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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empas le Utopia | |||||||||||||||||||||||||||||||||
국기 |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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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spertriy le woalrd, Gracos le Utopia 세계에 번영을, 유토피아에게 영광을 | |||||||||||||||||||||||||||||||||
상징 | |||||||||||||||||||||||||||||||||
국가 | 유토피아 제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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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유토피아 제국은 북유럽에 위치한 섬나라로, 입헌군주정 정부 체제를 가지고 있는 제국이다. 수도는 전신인 유토피아 왕국과 같이 아마로트이다. 유토피아 왕국 시기에 비하여 왕의 권한이 제한되었지만, 여전히 여당인 유토피아 입헌당을 통한 영향력 행사에 주력하고 있다.
역사
제국 수립(1901~1907)
19세기 말, 유토피아 왕국은 여러 열강들의 침탈로 인하여 기존의 자랑스럽던 나라와 다르게 완전히 쇠퇴해버리고 말았다. 내부에는 유토피아 시민들의 불만이, 외부로써는 러시아 제국과 영국의 침략이 행해졌다. 영국-러시아 간의 유토피아 패권 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두고 볼수만은 없었던 유토푸스 15세는, 독일 공사 하인리히에게 연락하여 독일 황제인 빌헬름 2세하고와의 동맹을 맺자고 제의하였으나, 1899년, 러시아가 유토피아 왕국을 침략하면서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유토피아에만 신경을 쓸 겨를이 아니였다. 시기상 그레이트 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아프가니스탄, 캅카스 지역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했고, 특히, 조선에서 이권을 빼앗긴 일본이 눈앳가시로 보였었기 때문에, 갈등이 격화되던 와중, 전쟁으로부터 얼마 안가 청나라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 러시아 제국은, 유토피아 왕국에 있던 전력을 청나라로 빼버렸다. 열강들의 눈길이 중국으로 팔린 이때, 유토푸스 15세는 결국 1901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유토피아 제국을 건국하게 된다. 제국 수립에 반대의견도 많았다. 당시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가던 와중에, 급격한 개혁은 유토피아의 역량에 비하여 너무 큰 일이였다. 따라서 유토푸스 15세는, 열강들과의 식민경쟁 선포를 강조하며, 독일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식민지 개척 반열에 오를 것을 선포하였다. 실제로 1903년~1906년에는 나미비아 북부 지역에 대한 일부 통치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며, 구 식민지였던 베스탄시니아의 영유권을 재주장하기도 하였다. 제 1차 모로코 분쟁에서도, 독일 제국의 지원국으로 참전하여, 구 프랑스령 알제리에 대한 일부 이권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내각 개혁(1908~1913)
유토푸스 15세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내세우면서, 기존 시포그란투스 내각 체제를 각기 상원과 하원 체제로 개편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이 시기 여당인 유토피아 입헌당 외에도 유토피아 민주당 등이 창설되었으며, 일부 공산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유토피아 공산당의 전신인 유토피아사회주의연대책임이 창설되었다. 또한 기존 1명이였던 부의장을 2명으로 늘렸으며, 행정 각료도 실정에 맞추어 다양화시켰다. 이 시기에는, 기존 외교 정책을 고수하여, 1911년, 제 2차 모로코 위기에서 독일 제국 편으로 참전하여 독일과 함께, 프랑스령 콩고의 일부를 할양받았으며, 독일제 신무기 도입으로 인한 군사력 증대는, 세계 하위권이였던 전근대 유토피아 왕국의 군사력을 세계 21위까지 올리는 데에 기여하였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1914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프란츠 페르디난트에 관련한 사라예보 사건은 전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데에 일조하였다. 1914년 9월 26일, 유토피아 제국은 독일과의 동맹 선언으로 인하여 동맹국 편으로 참전하였다. 당시 군사령관이였던 펠릭스 안나를 지휘관으로 하는 의용대는, 북해에서 독일 해군을 도와 러시아 제국과 영국 해군을 견제하는 데에 힘썼으며, 히파노바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점차 나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되는 전선과 참호전, 배급과 경제 역량의 부족의 위기는 유토피아 제국의 목대를 천천히 조여왔고, 무르만스크 해전에서 유토피아 해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뒤, 러시아 제국군이 유토피아 제국 동부 해안에 상륙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전체 병력의 대부분을 유럽 대륙전선에 보낸 유토피아 제국은, 상륙군들을 대응하기에도 버거웠으며, 1918년 3월, 결국 러시아 제국한테 항복하게 된다.
