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결렬 (민국 38)

신단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8월 9일 (화) 02: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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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968년 일본 사회주의 연합 노동자당(現 일본공산당) 대회에서 찍힌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일본공산당 의장 미야모토 겐지, 소하 결렬을 상징하는 사진이다.

한국어 한자: 蘇蝦決裂 혹은 蘇蝦決別
영어: Ezo-Soviet Split[1]
중국어: ソ蝦交悪
러시아어: Советско-эдзоский раскол

개요

1968년, 건국이래 소련의 우방국이자 위성국이던 일본인민공화국(이하 북일본)이 소련의 프라하의 봄 무력 진압을 명목으로 하여 동맹관계를 청산하고 준적대관계로 돌아선 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양국간 불화는 1969년의 일공-소련 국경분쟁만 알려져 있지만, 일공 정권 수립 직후 집단농장 노선과 정치노선에 대한 당시 소련공산당과 일본공산당의 입장차이부터 시작된 나름 유서깊은(?) 분쟁이다.

소련공산당과 일본 노동자당의 적대관계는 소비에트 연방이 유라시아 연합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해소되지 않다가 2022년 7월 15일 일본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그자리에 참석한 파벨 그루디닌 유라시아 연합 공산당 제1부위원장과 에다노 유키오 일본공산당 의장이 양당의 화해를 선언하며 종결되게 되었으나 아직도 양국 관계는 북방영토 분쟁등과 관련하여 조금 껄끄러운 편이다.

배경

원래 일본공산당을 구 일본에서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일제의 패망 이전까지 일본공산당이 합법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1922년에서 1924년까지의 단 2년에 불과했고 1925년 치안유지법 제정과 1931년 만주사변 이후부터는 극심한 탄압으로 인하여 국내의 조직은 몇몇 점조직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괴멸된 상태였다. 일본공산당과 소련이 지도자로 선출한 노사카 산조 일본공산당 의장조차도 국내 공산주의 투쟁이나 최소한 소련과 일본을 오가는 활동조차 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활동을 해야했던 처지였다.

그렇기에 똑같이 소련의 영향을 받았어도 한때 원내 3당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독일 공산당이나 게릴라 활동을 했던 불가리아 공산당, 아예 자력으로 집권한 몽골 인민혁명당(現 몽골 인민당)이나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과는 달리 소련의 간섭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1948년 일본공산당이 북일본 일대에서 집권한 이래의 여러 시책들과 이후 일본인민공화국의 헌법, 국가행정기관, 인사또한 소련의 의중이 깊게 반영되어 이루어 진 것이었다.


전개

결말

해소

2022년 일본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에다노 유키오 일본공산당 의장과 파벨 그루디닌 유라시아 공산당 제1부위원장, 양당의 화해를 선언하고 포옹하고 있다.
  1. North Japan-Soviet Split 이라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