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세계 무역 센터 테러 사건 (Leipay):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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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정보 당국 간의 협력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관성은 찾을 수조차 없었다. CIA는 이를 '''"그냥 여행 왔다 보네"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렸다'''. 추후에 이들이 비자 기간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FBI에 협조 요청을 보냈지만 그때가 '''1998년 9월 25일'''이었다. 미군 역시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을 대상으로 동시 테러가 발생한 이후로도 알카에다의 테러가 국외 체류 미국인을 대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여겨 본토가 아닌 외부의 경계 강화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한편, '''이미 완전히 계획된 테러를 실행하고자 총 5명의 테러범들은 1996년부터 차례로 밀입국'''했다.
'''그러나 두 정보 당국 간의 협력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관성은 찾을 수조차 없었다. CIA는 이를 '''"그냥 여행 왔다 보네"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렸다'''. 추후에 이들이 비자 기간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FBI에 협조 요청을 보냈지만 그때가 '''1998년 9월 25일'''이었다. 미군 역시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을 대상으로 동시 테러가 발생한 이후로도 알카에다의 테러가 국외 체류 미국인을 대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여겨 본토가 아닌 외부의 경계 강화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한편, '''이미 완전히 계획된 테러를 실행하고자 총 5명의 테러범들은 1996년부터 차례로 밀입국'''했다.
=== 왜 WTC가 표적이었나? ===
=== 왜 WTC가 표적이었나? ===
세계무역센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이면서 자유의 여신상과 같이 미국과 경제 중심지 뉴욕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다른 시설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등 테러의 표적이 되기에 좋은 요건들이 두루 갖춰져 있었다. 테러의 표적이 되기 좋다는 건 테러범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더욱 더 강력히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던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진다면 미국의 체면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세계무역센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이면서 자유의 여신상과 같이 미국과 경제 중심지 뉴욕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다른 시설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등 테러의 표적이 되기에 좋은 요건들이 두루 갖춰져 있었다.
 
테러의 표적이 되기 좋다는 건 테러범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더욱 더 강력히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던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WTC'''가 무너진다면 미국의 체면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서 뉴욕 뿐 아니라 미국의 경제까지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었고 그런다면 미군은 국외에 주둔 중인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2024년 1월 18일 (목) 14:1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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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주요 국가】
【주요 설정】

개요

1998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1998 World Trade Center bombing
수습 중인 2WTC
발생일 1998년 9월 29일 화요일
발생 위치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유형 차량 폭탄 테러
원인 알카에다의 정치·종교적 극단주의
주동 세력 알카에다
피해 재산 2WTC 붕괴
1WTC 부분 파괴
도이체방크 뉴욕 지점 사옥 대파
국제 금융 센터 대파
뉴욕 GDP 153억 달러 감소
뉴욕 증시 11.7% 대폭락
사망자 9,700명 이상[1]
부상자 최소 7,500명 ~ 최대 35,000명
여파 팍스 아메리카나 종식
미국이 중동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 개시
테러대책법(USA PATRIOT Act) 제정

1998년 세계무역센터 테러(1998 World Trade Center Attack) 혹은 9·27 테러(September 27 Attack)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중 하나인 알카에다가 미 본토, 그것도 미국과 뉴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세계무역센터를 대상으로 벌인 테러이다. 심지어 케냐 미 대사관에서 발생한 테러로 230여 명이 사망한지 단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사건은 테러가 국가에 중대한 안보 문제로 발전할 수 있음을 당사국인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확실히 각인 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국 내부에서는 테러 주동 세력인 알카에다를 향한 무력 응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이는 미국이 중동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소련 붕괴 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가장 안정적이었던 미국에 큰 혼란을 가져다 주었으며, 팍스 아메리카나를 한 마디로 종식시켰다.

배경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자연스럽게 냉전은 종식되었고 세계는 미국의 세상이 되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은 역사 상 가장 안정적인 시기, 팍스 아메리카나를 경험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군사적 충돌은 당연하고 외교적 충돌 역시 적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NATO가 전세계를 호령했다. 이때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 미국은 걸프전 당시 미군 병력만 70%에 달하는 다국적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 시켰고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거나 중동의 세속주의 정권을 상대로 지원을 하는 등 중동의 정치 상황에 상당 부분 개입하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알카에다는 전세계 무슬림들이 단결해 이슬람의 공공의 적인 미국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섰고, 이에 동참하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알카에다에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충분한 세력을 확보한 알카에다는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미 본토가 아닌 외부로 눈을 돌리기 위해 해외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테러를 일으켰다. CIA는 1997년 경 사우디 여권을 통해 최소 3인 이상의 알카에다 조직원이 미국에 입국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FBI 역시 미 본토를 대상으로 한 중동발 테러가 곧 발생할 수 있다는 첩보를 습득했다.

그러나 두 정보 당국 간의 협력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관성은 찾을 수조차 없었다. CIA는 이를 "그냥 여행 왔다 보네"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렸다. 추후에 이들이 비자 기간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FBI에 협조 요청을 보냈지만 그때가 1998년 9월 25일이었다. 미군 역시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을 대상으로 동시 테러가 발생한 이후로도 알카에다의 테러가 국외 체류 미국인을 대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여겨 본토가 아닌 외부의 경계 강화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한편, 이미 완전히 계획된 테러를 실행하고자 총 5명의 테러범들은 1996년부터 차례로 밀입국했다.

왜 WTC가 표적이었나?

세계무역센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이면서 자유의 여신상과 같이 미국과 경제 중심지 뉴욕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다른 시설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등 테러의 표적이 되기에 좋은 요건들이 두루 갖춰져 있었다.

테러의 표적이 되기 좋다는 건 테러범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더욱 더 강력히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던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WTC가 무너진다면 미국의 체면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서 뉴욕 뿐 아니라 미국의 경제까지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었고 그런다면 미군은 국외에 주둔 중인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1. 폭발과 거의 동시에 2WTC가 붕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