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 (아침해의 원유관)

커피와 사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2월 2일 (금) 08:37 판
대한국
大韓國 | Korea
국기[1] 국장
광명천지
光明天地
동시베리아 전쟁 이전 부산 강화조약 이후
대한제국 대한국
상징
국가
애국가
국화
무궁화, 오얏꽃
황실 상징
이화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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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대조선국 건국
1875년 대한제국 선포
1904년 한러일 전쟁
1930년 한성진군으로 김창암 집권
1936년 4국 동맹 체결
1941년 동시베리아 전쟁 발발
1944년 헌정복귀
1955년 조선공산당 쿠데타 발생
2010년 명화제 이청 즉위
지리
수도
한성부
최대도시
한성부
면적
340,744km²
위치
동북아시아 한반도, 남만주 일대 및 부속도서
주변국
일본국, 대금민국, 러시아 차르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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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구
약 8700만명
공용어
한국어 (법정 공용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법정 문자)
민족
한국인 92%
러시아인 6%, 그 외 2%
국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종교 분포
무교 37%, 기독교 26%, 유교 20%,불교 15%, 그 외 2%
군대
대한 국방군
정치 및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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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정부 수반
내각총리대신
국가 원수
(황제)
명화황제 이청[2]
행정 수반
(총리대신)
안철수[3]
민주주의 지수
163개국중 17위
(완전한 민주주의)[4]
여당
대한사민당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4조 2500억$세계 4위
1인당 GDP 32,038$세계 32위
GDP(PPP)
전체 GDP 5조 1009억$세계 6위
1인당 GDP 57,453$세계 18위
통화
한국 원 (圓)
대한국 수도 한성부의 전경

개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이제는 광명이 빛추는 천지로.
2020년 12월 31일, 한성 TV 보신각 새해기념 방송 中

7년의 밤은 새벽녘에 저물어가고, 아침의 근화향(槿花鄕)에 꽃이 피도다.

대한국, 통칭 대한,한국은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남만주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동쪽으로 동해, 서쪽으로 황해에 면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면하고 있다. 한반도의 본토는 8개의 도인 전라도, 울릉도, 경기도, 평안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 남만주의 영토는 각각 요남도와 서련북도, 녹둔도와 길림도로 구성되어있다. 현재 대금공화국과 간도의 영유권을 두고 분쟁상태에 있다.

전근대와 중세 시대에는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 대륙에 지나치게 가까운탓에 중원국가들에게 국력을 억제받았으나, 1592년 왜란을 막아낸것과 명나라와의 합동작전인 만주대첩을 시작으로 국력을 점차 증강하여, 결과적으로 중국이 분열된 상태에서 다시 조각나 부족들이 난립하는 만주를 울타리로 삼는 동북면 방면의 패권을 기반으로 상당한 국력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개항 요구에 응하여 서양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모순점이 드러나던 안동 김씨 세도가[5]는 근왕개화파 세력에 의해 몰락하였다. 1873년에는 임신개혁을 단행하여 구시대적 대조선국 체제를 끝내고 대한제국 체제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후금, 순나라와 후송보다는 먼저, 일본보다는 조금 늦게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수용하고 체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제 1차 동아시아 전쟁, 한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울타리 정도로만 생각하던 만주의 남부는 완전히 합병, 나머지는 식민지화 시키는 동시에 일본과 연해주를 점령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버금가는 동아시아 열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929년 발발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38년 김창암을 위시한 파시즘 세력의 집권을 시작으로, 1937년 중일전쟁에 참전해 중국과 몽골 침략에 나섰고, 1941년에는 독일의 비밀제의로 소려과 동시베리아 전쟁을 개시했으나, 결국 1944년 영친왕 이은의 김창암 세력에 의한 피살을 기점으로 황실과 문민세력의 합공작전으로 인한 김창암 내각이 붕괴하면서 평화협정으로 끝을 맺게 된다.

