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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불러오는 중... {"markers":[{"pos":[{"lat":37.566634646824234,"lon":126.9783156303974}]}],"zoom":14,"center":{"lat":37.566634646824234,"lon":126.9783156303974},"tileLayer":"https://{s}.tile.openstreetmap.org/{z}/{x}/{y}.png","attribution":"\u00a9 \u003Ca href=\"https://www.openstreetmap.org/copyright\"\u003EOpenStreetMap\u003C/a\u003E contributors"} | |||||
성내방 육조대로 110 | |||||
25방 | |||||
605.2km2 | |||||
경기 | |||||
11,684,755명 | |||||
15,734.57명/km2 | |||||
5,089억$2024년 기준 | |||||
41,549$2024년 기준 | |||||
오세훈 (4선) | |||||
N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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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 N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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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부화 | 오얏나무 | |||
부목 | 은행나무 | ||||
부조 | 까치 | ||||
02 | |||||
HNG | |||||
KR-11 | |||||
한성부의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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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과 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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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궐 경복궁[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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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은 대한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동아시아에서 도쿄, 베이징, 춘칭과 함께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로, 뉴욕, 런던, 도쿄와 함께 세계 4대 도시로 불릴 정도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로, 다른 명칭으로 서울, 황경과 경성(京城) 등이 있다.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서울과 한성이라는 말이 주로 쓰이고, 노년층과 중년층은 3가지 단어 모두 광범위하게 사용하지만 경성, 황도라고 부르는 경우는 대부분 노년층에 해당한다. 다만 공식적인 명칭은 황경을 쓰기도 한다.
한국 내 극우들은 대한호국회가 국수주의 과시 용으로 권장했던 명칭인 황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명실상부, 한국의 수도이자 최중요 도시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이다. 한성부의 등급인 수부급 행정구역은 오로지 대한국 내에 한성부와 평양부 단 둘 뿐이며, 한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곳이자, 한국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인 황실이 기거하는 곳이 바로 한성부다. 그나마 서경 평양부가 20세기에 들어 많이 발전하였고 개발지수 면에선 일부 서울보다 우세이나[2] 여전히 한성의 규모와 중요도에는 못 미치는지라, 그만큼 한국 내에서 한성이 가지는 위치는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본격적인 시대는 칭제건원 이전인 조선시대로, 조선 건국 이후 한동안은 지역적인 기반에 관련된 문제로 여전히 개경을 수도로 삼았으나 1394년(태조 3년)에 태조 고황제의 명으로 천도하였고, 이 시기에 정도전에 의해 경복궁이 건설되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정종은 한성을 불길하게 여긴것인지 1399년(정종 1년)에 다시 개성으로 천도하였었으나, 태종 대인 1405년(태종 5년)에 다시 서울로 천도했고, 이후 600년의 세월 동안 한반도의 중심지이자 최대도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서구화 및 전면개혁 정책인 임신대경장을 단행한 이후 고조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 전면적인 개혁을 진행할 것을 명령하였고, 점점 다가오던 변화는 제 1차 동아시아 전쟁에서의 승리로인해, 마침내 한성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적으로는 대대적으로 세계 만국에 한국의 수도임을 홍보하였으며, 내적으로는 서양과 일본의 신식 문물들이 들어오면서 개화의 중심지가되었다.
고조 광무제의 황명으로 한성에 설치된 전신주와 전선을 시작으로, 산업화의 상징인 공장과 신식 도로, 공공시설들이 건설되었다. 또, 기존 조선시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었으며, 그 빈 자리에는 벽돌과 시멘트 등으로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한성은 근대적인 제국의 수도로 거듭났다. 이 도시의 상징이자 중심인 황궁 또한 변화를 맞아 환한 불빛이 들어왔고, 서양식 궁전인 석조전을 지으면서 대한제국이 문명국가이자 강대국임을 열강들에게 알렸다.
1920년대,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한성의 전경은 당시 아시아에서 손에 꼽히는 개화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이자, 자바섬을 제외하고 동양의 유이한 서구라고 해도 결단코 과언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한복과 양장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다녔고 백화점과 가게, 고층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섰으며, 한성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운영되는 열차의 불빛과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전깃불이 온 천지를 비추었다.
1945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미군의 폭격으로 엉망이 된 한성의 구시대적 인프라들에 대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전을 거치며 파손되거나 부실공사된 건축물들이 철거되었고, 이후 다시 도래한 경제적 발전으로 인하여 지금의 경제적, 문화적인 번영을 보여주는 대한국의 수도 한성으로 거듭나 대한국 수도의 임무를 계속 이행하고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크게 전통적인 중심지인 강북과 새롭게 성장한 강남 지방으로 구분되며, 강북은 한성부의 중추라 할 수 있는 황궐이 위치한 성내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3대 도심(명례동, 종로, 구리로)과 기타 방위들을 둘러싼 5개 부도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 부도심들은 북쪽에 위치한 도심들과 한강대교, 그리고 그 일대에 구축된 한성 도시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후술할 강남 지역과 연결된 구조 또한 띄고있다. 한편 강남에는 목동, 반포 등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주로 위치한 구조를 띄고 있다.
한성의 주 도심은 크게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와 용산이 위치한 남쪽과 상업의 중심지인 연희와 홍대가 위치한 서쪽, 그리고 그 중앙에 위치한 관청가인 육조대로와 끝에서 도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황궐, 주택가가 밀집한 강남, 빌딩이나 고층 아파트의 건설이 활발한 편인 청량리로 인식된다.
대한국 최대의 도시인만큼 각종 매체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하며, 배경으로 체택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도시인만큼 파리, 뉴욕, 도쿄와 매한가지로 심심하면 파괴되곤 하며, 무엇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대한제국을 항복하게 만든 원인인 폭격으로 폭격으로 인해 불타버리는 경우도 더러 발생한다. 특히 자매결연도시인 도쿄와 마찬가지로 미군에게 폭격당해 웰던(...)으로 구워지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