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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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1978년]](쇼와 53년) 7월 22일 치러진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사토 에이사쿠]] 총리 사임 이후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집권하면서 치러졌다.
[[1978년]](쇼와 53년) 7월 22일 치러진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사토 에이사쿠]] 총리 사임 이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집권하면서 치러졌다.


사토 내각은 1976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한번 국민적 지탄을 받았는데, 이 선거를 관통한 것은 [[제2차 석유파동]]이었다. [[제1차 석유파동]] 때는 이탈리아와 친선 및 동남아에서의 석유 추출로 피해를 최소화했으나, 2차 석유파동은 동남아에서의 석유수입이 공영권 국가들, 특히 인도네시아의 반발에 부딪히고 중동이 일본에게 유가 편의를 봐주지 않자 큰 출혈이 났다. 이에 책임지고 사토 총리가 사임했으며 석유파동의 여운이 아직 남은 가운데서 치러졌다.
사토 내각은 1976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한번 국민적 지탄을 받았는데, 이 선거를 관통한 것은 [[제2차 석유파동]]이었다. [[제1차 석유파동]] 때는 이탈리아와 친선 및 동남아에서의 석유 추출로 피해를 최소화했으나, 2차 석유파동은 동남아에서의 석유수입이 공영권 국가들, 특히 인도네시아의 반발에 부딪히고 중동이 일본에게 유가 편의를 봐주지 않자 큰 출혈이 났다. 이에 책임지고 사토 총리가 사임했으며 석유파동의 여운이 아직 남은 가운데서 치러졌다.


2차 석유파동이 일본의 쇠퇴를 부추긴 방아쇠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선거는 폭풍전야였다고도 할수 있었다.
2차 석유파동이 일본의 쇠퇴를 부추긴 방아쇠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선거는 폭풍전야였다고도 할수 있었다.
== 선거 고시 ==
== 선거 고시 ==
'''해산일'''
'''해산일'''

2024년 5월 2일 (목) 14:00 판

Destiny634, 2024 - |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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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3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大日本帝国第36回衆議院総選挙
1976년 5월 25일
33회 중원선
(리쿠르트 총선)
투표율 66.2% ▼ 3.3%p
선거 결과

정당 의석 비율
대정익찬회 616석 84.2%
무소속 116석 15.8%

개요

1978년(쇼와 53년) 7월 22일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사토 에이사쿠 총리 사임 이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집권하면서 치러졌다.

사토 내각은 1976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한번 국민적 지탄을 받았는데, 이 선거를 관통한 것은 제2차 석유파동이었다. 제1차 석유파동 때는 이탈리아와 친선 및 동남아에서의 석유 추출로 피해를 최소화했으나, 2차 석유파동은 동남아에서의 석유수입이 공영권 국가들, 특히 인도네시아의 반발에 부딪히고 중동이 일본에게 유가 편의를 봐주지 않자 큰 출혈이 났다. 이에 책임지고 사토 총리가 사임했으며 석유파동의 여운이 아직 남은 가운데서 치러졌다.

2차 석유파동이 일본의 쇠퇴를 부추긴 방아쇠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선거는 폭풍전야였다고도 할수 있었다.

선거 고시

해산일

해산명

  • 신경제 해산

공시일

투표일

개선수

  • 732석

선거제도

선거권
만 25세 이상의 일본 국민

피선거권
만 30세 이상의 일본 국민

유권자
169,394,75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