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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임을 밝히며, 자세한 정보는 각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자유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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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 | Liberal Party of Korea | ||
표어 | 다시 한번, 국민이 있는 곳으로! 과거를 넘어 하나된 미래로 | ||
등록일 | 1997년 11월 21일 (舊 자유당) 2020년 2월 17일 (新 자유당) | ||
당명 변경 |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 2017년 2월 13일 (舊 자유당) | ||
해산일 | 2027년 11월 8일 (국민통합당으로 신설합당) | ||
당색 | 빨간색 (#E61E2B) 파란색 (#00B5E2) 하얀색 (#FFFFFF)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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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지도를 불러오는 중... | ||
구 자유당 당사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74길 12 여의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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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위원장 | 유승민 / 재선 (21·22대) | ||
원내대표 | 박홍근 / 4선 (19-22대) | ||
사무총장 | 정청래 / 4선 (17, 19, 21·22대) | ||
정책위의장 | 민형배 / 재선 (21, 22대) | ||
정책연구소 | |||
위성정당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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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조직 | |||
국제조직 | 없음 (무소속) | ||
개요
자유당(Liberal Party of Korea)은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며, 해산 직전 김현수 정부의 입법야당이었다.
기원
자유당의 기원은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신민주공화당이 보수 대연합을 표방하며 3당 합당으로 창당된 민주자유당에 있다. 이는 학술적 내용상, 그리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비법인사단에 대한 판례의 태도, 자유당이 과거의 고유번호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에서 명시적으로 법원이 '자유당은 민주자유당으로부터 이어온 정당이다.'라고 판시한 점에 의한다.
민주자유당에서 당명을 변경한 신한국당이 1997년 통합민주당과 합당해서 자유당이 창당되었다. 자유당은 구 자유당과 민주자유당을 당의 공식적인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정당법상으로는 1997년 11월 21일에 창당되었다가 2020년 2월 17일에 해산된 법인을 舊 자유당, 2020년 2월 17일 신설합당한 법인을 新 자유당으로 구분하고 있기에 해산 직전 존속한 경우는 명백히 후자이다.
현황
자유당은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과의 합당 이후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보수의 헤게모니를 대표했던 정당으로, 민주당계를 대표하는 민주당과 함께 오랫동한 한국 정치를 이끌었다. 당장 이명박근혜 시기로 구분되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정권 교체에 성공한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여당 지위를 유지했고, 제6공화국 출범 이후 보수정당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성기를 누렸다. 또 야당이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에도 그 존재감은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계 정당보다도 강했다.
우선 자유당은 2011년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는 위기에 놓였다. 이로 인해 2012년 열릴 총선과 대선에서 패색이 짙어졌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면서,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교체했다. 새누리당은 2012년부터 약 4년 간 박근혜 정부의 집권 여당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몰락했다.
결국 2017년 2월 13일 다시 명칭을 자유당으로 환원하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가 참여했으나 낙선했으며,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9년 재보궐선거에서도 패배하는 등 긴 암흑기를 지냈다. 이후 2020년 2월 17일 새로운보수당과 미래를위한전진4.0 등 군소 보수, 중도 정당들과 신설합당해 (新) 자유당이란 이름으로 신설합당했으며 당 색도 핑크색으로 바꾸는 등 이미지 쇄신에 주력하였으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했다.
2020년 9월 2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쇄신 일환으로 당 로고와 이미지를 전면 교체했으며, 덕분에 2021년 재보궐선거 승리와 이준석의 당 대표 당선으로 보수정당의 암흑기를 끝낼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2021년 7월 30일 영입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치열한 경선 끝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고, 같은 해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면서 5년 만에 여당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나타난 수 많은 실책과 논란으로 지지율 하락과 범국민적인 비판 여론을 초래했고,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김기현 지도부 또한 친윤 패권 행보와 대통령실의 당무개입, 이준석 대표의 당원권 정지 등으로 인해 민심을 잃었다. 결국 김기현 지도부는 인요한 혁신위 체제를 거쳐 한동훈 비대위로 22대 총선을 진두지휘했으나, 압도적인 정권 심판 여론과 지지자 선거운동 방해 사건의 역풍으로 참패했다.
