}}{{막대|녹|6|6}} 166
|-
|-
!통일국민당
| colspan="5" style="font-size: 11pt; color: #DB001C; background: #ffffff;" | <center><div style="margin: -5.0px -9.0px">[[파일:rok 14.png|420px]]</div></center>
| 51
| 48
| {{막대|자민|9|9}} 99
|-
|-
!무소속
| colspan="5"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580009;" |
| 6
{| class="wikitable"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6px -1px 11px; font-size: 10.5pt; text-align: center; width: calc(100% + 20px); border: 1px solid #dddddd"
| -
|+
| {{막대||0|5}} 6
| colspan="1" width="30%" style="font-size: 10pt;" |{{small|[[1989년]] [[3월 26일]]}}<br>[[제13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13대 총선]]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 #f6f7f9;" |→
| colspan="1" width="30%" style="font-size: 10pt;" |{{small|[[1992년]] [[3월 24일]]}}<br>[[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14대 총선]]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 #f6f7f9;" | →
| colspan="1" width="30%" style="font-size: 10pt;" |{{small|[[1996년]] [[4월 11일]]}}<br>[[제1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15대 총선]]
|-
|-
|}
|}
=== 지역구 국회의원 결과 ===
{| class="wikitable"
! 지역
! 민주자유당
! 민주당
! 통일<br />국민당
! 무소속
! 합계
|-
|-
| 서울
| colspan="5" style=" 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580009;" |
| {{막대|청|4|3}} 17
| {{막대|녹|4|6}} 18
| {{막대|자민|0|8}} 3
| {{막대|무|0|3}} 1
| 39
|-
|-
| 경기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580009; background: #f6f7f9;" |'''투표율'''
| {{막대|청|6|2}} 24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10pt;" |77.31% {{small|{{감소}} 4.60%p}}
| {{막대|녹|2|8}} 11
| {{막대|자민|1|0}} 4
|
| 39
|-
|-
| 인천
| colspan="5"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580009;" | '''선거 결과'''
| {{막대|청|5|3}} 8
| {{막대|녹|3|3}} 5
| {{막대|자민|0|7}} 1
| {{막대|무|0|7}} 1
| 15
|-
|-
| 강원
| colspan="5" | [[파일:ROK General election result 14.svg|380px]]<br><div style="margin: -10px 0px">{{글씨 크기|8|}}</div>
| {{막대||10|0}} 3
|
|
|
| 3
|-
|-
| 부산
| colspan="5" style="background-color:#aaaaaa; text-align:left; color:#fff; 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0BA86 47.9%, #787878 47.9%, #787878 48.2%, #101299 48.2%, #101299 48.5%, #22B14C 48.5%, #22B14C 68.6%, #0A84E9 68.6%);" |{{align|left|{{글씨 크기|11.5|민주연합}} {{글씨 크기|8.5|143석 (47.9%)}}}} {{align|right|{{글씨 크기|8.5|(31.4%) 94석}} {{글씨 크기|11.5|민주정의}}}}
| {{막대||7|4}} 14
| {{막대||1|6}} 3
| {{막대|자민|1|0}} 1
| {{막대||1|0}} 1
| 19
|-
|-
| 울산
| colspan="1" width="25%" style="font-size: 10pt; color: #580009; background: #f6f7f9;" |'''정당'''
| {{막대|청|3|3}} 2
| colspan="1" width="18%" style="font-size: 10pt; color: #580009; background: #f6f7f9;" |'''지역구'''
|  
| colspan="1" width="18%" style="font-size: 10pt; color: #580009; background: #f6f7f9;" |'''전국구'''
| {{막대|자민|6|7}} 4
| colspan="1" width="18%" style="font-size: 10pt; color: #580009; background: #f6f7f9;" |'''총합'''
|  
| colspan="1" width="18%" style="font-size: 10pt; color: #580009; background: #f6f7f9;" | '''비율'''
| 6
|-
|-
| 경남
| style="font-size: 10pt; " |{{민주연합 (구국)}}
| {{막대|청|8|8}} 14
| style="font-size: 10pt; " |'''101석'''
| {{막대|녹|0|6}} 1
| style="font-size: 10pt; " |'''42석'''
|  
| style="font-size: 10pt; " |'''143석'''
| {{막대||0|6}} 1
| style="font-size: 10pt; " |'''47.9%'''
| 16
|-
|-
| 대구
| style="font-size: 10pt; " |{{민주정의당 (구국)}}
| {{막대|청|6|0}} 6
| style="font-size: 10pt; " |'''67석'''
|  
| style="font-size: 10pt; " |'''27석'''
| {{막대|자민|4|0}} 4
| style="font-size: 10pt; " |'''94석'''
|  
| style="font-size: 10pt; " |'''31.4%'''
| 10
|-
|-
| 경북
| style="font-size: 10pt; " |{{통일국민당 (구국)}}
| {{막대|청|8|2}} 9
| style="font-size: 10pt; " |'''43석'''
|  
| style="font-size: 10pt; " |'''17석'''
| {{막대|자민|1|8}} 2
| style="font-size: 10pt; " |'''60석'''
|  
| style="font-size: 10pt; " |'''20.1%'''
| 11
|-
|-
| 광주
| style="font-size: 10pt; " |{{신정치개혁당 (구국)}}
|  
| style="font-size: 10pt; " | '''1석'''
| {{막대||10|0}} 6
| style="font-size: 10pt; " |'''0석'''
|  
| style="font-size: 10pt; " |'''1석'''
|  
| style="font-size: 10pt; " |'''0.3%'''
| 6
|-
|-
| 전남
| style="font-size: 10pt; " |{{무소속}}
|
| style="font-size: 10pt; " |'''1석'''
| {{막대|녹|10|0}} 14
| style="font-size: 10pt; " | -
|
| style="font-size: 10pt; " |'''1석'''
|
| style="font-size: 10pt; " |'''0.3%'''
| 14
|-
| 전북
| {{막대|청|1|8}} 3
| {{막대|녹|8|2}} 14
|
|
| 17
|-
| 대전
| {{막대|청|3|3}} 2
| {{막대|녹|5|0}} 3
|
| {{막대|무|1|7}} 1
| 6
|-
| 충남
| {{막대|청|4|0}} 4
| {{막대|녹|3|0}} 3
| {{막대|자민|3|0}} 3
|
| 10
|-
| 충북
| {{막대|청|5|0}} 7
| {{막대|녹|2|2}} 3
| {{막대|자민|2|8}} 4
|
| 14
|-
| 평양