전후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영토에는 군정이 들어섰으나, 이미 내전으로 파시즘 세력이 축출된 한국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미국은 일본과 같은 직접지배보다는 보다 간접적인 지배를 택했다. 미군의 간접지배하에 헌법이 개정되어, 조선시대때 확보한 영토를 제외하고 모든 영토를 토해냈으며 한국의 황제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국민 통합의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이후, 1949년에 체결되고 이듬해 발효된 부산 강화조약으로 완전한 국권을 회복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된 뒤, 많이 남은 편이었던 인프라들을 이용하여 중국 내전과 루스 차르국의 정상국가화에대한 투자 등으로 호황을 이룩하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의 정치 · 외교는 이때부터 재형성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대한국 헌법 제1조는 황제의 지위를 '대한국의 상징이고 한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눈치채기 힘든 방면에서는 황제의 권력이 유효하다[6]. 실질적인 정치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며 최고 실권자는 내각총리대신으로 현직은 안철수다. 외교에 있어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미/친서방 외교를 고수해 왔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7] 신냉전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론 서방 세계 내에서 신뢰받는 대중국 전략 파트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8].

상징

국호

한국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이전에는 조선, 대조선국등의 국호가 사용되었고, 이후 삼한을 계승한 새로운 자주적 제국이라는 의미해서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신설하였다. 다만, 연합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에는 제국주의 색채를 뺀다는 명목으로 제국이라는 국호는 사용하지 않게되었다.

줄여서 부르는 말은 한국 또는 대한으로, 1960년대까지는 대한이 주로 쓰였으나 이후부터는 한국이 주로 쓰인다. 중국, 대금민국과 일본등 한자문화권에서는 ‘한국’이라고 표시하며, 루스 차르국에서는 ‘Корейская империя(대한제국)’이라고 예외적으로 제국이라고 표기한다.

국기

한국의 국기는 태극기로, 1876년 이전까지는 여러 양식의 태극기가 사용되다가 이후 완경군 이재황에 의해서 고안된 형태의 태극기가 최종적으로 정식 국기로서 정해졌다.

국장

한국의 국장은 한국 황실 가문의 문장으로서 관습법상 대한국의 국장으로 사용되는 오얏꽃 문장을 가리킨다. 황실과 관련된것들에 보통 새겨지며, 해외 군주국가들에서도 한국 황실의 대표문장으로서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황실

대한국의 황실(皇室)은 한국의 황제와 황족을 이르며, 구 조선왕조의 전주 이씨로부터 총 500년간 계승되어온다. 본래는 중국의 제후국 중 하나로 왕가로서 취급되었으나, 개항 이후 아편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순나라와 옆나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한 전보가 전해지자 칭제 요청이 조정에 빗발쳤고, 결국 '옛 천하가 저무는 새 시대에는 새 천하의 천명이 필요하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선적으로는 고려식 외왕내제 제도를 택했다가, 이후 금나라와 순나라의 동맹을 확실하게 박살내면서 칭제건원에 대한 명분을 얻게 된 조선 왕조는 1894년 양력 10월 3일에 완공된 환구단에서 완공식과 동시에 의식을 거행, 유교적 질서에서 황가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실의 권력 자체는 초창기 조선왕조 시기보다 약해진 편이었는데, 이는 개항 이전까지 권력이 어느정도 억제된 상태에서 세도정치가 있었으나 그 치세가 나름 성세였기에 실질적인 왕의 권력이 일부 부재한 상황에 한국인들 자체가 익숙해져서 가능했다는게 정론이다. 물론 명목상 국가원수인만큼 그 대우와 직위를 보장받았으며, 대한제국 헌법에서는 황실의 통치를 넣을 정도로 명실상부하게 황제의 권력이 존재함을 표기했었다. 헌법 개정 이후에도 대중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황실의 권력은 일부 건재하며, 때문에 옆나라인 일본처럼 완전히 상징적인 존재라고만 보기는 힘들수도 있는 존재로 자리잡고있다.

