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한치시기 (아침해의 원유관)

커피와 사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2월 15일 (목) 05:01 판
만주한치시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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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식민지 · 자치령 및 조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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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지역 명칭 담당기관
북만주 만주 만주총독부
동몽골 제국 몽고주 몽고도독부
프리모예 연해주 자치령 연해총관부
해당지역 명칭 기관
칭다오 청도 청도행정부
* 자치령은 1920년대 괴뢰국으로 [1]승격
괴뢰국 · 군정청
만주
滿洲 | Manchuria under the Korean rule
국기[2] 국장
내만동체
(內滿同體)[3]
한만합방 이전 해방 이후
대청제국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만주 인민위원회
상징
국가
애국가
(愛國歌)
지리
최대도시
경호도 심양부(瀋陽府)
위치
북만주
국가
대한제국
면적
약 963,000km2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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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구
약 4200만
공용어
한국어(사실상 공용어)
만주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만주 문자
민족
한국인, 러시아인, 만주인, 중국인 등
국교
제국유학
종교 분포
만주 신화, 기독교, 유학, 불교 등등
군대
한국만주군
정치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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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유교 파시즘 · 군사독재
국가 원수
대한제국 대황제
통치 수반
만주총독
통치기관
만주총독부
애신각라왕
재첨왕→부의왕
연호
융희 (1907~1928 )→성덕 (1928~1945)
통화
대청제국 교(交)→ 대한제국 원 (圓)
구 만주총독부 청사의 전경
[만주의 최대도시 심양부 건명로의 사진


개요

만주한치시기(滿洲韓治時期), 또는 한국통치시대(韓國統治時代)는 대한제국이 [[대청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청제국]을 상대로 정미늑약을 발효한 1907년 8월 29일부터 1944년 12월 25일까지 북만주 일대가 대한제국의 식민지로서 존속했던 기간을 의미한다.

1907년 대한제국에 의해 대청제국의 주권이 강탈당하자, 대한제국은 같은 해(융희 6년) 칙령 제318호 「대청국의 국호를 폐하고 만주로 그 이름을 바꿀것」을 공포하여, 공식적으로 자국 내로 편입한 북만주의 명칭을 '만주(滿洲)'로 바꾸었다. 또한 「융희 제령 3호」를 통해 '청국통감'을 '만주총독'으로, '청국'을 '만주'로, '대청법규'를 '구청국법규'로, '청국형법대전'을 '형법대전'으로 고침으로써, 기존의 국체인 대청국 혹은 금나라를 나타내던 명칭을 제거하였다. 이후 보호국에 시행되던 통감제는 해외 속령인 총독 제도로 개편됬고, 공식적으로 만주는 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만주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운데 일부는 당시의 외국에 잘 알려진'만추'라는 명칭이 한국령 식민지 '만주(Manchuria)'로서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였기에 이를 버리고 대청제국의 '제국'을 공화국의 옛말인 '민국'으로 바꾸고, 중화적인 느낌을 제거하고 민족주의를 더 부각한 '대금민국', 또는 '금나라'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례인 대금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대표를 맡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편이었고,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과 일반인들은 여전히 청나라, 혹은 그 당시 사용 비율이 상당히 늘어났었던 만주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시대

한국 통치시기는 그 성향이 약 10년을 주기로 총 3번 바뀌는지라, 이 시기를 설명할 일이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3분법을 사용한다. 주로 10년을 주기로 끊어 1910년대~1920년대~1930년대 순으로 보는데,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제1기(무단통치·헌병경찰대통치) 1910년~1919년
대개 정미늑약 발효 직후부터 1919년까지 보는데, 해외발 민족자결주의의 대두와 만주에 입국한 백계 러시아인들까지 자신들을 차별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3.1 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이동휘가 총독으로 지명되면서 통치의 방향성이 바뀐 것을 종료시점으로 본다. 경제적으로는 회사령, 사찰조사사업등의 실시와 정주령등이 있다. 이 시기,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만주인, 중국인을 대상으로 태형을 실시하는 태형령이 공표되었고, 대한제국군 육군 소속 헌병들이 만주 내에서의 치안 업무에 투입되는 헌병경찰제도가 운영되는 동시에 교원(학교 교육자)들이 서양식 세이버를 차고 다녔다.

