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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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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본 문서는 민주당계 정당 사상 최대의 분당 사태이자 박근혜 정부, 윤석열 정부, 김현수 정부 시절의 대규모 정계개편 중 하나인 민주당의 분당 사태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발단
과거 민주당계에서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정계개편을 겪은 사례가 많지만, 역사적으로 분당이 일어난 사례는 총 4번 있었다. 1960년,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신익희, 유진산, 윤보선 등이 구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 출신의 구파, 김대중, 장면 등 신진 소장 세력인 신파[1] 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이 때 구파가 계파 싸움에서 밀려나면서 1960년 12월 탈당 후 신민당을 창당한다. 하지만 두 정당 모두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와해되면서, 1960년대 말 신민당으로 재회하기까지 이합집산을 거쳐야 했다.
1986년, 이민우 구상에 반대하며 신한민주당을 탈당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양김이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 논쟁에 휘말리면서 갈등이 불거졌고, 이에 김대중은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민주당을 탈당하며 평화민주당을 출범했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의 표심이 갈라지며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했고, 1990년, 통일민주당이 3당 합당에 합의하면서 훗날 자유당의 시조가 되는 민주자유당으로 출범하게 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이후, 친노를 중심으로 쇄신을 요구했다가 합의가 무산되면서, '호남 맹주'를 주장하는 동교동계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2003년 9월 21일 정대철 대표를 비롯한 친노 인사들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고, 개혁국민정당과 한나라당 탈당파[2]의 합류를 거쳐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에는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던 노무현이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니 여당'이라는 지위에 불과했지만,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과반 턱걸이에 성공하는 쾌거를 누린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 입법의 실패와 대연정 무리수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고,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위기감이 고조된다. 이 때 당 내에서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을 연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타났고, 당시에 적대적이던 구 민주당과의 재통합이 거론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한길을 비롯한 보수그룹 인사들이 '중도개혁통합신당'[3]을 창당하고,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통합민주당 탈당파, 손학규계를 중심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면서 분당 사태를 겪게 되나,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흡수합당으로 소멸되면서 분당 사태는 마무리를 짓는다.
이렇게 네 번의 분열을 겪은 민주당계 정당은 2008년 통합민주당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지만 패배했고, 나중에 이름을 민주당으로 바꾸면서 3년 동안 존속했다. 그러다 2011년 12월 16일,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창조한국당 탈당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기타 인사[4]들로 구성된 민주통합당으로 재창당을 선언했다가, 2013년 5월 4일 다시 민주당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이 날 창당과 함께 전당대회가 열리면서 비주류의 김한길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당헌까지 개정되며 중도층 표심 잡기에 나섰다.
1차 분당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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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비노계) · 김한길(비노계) · 문재인(친노계) (2015년 3월 26일 / 국회 의원회관 / 창당 1주년 기념식) |
민주당 | ||||||
민주당 (잔류파) |
정통민주당 (김민석) |
신민당 (박준영) |
국민모임 (정동영) |
국민회의 (천정배) |
통합신당 (박주선) |
국민의당 (안철수) |
↓ | ||||||
신민당 (민주신당-신민당 합당) |
국민모임 (정동영계 이탈) |
국민의당 (안철수 + 천정박 계열) | ||||
한국사회당과 합당 |
2013년 12월, 안철수가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면서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자, 민주당도 야권 분열을 우려하여 안철수를 경계하였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신당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넘어버렸고, 2014년 1월 27일 새정치연합의 결성으로 정식 창당 직전까지 이르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그런데 3월 2일 돌연 민주당과 합당으로 선회하며 신당 창당을 포기했고, 3월 26일,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 흡수합당하는 방식으로 해산하면서, 민주당은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합당 이후, 안철수와 김한길은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2대 지도부가 선출되는데, 시작부터 '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을 두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미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에서 당론으로 채택된 바 있고, 양당이 합당했을 당시에 이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야권 후보의 난립과 새누리당(자유당)의 동명이인 출마로 인해 민주당이 전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공동으로 실시하고, 공천 찬성 응답이 과반을 넘으면서 철회되었다.
