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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국

일본국

대금민국

러시아 차르국

중화민국

티베트 왕국

중화인민공화국

소련

마다가스카르 왕국

몽골

타이완민주주의인민공화제국

대한제국

대한 공화국

예케 몽골 울루스

대청제국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한러일전쟁
Russo-Orient War
날짜 1904년 ~ 1905년
장소 만주, 동해, 사할린, 연해주, 쿠릴 열도
결과 대한제국, 대일본제국의 승리.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 목표 달성
영향 대한제국의 남만주 완전합병, 대청제국에 대한 영향력 강화
일본의 사할린, 쿠릴 열도 획득, 연해주의 자치령화

피의 일요일 사건 발발, 러시아 제국의 몰락 가속
육지, 해양에서의 러시아 남하 실패로 인한 그레이트 게임의 종료

교전국 러시아 제국 한영일 동맹
러시아 제국
몬테네그로 공국
대한제국
대일본제국
연해주 동부의 전선을 묘사한 러시아 삽화
짐은 우리가 대청제국을 합병하는 걸 원하지는 않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동의 제국들이 우리의 이권선을 침해하도록 놔둘 생각도 없소. 그건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오(Я не хочу, чтобы мы аннексировали Великую Империю Цин. Но это не значит, что я намерен позволить Корее полностью захватить Маньчжурию. Это вызовет войну.).
- 니콜라이 2세
황국의 흥망은 이 일전에 달려있다. 각원은 한층 더 분발 노력하라(皇国の興廃この一戦にあり。各員一層奮励努力せよ).
- 도고 헤이하치로
우리는 이 전쟁으로 세계 만방에 공인받는 열강으로서의 대한을 증명해야지, 전쟁은 생각조차 못하는 국가인 대청같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
- 이완용

개요

한러일전쟁, 러일전쟁 혹은 러한전쟁은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대한제국, 일본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벌인 전쟁이다. 남만주 지역에서 대한제국군과 러시아군이 대치하고, 얼마 안 가 일본 연합함대가 사할린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서구 열강들은 아무도 한일 양국이 승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유럽의 군사강국으로 꼽히는 중있었고, 순나라와 청나라, 송나라의 몰락을 본 서양인들이 그 누구도 황인종의 동양 국가가 백인의 유럽 국가를 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더 가깝고 러시아의 심장부에서는 매우 먼 극동에서 전쟁이 개전한지라 러시아의 원활한 보급이 어려웠던 점, 한일이 예상외로 국력을 착실히 키웠고 군사적인 준비, 특히 각각 정치적 및 지리적 이유로 육군과 해군의 양성이 철저했던 점, 러시아 내부 사정이 악화되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러시아가 완패하였다.

전쟁 전의 상황

순나라와 동맹했던 금나라는 순나라가 일본에게 패배하고, 자국은 한국에게 패배하자, 무기한 쇄국을 주장하는 예허나라 힝전의 뜻을 거스르면서 이판사판으로 친러정책을 시행하여 독립을 지키려고 하였다. 때마침 러시아는 남하를 위한 발판이 태평양 방면에 필요했고, 금나라의 개화와 독립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여러 이권들을 강탈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미 개국 이전까지 명목상 러시아 영토였던 연해주에 대한 영유권을 금나라로부터 확실히 인정받은 상태였다. 한편, 천운이 따른 결과 막 근대화에 성공한 한국은 이미 간도를 비롯한 남만주에 예로부터 조선인이 이주하였었고, 그들이 현재 많이 살고있다는 이유로 청나라에게서 조선시대의 개척지 영역보다 더 넓은 남만주 영토를 이미 뜯어냈고, 대청제국에서의 경제권 또한 러시아보단 우위를 점한다는 합의를 러시아와 본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영한일동맹의 3번째 가입국이었던 한국은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와 적대할 수 밖에 없는 위치였고, 러시아발 시베리아 철도의 건설범위가 서서히 커져감에 따라 일본과 더 밀착하여 러시아를 상대하자는 여론도 강해진 상태였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두개의 세력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국 내부에서도 대청제국을 아예 합병하자는 여론이 커져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1903년에 한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교섭으로 한국의 만주 전역에 대한 세력권 확보를 시도했었고, 지식인들은 예허나라 힝전이 전권을 잡고 있는 청 제국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며, 장기적으로 한국의 근대화와 생존, 그리고 '만주인들의 문명화'를 내세우며 만주 전역을 영토로 삼고, 더 나아가서는 연해주까지 점거해야 한다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 내부에서도 최소한 북방에 자신들의 이권도 존재한다는것을 확실하게 증명하자는 여론이 일어났으며, 특히 일본 육군은 해군에게 공훈에서 밀려날 조짐이 보이자 연해주와 사할린 등 북방영토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진 상태였다.

전쟁 개전

이렇게 서서히 불안이 고조되던 도중, 끝내 한국군이 자국민 보호와 대청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대청제국으로 진격하여 수도에 입성한 뒤, 남궁과 전신국 등을 점령하였다. 당시 러시아 제국군과 한국군은 대치만 하고 공격은 하지 않았고, 이틀 후 러시아는 대청제국과의 국교를 단절하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 하였으나, 사전에 합의된 바에 따라 일본제국 해군이 사할린을 공격,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 하였다.

뒤이어 한국이 한영일 동맹에 의거하여 심양에서 러시아 제국군에게 발포하였고, 러시아도 이 2개국에게 선전포고하였다. 이렇게 만주, 사할린이 전란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본격적인 한러일전쟁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전개

사할린 전선

만주 전선

연해주 전선

결과

한국

한국은 마침내 대청제국을 러시아로부터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고, 단독 육상전에서의 승리를 통해 엄연한 열강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하얼빈을 사실상 조차하면서 대청제국을 서서히 압박했다. 새롭게 얻은 영토인 해삼위는 환경이 가혹했던지라 외교적으로 이용하기로 결정. 일본제국과의 우호관계 증진용으로 공동통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부동항을 막아 러시아의 남하를 영구히 제지했다.

일본

열강으로 인정받고, 국위를 상승시킨것은 대한제국과 비슷하나 일본의 경우 영토적인 소득이 더 컸다. 반 정도만 얻을 것이라 예상되던 사할린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소량이긴 하지만 캄차카 반도 일대의 이권을 보장받았고, 연해주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육군 파벌의 관심을 시베리아 최극동 방면으로 돌려 한국과의 충돌을 방지할 수 있었다.

러시아

부동항은 물론이오, 영토 일부와 보호국이 전부 전쟁 한번으로 날아간다는 결과를 내고야 말았다. 어떻게든 영토를 내어주지 않으려던 러시아였으나 그러지 않기에는 한일 양국이 요청한 배상금의 액수가 막대했고,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한 러시아는 영토를 내어주고야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동항 반면 영토를 내어준게 이후 로마노프 황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선택이 되었다.

영향

대중매체에서의 한러일 전쟁

일본 대하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 에서 한러일전쟁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작중 배경을 전부 고증하기 위해 러시아, 소련, 한국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 촬영을 했다고. 또한, 소품 일부는 러시아 차르국 박물관 측에서 기증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