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변화)

WARSAW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5월 11일 (목) 22: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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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임을 밝히며, 자세한 정보는 각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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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
부통령직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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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제6차
1987년 10월 27일
시행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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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을 폐지함.
**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부 일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2016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본 템플릿(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선거 기록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정수: 299석 / 과반: 150석
실시일: 1996년 4월 11일
투표율: 63.9% (▼ 8.0%p)
제14대 제15대 제16대
신한국당 125석 (41.8%)
(24.7%) 74석 국민회의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신한국당 109석 16석 125석 41.80%
새정치국민회의 63석 11석 74석 24.74%
자유민주연합 41석 9석 50석 16.72%
변화당 16석 6석 22석 7.35%
통합민주당 8석 4석 12석 4.01%
무소속 16석 0석 16석 5.35%

1996년 4월 11일에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로, 20세기에 치러진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거이다. 63.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의원 정수는 지난 총선과 동일한 299명으로 지역구는 16석 늘어났지만 전국구가 16명 줄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1인 1표제를 통해 지역구를 선출하되, 전국구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덕분에 소수당에게 한해 유리한 쪽으로 개정된 셈인데 대신 전국구 의석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선거에서는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통합민주당, 변화당, 무당파국민연합 등이 참여했다. 당시 정당별로는 신한국당의 제1당 수성과 과반수(150석) 확보, 새정치국민회의의 개헌저지선(100석) 확보, 자유민주연합의 60석 이상 확보, 통합민주당과 변화당의 원내교섭단체(20석) 확보가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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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대통령 선거


노태우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민간인 출신의 후보들이 출마함과 동시에 김영삼-김대중-정주영의 삼파전으로 치러졌다. 총선 패배 이후 민주자유당의 당권을 잡은 김영삼은 '신한국 창조'를 모토로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으며 김대중은 여당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정권 교체를 강하게 추구했다. 현대그룹의 재력을 통해 통일국민당을 이끈 정주영은 총선 돌풍 후 대선에 출마하게 되고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이란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재벌 해체를 비롯한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었다.

선거 운동 기간 민주자유당과 민주당이 서로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고 이에 김영삼-김대중의 접전 양상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1992년 12월 11일 부산직할시 대연동의 '초원복국'이라는 음식점에서 정부 인사들이 지역 감정을 부추겨 모의하려 했던 사건이 터지며 김영삼 후보가 불리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언론을 통해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불법 도청으로 알려지면서 정주영 후보는 이 사건으로 역풍을 맞게 된다.

끝내 김영삼은 41.96%의 득표율로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고, 경쟁 후보였던 김대중은 33.82%, 정주영 후보는 16.31%, 박찬종 후보는 6.37%로 패배하게 되었다. 이 선거를 통해 김영삼은 그 동안의 군사 정부를 완전히 청산하고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정부를 이끌게 되지만 김대중은 선거 패배의 책임으로 정계를 은퇴했고 정주영은 현대그룹과 함께 선거법 위반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던 중 의원직을 사퇴했다.

DJ 복귀·새정치국민회의 창당

14대 대선의 패배로 정계를 은퇴한 김대중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지지로 정계 복귀 가능성이 커졌고 1995년 7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계 은퇴를 번복하게 된다. 끝내 9월 구 평화민주당의 구성원과 재야 인사들을 모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게 되었으며, 대통령중심제를 추구하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중적인 정당을 표방하게 된다.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명칭은 인도의 '인도 국민 회의'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노무현, 이기택 등이 포진해있는 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잔류를 선택하면서, 개혁신당과 함께 통합민주당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세 정당이 중심인 삼김이라는 정치적 특성을 고려하면 지역 기반도 없고 제4당을 유지할 수 있는 당세 또한 높지 않았기에 향후 선거에서의 성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으며 개혁 정당을 추구한다고 했으나 오히려 변화당에게 밀리는 형국으로 가고 있었다.

