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변화)

WARSAW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3월 20일 (월) 21:20 판

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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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예정
부통령 선거 제5대
1960년 3월 15일
부통령직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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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제6차
1987년 10월 27일
시행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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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을 폐지함.
**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부 일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2016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본 템플릿(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선거 기록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정수: 299석 / 과반: 150석
실시일: 2008년 4월 9일
투표율: 46.1% (▼ 14.5%p)
제17대 제18대 제19대
한나라당 152석 (50.8%)
(27.1%) 81석 민주당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총합 비율
한나라당 130석 22석 152석 50.83%
통합민주당 66석 15석 81석 27.09%
자유선진당 14석 4석 18석 6.02%
친박연대 6석 8석 14석 4.68%
민주노동당 2석 3석 5석 1.67%
창조한국당 1석 2석 3석 1.00%
변화당 1석 0석 1석 0.33%
무소속 25석 0석 25석 8.36%

2008년 4월 9일에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로, 4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지난 총선과 동일하나 비례대표 의석이 2석 줄고 지역구 의석이 2석 늘어났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수요일에 치러진다.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교체된 지 네 달만에 치러지는 선거로서, 한나라당의 국정 동력 강화와 야권의 정부 여당 견제가 주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변화당, 진보신당, 평화통일가정당, 한국사회당 등이 참여했는데, 공천 파동, 계파 갈등, 신당 창당 등 정치권 상황이 심상치 않다 보니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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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몰락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뜨거웠던 지난 총선에서 151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여대야소를 만들어내 향후 행보를 기대했으나, 당의 난맥상과 심판 여론이 강해져 2개월 뒤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또 헌법재판소가 임기 초에 추진했던 신행정수도법을 위헌으로 받아들였고,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담은 '4대 개혁 입법' 역시 여야의 충돌로 실현되지 못하면서 결국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개혁 동력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 때부터 열린우리당은 서서히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이에 노무현은 2005년 7월 지역주의 타파와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위해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했으나 당 내에서는 물론 국민 여론의 반발로 실패했으며 우리당을 더욱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때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새천년민주당이 명칭을 정통성 강화를 위해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설욕을 갚는데 성공해 친노 여당의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우리당은 2007년을 기점으로 일부 의원들을 시작으로 연쇄 탈당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중 김한길계는 2007년 5월 7일 '중도개혁통합신당'을, 8월에는 당의 중심축인 김근태와 정동영이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손학규 중심 세력과 함께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결국 우리당은 동년 8월 20일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통합을 선언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통합신당은 17대 대선을 위한 경선에 돌입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 당시 대표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그리고 경기도지사를 맡았던 손학규가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으나 이명박, 박근혜가 주목될 만한 후보로 여겨졌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재보궐선거 참패로 인해 박근혜의 지지세가 빠지고, 경선 과정에서 BBK 주가조작, 다스 실소유주 논란, 최태민과의 관계 등 양 후보 간의 네거티브 공방이 펼쳐지기도 했다.

민주당계에서는 고건 전 총리를 제외한 유력 후보로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등이 거론되다가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면서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정동영, 이해찬, 그리고 한나라당 탈당파였던 손학규의 3강 구도로 재편되었다. 그런데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이름을 도용하고, 선거인단의 명부를 박스채로 실어 나르다 손학규 캠프 측의 적발로 인해 논란이 불거졌으며 정동영은 범여권·진보 진영의 단일화를 시도하다 실패한다.

민주당에서는 이인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정동영의 단일화 협상을 내팽겨치는 바람에 분열이 일어났고, 민주노동당에서는 결선 투표 끝에 NL의 지지를 받은 권영길이 선출되면서 NL와 PD의 대립이 극심해졌다. 이 외에도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정계 은퇴 번복과 함께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15대 대선에 출마한 바 있는 허경영 등 각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해 경제 공약을 내건 이명박과 BBK 의혹을 두고 공격하는 타 후보들 간의 경쟁이 시작된다.