명목상의 국가원수인 관계로 각국의 정상들과 만날때 최소한 얼굴을 한 번 비추는 정도는 관습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타국 왕족의 접대는 전면적으로 한국의 왕족으로서 대접하고 있다.

사회

민족 구성

한국의 민족은 한국인과 소수의 러시아인과 일본인, 그리고 만주인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순서대로 가장 많은건 한국인, 그 다음으로 많은 러시아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인이며 이 중 한국계가 사회의 주류를 차지한다.

한민족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반도 본토에서 거주하던 이들이며, 두번째는 18세기 말부터 서서히 한반도에 동화되기 시작한 남부 만주인계들로 이루어져있다. 다만 이 때문에 만주계 한민족이더라도 차이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수준인지라, 사실상 현재 한국의 한민족은 하나의 분파만 있다고 봐도 될 수준이라고 추측된다. 러시아계 한국인들은 근대에 들어서 수가 늘어난 이들로, 제국주의 시기 당시 소련의 탄압을피해 한국의 연해주 자치령 등으로 떠난 다수의 제정 지지자들과 그들이 거느린 식솔들, 또는 만주에 망명한 트로츠키의 추종자를 비롯한 러시아인들이 모인 것에서 초기 인원들이 결집되었다. 이들 중 당시 식민지인이였던 만주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싫었던 이들이 한반도 본토, 혹은 연해주에 위치한 백러시아 정부로 건너가면서 정식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도 동네 하나에서 러시아계 한국인을 한두명은 볼 수 있는 수준의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에 대한 인식

조선시대에 한국은 초기에 서양을 상대로 전면개항을 하기 전까지는 자국 내의 진보적 유학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었다. 초기에는 동도서기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으나, 전면개항 이후부터 시대의 논리에 따라 새로 정립된 해당 사상의 경우에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래 문화의 장점을 따서 흡수하는 방식이 결국 기본적인 방식이고, 한국 정서에 맞지 않다고 는 문화는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지라 외래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개방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힘든감이 있다. 다만, 지리적으로 외국의 영향을 좀 더 많이 받는 특성 때문에 섬나라 특유의 제노포비아가 있는 옆나라 일본보다는 확실히 개방적인 편.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외국에 대한 인식은 그 나라의 국력, 자국과의 관계 및 국가적 위상을 보고 태도가 바뀌는 편이다.

그래서 한국에선 취업을 하거나 살려고 하면 외국인이 국적에 따라 적응하기가 천차만별이다. 특히 만주 출신들의 경우 한국 내부에서 천대, 혹은 혐오감정이 있는 편인지라 적응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 예시로 한성부 근처의 식당들을 보면 일부 식당에 금나라인 출입금지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2000년대 이후에 들어서는 금류 붐이 일어나는 등, 대금민국과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도 금나라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사라진 편이다.

비교적 작고 소박한 유럽식을 굉장히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일본과 달리 미국 중심의 큰 집, 큰 차 등의 많은 생산, 많은 소비를 특성으로 하는 생활 환경과 문화를 주로 즐기며, 예시로 근대에 지어진 유럽식 건물이라 할지라도, 일본이 지은 것에 비해 한국의 근대건축물은 마치 경쟁하듯이 그 크기나 화려함이 더 크고, 심하기로 유명하다. 미국 다음으로 동경하는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로 꼽히는데, 특히 프랑스가 개항을 시작시켜 준 대상이자 지리적으로 유사하기도 하고, 외교관계가 좋은 점 때문에 호감이 더 큰것도 있다. 또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의 프랑스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 편. 이 때문에 교복 등 제복 문화는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의 영향을 받은 면이 크다면, 소비나 제조문화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다만, 2차 대전 이후로는 소비, 제조등의 부문이 아닌 곳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는 사례들도 많이 늘어난 편이라고 평가받는다.