전후 체제와 공산주의의 태동(1919~1921)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유토피아 제국은, 파리에서 열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하여 자그마치 26억 유토피니아를 협상국 국가들에게 배상하기로 판결되었다. 당연히 유토피아 제국의 경제는 어려워졌고, 다시 평등한 시기를 갈망하는 시민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1919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인하여 유토피아 공산당이 창설되자 당원 수가 급속도로 늘기 시작하였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갈망을 받은 유토피아 시민들은, 1920년에 5월 아마로트 혁명을 일으켜 유토피아 제국 의회에 압력을 행사하였다. 유토피아 공산당은 창설 이후 1년이 남짓한 기간 안에,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공산당 치하의 준군사조직도 수차례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내전에서 적군이 승리함에 따라서 유토피아 제국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유토피아의 개혁을 외치던 공산당도, 점차 소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질되어 갔다. 한편, 내각에서는 1차 세계대전의 참전의 유토푸스 15세의 책임을 묻는 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이였으나, 유토푸스 15세가 노화로 사망하는 바람에 반발이 거셌지만, 그의 아들인 세인트 1세가 2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제국의 몰락(1922~1924)
유토피아 제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공식적으로 수립된 1922년에 들어서 더욱 심각해져 갔다. 국민들 사이에서 소련에 음모를 알아챈 이들도 소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하면서 계속 정부에 반기를 들어만 갔다. 결국 유토피아 공산당의 일부 극단주의 분파인 유토피아-모스크바 연방연대에서 소련에게 유토피아 인민들의 핍박을 전달, 소련에게 이권 보장이라는 약속을 들어, 유토피아 제국-소련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국력이 쇠약해진 유토피아 제국은 초반에는 북부 지역의 산악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간신히 소련군을 물리칠 수 있었으나, 적벽내전이 종결된 이후의 극동군들이 유토피아 제국 영토를 밟게 되면서, 수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아마로트가 소련의 손에 넘어간다. 하지만, 점령지에서 소련군들이 유토피아 제국민들에게 극심한 핍박을 가하자, 소련에 우호적이였던 여론이 점차 혐오로 바뀌어 가기 시작하였으며, 유토피아 황실당의 대표인 타인 포스트를 주력으로 하는 칼리스폴 봉기가 일어났다. 허나, 얼마 있지 않아 민병대같은 무장 세력들은 모조리 해산당했으며, 1923년 7월 10일, 전쟁의 종결을 선포하면서 세인트 1세를 명목상 황제, 주 유토피아 소련 대사였던 알렉세이 로스토프에게 내각 의장과 주석의 권한을, 베르테 루스 카벨린에게 부주석과 내각 부의장을 겸임하게 하는 주석 체제로 변경했다. 유토피아 입헌당,유토피아 민주당 등과 같은 공산 반대 연대 정당은 모조리 해산되었으며, 심지어는 좌파 성향이나, 소련의 통치에 반발한 유토피아 산업조합당도 엄격한 탄압 아래 멸당시켰다. 이 시기부터 유토피아 제국은 사실상의 식민지 상태가 되었으며, 1924년, 유토피아-소련 연방 조약이 채결되어 세인트 1세가 폐위되고, 유토피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게 편입되게 되었다.
정치
본디 초반에는 기존 체제와 같이 일당제 입헌군주제 체제였으나 1908년 시포그란투스 내각 개혁에 의하여 유토피아 입헌당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정당들이 탄생하였고, 이는 1923년 소련에 의하여 일당제 주석 체제로 변경될 때까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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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제국 국회는 시포그란투스 내각 개편 이후 총 4차례의 국민 선거가 열린 적 있으며, 내각은 의장, 부의장 2인, 내각 의원(국회의원), 본국 지방 자치장, 총독, 정당 대표 등으로 이루어진다.
다음은 유토피아 제국의 역대 의장들의 목록이다.
제 1대:폴 로크(1867~1903):유토피아 왕국 내각의 마지막 의장이자, 유토피아 왕국 의장 중 제일 긴 재임 기간 보유인, 또한 유토피아 제국의 첫 내각 의장이기도 한다. 내각의 과도기 시기, 다른 사람으로써 대체할 기반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임시적으로 1903년까지 직책을 수행하였다. 1903년에 병사로 인하여 임기 종료.