선거 결과 이명박이 48.67%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정동영은 26.14%로 민주당계로서는 처음으로 최저 득표율을 받은 후보가 되었다. 당시 정동영 측에서는 이명박의 BBK 주가조작을 비롯한 여러 의혹을 바탕으로 홍보에 나섰고,반대로 이명박은 경제를 강조한 후보로서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아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정동영의 참패, 이명박의 당선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양당의 '공천 학살'

그렇게 한나라당이 승리를 만끽하던 잠시, 새로 당권을 잡게 된 친이 세력은 이방호, 정종복이 이끄는 공천심사위원회의 주도로 친박계에 대한 공천 탈락을 전격 감행했다. 이 때 탈락한 친박계 후보들은 대부분 중진 의원들이었는데 이에 친박계가 반발하면서 당 내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박근혜 본인은 공천 심사에서 합격하고도 이 소식을 통해 우려를 표하였으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탈당한 친박 의원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남겼다.

정치권의 공천 학살은 한나라당에서만 끝난 것은 아니다. 야당인 통합민주당에서 임명한 박재승 공천관리위원장이 전과 기록이 한 차례 있는 후보들을 배제시키는 원칙을 세워 후보들을 대거 물갈이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는데 한나라당처럼 갈등이 심각하다 못해 아예 '공천 특검'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허나 공천 결과에 불복한 몇몇 의원들만 탈당했을 뿐 분당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렇게 '공천 학살'의 결과로 내부 갈등을 겪게 된 양당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게 되는데, 특히 한나라당에서는 탈당파(친박)를 중심으로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여 이들과 대적해야 하는 과제에 놓여지게 되었다. 통합민주당은 막판 여론조사를 통해 예상 외의 선전을 거둘 수 있다는 낙관론을 주장했으나 수도권에서의 뉴타운 열풍이 변수가 되면서 과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민주노동당의 분열

지난 총선에서 10석을 얻어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 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2005년 무렵부터 나타난 NL 세력의 난입으로 인해서 위기의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6년 10월 24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미동포 사업가를 중심으로 국가 기밀과 당 내부 당직자 정보를 누설하다 적발된 사건이 터지고, 당 내에서는 해당 사건을 놓고 정파 갈등이 불거지게 되었다.

또 NL 세력은 당 내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서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기보다는 정파색이 옅었던 범PD 계열의 권영길을 밀어주어 당선을 만들어냈으나 정작 국민적 관심사인 경제 문제는 뒷전으로 미루면서 자신들의 구호인 '코리아연방'을 내건 탓에 3%의 득표율만 얻는 바람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안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심회 사건에서 시작된 NL과 PD의 갈등은 해결조차 없는 상황에서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2008년 2월 심상정의 혁신위원회 체제에서 낸 혁신안이 부결되자 PD 세력들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분열이 현실화되었다. 그렇게 민주노동당은 NL 세력만 남게 되었고, 진보신당은 전통적인 NL 노선에서 탈피하는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한 때 뭉쳤던 이들이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는 표 분산이라는 제약을 걸게 되었으므로 두 정당은 얼마나 많은 진보 표심을 얻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 보수정당의 부활

15대 총선 이래로 충청권 보수정당을 이끌어냈던 자유민주연합은 DJP연합의 균열과 연달은 선거 참패, 그리고 탄핵 역풍으로 인한 몰락을 겪었고, 결국 당의 수장인 김종필이 정계 은퇴를 목적으로 탈당하여 당의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 때 자민련의 부총재이자 충청남도지사였던 심대평이 신당 창당을 위해 탈당하면서 '국민중심당'을 창당해 자민련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자민련은 국민중심당과의 합당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채 2006년 3월 10일 해산되어 한나라당에 흡수되었으며, 남은 3명은 국민중심당으로 이동해 명맥을 유지하게 되나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계 복귀를 선언한 이회창의 주도로 2008년 2월 4일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면서 2월 12일 양당 간의 흡수 합당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심대평과 이회창은 자민련의 명맥을 잇기 위해 칼을 갈아 충청권 보수정당의 돌풍을 예고하며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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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당