| {{막대|청|6|2}} 13
| {{막대|녹|2|8}} 6
| {{막대|자민|1|0}} 2
|
| 21
|-
| 남포
| {{막대|청|2|3}} 3
| {{막대|녹|3|1}} 4
| {{막대|자민|4|6}} 6
|
| 13
|-
| 황해
| {{막대|청|6|4}} 20
| {{막대|녹|1|6}} 5
| {{막대|자민|2|0}} 6
|
| 31
|-
| 평남
| {{막대|청|5|3}} 8
| {{막대|녹|2|7}} 4
| {{막대|자민|2|0}} 3
|
| 15
|-
| 신의주
| {{막대|청|3|3}} 2
| {{막대|녹|1|7}} 1
| {{막대|자민|3|3}} 2
| {{막대|무|1|7}} 1
| 6
|-
| 평북
| {{막대|청|9|0}} 9
| {{막대|녹|1|0}} 1
|
|
| 10
|-
| 원산
| {{막대|청|2|5}} 1
|
| {{막대|자민|7|5}} 3
|
| 4
|-
| 나선
| {{막대|청|10|0}} 3
|
|
|
| 3
|-
| 함경
| {{막대|청|4|0}} 2
|
| {{막대|자민|6|0}} 3
|
| 5
|-
| 제주
| {{막대|청|10|0}} 1
|
|
|
| 1
|-
! 전국
| {{막대|청|5|2}} 175
| {{막대|녹|3|0}} 102
| {{막대|자민|1|5}} 51
| {{막대|무|0|3}} 6
| 334
|-
|-
|}
|}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또는 '''14대 총선'''은 [[대한민국 제14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2년]] [[3월 24일]]에 실시하였고, 각 지역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213명을, 비례대표인 전국구에서 86명을 총 299명을 선출하였다.
이번 총선은 지난 총선거가 실시된지 불과 3년만에 실시되게 되었다. 1991년 국회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의 기간을 맞춰 정부와 국회의 동조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13대 국회의 임기를 1년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가 그런 것이고 이것에 동의한 이유에는 정당마다의 셈법이 작용했다. 먼저 여당인 [[민주연합]]은 당시 사실상 대권 후보인 [[김대중 (구국)|김대중]]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 김대중은 [[김영삼 (구국)|김영삼]] 대통령과의 지난 약속이 있었지만, 김영삼이 반드시 다음 대권 경선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기 전인 1992년 초에 자신이 당권을 가진 상태에서 당을 동교동계 중심의 의회로 재구성하길 원했다.  김영삼 역시 비슷한 이유였는데, 자신이 다시 대권에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상도동계에서는 파다하게 퍼져있는 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당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있는 13대 국회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쏠린 새 국회에서 재선 출마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 훨씬 정치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ref>만약 동교동계가 당을 장악한다면, 김영삼은 그러면 그거대로 경선 불복과 탈당 명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f>
[[민주정의당 (구국)|민주정의당]]의 경우에는 지난 대선 이후 축소된 [[노태우 (구국)|노태우]] 총재의 위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런 변수 없이 92년 대선을 치르기에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하지만 노태우 총재는 이 시기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태우는 지난 89년 총선에서 이미 정치적 후계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태우는 말 그대로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서 13대 국회의 조기 종료라는 승부수에 패를 던진 것이다.
[[신민주공화당 (구국)|신민주공화당]]과 김종필은 89년 총선 이후 눈에 띄게 정치력을 잃고 있었다. 보수 야당이라는 포지션은 민정당이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고, 민정당을 구 군부의 연장이라고 공공연히 비판하기에는 김종필 자신의 출신 또한 군부였기 때문에 정통성에서도 흠결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주영은 1990년 정계 입문을 선언하며 국민당을 차렸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이야기 하는 기업인이라는 신선함은 정계에 새바람을 불게하기에 충분했다. 김종필은 당장 정주영이 가지지 못한 원내에서의 영향력을 늘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국민당과 합당을 추진했다. 이로써 [[통일국민당 (구국)|통일국민당]]이 91년 6월 성사되었다. 김종필은 대권을 정주영에 양보하는 대신 당권을 요구했고, 정주영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김종필은 대선 전에 통일국민당 내에서 입지를 다져놓기 위해서 13대 국회의 임기 단축에 찬성했다.
결국 원내 3당이 모두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국회의 압도적인 찬성을 통해 13대 국회는 1992년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무난하게 민주연합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물론 민주연합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을 향해 불편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대중은 과반 확보 실패는 뼈아픈 실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동교동계를 전체 의원의 70%가 넘는 수준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당내 질서 재편에는 만족했다. 민주정의당은 원내 2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노태우의 노력에도 반등에 실패했으며, 오히려 의석이 줄며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일국민당은 무려 60석을 확보해 92년에 예정된 대선에서 여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선거 이후 민주연합 대통령 경선 직전인 92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재선 출마 의지를 확고히 하자, 민주연합은 내분에 빠졌다. 김대중은 약속을 종잇조각처럼 여기는 사람은 국민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8월에 진행된 민주연합 경선은 김대중의 무난한 승리로 끝났지만,<ref>민주연합 내에서도 대통령이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반감이 굉장했기 때문에 김대중은 생각보다 큰 격차로 승리했다. 물론 92년 총선에서 얻은 동교동계 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얻어낸 성과이기도 하다.</ref> 김영삼 대통령은 경선 결과에 불복 상도동계를 이끌고 탈당을 감행해 노태우를 만나 [[민주자유당 (구국)|민주자유당]]을 창당 후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선거 정보==
* 총유권자수 : 43,891,201명
*대통령 : [[김영삼 (구국)|김영삼]] ([[민주연합]])
*의석정수 : 299의석 (지역구 213석 + 전국구 86석)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 투표일 : [[1992년]] [[3월 24일]]


