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구원전선 (서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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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아조우 연대에 편입되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함께 최전방에 투입되며 교전을 치뤘고 키이우 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드고르드 정전 협정을 통해 전쟁에서 물러났고 동부 영토를 상당수 러시아계 반군들에게 빼앗기며 혼란시를 맞이한다. 비트리프당의 민병대는 아조우 연대에서 나와 옛 독일의 나치 사상을 계승하며 급진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우크라이나의 확장주의를 주항햇다. 이를 통해 국가구원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게 된다.  
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아조우 연대에 편입되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함께 최전방에 투입되며 교전을 치뤘고 키이우 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드고르드 정전 협정을 통해 전쟁에서 물러났고 동부 영토를 상당수 러시아계 반군들에게 빼앗기며 혼란시를 맞이한다. 비트리프당의 민병대는 아조우 연대에서 나와 옛 독일의 나치 사상을 계승하며 급진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우크라이나의 확장주의를 주항햇다. 이를 통해 국가구원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게 된다.  


전쟁 직후 인민당 정부가 리비우로 천도한뒤 국민해방전선이 활동을 시작하며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은 혼란에 빠진다. 이 시기를 틈타 동부 영토에서는 친러 반군들이 드니프로 강을 넘어왔고 국가구원전선은 다수의 실전 경험을 쌓은 전문적인 군대를 조직해 이들에 맞써게 된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인 체르카시를 점령하고 군벌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2차 바람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혁명의 여파로 체르카시에서만 2천명의 이상의 성소수자,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자유 러시아군, 혁명 반대파 군부 세력들이 학살 당했으며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 받게 된다.
전쟁 직후 인민당 정부가 리비우로 천도한뒤 국민해방전선이 활동을 시작하며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은 혼란에 빠진다. 이 시기를 틈타 동부 영토에서는 친러 반군들이 드니프로 강을 넘어왔고 국가구원전선은 다수의 실전 경험을 쌓은 전문적인 군대를 조직해 이들에 맞써게 된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인 체르카시를 점령하고 군벌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2차 바람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혁명의 여파로 체르카시에서만 2천명의 이상의 성소수자,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자유 러시아군, 혁명 반대파 군부 세력들이 학살 당했으며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 받게 된다.




[[분류:서풍/단체 및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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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1일 (토) 21: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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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구원전선
національна армія допомоги

우크라이나의 네오 나치 무장 단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발트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 직후 모습을 들어냈으며 자신들을 국가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한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활동하고 있다.



  • 역사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바람 혁명의 여파로 정파, 지역, 민족간의 갈등이 폭발하던 시기에 반데라주의로 바탕으로한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정당이다 국가구원군의 전신 인 우크라이나 비트리프당이 창당된다. 비트리프당은 바람 혁명 세력에 동참해 집회를 열어 폭력적 저항 운동을 펼쳤고 2014년 키이우 점령에도 참여하여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파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같은해 치루어진 선거로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던 우크라이나 인민당이 정권을 잡으며 활동이 잠잠해 졌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동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의 도네츠크 봉기가 발생하고 곧 돈바스 내전으로 번지자 비트리프당은 당 휘하의 자체적인 민병대를 조직,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인들과 군장병들을 돕겠다 나섰고 민병대 초반의 인도주의적 활동은 점차 공격적, 급진적으로 변해갔다. 이 시기부터 비트리프당은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색체가 빠지고 네오 나치, 파시즘을 추종하는 정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아조우 연대에 편입되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함께 최전방에 투입되며 교전을 치뤘고 키이우 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드고르드 정전 협정을 통해 전쟁에서 물러났고 동부 영토를 상당수 러시아계 반군들에게 빼앗기며 혼란시를 맞이한다. 비트리프당의 민병대는 아조우 연대에서 나와 옛 독일의 나치 사상을 계승하며 급진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우크라이나의 확장주의를 주항햇다. 이를 통해 국가구원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게 된다.

전쟁 직후 인민당 정부가 리비우로 천도한뒤 국민해방전선이 활동을 시작하며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은 혼란에 빠진다. 이 시기를 틈타 동부 영토에서는 친러 반군들이 드니프로 강을 넘어왔고 국가구원전선은 다수의 실전 경험을 쌓은 전문적인 군대를 조직해 이들에 맞써게 된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인 체르카시를 점령하고 군벌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2차 바람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혁명의 여파로 체르카시에서만 2천명의 이상의 성소수자,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자유 러시아군, 혁명 반대파 군부 세력들이 학살 당했으며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