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9일 대영연방제국 카디프에서 태어나 카디프초등학교, 카디프중학교, 옥스퍼드고등학교 졸업 후 2010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법학과 졸업 2014년 오슬로대학교에 입학해 정치외교학부 정치학전공과 졸업한다. 그 후 6년 동안 모 언론사에서 출판업에 종사하면서도, 해외여행을 다니며 지내다가 2020년 노르웨이 왕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
노르웨이 귀화 이후 2020년 왕실대변인을 맡은 그는 정계에도 발을 딛게 됐다. 보수당에 입당하면서 정계 입문을 선언했으나 윌리엄 바 사태와 본인 발언으로 인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치의 꿈은 사실상 좌절되는 듯 했다. 일련의 파장이 끊이질 않자 노르웨이를 떠나 해외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김명박 총리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뜻밖의 기회를 마주했다. 소식을 들은 김희성은 곧바로 귀국하여 가죽자유통일당에 입당한 후 김명박 악마화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다시금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기준으로 젠틀한 이미지와 지적인 언행으로 조금씩 주목받았으며, 탄핵 정국을 계기로 정치적 부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과거 행적이 다시 조명받자 일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노르웨이 주권수호운동이 일어나면서 그의 과거 행적으로 인한 논란은 사그라들며, 비교적 원만하게 또 한번의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에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번아웃'을 이유로 정계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3년 보수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재건회의 의장과 국왕을 역임한 이미미와 호흡을 맞추며 소위 '이미미 사단'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는 등 보수당에서 2인자로 군림했다. 당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7대 의회에 이어 8대 의회에도 성공적으로 입성했으나, 이미미가 자진해서 당을 해산하고 정계은퇴 하자, 리틀의 부흥당으로 입당했다. 부흥당에는 악연이 있던 김명박이 먼저 와있었지만 김희성의 진심어린 사과로 원만하게 화해하였다.
2024년9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유력 인사였던 리틀과 김명박이 총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단숨에 유력 총리 후보로 하마평 됐다. 마침 원내에 입성하게 되면서 당내 경선 없이 총리 후보로 올랐다. 결국 재석의원 129인 중 찬성 125인, 반대 4인의 득표로 노르웨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당내에서 계파 갈등이 터지게 되면서 리틀과 이미미를 따라 새로운부흥으로 분당하게 됐다. 10대에 이어, 11대에도 원내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