신한국당·자유민주연합 출범

문민정부 출범 이후 김영삼은 비극적인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언급을 통해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추진되었고, 1995년에는 12·12 군사반란 가담자로 지목된 두 전직 대통령인 노태우와 전두환을 구속시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민주자유당은 14대 대선 당시 국정 슬로건으로서 내세운 '신한국 건설'에서 따와 '신한국당'으로 명칭을 고치고, 보수 온건화를 추진한 새정치국민회의와 비슷하게 중도 노선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이는 3당 합당 이후 5년 만에 집권 여당의 명칭과 노선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때 공화계를 이끄는 김종필이 퇴진을 촉구하라는 민주계와 김영삼의 태도로 인하여 탈당을 선언했고,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게 된다. 총재가 된 김종필은 '당을 쫒아내는 게 세계화냐', '다른 지역에서도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고 있다'는 발언을 통해 충청도 핫바지론과 원조보수론을 내걸며 강원도와 수도권의 지지를 얻어내며 대경권 공략을 위해 문민정부에 반발한 구 민정계 세력을 대거 영입시켰다.

첫 지방선거와 변화당의 '변화'

1995년 6월 27일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역주의의 부활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3당 합당으로 1991년 지방선거에서 우세를 점한 민주자유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인 지역, 영남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패배했고, 여기에 무소속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는 이변을 맞았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선전을 일으키며 여당을 압도한데다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에서도 제1당을 차지했다. 민주자유당에서 분당된 자유민주연합도 충청권과 대구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제3당 안착에 성공했다.

그러나 선거에 참여한 변화당이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김민재 의원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분개했고, 결국 이한수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공식적으로 내세우게 된다. 변화당의 정치적 변신은 지역주의에 염증이 생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결속이 이루어졌으며 역사바로세우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반면 부정부패 타파와 정치 개혁을 당의 핵심으로 내걸었다. 이로써 변화당은 후원회까지 설립하는 행보를 거쳐 삼김을 위협할 새로운 정치 세력의 부상을 예고했다.

게리맨더링으로 불거진 선거구 획정

또 15대 총선에서는 1995년에 시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선거구 획정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여야는 전체적인 선거구 획정을 다음으로 미루는 대신 14대 총선 당시의 선거구 몇몇을 조정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조정된 지역구는 260석, 전국구는 39석으로 나타났는데 문제는 선거구의 최대 인구와 최소 인구의 편차가 6:1로 나타나는 바람에 표의 등가성 문제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또 충청북도에서는 선거구가 개편되던 중 게리맨더링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동년 12월 27일 인구 상한선과 하한선의 비율을 4:1로 낮출 것을 판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획정을 놓고 여야 간 기싸움이 벌어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보다 못한 헌법재판소도 구체적인 숫자까지 거론하며 선거구 획정을 제안했으나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여야 합의 끝에 야당안을 수용함으로써 선거구 획정에 관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지역구 253석, 전국구 46석으로 의석이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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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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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조사
정당 지역구 전국구 예측 의석 수 최소대표차
신한국당 150석 18석 168석 130~189석
새정치국민회의 49석 11/12석 60/61석 54~82석
자유민주연합 26석 6/7석 32/33석 25~37석
변화당 15석 6/7석 21/22석 18~36석
통합민주당 5석 5석 10석 9~11석
무소속 8석 - 8석 4~10석
의뢰기관: KBS, MBC, SBS, CBS
수행기관: 한국갤럽, 코리아리서치, 미디어리서치, 월드리서치, 동서리서치
수행기간: 4월 4일~7일(1차), 4월 8일~10일(2차), 4월 11일 14시까지(3차)
조사대상: 253개 지역구, 선거구별 350~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4.3%p
선거 결과
정당 득표수 지역구 전국구 총합 지위
신한국당 5,911,246 (30.1%) 109석 16석 125석 제1당
새정치국민회의 3,941,225 (20.1%) 63석 11석 74석 제2당
자유민주연합 2,795,683 (14.2%) 41석 9석 50석 제3당
변화당 2,625,420 (13.4%) 16석 6석 22석 제4당
무소속 2,372,005 (11.8%) 16석 당선자 없음 16석 -
[ 기타 정당 결과 ]
통합민주당 1,875,741 (9.5%) 8석 4석 12석 제5당
무당파국민연합 177,050 (0.9%) 당선자 없음 당선자 없음 - 등록
취소
대한민주당 3,114 (0.02%)
21세기한독당 1,693 (0.01%)
친민당 571 (0.003%)
무소속 당선자 복당 시 여야 구도
여당 125+16석 (47.1%)
(52.9%) 158석 야당
[ 세부 결과 ]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변화당 통합민주당
141석 74석 50석 22석 12석
여당 야당