기호 정당명 표어 비고
1 통합민주당 중산층과 함께 서민과 함께 민생을 첫째로 해당 없음
2 한나라당 경제를 살리려면? 실천의 힘! 한나라당
3 자유선진당 바른정치 반듯한 대한민국 자유선진당과 함께!
4 민주노동당 노동자·서민의 대표정당 민주노동당
5 창조한국당 사람이 희망이다
6 친박연대 국민의 힘!
7 변화당 무능한 정부를 심판하시겠습니까?
8 국민실향안보당 표어 없음 선거공보물을 내지 않음
9 기독사랑실천당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대한민국, 희망이 있습니다 해당 없음
10 문화예술당 표어 없음 선거공보물을 내지 않음
11 시민당
12 신미래당
13 직능연합당
14 진보신당 진보가 새로워지면 민생이 바뀝니다 해당 없음
15 평화통일가정당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16 사회당 표어 없음 선거공보물을 내지 않음
지역구 변동기호 배정 정당(비례대표 배정 정당 제외)
1 구국참사랑연합 지키자 대한민국 선거공보물을 내지 않음
2 통일한국당 표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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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조사
정당 KBS-MBC 공동 KBS MBC SBS YTN
한나라당 154~178석 155~178석 154~178석 162~181석 160~184석
통합민주당 67~93석 75~93석 67~89석 68~85석 72~88석
자유선진당 13~18석 10~18석 11~15석
친박연대 5~10석 5~7석 6~11석 6~10석
민주노동당 3~7석 3~5석 2~6석 2~5석
창조한국당 1~3석 0~4석 2~4석
무소속·기타 19~26석 19~30석 15~24석
선거 결과
정당 득표수 지역구 (비례) 총합 지위
한나라당 8,237,665 (38.6%) 130석 152석 제1당
8,145,824 (38.3%) 22석
통합민주당 8,115,453 (38.0%) 66석 81석 제2당
7,613,660 (35.8%) 15석
무소속 972,954 (4.6%) 25석 25석 -
[ 기타 정당 결과 ]
자유선진당 920,229 (4.3%) 14석 18석 제3당
2,654,061 (12.5%) 4석
친박연대 1,424,112 (6.5%) 6석 14석 제4당
1,510,178 (7.0%) 8석
민주노동당 569,083 (2.7%) 2석 5석 제5당
600,462 (2.8%) 3석
창조한국당 63,989 (0.3%) 1석 3석 제6당
600,462 (2.8%) 2석
변화당 962,412 (4.5%) 1석 1석 제7당
148,512 (0.7%) 당선자 없음
기타 정당 27,084 (0.13%)
418,208 (1.96%)
무소속 당선자 복당 시 여야 구도
여당 168석 (56.2%)
(43.8%) 131석 야당
[ 세부 결과 ]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민주노동당 기타 정당
168석 89석 19석 14석 5석 4석
여당 야당

선거 결과 한나라당 152석, 통합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변화당 1석, 무소속 25석으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물론 과반을 여유롭게 확보한 것이 아니라 턱걸이 과반이었기 때문에 일단 한나라당의 승리는 확실해보인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은 18석으로 원내 교섭단체까지 가는데는 실패했지만, 제3당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친박 탈당파들이 주축이 된 친박연대는 14석으로 나타났지만, 무소속 계열 친박계 당선자는 12명으로 나타났다.

통합민주당은 기대치에 미달하는 81석으로 나타나 제1당 사수는 물론 개헌저지선 확보에도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이후 세가 위축되었는지라 지역구 2석, 비례대표 3석만 건지고 부진했다. 창조한국당의 경우 지역 기반이 약한데다 문국현 본인의 1인 정당에 가까웠음에도 3석을 확보해 명맥을 유지했고, 변화당은 서울에서 1석만 얻었을 뿐, 나머지 후보들은 전부 낙선하였다.

원외정당으로는 진보신당, 기독사랑실천당, 평화통일가정당, 국민실향안보당, 문화예술당, 한국사회당, 시민당, 신미래당, 직능연합당 순으로 나타났는데, 3%에 근접한 득표율을 얻은 진보신당, 2%를 얻은 기독사랑실천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모두 1.5%를 넘지 못해 등록 취소를 당했다.

