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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센드 문자 교습서'''가 발간된 날이다. | '''에르센드 문자 교습서'''가 발간된 날이다. | ||
제2제국 | 제2제국 초중반, [[스트론티아주]] [[헤르노스현]]에서 태어나 [[황립 오르가르 대학교]]를 졸업한 철학자이자 언어학자 '''아르데놋 시르덴'''{{ref|Ardenot Sirden, 5152~5208}}이 문맹 퇴치와 민중 계몽을 위하여 당대 클레도리아인들을 위해 최초로 사전과 [[에르센드 문자]] 교습서를 발간한 날이다. 시르덴은 [[세느데실]]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자인 한편 아리에티아 민족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시르덴만의 전통주의적 계몽주의를 창조해내는 데 일조했고, 민중들에게 전통의 올바른 가치를 가르쳐서 계몽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설파하였다. 이 일환으로 시작된 운동이 전통문헌부흥운동으로, [[계몽혁명]] 이전까지 쓰였던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모아서 분석하는 일이었다. 이는 그의 전공 분야였던 언어학에 관련된 작업이었는데, 이렇게 자료를 인쇄하여 많이 뿌린 덕분에 후일 [[세이티스 로세테스]]를 필두로 한 [[아리에티아어파]] 계통적 분석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 ||
지역별로 분화된 [[클레도리아어]]를 종합하고 표준어 제정의 단초를 제공한 점에서 존경받는다. | 그는 현대 클레도리아인들에게 지역별로 분화된 [[클레도리아어]]를 종합하고 표준어 제정의 단초를 제공한 점에서 존경받는다. 그 스스로는 상류층에 지식인이었고, 산업 시장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 능력도 충분히 있었음에도 민중을 위한 언어/문자 교육체계를 고안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
2025년 6월 27일 (금) 20:17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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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클레도리아에는 법으로 정해진 공휴일이 여럿 있다. 개중에는 문화적인 차원도 있고, 정치나 역사적인 차원도 있다.
문화적인 차원의 공휴일들은 유서 깊은 축제라고 해서 명절이라고 부르고, 역사적인 차원의 공휴일들은 잊지 말자는 뜻에서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클레도리아에서는 이 둘을 명백히 구분해서 부르므로 주의하자. 명절과 기념일이 공휴일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 중 문화적인 공휴일들을 명절은 3일 연달아 쉬기도 하며, 주말이 끼어서 며칠 날아가버리는 경우엔 그 다음주부터 겹친 날만큼 채워준다. 대체공휴일 제도가 있는 셈이다.
아래에는 매주 돌아오는 신요일[1] 빼고, 명절이나 기념일들을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문화적 명절
클레도리아의 종교를 넘어 이념적인 부분을 상당 부분 차지하는 클라르킬리아[2][3]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주 많다. 특히 클라르킬리아를 집대성한 경전에 해당하는 클라르미르셀에서 기인한 휴일들이 많은 편이다.
이데리아라던지, 스트론티아와 같이 독자적인 문화가 돋보이는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변해서 이질적이긴 하나, 적어도 이것과 기원이 같은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현대에는 인구 교류가 늘었기 때문에 갈수록 풍습도 획일화되어가고 있다.
일리네이시스[4]
뜻은 오르는 문의 날이다. 날짜는 매년 4월 1일이며, 앞뒤로 하루씩 쉰다. 클레도리아의 춘분에 해당하는 날이다.
지역마다 풍습 차이는 좀 나긴 하지만, 동북부를 기준으로 설명해보자.
일단 '오르는 문'이라 함은, 차디차고 추운 달의 계절이 지나고 뜻하고 온화한 해의 계절이 오는 그 경계선임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온화해질 날씨를 맞기 위한 일들, 그리고 태양을 상기시키는 일을 많이 한다.
