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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유토푸스 혈통(B.C 244~A.C 351)
유토푸스 1세 재위: 기원전 244~212
유토피아 왕국의 창시자, 원주민들을 정복한 이후, 왕국을 건국하였다. 지금도 유토피아인들에게는 성인으로 추대받고 있으며, 매년 그를 기리는 추도식이 시행되고 있다.
유토푸스 2세 재위: 기원전 212~120
유토푸스 3세 재위: 기원전 120~27
유토푸스 4세 재위: 기원전 27~기원후 91
유토피아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 초기 유토푸스 가문들의 인물들은 대부분 탈인간급으로 무병장수하여 오랫동안 통치하였는데, 이분은 제위기간만 118년, 31살에 즉위하여 149년동안 인생을 살았다.
유토푸스 5세 재위: 기원후 91~182
수도 아마로트를 기준으로 해서 도로 계획을 정비하며, 에른스팔트 지역의 여러 농민들이 선진 농기구를 개발한 것을 계기로, 도입하게 되어 농업 생산량을 늘리게 하였다.
유토푸스 6세 재위: 기원후 182~273
유토푸스 7세 재위: 기원후 273~351
초기 유토푸스 가문의 마지막 왕, 유토피아 왕실에 든 전염병으로 자식을 모두 잃어 후사가 없다. 그를 기점으로 '유토푸스'라는 이름의 명맥은 100년 후까지 끊기게 된다.
가문 내분 시대(351~412)
로만트 1세 재위: 361~412(10년동안은 무정부 상태)
유토푸스 7세 사후, 카슌과 함께 내전을 벌였던 사람으로, 카슌이 로만트 사후 왕위를 계승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먼저 죽으면서 자신의 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캐슨(개명 전) 재위: 412~435
로만트 사후, 26살의 나이로 왕에 올랐으며, 이후 유토푸스 8세로 계명하게 된다.
제2 유토푸스 가문 시대(412~570)
유토푸스 8세 재위: 412~435
로만트 1세의 조카인 캐슨이 개명하였으며, 농업 생산력 향상, 의무 교육 제도 도입, 군사 이론 정립 등, 업적들에 의하여 수많은 반발들을 잠재웠다.
유토푸스 9세 재위: 435~471
유토푸스 10세 재위: 471~523
유토푸스 11세 재위: 523~561
유토푸스 12세 재위: 561~570
가족들과 함께 오파르 왕국의 미쉘 1세의 즉위식에 참석했다가 배가 좌초되어 사망하였다. 신정 정치를 연 성직자 타이그레이누스를 지원하였으며, 아반나 3세의 직계인 아들 1명만이 살아남았다. 그 아들은 그 당시 유일하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실종으로 추정하다가, 후에 아이슬란드 지역에서 정착했다는 문헌이 발견되었다.
신정 정치 시대(570~1660)
아반나 3세 재위: 655~691(570~654년까지는 왕이 없었다.)
유토푸스 12세의 증손자뻘이며, 신정 정치 시대의 첫번째 왕이다. 의회 선거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였으며, 성직자 지원금을 증가시키고, 왕실 교육 과정으로 종교 과목 시수를 늘리는 등의 친종교적 행보를 보였다. 이 시기부터 여러 종교와 교리들이 보편적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카일 1세 재위: 691~734
카일 2세 재위: 734~769
카일 3세 재위: 769~770
비운의 왕으로, 콜레라에 걸려 1년 만에 사망하였다.
데이먼드 1세 재위: 770~816
최초의 유토피아 식민지인 헤스틴바를 개척한 인물이며, 당시 200명의 시민을 이주시켰다.
데이먼드 2세 재위: 816~889
칼리스 1세 재위: 889~951
칼리스 2세 재위: 951~1000
이 시기에 2번째 식민지인 엔틸노바를 개척하였으며, 헤스틴바 개발 사업에 주력하여, 아마로트-헤스틴바 항로 구간이 완성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칼리스 3세 재위: 1000~1021
칼리스 4세 재위: 1021~1078
칼리스 5세 재위: 1078~1121
이 시기에 호스피스 병원과 노인 공공기금책 등 여러 복지 제도를 정립하였다.
헨프 1세 재위: 1121~1178
유토피아 최초의 식민지 출신 국왕이다. 출생지는 헤스틴바. 제 3식민지인 트란톤의 서부를 일부 정복하는 등, 여러 군사적 측면에서 쾌거를 거두었기에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다.
베이스 1세 재위: 1178~1230
베이스 2세 재위: 1230~1279
트란톤 중부 원주민들을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로 이주시킨 장본인이자,

이 시기에 왕실에서 공식 후원한페이 스팅어의 탐험으로,주변국과의 무역이 활성화되어 상업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폴라우스 1세 재위: 1279~1351
5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니 매우 장수하시는 분이였다. 유토푸스 4세만큼 오래 사는거 아니냐고 사람들이 가십거리로 삼았으나, 사냥을 나가다 낙마한지 7일 만에 사망하였다.