=== 비례대표 국회의원 결과 ===
==선거 결과 ==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1991년 개정 국회의원선거법에 따라 지역구 국회의원의 당선자 수와 관계없이 오직 득표율만으로 비례대표를 배분하게 된다. 따라서 비례대표 194석을 배분하는 민주화 이후의 첫 선거이다.
===정당별 당선자 수===
{| class="wikitable"
=== 지역구 국회의원 결과===
! colspan="8" | 전국구 투표소
===비례대표 국회의원 결과===
|-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 기호
== 둘러보기 ==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추가<br />당선인
! 원 당선인
! 총 당선인
! 비고
|-
| '''1'''
| '''[[민주자유당]]'''
| '''19,975,498'''
| '''{{막대|청|4|2}} 42.541%'''
|
| '''82'''
| '''82'''
|
|-
| 2
| [[민주당]]
| 15,394,284
| {{막대|녹|3|3}} 32.785%
| 1
| 63
| 64
|
|-
| 3
| [[통일국민당]]
| 11,585,389
| {{막대|자민|2|4}} 24.673%
| 1
| 47
| 48
|
|-
!  colspan="2" | 총계
| 46,955,171
| 99.999%
| 2
| 192
| 194
|
|-
|}
{{대한민국의 선거}}
{{대한민국의 선거}}
== 각주 ==
[[분류:구 국민세계관]]
<references />