집을 밝게 만든다던지, 방을 차츰차츰 꺼간다던지, 외로 나와서 햇빛을 바라본다던지. 따라서 해가 뜨는 아침에는 신사(사원) 쪽으로 가서 일출 구경을 하고, 한 바퀴 도는 그 의식을 치룬 다음에 오전에서는 거기서 간식을 먹든지 하면서 쉬다가 정오 때는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서 표준시가 아니라 그 위치의 정확한 남중시각[5]에 각 집에서 그냥 작게 향을 피우고 해 방향을 바라보며 의식을 치룬다.
그렇게 일상생활에 제약을 걸거나 얽매인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의상 이때만큼은 공공 스피커로도 명절 관련 내용을 틀어준다.
따뜻한 복 기운 많이 받으라고 주변에 말을 전해주는 건 예사요, 친척들과 통화하며 온기를 잘 몸속에 배어들게 하라고 덕담을 해주는 것이 관례다.
일리케이하르세스[6]
뜻은 높은 해의 날로, 클레도리아의 하지에 해당한다. 날짜는 7월 1일이며 춘분과 마찬가지로 앞뒤로 하루씩 더 쉰다. 360일 중 딱 가운데이기 때문에, 종종 중간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땐 한참 더워질 때이니까, 정월 대보름 때 하는 더위팔기처럼 장난스레 열을 버린다는 말이나 행사를 많이 한다.
이때도 해가 뜰 때는, 신사에 모여서 머리 꼭대기를 바라보며 의식을 좀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정오에 시원한 물이나 음료, 불을 쓰지 않은 음식을 내다놓고 시원한 여름을 빈다.
춘분 때만큼 시간이 빡빡하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그 언저리에 해가 있는 방향에 음식을 잠시 내놓으면 된다. 그래도 너무 오래 하면 상하니까, 그냥 이거 끝내고 시원하게 몸 좀 식히면서 밥을 먹는 게 전통이다.
일교차가 너무 큰 춘분이나 추분에는 하지 못하지만, 이날과 동짓날에는 할 수 있는 야시장이 있다. 마을 근처에 큰 야시장을 열어서[7] 이웃끼리 간식 먹고, 전통 복장 입고 나와서 같이 즐긴다.
단연 하이라이트는 짧은 밤에 하는 행사니 빠르게 밤이 지나가는 것을 형상화하여 불 피운 걸 가운데에 두고 빙글빙글 돌면서 몇십 명이서 춤[8]을 추는 것이고 큰 도시에선 불꽃놀이[9]도 한다.
일리나헤니시스[10]
뜻은 내려가는 문의 날, 날짜는 10월 1일이며 앞뒤로 하루씩 더 쉰다. 쉽게 말해 클레도리아의 추분이며 풍습은 춘분과 반대라고 볼 수 있다.
하는 행사 자체는 같지만, 소원이나 의식은 살짝 다르다.
이제는 추운 계절을 대비하는 때라고 해서 근처에서 단풍 구경 좀 하고 나서 집을 따뜻하게 바닥서부터 데워주고[11] 따뜻한 잠옷을 입고, 그런 행사를 조금 한다.
여전히 향 피우고 정오에 의식을 내리는 건 하는데, 이젠 해가 뜨는 게 아니라 해 지는 걸 보러 영당에 간다. 그리고 이때가 인간의 활동시간과 더 겹치니까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간다.
일리케이에르세스[12]
뜻은 높은 달의 날, 날짜는 1월 1일이다. 앞뒤로 하루씩 쉰다. 쉽게 말해 동지라고 볼 수 있다[13]. 설날과도 이미지가 겹치며, 이때가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면 이를 복으로 여기는 클레도리아 문화와 엮이며 겨울 상권 극성수기가 시작된다[14].
이때 하는 일은 하지와 정 반대다. 추우니까, 이번엔 추위 팔기를 하며, 따뜻한 음식을 상 위에 차려놓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이때도 밤에 야시장을 성대하게 열며, 이땐 둥근 달을 형상화한 큰 등 앞에서 가족, 친구, 연인끼리 모여서 돗자리 깔고 야시장에서 산 군것질거리를 호호 불며 입김 속에서 먹는 것이 겨울 감성으로 통한다.