제 2대:페리스 한나(1903~1908): 유토피아 제국에서 첫번째로 새로이 선출된 내각 의장이자 시포그란투스 내각 개편전의 마지막 의장.
제 3대:유나스 폴데(1908~1913): 시포그란투스 내각 개편이후의 처음으로 선출된 의장. 1차세계대전 참전 반대 운동을 펼쳤다가 내각의 몰매를 맞아 임기 말에 사퇴하였다.
제 4대:카베너 자크(1913~1918):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토피아 제국의 내각 의장, 패전의 책임을 묻고 사퇴하였다.
제 5대:위스 케인(1919~1923): 유토피아 제국의원 선거로 선출된 마지막 내각 의장, 4차 내각 의원에도 연이어 직책을 유지하였으나, 유토피아-소련 전쟁의 결과로 유토피아 제국이 항복하자, 소련의 압박으로 물러났다.
제 6대:알렉세이 로스토프(1923~1924): 유토피아 제국의 마지막 내각 의장이자, 1920년대 이후 비선거로 당선된 유일한 제국 의장. 유토피아 제국의 초대 주석을 겸임하였으며, 유토피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첫번째 서기장이기도 한다.
주요 도시 시장들은 다음과 같다.
아마로트: 비스트 파렌
타른포트: 칼 세인
칼리스폴: 프라 스포레
베스케노: 그로니 스트라우스
타르모겐: 마인 페튼스
가코뉴: 트론판 헤이그
유토피아 총독으로는 다음이 있다.
헤스틴바: 카인 벨리
엔틸노바:존 페사니아
트란톤: 가인 쥘렌
수도권인 아마로트 주 주요 당선 의원은 다음과 같다.
나인스폴 미셸[아마로트 병]- 유토피아 입헌당
타페스 힐데[타른포트 을]- 유토피아 민주당
투르 베스카뉴[아마로트 정]- 유토피아 입헌당
시몬 갈리아[아마로트 갑]- 유토피아 공산당
페스나인 가믈랭[아마로트 을]- 유토피아 입헌당
그로즈니 미스트[쿠스타 정]- 유토피아 공산당
다그리아 폴카[타른포트 갑]- 유토피아 공산당
하인츠 스비네크[아트포르 갑]- 유토피아 민주당
스토브 비켈만[가스타인 갑]- 유토피아 공산당
시그나 바텔민[가스타인 을]- 유토피아 입헌당
한스 폴라스콜[가스타인 병]- 유토피아 민주당
킨케이드 바인스[가스타인 정]- 유토피아 공산당
팔콘 게르만[타이누르 갑]- 유토피아 입헌당
하이난 두르[타이누르 을]- 유토피아 공산당
베캅 니우르[타이누르 병]- 유토피아 민주당
리만 푸르[타른포트 병]- 유토피아 공산당
베르나 가멘[타른포트 정]- 유토피아 민주당
그라치아 가비[피켈 병]- 유토피아 통합당
로이만 로이드[피켈 정]- 유토피아 황실당
외교
유토피아 왕국시기에 채결된 다중 국가 통상 조약에 의하여 다양한 열강들과 수교하는 편이다. 현재 수도인 아마로트에 다양한 공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수교국
군사
1901년, 기존의 명칭을 버리고 유토피아 제국군으로 군 이름을 변경하였다.
경제
인구
한국과의 수교
유토피아 제국과 대한 제국은 직접적인 공식적인 왕래는 없었으나, 민간 차원에서 1번의 교류는 있었다. (러시아 제국으로 간 유학생 한봉선이 북해 탐사 차원에서 유토피아를 방문하였다.) 1905년, 대한제국은 10월 중순에 유토피아로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맺기로 하였다. 당시 갔던 인물로는 주 유토피아 대한제국 공사가 될 인물이였던 김선학(안동 김씨, 외무아문 소속 상급 대신)이 대한 제국
한성에서 아마로트로 러시아 제국의 페테르스버그를 거쳐서 출항할 예정이였다. 하지만 11월 중순, 제 2차 한일 협약이 채결됨에 따라, 대한 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고, 모든 외국 공사들이 철수함에 따라 유토피아와의 통상 시도도 자절되었다. 이후 김선학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도중에 유토피아 제국을 방문하여 유토피아 고대문헌을 찾는 것에 기여했으며, 조선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황해도 황주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가 1934년 디프테리아로 사망하였다.
1974년 이강준 화백이 그린 김선학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