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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타 노보루는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의 제5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했다. 공영권에서 일어난 혁명을 수용, [[대동아공영권 붕괴]]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서양에도 냉전을 끝낸 일본 총리로 잘 알려져 있다.  
다케시타 노보루는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의 제5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했다. 공영권에서 일어난 혁명을 수용, [[대동아공영권 붕괴]]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서양에도 냉전을 끝낸 일본 총리로 잘 알려져 있다.  
== 상세 ==
== 상세 ==
[[다나카 가쿠에이]]가 공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당근을 던져주며 결속을 다졌음에도, 이미 동아시아 내에서 반일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1987년 9월 다나카가 건강상 문제로 물러나고 총리직을 이어받은 다케시타 노보루는 해체 위기에 놓인 공영권과 제국을 사수할 책무를 쥐게 되었다.


1988년 1월, 다케시타는 [[교토 선언]]을 발표해 공영권 국가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제 일본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협상"을 할수밖에는 없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만주국, 태국, 광동국 등 일부를 제외한 회원국들은 더이상 일본의 주권 보장 약속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거기다 1988년 6월 결국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혁명]]이 터져나가면서 공영권의 붕괴가 시작된다. 그러는 와중에도 [[1988 게이조 올림픽 (신질서의 황혼)|1988 게이조 올림픽]]은 개최해내며 나름 일본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는 평을 받았다.
끝내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 무력을 동원했음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자 동년 12월 26일 '''태평양 자결권 선언'''을 발표하여 공영권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로서 냉전은 42년 만에 종식을 맞이하고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패권을 잃게 된다.([[대동아공영권 붕괴]])
마무리를 끝낸 후 신임하던 조선 출신의 내무대신 [[가네무라 슌에이]]에게 후임 총리를 맡긴 뒤 1990년 1월 20일 공영권 붕괴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곧 가네무라에 의해 민주화가 이뤄지게 된다.
퇴임 후에도 가네무라가 창당한 [[일본자유당]]에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97년에 불출마하며 은퇴했고, 2000년 도쿄 미나토구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생애 ==
== 생애 ==

2024년 5월 8일 (수) 10:33 기준 최신판

Destiny634, 2024 - | CC-0



대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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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55대 내각총리대신
다케시타 노보루
竹下登 | Takeshita Noboru
출생 1924년 2월 26일
대일본제국 시마네현 이시군 가케야촌
사망 2000년 6월 19일 (향년 76세)
대일본제국 도쿄도 미나토구 키타사토연구소병원
국적 일본
재임 기간 제55대 내각총리대신
1987년 7월 21일 ~ 1990년 1월 20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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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친 다케시타 유조
배우자 다케시타 나오코
자녀 장남 다케시타 리키미치
장녀 가네마루 가즈코
종교 불교
학력 와세다 고등학원 (졸업)
와세다대학 상학부 (학사)
군사 경력 육군 특별조종견습사관
의원 선수 15 (중)
의원 대수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최종 소속 정당
약력 대일본제국 중의원

대일본제국 건설대신

대일본제국 대장대신

제55대 대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대정익찬회 총재

개요

다케시타 노보루는 일본의 제5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했다. 공영권에서 일어난 혁명을 수용, 대동아공영권 붕괴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서양에도 냉전을 끝낸 일본 총리로 잘 알려져 있다.

상세

다나카 가쿠에이가 공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당근을 던져주며 결속을 다졌음에도, 이미 동아시아 내에서 반일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1987년 9월 다나카가 건강상 문제로 물러나고 총리직을 이어받은 다케시타 노보루는 해체 위기에 놓인 공영권과 제국을 사수할 책무를 쥐게 되었다.

1988년 1월, 다케시타는 교토 선언을 발표해 공영권 국가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제 일본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협상"을 할수밖에는 없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만주국, 태국, 광동국 등 일부를 제외한 회원국들은 더이상 일본의 주권 보장 약속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거기다 1988년 6월 결국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혁명이 터져나가면서 공영권의 붕괴가 시작된다. 그러는 와중에도 1988 게이조 올림픽은 개최해내며 나름 일본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는 평을 받았다.

끝내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 무력을 동원했음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자 동년 12월 26일 태평양 자결권 선언을 발표하여 공영권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로서 냉전은 42년 만에 종식을 맞이하고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패권을 잃게 된다.(대동아공영권 붕괴)

마무리를 끝낸 후 신임하던 조선 출신의 내무대신 가네무라 슌에이에게 후임 총리를 맡긴 뒤 1990년 1월 20일 공영권 붕괴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곧 가네무라에 의해 민주화가 이뤄지게 된다.

퇴임 후에도 가네무라가 창당한 일본자유당에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97년에 불출마하며 은퇴했고, 2000년 도쿄 미나토구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생애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대정익찬회 1961 - 1990 정계 입문
일본자유당 1990 - 1997 합류
1997 - 2000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