선거 결과 신한국당 125석, 새정치국민회의 74석, 자유민주연합 50석, 변화당 22석, 통합민주당 12석, 무소속 16석으로 나타나 신한국당의 선전, 새정치국민회의의 부진으로 풀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연합은 지역주의 활용과 민정·공화계 인사 영입을 통해 충청권은 물론 대구, 강원에서 어느 정도 선전했으며 PK 출신들로 구성된 통합민주당은 12석으로 원내교섭단체를 상실해 당의 입지가 불투명해졌다.

한편 지역주의 타파, 정치 개혁으로 돌풍을 일으킨 변화당은 수도권에서만 22석을 확보하며 자유민주연합 다음으로 선전함과 동시에 원내교섭단체 진입에 성공했다. 변화당 자체가 군소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의석을 20석 넘게 확보했다는 것은 당 내에서는 엄청난 호재일 것이다. 한편 영남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결성한 무당파국민연합은 17만 표를 얻고도 전원 낙선해 원내 입성에 실패했으며 대한민주당, 친민당, 21세기한독당은 아예 1%도 넘지 못해 등록 취소를 받게 되었다.

지역별 결과

지역별 결과
지역 / 정당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변화당 기타 · 무소속
서울 (47석) 21석 15석 당선자 없음 10석 3석
경기 (38석) 12석 10석 5석 6석 5석
인천 (11석) 9석 2석 당선자 없음
강원 (13석) 9석 당선자 없음 2석 당선자 없음 2석
대전 (7석) 당선자 없음 7석 당선자 없음
충북 (8석) 2석 당선자 없음 5석 당선자 없음 1석
충남 (13석) 1석 당선자 없음 12석 당선자 없음
광주 (6석) 당선자 없음 6석 당선자 없음
전북 (14석) 1석 13석 당선자 없음
전남 (17석) 당선자 없음 17석 당선자 없음
부산 (21석) 21석 당선자 없음
경남 (23석) 17석 당선자 없음 2석 당선자 없음 4석
대구 (13석) 2석 당선자 없음 8석 당선자 없음 3석
경북 (19석) 11석 당선자 없음 2석 당선자 없음 6석
제주 (3석) 3석 당선자 없음
합계 109석 63석 41석 16석 24석

수도권에서는 의외로 신한국당이 총합 42석을 확보했는데, 북풍 여론이 크게 작용했는지 서울에서 21석, 경기에서 12석, 인천에서 9석을 얻어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표 분산으로 인해 27석을 얻어 패배했고 통합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경기에서만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변화당은 탈지역주의, 정치 개혁 노선이 지지층 결집을 촉발시킨 덕분에 수도권에서 16석을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삼김의 패권을 완전히 차단시키기에는 실패했다.

강원도는 신한국당 9석, 자유민주연합과 통합민주당이 각각 2석을 확보했고, 당연히 신한국당이 과반을 차지했다. 자유민주연합은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춘천시 을과 강릉시 갑에서, 통합민주당은 강릉시 을과 삼척시에서만 당선자를 낸 반면, 새정치국민회의는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무소속 후보들의 경우 횡성군·홍천군 지역구의 유재규와 동해시 지역구의 홍희표를 제외하면 30%에 근접하거나 미달된 후보들이 대부분이라 낙선의 고비를 마셔야 했다.