영령일
날짜는 7월 7일이며, 클라르킬리아의 우주관에 입각해 올라갔다 내려가고, 움직이는 모든 별을 기리고, 망자나 태어날 자나 현세를 사는 자나 응원하고 소원을 빌며 축복하는 자리이다.
마을 전체가 또 잔치에 참가하며, 한여름 시원한 들판에 나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풍습이다[15].
클라르킬리아의 최대 축일인데, 마침 아르세도스 행성의 사자자리 유성우에 해당하는 거대한 유성우 극대일 근처로 잡혀 있다. 영령일에 프러포즈하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영혼을 비는 날이기 때문에 나나 남이나 가족, 친구, 지인 등을 축복하고 심지어는 '우리의 태어날 아이', '돌아가신 조상님'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6].
아니면 최근에 지인을 잃은 사람들끼리 모여 영혼이 떠오르고 되돌아가 우주 안착을 기원하며 떠나보내주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사람을 기억하는 인간적인 날이다.
칼레메닐축일
- 칼레메닐은 서역 에르멜스 에네프샤 해협 지방에서 기원한 종교로, 현실의 기독교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다.
칼레메닐에서 예언자이자 구세주로서 받드는 선휘공 메르데소스의 생일은 선휘기원 12월 25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도움을 베푸는 행사를 진행하며 자선단체들의 최대 성수기가 되는 날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선물 주기가 있으며, 특히나 최근에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선물이 아주 많이 쏟아진다[17][18]. 칼레메닐 신약성경에 따르면 메르데소스가 하늘로 올라갔지만 일 년에 한 번, 자신이 (아리야[19]를) 처음 쉰 날[20]을 기억하고 싶다고 내려오게 해달라고 하나님[21]에게 요청[22]한 끝에 꾸준히 내려와서 불우한 사람들을 계속 돕는다고 한다.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라면, 아르세도스판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하자.
역사적 기념일
보통 황실, 아니면 나라의 설립과 중대사의 날짜를 이로 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민주화일
매년 10월 2일로, 세르네세 여제가 직접 정치권력을 포기하고 완전한 의원 내각제 민주국가로 만든 사건을 경사스럽게 여겨 기념하는 날이다.
상륙절
네이페리아 함대가 현재 멜라네이르시에 속하는 평야에 처음으로 상륙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통을 기념하고자 멜라네이르에 인파가 모여 거대한 전통 배를 정박시키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국으로 따지면 개천절과 비슷한 것으로, 자국 역사의 시작을 상징하는 날이다.
통합절
클레도리아가 통일된 날이다. 즉, 클레도리아 통일전쟁 종료협약이 체결된 해이자 제1제국의 성립일이다.
날짜는 3월 19일이며, 해당 통일이 발생한 해는 4728년이다.
이때, 클레도리아의 총리나 초공황제가 자신들의 즉위기간이 시작됨을 기념하면서 연설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종전기념일
2차 동서전쟁의 종전을 기념하는 날이다. 현대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전쟁인 이것이 끝나 국제적인 전쟁 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이며,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자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휴일로서의 종전기념일은 5370년부터 제정되었으며, 공휴일은 아니지만 국경일[23]로서의 종전기념일은 5361년부터 있어왔다.