이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거의 박빙 양상을 보였지만, 같은 해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크게 참패했다. 이에 2대 지도부는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해체되었으며, 원내대표를 맡은 박영선이 당 대표 대행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된다. 그러나 당 소속 의원들의 입법로비 파문, 카투사 발언, 세월호 특별법 관련 논란 등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9월 11일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기로 했으나,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던 이상돈 명예교수의 새누리당 입당 전력까지 불거지며 논란이 더욱 키웠다.
결국 박영선은 당무에 복귀하며 비대위원장직을 분리하면서, 문희상이 비대위원장직을 맡았다가, 2015년 2월 8일 3차 전당대회를 통해 문재인이 신임 당 대표로 취임한다. 문재인 지도부는 손혜원의 영입과 혁신위원회 출범, 온라인 입당 시스템 구축 등 쇄신과 안정화 작업에 착수했지만, 쇄신 행보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에 걸친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비주류를 중심으로 사퇴 압박이 불거졌다.
하지만 비주류 세력들은 이미 친노계가 당의 중심으로 이끌던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그 불만이 조금씩 고조되어만 갔는데, 이 때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전국적 개혁정당'을 시사하면서 신당 창당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동영, 김민석 전 의원의 원외 민주신당(마포 민주당),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민당, 박주선의 통합신당, 김한길, 안철수와 민주당 탈당파 일부, 박지원, 최재천 의원 등 중간지대 탈당파, 정대철, 권노갑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와 구민주계까지 합세하면서, 졸지에 문재인 대표 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비노 세력이 신당 창당에 나서게 되었다.
세력 동향
- 정통민주당(마포 민주당)
분당 사태 직전에 최초로 등장한 정당은 2014년 9월 25일 창당한 김민석 주도의 정통민주당이다. 정통민주당은 새정치연합-민주당 합당 이후인 9월 21일 새천년민주당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결성한 정당인데, 창당을 주도했던 김민석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논란으로 인한 피선거권 제한, 김명숙, 강신성은 창준위 출범을 놓고 행정소송과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또 잔류파인 민주당을 놓고 "타당 지지자들의 혼동을 유도한다"며 법원에 유사당명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끝내 기각되었다. 이후 2016년 1월 30일, 박준영이 이끄는 신민당에 흡수합당되어 해산되었다.
- 국민모임(정동영계)
2014년 12월 24일, '새 정치세력 건설을 호소하는 105인 선언'을 통해 국민모임의 발족을 선언했다. 이후 2015년 3월 1일, 정동영이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지명되면서 창당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2015년 3월 25일 문래동의 폐공장에서 발기인대회를 열어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상반기 재보선에서 정동영의 출마를 놓고 내부 이견이 나타났고, 다른 인사들의 영입도 수포로 돌아간 탓에 결국 야권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 후 정동영계가 국민의당 합류를 위해 이탈했고, 창준위 해산 후인 2015년 11월 22일, 한국사회당, 노동정치연대와 통합하며 해산되었다.
- 신민당(박준영계)
2015년 10월 29일, 박준영 전 전라남도지사를 중심으로 가칭 신민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면서 창당준비위원회를 정식 발족하였다. 박준영은 "위민·위국·위족을 기본정신으로 삼아, 당원이 주인인 정당, 일하는 정당, 보통 사람들의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고, 천정배와는 힘을 합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노선 차이로 인해 정리해야 한다며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11월 9일, 창준위가 선관위에 등록되었으며, 2016년 1월 24일, 정통민주당과의 합당을 의결하면서 창당대회를 2월 초에 열 것을 밝혔다. 2016년 2월 4일, 창당대회와 함께 박준영, 김민석이 공동대표를 맡았고, 3월 18일 민주당을 탈당한 신기남 의원이 입당하면서 원외정당 지위에서 벗어났다.
- 통합신당(박주선계)
2016년 1월 10일, 박주선 의원이 중도개혁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통합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박주선은 2015년 9월 22일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그 전에도 친노 세력의 패권주의가 당을 좀먹고 있다며 문재인 지도부와 대립각을 보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창준위 발족 이후, 비문 야권 인사들의 연합을 목적으로 정동영, 천정배와 함께 3자 연대를 추진하려 했으나 국민회의가 국민의당에 흡수되면서 파기되었다. 그 후 2016년 1월 27일,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2월 1일 창준위를 해산했다.
