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풍 작전 (서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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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크기|17|'''상세'''}}<br>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모호한 전쟁, 21세기 들어 가장 큰 규모와 파괴력을 자랑하는 전쟁. 제2차 조국 수호 전쟁, 또는 대동방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2033년, 중동 대전과 북극해 군사 충돌 사건의 여파 속에서 발생했다. 본래 푸틴 체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균형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는 구조였으나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 강경파를 주도하던 '''[[신 유라시아주의 (서풍)|{{color|#C4D2E1|신 유라시아주의자}}]]'''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이내, 유라시아주의 상징들이 공공장소에 설치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경파들은 내부 통합을 위해 영토 확장으로 시선을 돌리고자 하였고  발트 3국에서 '동부해방군'이 반란을 일으키자 발트 통합을 목표로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라시아의 확장에 대비하던 유럽 연합은 모든 평화적 교섭이 실패하자 '서풍'으로 명명된 군사 작전 계시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를 기습적으로 공격했으며 '''[[유럽합동군 (서풍)|{{color|#C4D2E1|유럽합동군}}]]''' 또한 이에 동참하며 대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2033년에 시작된 전쟁은 초기엔 최첨단 장비와 새로운 전술이 사용되었으나 합동군의 진격이 민스크와 쿠르스크 공세에서 저지 당하며 전선이 고착화되었고 초기의 기동전과 첨단 무기 체계가 진흙탕, 혹한으로 제대로된 운영이 불가해지며 양측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참호를 구축했다. 이후의 전쟁은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 천대의 드론을 자폭용으로 소비했으며 유라시아군은 화학작용제 및 소이탄을 일부 전선에서 사용했다. 결국 소모전화된 전쟁은 서로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게 되었으며 이는 유럽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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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크기|17|'''전개'''}}<br>
2032년 9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내에서 활동하던 친러시아 성향의 민병대 조직인 '동부해방군'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무력으로 점령하며 발트 지역의 안보 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돌입하였다. 해당 사태에 대해 유럽 연합은  브뤼셀 긴급 EU 정상회담이 개최했다. 이 회담에서 EU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유럽의 공동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로서 유럽합동군의 발트해 지역 배치 계획을 표결에 부쳐 가결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곧바로 유라시아 연방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였다. 유라시아 측은 발트해에서의 군사적 세력 균형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국 해군을 동원해 발트해 일대를 봉쇄하고 EJF의 진입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유럽과 유라시아 간의 전면적인 군사 대치 상태가 본격화되었고, 양측 모두 긴장 수위를 높여갔다.
 