충청권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이 대전에서 7석, 충북 5석, 충남 12석을 확보하며 총합 24석으로 당당히 충청권 최대 정당으로 등극했으며, 이는 충청권 보수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3석만 건지고 패배했으며 무소속은 제천시·단양군의 김영준만 당선된 반면 민주당계 후보들은 모조리 낙선되었다.

호남권에서는 민주당계의 대표적인 텃밭답게 36석을 새정치국민회의가 가져갔다. 신한국당은 야당을 9.3% 차로 이긴 군산시 을밖에 확보해 교두보를 얻어냈지만 다른 후보들은 전부 낙선되었다.

영남권에서는 신한국당이 51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해 높은 지지세를 보여주였으나, 대구에서 8석을 자유민주연합에게 내주는 바람에 여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구에서 참패했다. 자유민주연합은 대구에서의 선전과 함께 영남권에서 11석을 얻었으며 통합민주당은 부산·경남 지역에만 3석, 경북에서 1석을 얻었다. 무소속으로는 12명이 당선되었다. 제주에서는 신한국당이 석권하였으며 무소속 후보들이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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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로"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을 결정짓는 20세기 마지막 선거로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의석 감소에도 불구하고 제1당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야권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통합민주당의 부진과 자유민주연합·변화당의 돌풍으로 의석 상으로는 여소야대로 짜여지게 되었다. 허나 지역주의 민심이 이번 선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정치 불신으로 인한 투표율 하락으로 인해 청년층을 끌어모으려 했던 변화당은 당초 예상했었던 30석 이상까지는 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만 남겼다.

하지만 국회 개원 이후에도 지역주의와 인물·계파·인맥 중심으로 점철된 정치권에서 변화당을 제외한 네 개 정당들이 잦은 당적 변경과 정계 개편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노동법 날치기 사건, 한나라당 출범, 제15대 대통령 선거, DJP연합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변화당은 정치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그들의 행보를 비판했으며 다음 총선에서 낡은 정치적 환경을 타파할 것을 다짐해 강력하게 준비할 것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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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선거에서 개표방송을 맡은 KBS, MBC, SBS의 예측조사 결과는 실제 결과와는 달랐는데, 신한국당은 가중치를 높게 잡아 175석으로 예상했고,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변화당, 통합민주당은 반대로 가중치를 낮게 잡아버리는 바람에 신한국당이 환호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러나 개표가 시작되면서 예상보다 여당이 부진하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방송 직후 항의 전화가 빗발치며 다음 날 사과를 해야 했다.
  • 서울 종로구에서는 이명박, 이종찬, 노무현, 김을동, 최현월이 후보로 등록되며 군소 후보들과 함께 경쟁을 치렀는데, 선거 결과 이명박이 당선되어 초선 정치인이 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998년, 불법 선거운동의 혐의를 받고 의원직에서 사퇴했고 재보궐선거 결과 노무현이 당선된다. 이는 두 전직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셈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종로구에서는 역대 대통령을 세 번이나 배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이번 선거에서는 '신인 영입'과 비정치인들의 '정계 진출'로 주목을 받은 선거였다. 신한국당은 개혁적 중도, 진보 운동권 성향의 인물들을 대거 영입시킨 반면, 새정치국민회의는 과거 정계에 몸을 담근 보수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시켜 세를 과시했다. 변화당 또한 개혁 성향의 인물들 뿐만 아니라 30대 청년들까지 영입시키는 등 인재 영입에 뛰어들었다. 또 정동영, 박성범, 맹형규 등 뉴스 앵커 출신들이 정계에 뛰어들었고, 박호성 화백과 작가 김진명도 정계에 진출했다.
  • 지난 총선에서 전국구로 당선된 최불암이 전원일기 출연을 중단하고 이번 총선에서 영등포구 을에 출마해 재선을 노렸으나, 초선 정치인인 김민석에게 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최불암은 정계를 은퇴하며 전원일기에 복귀하게 되었다.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 시즌 1을 보고 계십니다. 본 세계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