- 국민회의(천정배계)
2015년 9월 20일, 상반기 재보선 탈락으로 탈당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개혁적 국민정당'을 목표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천정배는 야권 분열보다는 단일화에 중점을 두었으며, 소위 '뉴 DJ' 인재영입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세력 확장을 추진했다. 다만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추진할 것이라 밝히면서, 현역 의원과는 선을 그었다. 이후 '개혁적 국민정당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며 내년 1월 중하순 창당을 완료하는 이행안을 발표했고, 신당의 명칭을 국민회의로 확정지었다. 2016년 1월 25일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결의했고, 중앙당 창당 이후인 2월 24일 흡수합당이 완료되었다.
- 국민의당(안철수계 · 비주류)
2016년 1월 10일, 안철수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이미 2015년 말부터 신당을 추진 중인 만큼 비문 인사들의 영입이 예상되었고, 2015년 12월 21일 신당 창당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세력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후 1월 7일, 안철수와 김한길의 연대가 성사되었고, 1월 25일, 천정배가 이끄는 국민회의와의 전격 통합을 발표했다. 여기에 통합신당(박주선), 국민모임 내 정동영계, 신민당 내 박준영계,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대선 직전인 2017년 2월 17일 손학규 전 대표와 국민주권개혁회의 인사들이 합류하면서 탈당파 인사 대부분이 국민의당으로 결집되었다.
- 박지원계 및 동교동계
한편 박지원 의원과 소위 '중간지대'라고 하는 동교동계 인사들 가운데 권노갑, 정대철은 민주당 탈당 이후 제3지대 야권통합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박지원도 야권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히며 독자 세력보다는 통합에 주력했다. 다만 박지원은 '신당 세력을 포함하여 민주당을 포함한 포괄 세력과의 연대'를 주장한 반면, 동교동계 인사들은 '친노, 친문을 배제한 신당 세력 간 통합'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의견 차가 나타났다. 이후 2016년 3월 2일, 박지원, 동교동계 원로 인사들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결말
- 민주당(잔류파)
민주당은 분당 사태로 비주류 계열의 세가 크게 줄어들었고, 친문을 중심으로 주류의 세가 커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주류의 강세와 새누리당의 약진을 우려한 문재인 지도부는 인재영입과 당 쇄신에 주력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자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승리를 이끌었던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20대 총선 결과, 민주당은 제1당 지위를 탈환했으나 변화당의 원내 진출로 인해 새누리당과 동률이 되면서 제1당 사수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 국민의당(비주류)
민주당 분당 사태를 주도한 안철수계와 김한길계, 그리고 호남 중심의 비주류 세력을 주축으로 결집한 국민의당은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체제로 전환하면서 총선에 공을 들인다. 그 결과 호남에서 전 지역을 거의 석권했고, 비례대표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서 '녹색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국민의당은 양당 다음으로 제2야당이자 제3당이 되면서 3당 체제를 이룰 수 있었으며, 이후 민주당 등 야당과 함께 박근혜 탄핵에 일조하였다.
- 신민당(김민석계)
신민당은 무소속이던 신기남 의원의 입당을 통해 총선 직전 원내정당이 되었고, 김민석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후보로 나서며 이변을 노렸다. 그러나 비례대표에서 1%에 가까운 득표율과는 별개로 지역구에서 참패를 당했으며, 현역 의원인 신기남 의원도 최저 득표율로 낙선했다. 결국 신민당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했고, 2016년 10월 31일 민주당에 흡수합당되었다.
2차 분당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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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친명)과 이낙연(친낙) (2023년 7월 28일 / 서울 모처 / 비공식 회동 중) |
민주당 | ||||||
민주당 (잔류파) |
시대정신 (조국) |
국민신당 (이낙연) |
대안과전망 (원칙과 상식) |
소나무당 (손혜원) |
변화당 (민주당 탈당파) | |
↓ | ||||||
국민신당 (친낙 + 대안계 일부) |
희망의당 (원칙과 상식) |
이낙연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2020년 1월 14일까지 임기를 채웠으나, 이해찬과의 회동 끝에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정당 활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민주당의 상설 특별위원회인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책, 당에서의 적극적인 행보, 신 자유당의 주요 악재 등으로 지지율 반등에 효과를 보임으로써 민주시민당과 함께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그렇게 5선에 성공한 이낙연은 2020년 8월 29일 전당대회에도 승리해 차기 대권주자로 갈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반면 이재명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었으나, 김부선과의 스캔들, 혜경궁 김씨 사건, 이재선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대한 직권남용 의혹, 검사 사칭, 허위사실공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위의 의혹들이 대부분 무혐의를 받아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의 적극적인 행정 대처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후 이재명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되고, 당시 검찰총장인 윤석열과의 양강 경쟁이 치열해졌다.