유럽연합 측은 확전을 방지하고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외교 회담을 제안하였다. 이 회담에서는 유라시아군의 발트해 일대 철수, EJF의 발트해 배치 일시 중단, 국제조사단을 통한 동부해방군 사태의 진상 규명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담긴 중재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연방은 이를 일방적인 유럽의 프레임 설정이라며 거부하였고, 오히려 극동에 주둔하고 있던 대규모 병력을 발트해 지역으로 이동시키며 군사 개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사태 해결을 위한 후속 외교 노력은 이탈리아 2032년 12월, 제노바에서 개최된 유럽연합 외교이사회와 유라시아 대표단 간의 회담에서 이어졌다. EU는 양측의 병력 동결, 민간인 대피를 위한 안전 통로 개설, 국제 감시단의 상시 주둔 허용 등을 골자로 한 휴전 및 평화 감시 체계 구축 제안을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유라시아 측은 이에 대해 발트 3국의 완전한 비무장화 및 정치적 중립화, 러시아어 사용 인구에 대한 민족 자결권 보장, 현행 헌법의 개정을 통한 정치 체제의 변경 등을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을 사실상 결렬시켰다. 이로 인해 제노바 회담은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이와 같은 긴장 고조 속에서, 유럽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긴 사건이 터지게 된다. 유라시아 연방군의 비밀 작전계획 문서, 즉 우크라이나·벨라루스·폴란드 전역에 대한 동시 침공을 담은 '에레브루 계획'이 유출된 것이다. 해당 문서에는 유라시아군이 발트해 지역을 넘어 서유럽 전면을 대상으로 한 다방면 침공 계획을 수립해왔다는 정황이 상세히 담겨 있었으며, 이로 인해 EU와 유라시아 간의 외교 관계는 사실상 단절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긴급 승인하며, 동부 전선에서의 유럽 방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양측 간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2033년 6월 4일, EU는 '서풍'이라는 암호명 하에 전면적인 군사 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는 유라시아군의 주력 병력이 배치된 동부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스의 주요 군사 기지를 겨냥한 대규모 선제타격 작전으로, 폴란드군과 우크라이나군을 주력으로 하여  유럽합동군은 창설 이후 최대 규모의 편제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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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크기|17|'''영향'''}}<br>
서풍 작전은 유라시아의 동유럽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대규모 군사작전이었으나, 예상보다 치열한 저항과 전략적 실수로 인해 4년간의 장기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동유럽 전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 충돌 지역으로 변했고, 유럽과 유라시아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유럽 연합은 전후 유럽의 통합과 군대 확장을 가속화기 시작했으며 유럽 의회의 권한이 각 국의 의회의 영향력보다 높은 위치에 차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중도층이 급진화되어 극우와 극좌 정당, 단체는 무력으로 해산 당하고 유럽회의주의를 내세우 것 또한 국가적으로 탄압 받게 된다.
 
전쟁 중 유라시아가 중국 견제를 위해 극동 지역에 배치된 대규모 군전력이 서부로 이동하게 되며 견제가 사리진 중국은 대만과 동남아시아를 겨냥한 군사 도발을 시작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피지와 투발루의 호주 영토 편입에 반발해 중국 해군이 남태평양으로 파견되어 호주와 교전을 치루게 되었으며 그동안 이어지던 미국과 중국과 공조가 끝나고 유럽에서 불던 피바람은 태평양에서까지 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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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4일 (토) 21:49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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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WEST WIND
작전명:서풍




인간이란 존재는 선을 추구한다, 하지만 너무 원하지도 않고 항상 추구하지도 않는다. - 조지 오웰

신 질서를 두고 두 세력의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막 넘어로 황혼이 드리웁니다.



EU측

유럽합동군
 
유라시아측

유라시아 연방




  • 상세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모호한 전쟁, 21세기 들어 가장 큰 규모와 파괴력을 자랑하는 전쟁. 제2차 조국 수호 전쟁, 또는 대동방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2033년, 중동 대전과 북극해 군사 충돌 사건의 여파 속에서 발생했다. 본래 푸틴 체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균형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는 구조였으나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 강경파를 주도하던 신 유라시아주의자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이내, 유라시아주의 상징들이 공공장소에 설치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경파들은 내부 통합을 위해 영토 확장으로 시선을 돌리고자 하였고 발트 3국에서 '동부해방군'이 반란을 일으키자 발트 통합을 목표로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라시아의 확장에 대비하던 유럽 연합은 모든 평화적 교섭이 실패하자 '서풍'으로 명명된 군사 작전 계시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를 기습적으로 공격했으며 유럽합동군 또한 이에 동참하며 대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2033년에 시작된 전쟁은 초기엔 최첨단 장비와 새로운 전술이 사용되었으나 합동군의 진격이 민스크와 쿠르스크 공세에서 저지 당하며 전선이 고착화되었고 초기의 기동전과 첨단 무기 체계가 진흙탕, 혹한으로 제대로된 운영이 불가해지며 양측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참호를 구축했다. 이후의 전쟁은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 천대의 드론을 자폭용으로 소비했으며 유라시아군은 화학작용제 및 소이탄을 일부 전선에서 사용했다. 결국 소모전화된 전쟁은 서로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게 되었으며 이는 유럽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 전개