2023년 2월 27일 (월) 12:25 기준 최신판

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1989년 3월 26일
13대 총선
1992년 3월 24일
14대 총선
1996년 4월 11일
15대 총선
투표율 77.31% 감소 4.60%p
선거 결과

민주연합 143석 (47.9%)
(31.4%) 94석 민주정의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민주연합 101석 42석 143석 47.9%
민주정의당 67석 27석 94석 31.4%
통일국민당 43석 17석 60석 20.1%
신정치개혁당 1석 0석 1석 0.3%
무소속 1석 - 1석 0.3%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또는 14대 총선대한민국 제14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2년 3월 24일에 실시하였고, 각 지역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213명을, 비례대표인 전국구에서 86명을 총 299명을 선출하였다.

이번 총선은 지난 총선거가 실시된지 불과 3년만에 실시되게 되었다. 1991년 국회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의 기간을 맞춰 정부와 국회의 동조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13대 국회의 임기를 1년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가 그런 것이고 이것에 동의한 이유에는 정당마다의 셈법이 작용했다. 먼저 여당인 민주연합은 당시 사실상 대권 후보인 김대중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 김대중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지난 약속이 있었지만, 김영삼이 반드시 다음 대권 경선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기 전인 1992년 초에 자신이 당권을 가진 상태에서 당을 동교동계 중심의 의회로 재구성하길 원했다. 김영삼 역시 비슷한 이유였는데, 자신이 다시 대권에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상도동계에서는 파다하게 퍼져있는 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당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있는 13대 국회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쏠린 새 국회에서 재선 출마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 훨씬 정치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1]

민주정의당의 경우에는 지난 대선 이후 축소된 노태우 총재의 위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런 변수 없이 92년 대선을 치르기에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하지만 노태우 총재는 이 시기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태우는 지난 89년 총선에서 이미 정치적 후계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태우는 말 그대로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서 13대 국회의 조기 종료라는 승부수에 패를 던진 것이다.

신민주공화당과 김종필은 89년 총선 이후 눈에 띄게 정치력을 잃고 있었다. 보수 야당이라는 포지션은 민정당이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고, 민정당을 구 군부의 연장이라고 공공연히 비판하기에는 김종필 자신의 출신 또한 군부였기 때문에 정통성에서도 흠결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주영은 1990년 정계 입문을 선언하며 국민당을 차렸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이야기 하는 기업인이라는 신선함은 정계에 새바람을 불게하기에 충분했다. 김종필은 당장 정주영이 가지지 못한 원내에서의 영향력을 늘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국민당과 합당을 추진했다. 이로써 통일국민당이 91년 6월 성사되었다. 김종필은 대권을 정주영에 양보하는 대신 당권을 요구했고, 정주영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김종필은 대선 전에 통일국민당 내에서 입지를 다져놓기 위해서 13대 국회의 임기 단축에 찬성했다.

결국 원내 3당이 모두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국회의 압도적인 찬성을 통해 13대 국회는 1992년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무난하게 민주연합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물론 민주연합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을 향해 불편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대중은 과반 확보 실패는 뼈아픈 실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동교동계를 전체 의원의 70%가 넘는 수준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당내 질서 재편에는 만족했다. 민주정의당은 원내 2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노태우의 노력에도 반등에 실패했으며, 오히려 의석이 줄며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일국민당은 무려 60석을 확보해 92년에 예정된 대선에서 여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선거 이후 민주연합 대통령 경선 직전인 92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재선 출마 의지를 확고히 하자, 민주연합은 내분에 빠졌다. 김대중은 약속을 종잇조각처럼 여기는 사람은 국민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8월에 진행된 민주연합 경선은 김대중의 무난한 승리로 끝났지만,[2] 김영삼 대통령은 경선 결과에 불복 상도동계를 이끌고 탈당을 감행해 노태우를 만나 민주자유당을 창당 후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선거 정보

  • 총유권자수 : 43,891,201명
  • 대통령 : 김영삼 (민주연합)
  • 의석정수 : 299의석 (지역구 213석 + 전국구 86석)
  •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 투표일 : 1992년 3월 24일

선거 결과

정당별 당선자 수

지역구 국회의원 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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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만약 동교동계가 당을 장악한다면, 김영삼은 그러면 그거대로 경선 불복과 탈당 명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2. 민주연합 내에서도 대통령이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반감이 굉장했기 때문에 김대중은 생각보다 큰 격차로 승리했다. 물론 92년 총선에서 얻은 동교동계 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얻어낸 성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