두 사람은 대권에 도전하면서 민주당의 주요 대권주자에 올랐으나, 경선 경쟁이 치열한 만큼 지지자 간의 악감정이 커져만 갔다. 그러나 10월 10일, 이재명이 최종 후보로 확정되자 경선 결과에 불복한 이낙연 지지자들이 불복 시위를 열었고, 경선 결과를 받아들인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후보자 본인이 경선에 승복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낙연 캠프의 태도가 논란이 되었다. 그 후 강성 친낙 진영 중 일부가 이재명 심판을 목적으로 윤석열 지지로 선회해 정권교체에 일조하였으나, 역시 해당행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대선 이후 이재명은 2023년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되었고, 친명이 당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반면 친낙은 완전히 비주류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가결표를 던진 것이 드러났고, '개딸'을 위시한 이재명의 강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테러를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은 친명 일변도의 민주당을 비판하며 '이낙연 신당' 창당을 시사한데 이어, 원칙과 상식도 신당 창당에 나서는 등 비명계 중심의 신당을 예고했고, 조국도 정계 입문과 함께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2015년 이후 두 번째 분당 사태를 겪게 되었다.
주요 세력의 동향과 결말에 대해서는 개별 문서 참조.
3차 분당 (2027년)
시대정신 (조국계) |
민주당 | 국민신당 (친낙 + 대안계 일부) | ||
민주당 (통합·잔류파) |
국민혁명당 (김상균·임세은 등) |
국민신당 (친문, 비주류 계열 합류) | ||
↓ | ||||
국민통합당 (통합파) |
국민혁명당 (좌우중도합작) |
민주시민당 (친낙 + 친문 + 비주류 계열) |
2024년 총선을 시작으로 지방선거, 대선에서 연달아 패배한 민주당은, 1년 남은 총선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개혁론과 민주대통합론으로는 떠나간 민심을 되찾을 수 없으며,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며 어떻게든 당을 살려야 한다고 촉구했고, 당 내에서도 혁신적인 방안 없이는 총선 승리가 불가하다며 우려스러운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적 실책으로 인해 이미 민심이 조금씩 돌아섰고, 지지율도 10% 초에서 멈추는 등 위기설이 커지고 있었다.
결국 이재명 대표는 고민 끝에, 민주당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자유당과 합당하자는 조건으로 야권 통합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정계개편 준비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입법여당인 변화당과 김현수 정부의 국정 폭거를 저지하고, 제1당 확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세력 균형을 이루자는 취지로 통합을 역설했고, 이에 정청래, 용혜인, 추미애, 조정식, 박찬대 등 주요 인사들이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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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이들 가운데는 평안도·흥사단 계열의 인사들, 발췌 개헌 이후 이탈한 자유당 출신 인사들, 미군정청, 이승만 정부 시절의 고급 관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대 정치적 엘리트로 불렸던 유산계급 출신 정치인으로 구성된 구파에 비하면 신파는 다양한 정치 집단의 연합체에 가까웠다.
- ↑ 소위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김부겸, 김영춘,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외에도 김홍신 전국구(비례대표) 의원, 김혁규 경상남도지사 등이 탈당하였다. 이 중 독수리 5형제 계열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개혁파 인물이기도 했으며, 입당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실용주의 계열에 위치해 있었다.
- ↑ 약 52일 동안 존속한 민주당계 제3지대 정당으로, 후에 민주당과 합당해 '중도통합민주당'을 차리다가 다시 합당 이전으로 분화되었다.
- ↑ 한국사회당의 박용진, 문성근, 김기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