지역별 결과

지역별 결과
지역 / 정당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무소속·기타
서울 (48석) 39석 7석 당선자 없음 2석
경기 (51석) 32석 17석 당선자 없음 1석 1석
인천 (12석) 9석 2석 당선자 없음 1석
강원 (8석) 3석 2석 당선자 없음 3석
대전 (6석) 당선자 없음 1석 5석 당선자 없음
충북 (8석) 1석 6석 1석 당선자 없음
충남 (10석) 당선자 없음 1석 8석 당선자 없음 1석
광주 (7석) 당선자 없음 7석 당선자 없음 1석
전북 (11석) 당선자 없음 9석 당선자 없음 2석
전남 (12석) 당선자 없음 9석 당선자 없음 3석
부산 (18석) 11석 1석 당선자 없음 1석 5석
울산 (6석) 5석 1석 당선자 없음
경남 (17석) 13석 1석 당선자 없음 3석
대구 (12석) 8석 당선자 없음 3석 1석
경북 (15석) 9석 당선자 없음 1석 5석
제주 (3석) 당선자 없음 3석 당선자 없음
합계 130석 66석 14석 6석 2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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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보수 주도의 여대야소 탄생"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로 국회는 지난 총선과는 달리 범보수의 과반(201석), 일명 여대야소의 형태로 짜여지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의 힘을 받으며 단독 과반 확보에 성공하긴 했지만 단순 턱걸이에 그쳤으며 범보수에 해당하는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는 한나라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기 때문에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하며, 일부 의제에 이들과 연대하는 한 비주류 보수 진영과의 대치가 예상된다.

반면 보수 비주류 진영(친박연대·무소속연대·자유선진당)은 합해서 총 45석을 확보해 세를 어느 정도 과시하는데는 성공했다. 허나 한나라당 내 친박 의원들까지 합치면 50석인데도 120명이 넘는 친이 진영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문제이다. 때문에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이 연대하여 캐스팅보트를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이기에, 친이 진영을 끌어내릴 수 있는 입지 확장이 필요하다.

민주당계, 진보 진영은 말 그대로 부진하거나 참패했다. 통합민주당은 100석을 목표로 하였으나 81석으로 개헌저지선 확보에 실패했으며, 뉴타운 열풍도 민주당의 선거 참패에 영향을 끼치는 데 한 몫을 했다. 여기에 민주노동당은 물론 무소속, 창조한국당, 변화당을 합쳐도 개헌저지선을 넘지 못해 역시 단점으로 꼽힌다. 창조한국당 역시 3석을 얻고도 민주당계 진영에 힘을 보태기엔 역부족이라, 혹시 모를 개헌에 대비해 범민주·진보 진영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사태로 인해서 세가 크게 줄어들었고, 더불어 의석도 줄어들어 제5당으로 추락했다. 지난 총선에서 13%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얻고도 10석 이상을 가져간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쪼그라든 셈인데 정작 PD계인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2.9%를 얻으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원외정당 치고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진보 진영이 분열되면서 분산됨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된 셈인데 다음 총선을 위해서는 진보 통합이 절실하다.

결국 공천 학살과 계파 갈등으로 타격이 덜한 민주당계를 제외한 진보, 보수 진영이 분열되고 국회가 여대야소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지만 향후 여당의 국정 안정, 그리고 여당 견제를 위한 야권연대가 그 숙제로 남아있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 FTA, 한반도 대운하를 놓고 여야의 극한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에 당분간 여야 협치는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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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이후 4년 뒤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헌이 제안되었으나, 개헌 내용이 확립화되지 못한데다 설령 통과되었다고 해도 국민투표가 남아 있어 쉽게 이뤄지기에는 불가능했다.
  • 본 선거의 투표율은 46.1%인데, 선거 당일에 전국적인 우천이 그 원인이다. 허나 20대의 투표율이 28.1%, 세부적으로는 20대 후반의 투표율이 24.1%인 것을 감안하면 정치 구도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해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선거에서 제4당이 된 친박연대는 이후 공천 헌금을 받아 비례대표 순번을 팔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때문에 양정례, 김노식, 서청원의 의원직이 상실되었고 지역구 당선자인 김일윤, 홍장표 또한 선거법 위반으로 제명된다.
  • 이 선거 이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여기에 촉발된 촛불집회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만약 이 논란이 앞당겨지면 정부는 물론이고 여당에 큰 타격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으니 그야말로 운 좋게 승리하게 된 셈.
  •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후 급격한 좌경화가 이루어진 변화당에게는 기사회생이나 다를 바 없었는데, 당선자는 광진구 갑에 출마한 ■■■ 밖에 없었다. 정작 13, 14대 총선에서 텃밭이라 불렸던 중구에서는 대부분 야권 표로 넘겨져 득표율 1%를 받아내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의 당선을 막을 수 없었다.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 시즌 1을 보고 계십니다. 본 세계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