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목록 ]
[ 세계관 소개 ]
[ 문서 목록 ]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중화민국 (민국 38) 중화민국의 비주권 군주국
티베트(간덴포드랑)
བོད་(དགའ་ལྡན་ཕོ་བྲང) | 西藏(甘丹頗章)
국기 국장
བོད་གཞུང་དགའ་ལྡན་ཕོ་བྲང་ཕྱོགས་ལས་རྣམ་རྒྱལ
티베트 정부, 가덴의 궁전, 여러 방향의 목표 달성
상징
국가 승리의 노래
국화 연꽃
역사
지리
수도 포탈라궁[1]
면적 525,458.23m2[2]
접경국 중화민국 (민국 38) 중화민국
인문환경
인구 총인구 211명(2022년)
인구 밀도 4.02명/m2
출산율 0명(2021년)
언어 공용어 티베트어
공용문자 티베트 문자
국교 티베트 불교
군대 근위대[3]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4], 비주권 군주제, 중국의 소조정
달리이 라마
(국가원수)
텐진 갸초
정부
요인
판첸 라마 겐뒨 최끼 니마
까루 린포체 까루 린포체 2세
총리 롭상텐진[5]
근위대장 켄둡 도르제
경제
공식 화폐 중국 위안(CNY)[6]
국고 약 $2,783만[7]
단위
법정 연호 불멸기원
시간대 UTC+6
도량형 SI 단위
위치

개요

티베트 왕국(བོད་, 西藏) 혹은 간덴포드랑(དགའ་ལྡན་ཕོ་བྲང, 甘丹颇章)은 중국 티베트 자치성 라싸에 위치해 있는 비주권 군주제 왕국이다.
신해혁명 이후 실질적인 독립국으로 존재하던 티베트는 1956년 중국의 침공으로 중국에 합병되었고 시짱성 (티베트성)과 시캉 성으로 쪼개졌다. 이 당시 달라이 라마 14와 구 티베트의 지도층들은 인도로 망명하여 중앙 티베트 행정부를 세우고 자신들이 티베트의 정식정부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저우언라이와 공산당이 집권하자 소수민족의 자치를 허용하는 민족자치법이 통과되었고 중국 정부에 의해 티베트인의 정치참여와 자치를 허용하자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정부와 교섭 후 자진해산, 청황실 소조정을 본따 소조정의 형태로 간덴포드랑을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달라이 라마는 텐진 갸초이다.

국가 상징

국명

공식적인 국호는 신해혁명 이전과 마찬가지로 티베트(བོད་, 西藏)로 티베트 왕국이라는 명칭은 한국에서 비공식적으로 불리는 명칭이다. 중국이나 티베트 현지에서는 구 티베트 정부를 부르는 명칭인 간덴포드랑(དགའ་ལྡན་ཕོ་བྲང, 甘丹颇章)으로 불리며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간덴포드랑이라고 부른다. 현재 티베트 자치성 정부는 별다른 명칭없이 자치성 정부라고 부른다.

국기


설산사자기
གངས་སེང་གེ་
지위 공식 국기
채택일 1912년 7월 --일[8]
근거 법령 <티베트 국기 및 상징법>
비율 2:1

티베트 왕국의 국기는 설산사자기로 1912년 달라이 라마 13세가 티베트의 군기를 통합하여 제정되었다. 독립 이후에는 티베트 왕국의 국기로 사용되었고 중국의 티베트 점령 이후에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기로 사용되었다. 민주화 이전 중국에서는 티베트 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져 사용이 엄금되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다시 사용이 허용되어 티베트 왕국 및 티베트 자치성의 기로 사용되고 있다. 국기의 듯은 해당 위키백과 링크를 참조바란다.

국장


설산사자 문장
གངས་སེང་གེ་
지위 공식 국장
채택일 1959년 9월 10일
근거 법령 <티베트 국기 및 상징법>
사용처
  • 공식 문서
  • 상패
  • 훈장

티베트의 국장은 설산사자 문장으로 1959년 망명정부 시절에 제정되었으며 티베트 자치성의 문장과는 다르다.

국가


승리의 노래
བོད་རྒྱལ་ཁབ་ཀྱི་རྒྱལ་གླུ

지위 공식 국가
채택일 1950년 --월 --일 [8]
근거 법령 <티베트 국기 및 상징법>

티베트의 국가는 승리의 노래로 1950년에 제정되었다.

역사

신해혁명 이후 실질적인 독립국으로 존재하던 티베트는 1956년 중국의 침공으로 중국에 합병되었고 시짱성 (티베트성)과 시캉 성으로 쪼개졌다. 이 당시 달라이 라마 14와 구 티베트의 지도층들은 인도로 망명하여 중앙 티베트 행정부를 세우고 자신들이 티베트의 정식정부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저우언라이와 공산당이 집권하자 소수민족의 자치를 허용하는 민족자치법이 통과되었고 중국 정부에 의해 티베트인의 정치참여와 자치를 허용하자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정부와 교섭에 나섰다. 당시 중국정부는 본토의 한족과 가장 이질적인 소수민족 중 하나인 티베트족의 지지를 얻을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귀국한 달라이 라마가 그들의 눈에 들어갔다. 중국정부는 달라이 라마와 교섭하여 정치에 간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과 같이 포털라궁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것이 현재의 간덴포드랑이다.

위상

달라이 라마와 간덴포드랑은 티베트인들로 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티베트의 민족지도자임과 동시에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만큼 중국정부 마저 간덴포드랑과 달라이 라마를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경지이다.

각주

  1. 현임 달라이 라마 14세는 여름별장은 노블링카를 더 선호한다.
  2. 포탈라궁 : 246029.88m2 / 노블링카 : 279428.35m2
  3. 100여명의 규모로 사실상 경호조직이다.
  4. 달라이 라마 14가 세속권력을 포기하고 영적지도자의 역할만을 맏는다는 내용의 1993 세속선언 이후 입헌군주제로 전황되었다.
  5. 前 티베트 자치성 성장
  6. 간덴포드랑 관련 장소를 방문하면 구 티베트 일대에서 사용되는 회폐인 '티베트 스랑'을 복원시킨 것을 기념품으로 챙겨준다. 교환비는 중국 위안과 1:1 이다.
  7. 달라이 라마와 간덴포드랑의 명의로 되어있는 토지와 문화유산들의 사치를 측정한 것이다.
  8. 8.0 8.1 날짜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