제2기(교화통치·씨족분열통치) 1920년~1931년
제1기의 종막 직후부터 세계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발발한 1929년까지를 일반적으로 보며, 흔히들 '교화통치기'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경제적으론 농지개간 계획과 산미증식계획이 실시되었다. 헌병이 일반경찰로 바뀌었고 언론·출판의 자유가 반체제적이지 않은 이상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회사령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3.1운동의 영향으로, 억압보다는 회유책을 쓰던 시기인지라 친한반민족행위자들이 이 시기에 대거 등장하기도 하였다.

제3기(제국신민화통치·민족말살통치) 1931년~1937년/1938년~1945년
몽골 출병이 일어난 1932년부터 제3기의 전기로 보며, 1937년에 발발한 제 2차 동아시아 전쟁의 영향으로 1938년부터 1945년까지를 제3기 후기로 본다. 경제정책으론 전기의 남면북양을 통한 공업 원료 증산, 후기는 국가총동원법이 발효된 병참기지화 정책이 있다.

역사

1907년 9월 30일 한만병합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대청제국의 대표로 참석한 총리대신 돤치루이와 대한제국 측의 대표로 온 군부대신 이용익과 이지용 구 청국통감부 최고 고문이 협상에 임했다. 이는 각국의 황제와 가한이 마주보며 날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대한제국 측에서 일개 대리인을 보냈는데 대청제국은 가한이 직접 대면하는 것이 의전상으로도 맞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이 과정에서 한만병합조약을 공표하여, 대청제국이 다스리던 모든 영토를 식민지로 강제로 편입한 뒤 옛 대청제국 황실은 지방왕족인 애신각라왕가(愛新覺羅王家)로 격하시켜 한국 황실에 아예 편입시켰다.

그리하여, 1907년 한만병합조약 체결 이후로 37년간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고 1919년 삼일 운동이 발발하기까지 1910년대의 대한제국 정부는 무단통치를 실시하였다. 이 시기는 헌병경찰대원들이 치안업무를 담당하였기에 헌병경찰통치기로도 불리며, 만주인의 집회 결사 언론 출판 등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형벌 등을 통한 매우 폭압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 폭압적인 통치가 이루어진 것은 만주인의 단합과 저항을 강하게 묵살하기 위함도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도 강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애초에 완전한 근대국가였던 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르게, 근대화를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해서 대한제국 본토 이상의 영토 규모를 가진 대청제국을 식민통치할 만한 여력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다시 북상한 러시아의 반격에 대한 고려와, 한국 육군의 지속적인 대륙, 시베리아 진출 야욕과 내각 내 대청 강경론의 부상 등으로 급하게 식민지배를 시작하였다. 본래 이완용 내각총리대신은 좀더 점진적인 병합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예정과 달리 급격하게 병합을 진행한 만큼 경제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여기에 이완용 총리가 중태에 빠지면서 그의 점진론 또한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초대 총독 이용익은 최대한 만주가 본토의 원조를 받지 않는 자급자족의 자립적인 체제를 세우기에 이른다. 그러기 위해서 저렴한 비용과 약간의 노력으로 통치를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공포정치, 이른바 무단통치를 실시한 것이다. 이를테면 아예 식민지인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시위를 진압할 필요도 없고, 검열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1910년대는 식민통치를 위한 철도 등의 인프라 건설과 치안유지를 병행하면서도 다른 시기와 다르게 적자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고, 그럭저럭 자체적인 운영이 가능했었다.

  1. 연해주 자치령에서 극동 공화국으로, 극동 공화국에서 러시아 차르국으로 변환.
  2. 만주한치시기 만주 지역이나 만주총독부 그 자체를 상징하는 깃발은 따로 없었으며, 본국인 한국의 깃발인 태극기만이 공식적으로 통용되었다. 다만, 만주총독부의 전신인 청국통감부의 상징 깃발은 존재했으며, 만주총독부의 공식 문장은 아니지만 봉함지에 쓰이는 문양 정도는 있었다. 자세한 정보는 만주총독부 문서 참조.
  3. 내지(한국)와 만주는 하나의 몸이라는 뜻의 표어로, 민족말살 통치기 당시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