2차 동서전쟁을 일으킨 것은 에르멜스 연방제국의 수뇌부[24]이고, 클레도리아를 막아낸 것은 니델레이센 일리아미키르 총리 입장이다. 그런데, 그가 이 과정에서 권한을 키우려 개헌하기 위해 원래 있던 세르네세를 함구시키고 볼모로 잡아가버리는 바람에 이후 정통성에 큰 흠이 생겼고, 그와 그의 집권기를 흑역사로 보는 시각이 공고해졌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전시 때 활약하여 클레도리아를 지켜낸 자다. 허나 그러면서도 내란을 일으킨 탐욕스러운 자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었던지라[25], 가장 관련된 왈가왈부가 많은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가 종전기념일 성립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맞지만 내란을 일으킨 반역자라는 세간의 인식 때문에 혼란스런 정체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계몽일
계몽혁명이 일어나 클레도리아 제2제국이 성립한 역성혁명날, 즉 제1제국 시대 이데리아 대공국 카스비르트 가문의 공자[26], 시르메닐이 봉기한 것이다. 날짜는 8월 15일.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는 극도로 썩어있기 마련이다. 제1제국은 최초로 통일은 했으나 제2제국처럼 성숙한 체계를 가지지 못하고 제대로 된 관료제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잡히지 않았고[27], 궁극적으로는 봉건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 세력의 분리독립 목소리가 스멀스멀 커져가고 있었다.
제1제국 말기의 탄압에 의해, 가장 강한 자치 세력을 가졌던 이데리아마저 간섭당하기 시작하자 대공의 승인 및 지원 하 시르메닐이 주도하여 봉기를 일으킨다.
수 년 간의 내전이 있던 후, 결국 제1제국 황제들은 폐위당했고, 시르메닐이 즉위해[28][29][30] 더더욱 안정적인 제2제국이 되었다. 그런 난세를 바로잡은 공을 높이 사 제2제국부터 계몽혁명을 축하하는 날을 휴일로 잡게 되었고, 이는 제3제국 와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초공축일
현재 재위 중인 초공황제의 생일[31]을 축하하는 날이다. 5450년 기준으로는 클로이 황제의 생일인 3월 13일이다[32].
현재 초공황제를 다시금 기념하고 전통적인 문화를 보존하는 의의도 있는 반면, 지금이 전체주의-제국주의 시대냐고 하며 군주의 생일 때 대체 왜 쉬어야 하냐며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존립이 가장 위태로운 휴일이기도 하다[33].
개언절
에르센드 문자 교습서가 발간된 날이다.
제2제국 초중반, 스트론티아주 헤르노스현에서 태어나 황립 오르가르 대학교를 졸업한 철학자이자 언어학자 아르데놋 시르덴[34]이 문맹 퇴치와 민중 계몽을 위하여 당대 클레도리아인들을 위해 최초로 사전과 에르센드 문자 교습서를 발간한 날이다. 시르덴은 세느데실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자인 한편 아리에티아 민족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시르덴만의 전통주의적 계몽주의를 창조해내는 데 일조했고, 민중들에게 전통의 올바른 가치를 가르쳐서 계몽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설파하였다. 이 일환으로 시작된 운동이 전통문헌부흥운동으로, 계몽혁명 이전까지 쓰였던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모아서 분석하는 일이었다. 이는 그의 전공 분야였던 언어학에 관련된 작업이었는데, 이렇게 자료를 인쇄하여 많이 뿌린 덕분에 후일 세이티스 로세테스를 필두로 한 아리에티아어파 계통적 분석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현대 클레도리아인들에게 지역별로 분화된 클레도리아어를 종합하고 표준어 제정의 단초를 제공한 점에서 존경받는다. 그 스스로는 상류층에 지식인이었고, 산업 시장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 능력도 충분히 있었음에도 민중을 위한 언어/문자 교육체계를 고안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 ↑ 神曜日. 드람리아의 여섯 민족에서 기원해 차례로 공평하게 상징하는 여섯 요일 이후, 드람리아 원시 신앙에 따라 신들에게 바친 요일이 있는데 이것을 신요일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휴일이었고, 주간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드람리아 신화에서 유일신교로 어찌저찌 바뀐 나라 사람들은 이를 신들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인 신에게 바치는 날이라고 규정한다.
- ↑ 사실 클라르킬리아를 종교 대신 전통 관습 내지 철학으로 여기는 클레도리아인이 월등히 많다.
- ↑ 유교를 바라보는 현대 한국인들의 관점을 생각해보자. 분명히 한국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고, 한국인들은 지금도 유교의 유산에 해당하는 풍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종교로 믿고 진지하게 '교리'를 행하는 사람이 과연 많은가?
