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1948년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건국 및 만주 인민위원회 수립 1950년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헌법 확립 1954년 만주 내전 발발 1956년 전쟁 종전,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단일정부 수립 1975년 개혁개방 정책 시행 1985년 묵던 민주화 투쟁을 통한 다당제 및 선거 확립 2000년 묵던올림픽
동쪽으로 러시아 차르국, 서쪽으로 중화민국, 몽골과 접해있으며 남북으로 각각 대한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국가와 접해있다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국가로, 크게 주류 민족인 만주인 및 몽골인, 러시아인, 중국인, 그리고 근세 및 근대에 넘어와 만주에 잔류한 한국인[6]이 대표적이다.
고대 이래 만주는 통합국가를 형성한 전적은 얼마 없었고, 실제로 첫번째와 두번째로 수립한 금나라, 후금 모두 각각 몽골 제국과 조명연합군에게 붕괴했다. 하지만 18세기 경 그나마 잔류했던 후금의 역량을 이용해 건주여진이 주도하는 느슨한 통일국가 형성에는 일부 성공하였고, 이 당시에도 주변국들의 위협이 주위에서 상시 도사리고 있는 환경은 장기적으로 만주족이 정주민족의 특성을 빠르게 가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국가가 유지되는 듯 싶었지만 1762년에 러시아 제국 탐험대와 전쟁을 벌이며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19세기에 들어서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가운데 강해진 쇄국 풍조와 고여버린 기득권이 개혁을 방해, 끝내 1909년 러시아와 중국의 간섭을 모두 끊어낸 데 성공한 대한제국에게 한만합방조약을 통해 집어삼켜졌다.
이후 임시정부와 건국준비 위원회가 해외에서 분투하며 독립 의사를 밝힌 끝에 1945년 한국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자 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류를 이룬 이념은 대개 민족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였지만, 신정부 내 각료들의 차후 국가재건 노선의 차이에 대한 견해와 국제정치적 문제로 인해 대리전에 가까운 내전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만주 국토가 황폐화되는 등의 피해도 입었다. 내전이 1956년 7월 23일에 만주 인민위원회의 항복을 끝난 이래 만주는 단일국가인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를 보냈고, 이 시기동안 니오후루 우미예순의 국가재건 5년 계획과 우미예순주의에 입각한 개혁, 개방 정책과 묵던 민주화 투쟁을 끝으로 완벽한 민주정 국가로 탄생한것이 현재의 대금민국이다.
대금민국은 소비에트 연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구 동북아 출신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 GDP 25위, 수입규모가 세계에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오늘날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는 서방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소련의 동구권에서 가장 긴밀한 극동 파트너의 자리를 맡고 있다. 또한 여러 국가들과 국경을 맞댄 관계로 국방비는 세계 13위로, 손에 꼽히는 군사대국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상징
국호
국기
국장
사회
다민족 국가
자연환경
정치
경제
경제적으로는 동북아 구 공산권 출신 국가들 중 가장 부유한 편에 속한다. 1967년 이래 대경유전에서 개발한 석유와 아이싱가주의에 따른 적절한 개혁 조치들은 대금민국이 원할하게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현재도 이 풍조는 진보, 혁신적인 면모가 많은 정치권에서 유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주의 및 중도 우익 성향이 도드라지는 주변국들에 비하면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셈.
통상적으로 복지가 잘 보장되는 편으로, 금액은 대경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철도 운영비를 통해서 대량 조달한다고 한다. 다만 이러고도 만주 땅 전체에 복지 해톅을 줘야하다보니 통상적으로 세율은 높다.
행정구역
정치
외교
금한관계
금일관계
금중관계
금러관계
금미관계
문화
전반적인 문화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목민계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후금 왕조 시절에 들여왔던 정주문화의 영향과 근대에 대한제국 식민지 시절 유목생활에 대한 제국주의 한국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은 여파로 비교적 완전 유목생활이 약한 편이며, 여기에 공산국가 시절 신속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하던 정부와 공산주의 특유의 유물론적인 사고가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변하며 유목전통이 많이 소실되었다. 다만, 역사적으로 상대적으로 외지에 속했던 아청북도같은 지역의 경우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은 그래도 반 유목으로 생활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긴 시점부터는 대금 정부가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부터 전통 유지에 어느정도는 신경을 썼기에 아직까지는 유목 문화가 사멸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