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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
1914 ~ 1917
제1차 세계 대전
1917
심판의 날
1918 ~ 1940
전간기
1941
월면전쟁
1942 ~ 1949
제2차 세계 대전
1953 ~ 1956
지구-화성 전쟁
관련 문서: 백년전쟁 | 나폴레옹 전쟁 | 대공황 | 2차 월면전쟁 | 대아대전
대아대전
Great Asian War

타이베이의 대한제국 국군
날짜1942년 12월 7일 ~
장소동아시아 전역
결과 진행 중
교전국

우람동맹
중화민국
광저우 정부

무림맹

북부군
봉천 정부
복벽파
중국 공산당


대한-일본 이중제국

만주 자치령
대한제국령 몽강국
대만 공동통치령
일본령 필리핀


지휘관

장제스
왕징웨이
쑨리런
천중밍
천치요우
장쉐량
쑨촨팡
양썬
강덕제
궈쑹링


순종 융희제
이회영
가타야마 데쓰
김두한
양원공 이운†
김홍일
무다구치 렌야
박정희
스기야마 하지메
이시와라 간지
전두환
송하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홍사익
손원일
김대중
도조 히데키†
기시 노부스케
도미나가 교지†


개요

대아대전은 2차 세계대전의 일부로 1942년 중국 공산당과 북부군의 전쟁선포 이후 1947년 대한-일본 이중제국의 북부군 공격 이후로 1952년의 현 시점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다.

북부군 축출 이후로도 계속 주둔하며 중국에서 전쟁 수행을 계속하는 이중제국중화민국의 마찰이 계속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화북 전역'이라는 말로도 불렸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상세

이회영 내각 체제의 최대 실책으로, 전쟁이 수렁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대한-일본 이중제국은 장기적인 국력침체와 내부 분열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중(對中)전선의 확대는 심각한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을 초래하였다. '전투는 이기지만 전쟁을 끝내지는 못하는' 늪에 빠져버린 이중제국은 그 과정에서 속출하는 전사자와 천문학적인 액수, 국방비 지출로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었고 중국 대륙에서 이중제국의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대한제국은 북부군의 격퇴로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이전에 벌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아 수습이 거의 불가능했고, 1948년 단성사 저격사건으로 융희황제가 동면관에서 혼수 상태에 빠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전개 과정

종전 이후

어록

" 이번 사건은 완전히 계획적인 무력도발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대한제국과 일본국 정부는 이중제국의 중대결의를 행하여 북부군 토벌을 위한 출병에 관해 정부로서 취해야 할 필요조치를 내릴 것을 국민당 정부 측에 통보한다. "
ㅡ스기야마 하지메 요동지구 군정사령관
" 북부군이 난징만 점령하면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중국 전 지역을 해방시킬 것이다. 북부군의 진격은 장제스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된 지역을 향한 승리의 행진이 될 것이다. "
ㅡ장쭤린
" (이중제국이 선포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특수 군사작전'입니다. 시안을 해방하고, 마오주의자, 공산당 성향 인사들과 이념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ㅡ김을동 지구국제연합 대한제국 대사
" 달나라 재입국 시도? 지랄하네, 사기꾼 기자 새끼들아. 국경 근처 간적없고 대원들이랑 최전방에서 헤어졌다. "
송하나 대위
" 중국에서의 특수 군사작전이 왜곡되고 있다. 국군은 중국의 민간인을 위협하지 않고, 민간인 지역에는 포격하지 않는다. "
ㅡ김을동 지구국제연합 대한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