정치

입헌군주제

1893년 고종 광무제 이연의 칙서를 받은 제 6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대한제국헌법'을 발표하면서 귀족정과 황제를 위시로 하는 프로이센 방식의 입헌군주제가 초기에 도입되었다. 순종 효황제 이훈의 치세 당시에 자유주의 열풍과, 이웃나라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 조금 더 민주주의적인 체제로 변화하였다.

본격적으로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였다고 평가받는 시대는 의외로 1938년 [[김창암 (아침해의 원유관)]|]의 대한백의단이 순조 성덕제 이인황의 재가를 받아 정권을 잡은 시기로, 파시즘의 열풍과 이인황 본인의 소심한 성격이 합쳐진 결과 김창암의 권력이 황제를 압도하는 일도 벌어졌었다[9]. 대금민국을 비롯한 한국 제국주의의 피해국들이나 한국 내부의 보수파들은 순조를 대한제국의 침공 선봉에 서 있던 마왕 등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징성으로는 선봉이 맞아도 과연 건강이 심각할 수준으로 좋지 않던[10] 순조 본인이 제대로된 판단을 내렸을지가 의문이라는 이야기 또한 존재한다. 순조가 상황으로 물러나고 사망한 지금 진실은 저 너머에.

내전 이후 들어선 민주주의 세력도 황실인사가 지도부인 성격을 띄고 있었고, 이에 따라 친미파인 정치적 지도자 의친왕 이강이 권력을 잡은 한국보다는 기반이 적은 일본과 러시아 차르국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판단한 맥아더 장군의 환태평양 사령부의 결론은 한국의 황제를 동아시아 북방 민주주의의 수호자반공의 정점으로 이용하는 것을 택하였고, 몇년 뒤 성덕제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한 이강과의 협의로 헌법을 개정한것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하나 둘 철수해나갔다.

이강 개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약화된 황권과 합쳐져, 구국자로서 황실의 권위를 높이는 대신[11] 권력을 낮추는 성과를 내었고, 이강의 치세가 종막에 저물 무렵에는 완전한 민주주의에 기반한 입헌군주제 확보에 성공하였다.

경제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의 대표적인 선진국이자 강대국 중 하나다. 원화는 세계 무역결제통화 비중의 10~15%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신뢰성이 높은 통화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원화는 미국 달러, 유로, 엔과 함께 세계 4대 통화로 꼽힌다. 한국의 GDP는 세계 5위이며, PPP는 세계 6위, 금 보유고 세계 9위, 주식시장 규모 세계 4위, 대외순자산 규모 세계 2위 및 국제통화기금(IMF) 투표권은 세계 3위다. 몇 안되는 비서양권 국가 중 G7 회원국이자 북동아시아 경제연합 주도국, 유네스코 예산 분담률 3위로서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국가이다.

이러한 한국의 경제 배경은 중국 내전 당시의 지원과 만주 소비에트 전쟁에 대한 군수물자 특수로 채워졌다는 추측이 많은 편. 실제로 옆나라인 일본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더 처참한 상황을 타파하였고, 베트남 전쟁에도 지원을 하여 최종적으로 한국의 경제력을 앞질렀다.

외교

한러관계

한일관계

한중관계

한만관계

한미관계

한프관계

문화

기본적인 문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화 강국 중 하나이다. 큰 범주에서는 동아시아 문화, 그중에서도 유교 문화권의 중심과 궤를 같이하지만 확연하게 구분할만한 키포인트들이 특징. 기존의 보수적 인사들을 포섭하던 과정에서 전통, 그중에서도 유교적인 의식 등을 꽤나 유지시킨지라, 근대 시기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나라임에도 오래된 문화가 꽤 많이 남겨져 있으며 전통과 외래의 문화가 섞여있는 현대문화가 현재 한국의 문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 문화는 서양 문화, 특히 모자를 비롯한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는 부분에서[12] 영향을 많이 끼쳤으며, 현대에 과장 및 각색으로 새롭게 재해석된 선비들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한국 문화는 일본의 와패니즈에 이어 에노리안(Enorian)[13]들을 양산하였다.