- ↑ Ili-neithis
- ↑ 시태양시
- ↑ Ili-cheiharthes
- ↑ 주로 영당 있는 그 산 중턱 언저리에서 한다거나, 도시에서라면 공원이나 광장을 통으로 빌려서 성대하게 한다
- ↑ 강강술래..!
- ↑ 카피톨리아 수도시에서 개최되는 불꽃축제가 매우 유명하다. 카피톨리아는 에레수리아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웅장한 연출을 제약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는 플라다렌시의 것도 유명하다.
- ↑ Ili-nahenithis
- ↑ 대륙성 기후가 짙은 에드리아 언저리에서 기원한 방식. 쉽게 말해, 온돌
- ↑ Ili-chei'erthes
- ↑ 동지때는 실제로 달이 가장 높은 고도에서 남중한다.
- ↑ 그런데 에르멜스와 지브로이아는 보름달을 이상한 푸른 빛으로 가득 찼고, 좀 있으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까 불길하다 느꼈다. 밤이 밝을수록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특이한 차이.
- ↑ 천문 애호가들이 미치는 날이다. 찍고 싶은 유성우가 버젓이 있는데 사람이 많다 보니 어디로 도망가기 힘들기 때문.
- ↑ 실제로 '저기 예쁜 별똥별이 떨어지는군요'와 비슷한 말들은 은근한 고백이나 청혼 멘트로 통한다.
- ↑ 소매넣기
- ↑ 다만 가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주어 따돌리기 수법으로 쓰는 안 좋은 경우가 생긴다.
- ↑ Ariya. "세상"+"땅"의 합성으로, "지구"를 뜻하는 옛말. "곤여" 정도를 떠올려보자.
- ↑ 숨 쉬다 할 때의 그 말이다. 칼레메닐권의 관용어구다. "생일", 아니면 단순한 "소중한 날"을 의미한다.
- ↑ 칼레메닐에서 신을 부르는 단어입니다.
- ↑ 공께서 아리야를 쉰 날을 기해 이승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 ↑ 축하만 하는 날로, 휴일은 아님
- ↑ 에르멜스 연방제국의 국민들 대다수는 결백하고, 수뇌부에 엄청난 파시스트 한 놈이 있다.
- ↑ 5360년, 오르가이아 기사학교의 큰 도움을 받아 정도귀환을 할 수 있었고, 직후 초공황제의 권한으로 직접 탄핵되었으며 5363년에 재판을 받은 후 내란죄로 처형되었음
- ↑ 公子. 공작의 아들이지, 그 유학자 아니다.
- ↑ 명군이 즉위하면 좀 제대로 잡혔지만, 이마저도 사후에 흐지부지.
- ↑ 이데리아 대공은 추가 영지로 에셀리아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는 형식상에 지나지 않았고, 관료제가 통치 세력이 되며 전통적인 지방 영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 ↑ 이미 아버지는 늙었기 때문이었다. 형식적이고 전통적인 이데리아 공작가는 황가를 이룬 시르메닐의 남동생에게 주어졌고, 이후 두 형제의 합의에 의해 황태자 이외 자손들은 자르마에니아(Dharmaenia)와 에셀리아(Ethelia)를 영지로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형식 상일 뿐이다.
- ↑ 이데리아 공가는 제1제국 황실인 마르카르 가문의 분가였다. 따라서, 피가 섞인 이들이었다.
- ↑ 군주를 대우하는 클레도리아에서는 탄신일이라고 부르겠지만.
- ↑ 초공축일을 치르고 나서 황제가 바뀌고, 바뀐 황제의 생일이 아직 안 지났다면 그건 그냥 건너뛴다. 소위 "한 해에 한 분" 법칙.
- ↑ 일리아미키르 문제 때문에 말이 많은 것이지, 계몽일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99%의 입장이다.
- ↑ Ardenot Sirden, 5152~5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