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베른하이어 공국의 정치인, 경제학자, 기업가. 베른하이어 공국의 5,6,7대 총리. 이델스테르트이면서 무어그룹의 회장직과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키르수스 제국의 최우방국인 동시에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베른하이어의 총리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인 무어그룹의 총수이다. 비공식이지만 국제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평화재단의 이사장이고 본인 자체도 계량경제학의 초석을 닦은 경제학계 최고석학이면서 전설적인 금융투자자이다.

이렇듯 정계, 재계, 학계에서 3관왕을 달성하고 정치적 성과도 훌륭해서 엘리트주의가 뿌리깊은 베른하이어 내에서는 이견이 그의 집권에 대한 반대가 거의 없고 국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세

카를 판 하이네스 무어(Karl Van Heiness Moore, 1616~)는 베른하이어 공국의 정치인, 경제학자, 사업가이다. 1616년 아른하임 주 아인델(Eindell)에서 태어나 경제학자인 아버지와 대지주의 딸인 어머니 슬하의 유복한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외텔슈비어에 있는 상급학교에 다니기 위해 9살에 외텔슈비어로 이사했고 14살에 외텔슈비어 고등대학에 차석으로 입학한다.

이후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복수전공했고 경기변동과 투자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 기법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는 엄밀한 계산과 수학적 모형에 입각하여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계산경제학의 초석을 닦은 연구였고 그는 2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경제학계의 유명인사로 주목받게 된다.

외텔슈비어 고등대학을 비롯해 베른하이어 내의 여러 대학에서 그를 연구교수로 임용하겠다는 러브콜을 보내왔으나 카를은 다름 아닌 마그니우스로 향하게 된다. 여러 나라의 학문과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열렬히 러브콜을 보내온 베른하이어의 대학들과 다르게 마그니우스에서는 아직 계산경제학이 주류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그는 지방의 작은 대학에서 1년 정도 근무하다가 동료 교수의 추천으로 로디언에 있는 레스터체이스 칼리지로 이직한다.

한편 계산경제학의 수학적 기법이 실제 시장에서 성립한다는 게 어느정도 확인이 되자 카를 무어는 마그니우스 내에서도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다. 덕분에 학계 뿐만 아니라 사교계에도 진출해 로디언의 여러 귀족, 사업가 등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하루는 로디언의 은행 귀족 데이비스 로이드와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우연히 데이비스의 딸인 아이비 스펜서 로이드를 보고 사랑 에 빠지게 된다. 카를은 아이비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대학진학을 앞둔 그녀의 추천서를 직접 써주는 한편 데이비스의 은행사업을 도와주기로 한다.


가족으로는 아내 아이비 스펜서 무어(Ivy spencer Moore)와 딸 아델하이드 무어(Adelheid Moor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