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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게이조]] 총재의 급서 이후 [[모리 요시로]]가 총재직에 취임하나, 2003년 총선거의 참패를 책임지고 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재직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보수 방류파에 가까웠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는 우정민영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면서 본류파와 갈등했고, 이는 2007년 참의원/중의원 동시 선거를 앞두고 폭발하게 되며 [[제2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를 초래한다. 결국 분당된 자민당은 선거에서 참패했고 고이즈미 총재가 물러난 뒤 [[하토야마 유키오 (신공)|하토야마 유키오]]가 총재직에 올랐다. | |||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일본 경제가 주춤하자 [[에다 사쓰키]] 총리가 사임했고, 하토야마 총리는 그 틈을 노려 2008년의 조기 총선에서 대승리를 거둬 총리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2011년 미국과의 군사 갈등이 발발하자 이에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 [[아베 신조 (신공)|아베 신조]]가 방류파 출신으로서는 오랜만에 총리직에 올랐다. | |||
아베 신조 총리 시절에는 [[아베 노믹스]]로 대표되는 강력한 경제 정책과, 군비 증강 정책으로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았으나 아베 신조 개인의 정치 자금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2017년 총선에서 다시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어줬다. | |||
2021년 총선에서는 코로나19 대처 미비로 지지를 잃은 에다노 유키오 총리의 사회당을 상대로 승리로 거둬 4년만에 [[모테기 도시미쓰]] 내각이 출범한다. |
2022년 7월 11일 (월) 14: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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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st 1968, 2020 - 2022 | CC-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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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수주의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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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민정당 | → | 자유민주당 | → | 자유민주당 |
입헌정우회 | → | 차세대당 | ||
대정익찬회 | 신생당 |
파일:플로라 자유민주당(일본) 로고.svg | |
자유민주당 自由民主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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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약칭 | 자민(自民) |
영문 명칭 |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
슬로건 | 政治は国民のもの。 정치는 국민의 것. |
창당 | 1955년 11월 |
전신 | 입헌민정당, 입헌정우회 (1955년 신설 창당) |
대정익찬회 (1959년 흡수 합당) | |
총재 겸 총리 | 모테기 도시미쓰 / 10선 (39~48대) |
부총재 | 아소 다로 / 15선 (34~48대) |
간사장 | 세코 히로시게 / 초선 (48대)[1] |
이념 | 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극우 |
참의원 | 135석[3] / 316석 (42.7%) |
중의원 | 317석[4] / 630석 (50.3%) |
당색 | 빨간색 (#E50038) |
초록색 (#3CA324) | |
당원 수 | 7,955,115명 (2022년 1월 기준) |
국제조직 | 국제민주연합 |
당가 | 우리들 |
홈페이지 | 파일:플로라 자유민주당(일본) 로고.svg |
SNS | ![]() ![]() |
개요
일본의 정당. 현 집권 여당이자 최대의 보수 정당이다. 총재는 현 총리이기도 한 모테기 도시미쓰.
역사
195~80년대
1954년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사회당에게 정권을 다시 내어주게 된 입헌민정당과 입헌정우회의 주요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자에 맞서는 반공주의자들의 구심점을 세우고자 1955년 10월 창당하였다. 초기 당대표는 보수 방류파에 속하는 하토야마 이치로가 맡았으며 이후 1957년 당대회에서 기시 노부스케가 하토야마 이치로의 뒤를 잇는 제2대 총재로 선출된다.
그리고 1958년,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결집된 우익의 표심을 바탕으로 사회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되찾게 되면서 기시 노부스케 역시 총리로 지명되었다. 1960년에는 미국과의 미일 안보조약에서 일본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태평양간 미일 동맹을 체결하면서 지지율이 고공행진했고 기시는 1970년까지 총리로 재임한다. 그러나 12년에 달하는 집권 기간동안 자유민주당 내 온건파들 사이에서는 반기시를 목표로 한 공동 전선이 형성되었고 결국 당내 파워 게임에서 밀린 기시는 1970년 총리직을 사임한 후 온건파인 사토 에이사쿠에게 정권을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사토 내각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고, 기시 내각 시절 추구한 핵무장을 평화주의 추구를 이유로 일부 파기하면서 국민적인 지지율이 하락했다. 결국 사토가 총리에 취임한지 3년만인 1973년, 총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보장국가를 내세운 에다 사부로 위원장의 사회당이 무려 15년만에 정권을 되찾으면서 자유민주당은 야당으로 되돌아간다.