서브컬쳐 및 애니메이션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로 애니메이션 시장이 발달한 곳이다. 초기에는 제작 시 검열과 제한이 특유의 사회가치관으로 인해 일본에 비해서 더 심한 편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가 상당히 풀리면서 꽤나 자유로운 서브컬쳐 매체의 제작이 가능해졌다.

대중매체에서의 한국의 모습

전반적인 매체에서

<더 킹, 대초원의 군주>에서는 근대화에 성공한 대청제국의 주요 라이벌 국가들 중 하나로 언급된다. 묘사를 보아 이강이 입국 도중 암살되어 공화국이 됬다는 듯. 다만 애초에 저 세계관의 대청제국 고증이 처참한지라...

<해리포터 시리즈>의 설정에서 한국의 마법학교인 피화학당이 언급되었다. 의외로 고증이 어느정도 된 부분이라 영국에서는 사실 롤링이 에모리안이자 와패니즈가 아니냐는 드립도 나왔다고 하는듯.

금나라 영화<우러구우처본:세 형제 이야기>의 배경이 단둥 산골에 위치한 한국식 저택[14]이다. 이 영화의 음산한 배경미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이 많은 편.참고로 실제로 존재하는 저택으로, 과거 만주에 살던 한국 사족 일가가 사는 용도였으나 전부 결핵으로 단절하였고, 전쟁이 끝나고 만주가 해방되자 새로운 집주인도 떠나면서 완전히 빈집이 되었다고 한다.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하나의 하루>의 배경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에서 추가된 언급을 보면, 늑인에 대한 대우가 비정상적일 수준으로 세계에서 낮은 편이라는듯. 결국 늑인 인신매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내각이 총사퇴하고, 인신매매를 묵인한 전임 총리 및 관료들이 연속으로 검거까지 되고 나서야 대우가 나아졌다(...)

<일본빼고 전부 침몰>에서는 한국의 영토가 침몰하자, 중세 이래로 잘 지내온 우리 나라가 남이냐면서 도래인 혈통의 기원을 들먹이며 자신들은 일본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결국 대만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주석 시정취에게 폭탄으로 황제가 암살당하면서 평양 기독교 제 2제국 분파와 서울 유교-국가사회주의 제국으로 분열엔딩(...)

대체역사에서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에서는 졸지에 가능성이 있던 간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대금민국과의 관계가 전보다는 나아졌고, 러시아 차르국에 대한 영향력도 다시 키우는 데 성공했으니 나름 수혜국인 셈.

<만주,혁명의 시대>에서는 현실적인 전개와 고증 때문에 대청제국과의 긴밀한 동맹 중 하나로 나왔다. 남만주 전역과 연해주, 추가적인 시베리아 영토를 합병한 상황에서 당장은 만족하고 있으나, 아이신기오로 푸이의 혐성질로 인해 잃은 것도 많은지라 독자들은 차후 한국의 행보를 걱정하는 중.

<완경군, 군밤의 왕>에서는 완경군의 몸에 빙의한 이의 폭주로 국수주의에 찌들어 세계를 재패하는 악의 제국으로 거듭났다. 독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흠좀무.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시베리아에서 독일과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묘사를 보아 점령한 땅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서(...)생각보다는 통제가 쉬운 모양. 그렇지만 시즌 4 시점에 나온 뉴스에서 시베리아 철수를 명령했다는 내용이 나온 걸 보아 결국 일제와 같이 사이좋게 식민지 통제권을 상실해버린 듯 하다.

전략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의 모드<카이저라이히:대전의 유산>에서는 처음에는 식민지를 잘 유지하는듯 보이지만, 예정상 시간이 지나면 비대한 식민지를 소화하지 못한 것과 경제불황, 토지 개혁 부재와 민권문제 등이 합쳐지면서 공산주의 국가로 거듭나게 되고, 각각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분리된다. 하지만 박헌영과 트로츠키의 내전을 진압하면 다시 반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것이 가능하다.