이후 친윤과 연대한 나경원이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당권을 이끌었지만, 야권의 비타협적인 태도, 정부에 대한 높은 비호감도, 당 내 구설수 등 잇단 악재가 겹치면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결국 나경원 지도부의 후임으로 원내대표를 맡은 조경태가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했으나 지선 패배의 후폭풍이 가시질 않았고, 당 내에서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유승민이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지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김은혜 캠프 측의 역선택 및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내부 갈등이 서서히 드러나는 가운데, 지방선거 패배로 탈당했다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원희룡 후보가 끝내 당 내 친윤과 연대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계파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두 후보의 보수 표 분산과 양 캠프 간의 잦은 충돌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결국 막판 중도, 보수 결집에도 불구하고 n위를 기록하며 참패했다.
대선이 끝난 후, 김현수 정부에 대항하는 야권 결집을 목표로 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고, 이 가운데 유승민, 나경원, 홍준표, 안철수를 비롯한 다수의 인사들의 찬성파와 윤석열 정부 출신 관료 및 범친윤 인사들의 반대파로 갈라졌다. 이 중 반대파는 합당 과정에서 탈당하여 공정당을 창당했고, 당에서는 통추위의 협상안 합의와 전국위원회, 최고위원회의에서의 의결을 거쳐 민주당과의 통합을 성사시켰다. 그리하여 자유당은 2027년 11월 8일 해산과 함께 후신인 국민통합당으로 계승되었다.
정강 및 정책
정강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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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자유당의 강령과 달리 역사관의 변화로는 먼저 3.1 운동 정신과 임정 법통론을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역사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2] 정신’을 계승한다고 썼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의 호남행과 맞물려 이해되는 대목이다.
여러가지 국가적 위기에 맞서 '기회의 나라,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을 시대정신으로 보고 핵심 정책 기조를 기회와 공정, 미래 변화 선도, 노동의 존중, 경제적 자립, 약자와의 동행,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외교 안보 등 6가지 주요 핵심 가치로 보면서 거시적인 당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10대 신념
10대 신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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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고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2. 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3. 우리는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하고,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믿는다. 5. 우리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시대 변화에 앞장서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6. 우리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7. 우리는 쾌적한 환경과 안전한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8.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9. 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10.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한반도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
우리의 믿음도 강령의 일부로서 영국의 마이클 하워드 전 영국 보수당 대표가 발표했던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벤치마킹해 자유당이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공유할 수 있는 핵심 가치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2차 대전 전후 서구의 보수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러셀 커크의 1953년 작인 '보수주의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보인다.
100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당의 신념과 믿음이라고 주장하며 위의 10가지 믿음이 정당 구성원의 행동과 당의 핵심 기조 설정, 정책 구현 방향에 연결되어 지속가능한 당의 뿌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1, 2, 10번)와 공화주의(4, 8, 9번), 보수주의(5번) 이념과 사회 정의와 관련된 공정성과 다양한 기회(3번), 기존의 보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국가안보에 사회권을 포괄한 확장된 안보관(7번), 교육에 있어 다양한 기회의 균등(6번)의 개념 및 가치가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의 보수정당들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첫 번째, 공화주의 이념이 메인으로 부상하고 두 번째, 공정과 기회라는 사회 정의의 구현을 핵심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세 번째, 사회권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네 번째, 교육과 관련된 가치가 10대 신념 중 하나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기본 정책
10대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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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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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당명
- 한국어: 자유당
- 영어: Liberal Party of Korea
- 중국어
- 정체자(번체자): 自由黨
- 간체자: 自由党
- 표준중국어 발음
- 한어병음: Zìyóudǎng
- 한글 표기: 자유당
- 한글 한자음: 자유당
- 일본어
- 신자체: 自由党
- 구자체: 自由黨
- 발음 표기
- 가나 표기: じゆうとう
- 로마자 표기: Jiyuto
- 한글 표기: 지유토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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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
자유당 당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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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민곁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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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의 당가는 1997년에 제정되었으며, 민주노동당 당가 같이 너무 운동권 느낌이 크지 않는 데다가, 민주통합당과 국민의당 같이 지나치게 가볍지 않아 중장년층 지지자에게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일부 지지자 모임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당가이지만 자유당의 역사를 통틀어 회자되고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한편 2012년 새누리당으로 개칭한 이후 새로운 당가를 제작하였는데, 곡의 분위기가 너무 동요같다는 이유로
계파
윤석열 정부 후기 ~ 김현수 정부 초기 (야권통합 이전) 기준 민주당의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 이재명 대표를 위시한 친명
- 당원 권리 강화와 개혁 정치를 촉구하는 원외 조직 민주전국혁신회의
- 용혜인 최고위원을 위시한 기본사회네트워크
- 한국사회당 내 참여계를 위시한 새진보참여포럼
- 더밝은미래당 및 정치혁신연합 등 서정미 교수를 위시한 미래혁신포럼
- 친명 내 강경파 의원들을 주축으로 하는 국회 공정사회 포럼
- 문재인 전 대통령을 위시한 친문[3]
- 주류인 친명과는 다른 의견을 내는 비명
핵심적인 계파로 분류하자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 민주당계 정당의 3대 세력이었던
-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호남권 정치인들
-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민주화 운동권[4]
- 199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영입했던 성공한 야권 성향 유명 인사 집단(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 있다.