사토 에이사쿠 총재가 퇴진한 이후, 다시 기시의 제자였던 후쿠다 다케오가 총재직을 차지하나, 나리타 도모미와 사사키파의 집단 탈당으로 인해 사회당의 과반이 붕괴되어 치러진 1974년의 조기 총선에서 후쿠다의 자민당이 참패하며 위기에 몰렸다. 이후 1975년 당대회에서 후쿠다와 대항하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재로 선출되었고 이에 후쿠다가 반발하며 온건파와 강경파의 싸움인 각복전쟁이 거의 20년간 이어졌다. 후쿠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류파는 결국 당권 장악에 실패했으며 미키 다케오와 연립한 다나카는 1978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198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에게 총리직을 물려줄때까지 쭉 집권하였다.
1986년에는 마돈나 붐으로 불리는 도이 다카코의 사회당 열풍으로 1년간 정권을 내어주나 중국 공산당 정권과 연계가 있던 도이 내각이 결국 내란 논란으로 붕괴하면서, 1987년 당은 다시 정권을 되찾는다.
198~90년대
1987년, 조기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도적인 대승리를 거두며 다케시타 노보루가 총리직에 오르나 리쿠르트 사건 등 각종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망을 잃었다. 이에 반발한 오자와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 호소카와 모리히로 등 소장파 의원 상당수가 당에서 이탈하며 제1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가 일어났다. 이들은 신생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고 1991년 치뤄진 38회 중원선에서 589 의석중 신생당이 218석, 자민당이 213석, 사회당이 95석을 얻으며 신생당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신생당 대표가 자민당과 신생당, 공명당의 연립여당으로 총리직에 올랐으며 호소카와 총리는 급진적인 개혁안들을 통과시키면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39회 중원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호소카와는 신생당의 의석수 하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민당에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고, 신생당에 기대를 걸었던 일부 진보 지지층 당 지지를 철회하고 의원들도 사회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신생당은 40회 중원선에서 82석으로 의석이 크게 하락하며 정권을 잃었다. 그 결과 보수 세력은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일본사회당에게 정권을 다시 내줘야했다.
이후 1999년, 신생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자민당의 오부치 게이조 총재가 8년만의 양당 재통합에 합의하여 현재와 같은 자민당이 탄생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오부치 게이조 총재의 급서 이후 모리 요시로가 총재직에 취임하나, 2003년 총선거의 참패를 책임지고 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재직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보수 방류파에 가까웠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는 우정민영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면서 본류파와 갈등했고, 이는 2007년 참의원/중의원 동시 선거를 앞두고 폭발하게 되며 제2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를 초래한다. 결국 분당된 자민당은 선거에서 참패했고 고이즈미 총재가 물러난 뒤 하토야마 유키오가 총재직에 올랐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일본 경제가 주춤하자 에다 사쓰키 총리가 사임했고, 하토야마 총리는 그 틈을 노려 2008년의 조기 총선에서 대승리를 거둬 총리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2011년 미국과의 군사 갈등이 발발하자 이에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 아베 신조가 방류파 출신으로서는 오랜만에 총리직에 올랐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에는 아베 노믹스로 대표되는 강력한 경제 정책과, 군비 증강 정책으로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았으나 아베 신조 개인의 정치 자금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2017년 총선에서 다시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어줬다.
2021년 총선에서는 코로나19 대처 미비로 지지를 잃은 에다노 유키오 총리의 사회당을 상대로 승리로 거둬 4년만에 모테기 도시미쓰 내각이 출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