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 폭동 (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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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2025~2030년을 기준으로 서술합니다






전미 폭동
Great American Riots

민주주의와 이를 추종하는 문명들의 운명이 다시금 시험대 위에 올랐습니다.
집안은 분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며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을 저버렸습니다.
현재 이들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정답인지 물을 것 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결단 입니다.
먼 훗날 후손들이 이 일을 기억할 때, 그들의 이름이 비겁함이 아닌 용기로 기억되길 바랄 뿐입니다.



  • 배경

2027년, 제2차 중동대전의 여파로 제4차 오일 쇼크가 발생하면서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10달러를 돌파하고, 물가 상승률이 급등하며 사회 전반에 불안이 확산되었다. 경제 붕괴로 인해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개혁도 차질을 빚었고, 이에 대한 각종 음모론이 퍼지며 정치적 분열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연합당의 극좌파 의원이었던 빌 디블라지오가 극우 성향의 참전군인 존 맥팔랜드에게 저격 당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 전역에서 좌우 세력 간의 긴장을 폭발시키게 된다.

  • 전개

2027년 5월 10일,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에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해당 사건은 본래 대학 내에서 진행되던 좌파 학생 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위대는 경제 불평등, 인종 차별, 무분별한 군사 개입, 그리고 경찰 권력 남용 등에 항의하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집회는 극단적인 정치적 긴장 상황 속에서, 이를 위헌적 선동이라 규정한 극우 민병대 세력이 캠퍼스에 출현하면서 급격히 충돌 국면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민병대와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은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경찰 병력의 개입을 불러왔고, 진압 과정에서 과잉 대응 논란이 불거지는 폭력 사태로 비화되었다. 곧이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혼란스러운 충돌 중 최소 7명이 사망하고 15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컬럼비아 대학교 사건'으로 명명되었으며, 사건 직후 관련 영상과 정보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며, 미국 사회 전반에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다.

해당 사건은 단순한 캠퍼스 시위에서 비롯된 국지적 충돌을 넘어, 미국 전역에 쌓여 있던 사회적 갈등의 뇌관을 폭발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사건 발생 수시간 만에, 각지의 대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는 곧 대규모 폭동과 도시 불안 사태로 확산되었다. 시위는 단지 정치적 이념을 넘어, 인종, 계층, 종교, 성적 정체성, 경제적 소외 등 복합적인 갈등을 기반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는 더욱 파편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폭동 중 다수의 유대인 공동체 시설과 이슬람 사원, 그리고 특정 인종 커뮤니티가 폭도의 표적이 되었고, 증오 범죄와 종교 갈등이 동시에 격화되었다. 도시 곳곳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폭력이 발생했고, 사태를 틈탄 조직적 약탈 행위가 극에 달하면서 수많은 소매점, 대형 마트, 창고들이 털렸으며, 다수의 상업지구는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대도시 중심부뿐 아니라 교외로까지 방화, 기물 파손, 무차별 폭행 사건이 확산되며, 치안은 사실상 붕괴된 지역들이 다수 발생하였다.

사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자, 연방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각 주에 주방위군을 긴급 투입하는 초강경 대응에 돌입했다. 전투복과 중화기로 무장한 주방위군 병력은 주요 도심에 배치되어 일부 시위를 강제 해산하고 야간 통행 금지 조치를 실시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실탄 사용이 허가된 충돌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 진압 조치는 일시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민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경찰과 군 당국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대응을 불신한 다수의 시민들이 무장 자경단을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나서면서, 각 지역마다 자경단이 등장해 지역 치안 유지 명분으로 자체 무장 순찰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 자경단들 중 일부는 실제로 지역 폭동을 억제하고 방화를 막기도 했으나,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무력 충돌에 개입하거나, 무고한 시민들을 자의적으로 검문·구금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폭동의 불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고, 대도시에서 시작된 폭력 사태는 점차 교외 지역 및 중소 도시로까지 번져갔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직적인 극우 민병대 세력이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무장 행진을 감행하였으며, 반대로 좌파 계열의 단체들은 이를 파시스트 위협으로 규정하고 저항의 명분으로 무장 시위를 확대하였다. 이러한 대립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도심 내 총격전이나 경찰과의 교전 등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준하는 국지 분쟁을 발생시켰고, 일부 극우 민병대는 심지어 워싱턴 D.C. 중심가에서 가두 무장 행진을 실시하면서 연방 정부의 명백한 도전을 선언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연방 정부는 연방군, 특히 미 해병대를 포함한 현역 정규군 병력을 본격적으로 투입하였고, 수도권 방어 작전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워싱턴 D.C. 일대에 헬기와 장갑차가 배치되고, 주요 정부 청사 주변에는 전투태세의 병력들이 주둔하는 등, 연방 수도조차 안정적 통제에서 벗어날 위기에 봉착하게 되며, 미국은 사상 초유의 국가적 위기, 나아가 본격적인 내전 발발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 루트 A: 폼페이오
누군가는 선택해야 합니다.