이 중 동교동계 및 호남계 인사들은 친노와의 반목으로 대부분 국민의당으로 나갔으며[5], 민평련 계열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세상을 떠난 뒤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3번으로 대표되는 명사 집단 중 가장 크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계파가 바로 친노이다.
노무현 서거 이후에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던 친노가 부활하는 기틀을 마련하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는데 기여했으나, 2012년 총선과 대선 패배로 두 번째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2015년에는 분당 사태로 그 절정에 달했는데, 이 때부터 친노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표를 위시로 친문이 등장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친문은 20대 총선을 거쳐 가장 많은 당원과 국회의원을 보유한 최대 계파가 되었으며, 2017년 19대 대선에서의 승리로 친문 세력의 입지는 매우 탄탄해졌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문재인 정부의 실책과 재보선 참패로 친문의 발언권이 줄어든 반면, 불리한 구도 속에서 석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20대 대선을 전후로 친명이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다. 친명의 대항마로 자리잡은 친낙은 이낙연의 경선 패배로 주류 자리에서 점점 멀어졌으며, 대선 종료 약 6개월 후 이재명이 전당대회에서 당선되고, 다수의 의원들도 친문, 비문 할 것 없이 이재명 체제를 돕거나 지지하는 등 친명을 자처하며 민주당의 최대 계파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자 친명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친문 출신의 박주민이 당 대표가 되고, 이재명을 계승한 개혁 정치를 부르짖으면서 위기론은 빠르게 사라졌다. 여기에 민주대통합의 추진으로 친민주당 진보 세력과 호남 계열 인사들까지 끌어모아 친명의 입지를 확장했으며, 당 내 비명계들도 협치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계파 갈등 극복에 주력했다.
2027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와 야권 통합 정국에서 친명의 영향력은 절정에 달하고, 비명은 탈당을 반려한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잔류 친낙, 비명 친문의 집단 이탈로 세력이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또 민주당을 탈당한 비명 인사들이 '새로운 민주당을 위한 국민연대'를 출범해 독자 세력화를 추진했고, 이후 이낙연 전 대표가 이끄는 국민신당과 합당해 민주시민당을 창당했다. 친명은 해산 직전까지 민주당의 최대 세력으로 존재하다가, 국민통합당 출범 이후 대동사회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다.
각주
- ↑ 파란색 (#003990)(1997 ~ 2004)파란색 (#0095DA)(2004 ~ 2012)빨간색 (#C9151E)(2012 ~ 2020)분홍색 (#EF426F)(2020)
- ↑ 구체적으로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법 등에서 정한 7가지 운동(2.28 학생민주의거,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을 적시했다.
- ↑ 친문이면서 동시에 친명인 케이스도 있으며, 사실상 이들이 당내 주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도 많고 중량감 있는 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당장 이재명이 22대 총선 당시 친명·친문 일체론(명문정당론)을 내세우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견지해 나갔고, 국민통합당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절대 다수의 친문 인사들이 범친명 계파인 대동사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 ↑ 정치권 진입 이후 우경화했기 때문에 한국사회당, 진보당 등의 진보정당과 성향 차이를 보인다.
- ↑ 현재 동교동계와 호남계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국민통합당 내 범민주계를 이끌고 있으며, 일부는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거나 탈당하여 민주시민당이나 공정당에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당계와 보수에 고루 퍼져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