<검은머리 미국 대원수>에서는 호시탐탐 김유진을 섭외하려 드는 역할로 나왔으나, 정작 회유할때마다 김유진에게 돈만 뜯기고 돌아가는 안습미를 보여줬다(...)이후 미군정 간접통치 치하에서 박헌영의 쿠데타가 조기 적발되는 것으로 추가적인 등장은 종료.

<아토믹 하트>에서는 소련의 재빠른 진격으로 남한국과 북한국으로 분단되었다는 언급이 나왔다. 묘사를 보아 이 세계 한국의 미래는 그닥 밝지는 않을듯.

대금민국 소설<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역사가 개변되어 연합군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아직까지 만주 식민지가 건재하다. 연해주의 러시아 차르국도 차르국이 아닌 극동 로 계속 유지되는 중.


  1. 1902년 이재황에 의해 최종적으로 고안된 이래로 사용된 태극기
  2. 2023년 기준 가장 늦은 나이에 즉위한 황제다
  3. 대한사민당 출신으로 2021년 총리대신에 취임했다.
  4. 8.65점
  5. 대한제국 시기의 후작가 사족 안동 김문이 바로 이 가문이다. 다만 공식적인 자료에 따르면 후작위를 하사받고 난 뒤에는 주기적인 녹봉만 수령하고, 직접적인 정계 진출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6. 이는 국내에서 민주주의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거두가 당시 의친왕으로도 알려진 광덕황제 이강이어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7. 소련이 서방측이기는 하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딱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있는지라 소련을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제 2세계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다만, 최소한 소련은 중국이 그랬듯이 최소한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지는 않았다.
  8. 다만,일각에선 한국의 현 영향력이 제국 시대에 만주지역과 연해주에 기반을 다져 놓고, 그 기반으로 대금민국과 러시아 차르국을 조정해서 현 외교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주장도 존재한다. 반서방 기질이 강한 편인 러시아 차르국이 한국의 눈치를 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제 2세계 진영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게 아니냐는것. 물론, 대금민국과 한국의 관계는 실제로는 껄끄러운만큼 단순히 주장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 다만 백범일지의 내용 등을 분석해보면, 집권 초기의 김창암 본인은 개인적으로 황제를 자신보다 상관으로 인지한 것 같기는 한것으로 보인다.다만 집권 후기부터 황제의 권위를 깔보는듯한 모습도 보였는데, 예시로 《순조실록》中: 금일 대막리지 김창암이 황상께 아뢰길 '작금과 같은 비상시국에선 미풍양속을 철저히 하고 국론의 단합이 필요하니 사관을 아국의 정세와 알맞은 이로 교체하는것이 알맞을 듯 하옵니다'. -성덕 10년(서력 1942년) 4월 3일-같이 본인이 황실의 권한인 사관 임명에서 우위를 가지려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0. 순조는 역대 조선왕조 국왕들 중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것도 있지만, 어릴때부터 정치보다는 학문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기록될 정도로 서정적인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11. 단, 전범이나 김창암 세력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황실 인사들에 대한 격하작업이 이루어지기는 하였다.
  12. 1920년대 당시 미국의 페도라에 갓마냥 무늬를 희미하게 그려넣는 스타일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누가 먼저 제작을 했는지는 두루뭉술해서 자세한 정보가 없으나, 가장 유력한 이야기로는 당시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의 제자 중 하나가 대한제국에 방문해서 갓을 시험 삼아 구매한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13. 선망한다는 뜻의 영어단어 envy와, 한국의 영어권 표기법인 Korea를 합친 신조어이다.
  14. 정확히는 근대 시절 한옥과 서양 건축을 혼용한 한양풍, 또는 한양절충 양식의 저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