2032년 9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내에서 활동하던 친러시아 성향의 민병대 조직인 '동부해방군'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무력으로 점령하며 발트 지역의 안보 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돌입하였다. 해당 사태에 대해 유럽 연합은 브뤼셀 긴급 EU 정상회담이 개최했다. 이 회담에서 EU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유럽의 공동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로서 유럽합동군의 발트해 지역 배치 계획을 표결에 부쳐 가결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곧바로 유라시아 연방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였다. 유라시아 측은 발트해에서의 군사적 세력 균형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국 해군을 동원해 발트해 일대를 봉쇄하고 EJF의 진입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유럽과 유라시아 간의 전면적인 군사 대치 상태가 본격화되었고, 양측 모두 긴장 수위를 높여갔다.

유럽연합 측은 확전을 방지하고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외교 회담을 제안하였다. 이 회담에서는 유라시아군의 발트해 일대 철수, EJF의 발트해 배치 일시 중단, 국제조사단을 통한 동부해방군 사태의 진상 규명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담긴 중재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연방은 이를 일방적인 유럽의 프레임 설정이라며 거부하였고, 오히려 극동에 주둔하고 있던 대규모 병력을 발트해 지역으로 이동시키며 군사 개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사태 해결을 위한 후속 외교 노력은 이탈리아 2032년 12월, 제노바에서 개최된 유럽연합 외교이사회와 유라시아 대표단 간의 회담에서 이어졌다. EU는 양측의 병력 동결, 민간인 대피를 위한 안전 통로 개설, 국제 감시단의 상시 주둔 허용 등을 골자로 한 휴전 및 평화 감시 체계 구축 제안을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유라시아 측은 이에 대해 발트 3국의 완전한 비무장화 및 정치적 중립화, 러시아어 사용 인구에 대한 민족 자결권 보장, 현행 헌법의 개정을 통한 정치 체제의 변경 등을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을 사실상 결렬시켰다. 이로 인해 제노바 회담은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이와 같은 긴장 고조 속에서, 유럽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긴 사건이 터지게 된다. 유라시아 연방군의 비밀 작전계획 문서, 즉 우크라이나·벨라루스·폴란드 전역에 대한 동시 침공을 담은 '에레브루 계획'이 유출된 것이다. 해당 문서에는 유라시아군이 발트해 지역을 넘어 서유럽 전면을 대상으로 한 다방면 침공 계획을 수립해왔다는 정황이 상세히 담겨 있었으며, 이로 인해 EU와 유라시아 간의 외교 관계는 사실상 단절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긴급 승인하며, 동부 전선에서의 유럽 방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양측 간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2033년 6월 4일, EU는 '서풍'이라는 암호명 하에 전면적인 군사 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는 유라시아군의 주력 병력이 배치된 동부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스의 주요 군사 기지를 겨냥한 대규모 선제타격 작전으로, 폴란드군과 우크라이나군을 주력으로 하여 유럽합동군은 창설 이후 최대 규모의 편제로 재편되었다.


  • 영향

서풍 작전은 유라시아의 동유럽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대규모 군사작전이었으나, 예상보다 치열한 저항과 전략적 실수로 인해 4년간의 장기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동유럽 전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 충돌 지역으로 변했고, 유럽과 유라시아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유럽 연합은 전후 유럽의 통합과 군대 확장을 가속화기 시작했으며 유럽 의회의 권한이 각 국의 의회의 영향력보다 높은 위치에 차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중도층이 급진화되어 극우와 극좌 정당, 단체는 무력으로 해산 당하고 유럽회의주의를 내세우 것 또한 국가적으로 탄압 받게 된다.

전쟁 중 유라시아가 중국 견제를 위해 극동 지역에 배치된 대규모 군전력이 서부로 이동하게 되며 견제가 사리진 중국은 대만과 동남아시아를 겨냥한 군사 도발을 시작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피지와 투발루의 호주 영토 편입에 반발해 중국 해군이 남태평양으로 파견되어 호주와 교전을 치루게 되었으며 그동안 이어지던 미국과 중국과 공조가 끝나고 유럽에서 불던 피바람은 태평양에서까지 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