폴라우스 2세 재위: 1351~1401
차머스 1세 재위: 1401~1461
우연히 배가 좌초된 칼마르 동맹의 사신단과 외교 협약을 맺었으며, 스웨덴과 노르웨이 지역에서 교역을 하였다.
페사니아 1세 재위: 1461~1520
칼마르 동맹과의 무역이 이 시기까지 유지되고 있었으나, 스웨덴의 구스타프 바사 1세가 일으킨 반란으로 인하여, 칼마르 동맹의 북부 지역 통제력이 약화되고, 덴마크의 영향력이 감퇴하면서, 칼마르 동맹과의 무역 규모가 매우 축소된다. 이 시기에 라파엘 하드리아누스가 유토피아를 방문하여 토마스 모어한태 그 사실을 전하는데, 그것을 기록한 책이 <유토피아>이다.
페사니아 2세 재위: 1520~1576
칼마르 동맹이 스웨덴의 반란을 견디지 못하고 재위 4년만에 멸망하게 되자, 스웨덴에 있던 칼마르 동맹 핵심인물들을 망명시키려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바사 왕조의 스웨덴이 유토피아와의 교역 기록을 말살하면서, 북유럽과의 교역이 끊기게 된다. 이 시기 마지막 식민지인 베스탄시니아의 개척이 완료되며, 유토피아 왕국의 최대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페사니아 3세 재위: 1576~1603
빙켈만 1세 재위: 1603~1624
헤라트 1세 재위: 1624~1659
이 시기부터 서서히 소빙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마로트에 대기근이 드는 한편, 다른 지역인 포트에서는 홍수가 나는 등 여러 자연재해가 겹쳐 민심이 악화되었다. 이후 자신의 아들이 유토푸스 13세로 개명하면서, 신정 정치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제3 유토푸스 시대(난세 시대)
유토푸스 13세(헤라트 2세) 재위: 1659~1665
이 시기에 남부 대기근이 본격적으로 발생하였으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정국에 대하여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죽고 만다.
유토푸스 14세 재위: 1665~1670
아버지가 반란군 잔당에 의하여 죽었으나, 왕이 없으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것을 우려하여 유일한 왕실 직계자인 유토푸스 14세를 즉위시켰다. 남부 대기근을 타계하기 위하여 여러 정책들을 실시하였으나, 소빙하기가 악화되자 북부의 히픈 가문이 전쟁을 일으켜 유토푸스-히픈 가문 전쟁이 일어나게 되며, 결국 1670년에 아마로트가 함락되자 사망하게 된다. 이 시기 이후 한동안 200년동안은 히픈 왕조가 개창되었다.
히픈 왕조 시대(1670~1867)
콘도비스 1세 재위: 1670~1698
유토푸스-히픈 가문 전쟁에서 승리하여 히픈 왕조를 개창한 사람으로,

총독제 개편과, 식량 보급 우선화, 철권 통치로 왕권 강화에 주력하였다. 이 시기부터 소빙하기가 풀리기 시작하였으며, 민심이 다시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페스티우스 1세 재위: 1698~1724
페스티우스 2세 재위: 1724~1760
콘도비스 1세의 명맥을 이어 유토푸스 가문 기록 삭제 작업에 주력한 인물이다.
콘도비스 2세 재위: 1760~1806
페스티우스 3세 재위: 1806~1837
헤스틴바에서 유토푸스 가문 인물들 일부를 처형시키는 작업을 시행한 인물이다.
콘도비스 3세 재위: 1837~1872
이 시기부터 주변국들이 열강에 의하여 몰락하였으며, 말년에는 베스탄시니아의 총독이였던 토비 코프가 엔틸노바 앞바다로 떠내려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루도비코 2세 재위: 1872
유토피아 왕국 최단기간으로 즉위하였으며, 악행들이 만연한 나머지 2개월만에 퇴위당했다. 이후 유토푸스 15세가 즉위하여 히픈 가문의 명맥은 끊기고 만다.
제4 유토푸스 시대
유토푸스 15세 재위: 1872~1919
이 시기, 유토피아 왕국의 난세로 대표되는 군주이다. 재임 시기 제 1차 아마로트 전투가 일어났으며, 다중 국가 통상 협약 등,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많은 서양 열강들과 조약을 채결하였다. 1901년, 유토피아 제국을 수립하여 제정을 선포하였다.
유토피아 제국 황제
유토푸스 15세 재위: 1872~1919
제정 이후, 1908년에 내각 개혁을, 1911년에는 독일제 신무기 도입과 함께, 제 2차 모로코 분쟁 참여로 프랑스령 콩고를 할양받았다. 이후 동맹국 편으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나, 패전하고, 유토피아 제국은 수천 달러의 빚을 지게 되면서 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이였으나, 개최 이전 사망하였다.
세인트 1세 재위: 1919~1924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왕위로 취임하였지만, 10월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의 확산으로 인하여 유토피아 공산당이 창당되며, 순식간에 내각을 공산당에게 내주게 된다. 이후, 소련의 압박을 받으며, 제4내각이 수립되면서 반소 감정으로 인하여 유토피아 제국-소련 전쟁이 발발하나, 결국 패하고, 전쟁 1년 후, 유토피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유토피아 왕정은 몰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