[ 분기점: "의회를 무력화 시키고 행정권을 장악한다." ]

오랜 갈등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결정은 분명 많은 지지를 받을 것 입니다.

중도에서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마이크 폼페이오는, 취임 직후부터 정치·사회 전반의 대대적인 개혁과 동시에 군의 재무장을 추진할 것을 천명하며 강한 국가를 지향하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야당인 연방당은 친기업적이고 관료 중심의 기조를 유지하며 폼페이오 정부의 개혁 노선에 강하게 반발했고, 2026년 제2차 중동대전으로 인한 국제적 혼란과 경제 불안 속에 치러진 상원 선거에서 여당인 연합당이 대패하자, 이를 기회 삼아 의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연방당은 그의 핵심 정책 대부분을 상임위 단계에서 무력화하거나 본회의에서 부결시키며 행정부의 입법 동력을 사실상 차단했다.

이처럼 정부와 의회 간의 충돌이 장기화되던 가운데, 2027년에는 연합당 내 극좌파 성향을 대표하던 빌 디블라지오 의원이 극우 민병대 출신 참전군인 존 맥팔랜드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해당 사건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지며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 간의 충돌이 폭력적으로 격화되었고, 수많은 시위가 약탈과 방화로 번지면서 다수의 경찰서와 행정 기관이 마비되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주 방위군까지 투입되었지만 혼란은 수습되지 못한 채 더욱 확산되었다. 많은 주에서 공권력이 무너지고 혼란이 장기화되자 대중은 점차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에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고, 무기력한 의회와 정파 간 갈등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오히려 강력한 행정부가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돌아서게 되었으며, 과거부터 일관되게 강력한 질서 회복과 행정 집중을 주장해온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게 된다.

한편, 폼페이오는 이미 상원의원 재직 시절부터 미국 내 보수 정치 세력뿐만 아니라, 전직 장성들과 특수부대 출신 인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고 견고한 인맥을 구축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 및 국방 관련 의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 이러한 인적 기반은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기 이전부터 이미 향후 국정 운영에 있어 군・정보기관과의 긴밀한 공조를 전제한 권위주의적 국정 스타일을 가능하게 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폼페이오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인물들을 정보기관과 국방부의 요직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였다. 특히, 반연방당, 친폼페이오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고위직에 포진시키는 인선 전략을 펼쳤으며, 이는 그에게 보다 과감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치적・행정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결국, 2027년 4월 27일, 폼페이오 대통령은 미국 북부사령부를 통해 사전에 준비해두었던 비상대응계획, 이른바 'CONPLAN 3502'의 실행을 공식 명령하게 된다. 이 계획의 시행을 통해, 그는 연방재난관리청 관련 법령의 일시적 유예를 기반으로 민병대 소집법을 중단시켰으며, 주방위군 및 연방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연방정부 중앙으로 일시적으로 집중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동시에, 폼페이오는 루비오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외교・정보기관 인맥, 그리고 CIA 국장으로서의 인사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연방 정보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발생한 무장 폭동과 사회 불안 사태의 배후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이란 간의 연결고리 등 외국 세력의 개입 정황이 있다는 보고서가 언론과 정계에 등장하면서, 폼페이오는 이를 근거로 FBI 국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대통령 직속 안보 고문 출신 인사를 후임 국장으로 임명하였다. 새로 임명된 국장은 취임 직후, FBI 내부의 고위 간부 다수를 내통 혐의 및 정보 조작・외부 유출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압박을 가함으로써, 조직 내 협조 세력을 효과적으로 정비하고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정보 라인을 확보하였다. 한편, 국가안보국은 백악관 산하 국가안전보장회의 직속 특별팀에 흡수되는 구조 개편을 단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NSA의 일부 감청 및 정보 수집 권한이 대통령실로 직접 이전되는 전례 없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와 병행해, 의회의 움직임과 각 주 정부의 독자적 대응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연방정부는 내란 상황 시 각 주의 법령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별입법인 '연방 질서보호법'을 긴급히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해당 법령은 대통령에게 일시적인 비상 입법 권한을 부여하며, 기존의 하원 입법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그 권한을 '비상시 예산조정 및 안전보장이사회'라는 대통령 직속 5인 회의체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폼페이오는 법률 제정과 예산 배분 등 핵심 입법 권한을 행정부 주도로 일원화하는 데 성공한다.




  • 루트 B: 부티지지
누군가는 선택해야 합니다.


[ 분기점: "기회를 노려 반대파를 축출하고 개혁을 완수한다." ]

반대파가 무력화 될 것 입니다. 개혁은 성공할 것입니다.

[ 분기점: "갈등을 봉합하고 합의점을 찾는다." ]

많은 이들이 현재의 체제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이 결정은 그 어떤 길보다 험난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