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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정오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중충한 하늘이 보이는 테라스가 눈에 보였다. 겨울 새벽의 런던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아래를 내려보자 가게 앞을 청소하는 카페의 직원, 진눈깨비를 뚫고 지하철로 향하는 직장인들, 우산을 쓴 채 분주하게 걸어다니는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인들의 패션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카나리 와프에선 더욱 그럴 것이었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종이 봉투와 함께 난간에 손을 기댔고 똑같은 풍경이 지겨워 졌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향햤다. 그레이색 롱코트와 넥타이가 보이는 셔츠 깊게 눌러쓴 중절모가 눈에 띄는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옆에 비슷한 자세로 자리를 잡았고 템스강을 바라봤다. 레저용 요트와 유람선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고 다리 위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채 걸어가고 있었다.


"경치가 좋네요, 자리 하나는 잘 잡은거 같습니다." 남자는 시선을 밖에 두며 입을 열었다.

"칭찬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녀는 확실히 키이우 억양으로 말했다.

"런던에는 자리 잡을만한 곳이 있었습니까?"

"여인숙마저 없었어요... 모두가 길바닥에 누워있었고 드럼통에 불을 붙여 그곳에 붙어서 하루하루을 보내고 있었어요."


남자는 자세를 바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죽 코트와 통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옷에 잔뜩 묻은 무언가를 지운 듯이 축축하게 물에 젖어있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있었고 남자의 모습이 낯이 익은 듯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르키우에 있었을 때 였어요. 참나무들이 길을 따라 나있는 농장 근처에서 살았었는데 하늘은 항상 지금처럼 구름이 많았었어요. 잘사는 건 아니었고 모두들 가난한 농부들 이었어요. 그래도 모두들 삶을 즐기며 살고 있었어요." 그녀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근데 이후 전쟁이 일어났고 오빠는 제일 먼저 입대해 최전선으로 배치되었어요. 며칠, 몇달이 지나도 소식이 들지 않으니 저희 아버지도 전쟁터에 나갔고 그렇게 저는 유일한 가족을 전부 일었어요."

"유감입니다. 애들러양"


"그...."
여자는 거칠게 숨을 쉬었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정말 힘든건 뭔 줄 알아요? 이 모든게 거짓 일수도 있다는 거에요."

"제 이름은 매일 바뀌죠. 노바, 에밀리, 미아, 엠마. 애들러...."

"이헤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젠 받아들어야 해요."


남자는 모스크바 억양이 묻어나오는 영어로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이게 바로 신종 수법 입니다."

어두운 지하실의 한 방. 전구하나 달린 3평 남짓의 방 안에서 6명의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