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석유 파동


【주요 사건】
【주요 국가】
【주요 설정】
엑슨의 가솔린 판매가 폭등[1]

개요

제3차 석유 파동 또는 2005년 석유 위기(2005 Oil Crisis)는 산유국들의 동시 다발적 석유 감산으로 인해 2005년부터 시작, 2006년에 걸쳐 발생한 석유 파동이다.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 정보 통신 기술과 그 근간이 되는 반도체, 화학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석유는 산업에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발생한 석유 파동은 세계 경제에 어마무시한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기술 발전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배경

9.29 테러 이후로 미국이 중동을 상대로 테러 단체 척결 및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대규모 군사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중동의 정치 및 군사 상황이 크게 격화되게 된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이 격화되어 준 전시 상황에 처하게 된 것과 더불어 예멘에서는 통일 6년만인 2000년, 시아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인접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암암리에 중앙 정부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후티 세력이 들고 일어나면서 결국 내전으로 직결되고 말았다.

예멘은 내전 발생 이후로 시아파인 후티는 이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수니파인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아랍 연합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말이 내전이지 예멘은 사실상 거대한 2개의 세력 사이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한편 최신식 장비로 무장한 아랍 연합군은 훈련과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후티를 상대로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선 넘어 지역을 광범위하게 점령 당하는 등 졸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선을 복구하고 예멘 내전에서 이란을 상대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미군 병력과 장비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미국은 그들의 적을 찾느라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관심을 끌어낼 목적으로서 석유를 감산할 계획을 세운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양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국가 대비 낮은 유가가 측정되어 있는 미국이 이 저유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석유 수입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저유가가 유지된다고 할지라도 유럽 등 미국의 우방국들은 거의 전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석유를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만큼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반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적성국인 이란조차도 석유 감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이 이란 영내를 특수부대를 파견해 휘젓고 있었으며 북부 지역에서는 정찰 및 테러 단체 추적이라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던 주력군들이 내려오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석유를 감산하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으나, 항상 사우디아리비아 혹은 이란의 반대에 부딪혀 감산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국가가 이유는 달랐을지 몰라도 석유 감산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석유 감산은 불가피해졌다. 그렇게 2005년 4월 15일 개최된 석유 수출국 기구 정기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석유가 5% 감산되게 되었다.

영향

모든 석유 수출국 기구 소속 산유국들의 석유가 5% 감산 조치가 되면서 국제 석유 시장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산업의 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의류, 제약, 반도체, 화학 등 많은 분야가 호황기를 맞은 상황에서 석유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기초 자원이었고, 석유의 부족은 생산과 이윤 창출의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석유 물량을 확보하고자 마구잡이로 석유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4월 14일 배럴 당 18.52달러 선에서 정체되어 있던 원유가가 4월 15일 감산 이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4월 20일 73.22달러로 4배 가까이 폭등한다.

원유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합의로 4월 22일 석유가 추가적으로 5% 감산되었다. 석유 물량은 부족하고 가격은 폭등하여 기업들은 물론이고 국가들도 석유를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였다. 급히 미 정부가 석유 시장에 비축분을 풀어 가격 안정화를 시도하였으나 대표 산유국들의 동시다발적 감산에 대응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4월 23일 부로 석유 화학 기업들을 중심으로 주가 폭락이 발생했으며 원유가는 80달러 선을 돌파하여 역대 최고가를 갱신하기에 이르렀다.

비상식적인 고유가와 석유 부족으로 인해 급진적으로 발전하던 각종 기술들과 석유 화학 계열 기술들의 발전이 정체되다 못해 후퇴하기 시작했고 산유 감산의 주요 목표물이었던 미국과 그 우방국들은 석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분적 단전을 실시하거나 눈물을 머금고 석유를 구입하는 수 밖에 없었다. 유가가 비싸진 만큼 물가도 폭등하였고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석유 화학 기업들이 파산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장기간 경제 침체를 겪었으며 2008년의 대침체로 인해 회생 불가에 처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했다.

한편 산유국들은 제 1차, 2차 석유 파동 시기와 마찬가지로 호황기를 맞았다. 석유 감산을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포함한 다수의 산유국들이 경제 침체 및 후퇴로 신음하고 있던 중유럽과 미국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엄청난 호황을 맞이했다. 특히나 유럽과 가깝고 송유관을 보유한 러시아의 경제 성장이 매우 두드러졌는데, 소련 시절 발생한 국가 부채의 대부분을 청산함과 동시에 군 체제 개혁 및 장기간의 산업 양성에 필요한 예산들을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기에 상당수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CSTO는 제 2의 OPEC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유럽의 석유 시장을 꽉 쥐게 되었으며, 경제적 성장과 군사 체제 개혁을 바탕으로 국제 패권이 러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결정적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하게 된다.

비록 석유 파동이 서방 국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2005년에는 셰일 가스나 수소, 바이오 연료,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등 대체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미흡한 시기였으나, 해당 사건을 계기로 석유에만 의지하는 것이 국가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한 세계 각국들이 활발하게 연구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1. 1주일 전까지만 해도 2.49 선에서 거래되었던 가솔린이 일반유에서만 110% 가량 상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